• 푸틴과 이명박, 준주변부의 관벌들
        2009년 04월 15일 09:54 오전

    Print Friendly

    오늘 레닌그라드 국립대 동양학부의, 저의 한 선배를 초청 강연에 모셨습니다. 인도학을 하시는 분이고, 제 1년 선배이신데, 제가 졸업한 뒤에 거의 뵙지 못했다가 이렇게 오슬로에서 15년만에 해후한 셈입니다.

    제가 내일의 출국을 앞두고 제대로 모시지도 못했는데, 어쨌든 오슬로대가 지급하는 얼마 안되는 초청인사 식사 비용으로 오늘 조촐한 식사를 하면서 저희 두 사람의 모교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선배님은 지금 그쪽에서 민속학 박물관 상임연구원을 하시면서 모교에서 시간강의를 나가시는데, 어쨌든 학교 사정에 꽤 밝으신 분입니다.

       
      ▲ 필자

    그 분의 러시아 삶살이 이야기를 다 글로 옮기면 놀라운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모친께서 도로를 횡단했다가 속도제한을 무시하고 행인을 안보고 다니는 어떤 고급 승용차에 치여 수술을 받게 됐는데, ‘뺑소니’를 저지른 운전자를 아무리 고소, 고발해도 ‘상납’ 없이 송사 해결이 불가하다는 이야기부터 말씀입니다.

    공산당을 좋게 보든 나쁘게 보든간에 그래도 그 때에는 적어도 이와 같은 ‘일상’ 영역에서는 ‘공공성’의 논리는 훨씬 잘 적용됐습니다.

    고급 간부라 해도 ‘뺑소니’를 저지르면 처벌을 받게되어 있었지요. 그러나 재미있게도 자본화돼가면서 사회가 일정 수준 ‘탈현대화’돼 권력이 사유화되고 말았습니다.

    공산당 시절에는 그래도 법이 통했는데

    그런데 학교 노동자인 저로서 제일 ‘자극적’ 부분은 요즘 저희 모교의 교수 행정 관계이었지요. 원래 러시아는 당연히 국립대학은 종신고용제인데, 이건 소련 시대 이전에 독일식 학교 행정을 본뜬 그쪽 대학의 ‘전통’이지요.

    일본과 과거 (김대중 집권기 때의 신자유주의화 이전의) 한국의 학교 형태도 대체로 그 뿌리입니다. 그런데 푸틴과 메드베데프 등 현재 권력자들의 ‘은사’라는 공로(?)로 지금 총장이 된 그 쪽 새 총장은, 자신의 명령으로 하루에 일체 교수들을 계약제로 바꾸어 놓았답니다.

    5년제 계약인데, 원칙상 재계약 여부는 학교 재량입니다. 물론 ‘구두 설명’은 "이게 형식일 뿐이다. 큰 하자 없는 한 정상적 종신고용을 당연히 시켜주겠다"는 식인데, 말로 하는 게 어느 법원에서도 쓸모가 없지요. 즉 지식인 ‘철밥통’ 시대는 그쪽에서 이제 막을 내리는 셈입니다.

    1970~80년대, 소련 말기의 공산당도 꼴보기 싫은 ‘재야적’ 교수를 함부로 해임시킬 수 없었는데(해임하려면 교수회의 결정, 현장 노조 위원장 사인, 총장 사인 등 너무나 많은 사인들을 받아야 했음) 이제 새로운 ‘주인네’들은 꼴보기 싫은 사람을 아주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겝니다.

    엄청난 변동이지요? 저는 당연히 사회에서 이에 대한 논란이 일어났으리라 짐작하고 ‘사회의 반응’에 대해 물었습니다. 선배의 답은 걸작이었지요.

    "러시아 사회? 그런 게 없어요, 없대니까요. 노조는 미동도 없었고, 교수들은 무서워서 일언반구를 못하지요. 공황인데 이 직장을 잃으면 어디를 가요? 그리고 학교와 무관한 이들은 학교 일에 간섭 안하지요. 대체로 지금의 러시아식 생활 방식이란, 자기와 식솔, 그리고 인연들을 챙기는 것인데, 그외의 세상에 철저히 무관심하지요. 사회를 찾으려면 당신네들의 노르웨이에서나 찾든지, 러시아에서 이런 게 잘 없어요. ‘가족’은 있고, 수천만 명의 ‘가족’들 위에 ‘나라 주인님’은 있는데, 그게 다예요"

    이게 사실 러시아뿐만 아니라 중국 등 소위 ‘권위주의형 신흥 시장 국가’들의 현실을 굉장히 잘 설명해주는 대목입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중국-러시아 블록의 자본주의가 ‘구’ 산업화 사회들에 비해 그 나름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건 바로 이걸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모범생’이 된 중국과 러시아

    어떻게든 기존 체제에 잘 적응해 ‘알아서 잘 기는’ 수천만 명의 고급인력들을 거느려 초과 수취를 행해 비교적 자유롭게 노동자의 몫을 줄여 이윤율을 높일 수 있는 사회(?)는 자본주의의 ‘모범생’이지요. 그리고 ‘사회’가 없다는 것은, ‘개인’이 온 마음, 온 몸으로 ‘오로지 시장, 오로지 국가’를 받들고 이 둘의 절대적 권력/권위에 자신을 맞추어야 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끔찍한 일이지만, 자본가 입장에서는 완전히 원자화된 ‘인력’이야말로 요리하기에 제일 좋지요. 물론 요즘 몰도바나 그루지아에서의 폭동들은 보여주듯이, 이와 같은 식으로 조직된 준주변부 사회에서 ‘나라 주인님’이 ‘백성’들을 잘 먹여주지 못할 때에 "나쁜 주인님을 쫓아내 좋은 주인님을 맞이하자"하며 대중 운동도 일어날 수 있지요.

    그러나 경쟁하는 관벌 중의 또 다른 관벌이 그렇게 해서 집권해도 본격적으로 바뀔 게 아무 것도 없을 것입니다. 세계 자본의 ‘황금 어장’인 옛 스탈린주의 지역들의 사정은 그렇습니다.

    저는, 이명박 등 요즘 한국 지배자들도 이와 비슷한 형태의 ‘개인만 있고 사회가 없는’ 상태를 이상시하는 게 아닌라, 라는 의심을 떨쳐내지 못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사회’의 버팀목인 방송부터 왜 꺾으려 했겠습니까? 푸틴도 방송 등 언론 장악부터 시작했단 말예요.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