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품 글이 경계 대상이 된 이유
        2009년 04월 13일 07:1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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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석춘씨의 글은 아껴 읽은지 오래 되었다. 날카로울 때 적절히 날카롭고 단호할 때는 맹렬히 단호할 줄 아는 그의 글은 귀감이었고, 모범이었고, 모방하고 싶은 명품이었다. 문장으로만 보자면 지금 역시도 빛나는 귀감이고 착실한 모범이며, 탐낼만한 명품이라는 사실이 크게 어그러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장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잔에 담긴 누런 액체를 속시원한 맥주로 알고 벌컥벌컥 들이켰다가 뜨뜻미지근하고 역한 냄새나는 말 오줌인 걸 뒤늦게 깨닫고 토해 버린 뒤로 그의 글은 나에게 경계 대상이다.

    경계 대상이 된 그의 글

    4월 9일자 <한겨레>에 실린 그의 칼럼 ‘시흥 평택의 길’도 역시 그랬다. 그의 아름다운 문장이라는 이름의 잔 속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는 첫머리에 소개한 이솝우화에서부터 드러난다.

    사자가 소들을 잡아먹기 위해서 소들을 이간질시키고 서로 싸우는 통에 몽땅 다 잡아먹히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나 역시 손석춘씨처럼 읽을수록 노예 이솝의 슬기에 눈이 부시나, 이솝은 자신의 우화가 이런 식으로 악용되는 것에 그 노기를 감추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손석춘씨에게 물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것을 가져오라는 임금의 분부에 내가 가져온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바로 혀였다. 그것은 사람을 베고, 사람의 총기를 흐리며, 사람을 파멸로 이끌기도 한다. 바로 당신 손석춘의 혀처럼."이라고 손가락총을 겨눌지도 모른다.

    손석춘씨의 이솝 우화의 해석에 따르면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빛나는 정치적 언술을 토해낸 이는 이승만이다. "뭉치면 삽네다. 흩어지면 죽습네다." 붉은소, 얼룩소 검은 소 따지다 보면 다 죽는다는 이야기였다. 식민지 벗어났다고 너희들같이 팔뚝질하다가는 또 어느 놈이 낼름할지 모르니 뭉치자는 주장이었다. 단 거기에는 단서가 있었다. 단결의 맹주는 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

    손석춘의 착각

    ‘명토박아’ 두지만 진보정당이 두 개로 갈라진 것은 손석춘씨가 땅을 치며 한탄하듯 서로의 힘겨루기 때문이 아니었다. 내 방식대로 단결하자며 우기고 내 방식에 따르지 않는 이들을 깔아뭉개면서도 "분열은 죽음"이라고 소리소리지르는 상식 이하의 이승만들이 당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승만이 자신의 정적들을 태연히 암살하고 매장시키면서도 단결하자고 외쳤듯, 남한의 진보정당 간부는 북한에 정보 보고서를 올렸고, 그 사실에 대한 해명도 없이 ‘동지에 대한 보위’를 외치며 모든 비판을 이적행위로 몰아부쳤다.

    굳이 손석춘씨에게 그 정보 보고서를 코 앞에 들이밀어 주어야 알겠는가. 아무개는 사상이 투철하고, 아무개는 출세주의자이며, 아무개는 회의 시간에 좀 멍청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침을 받아야 움직이는 말대가리라고 보고한 보고서를 일일이 읽어 주어야 이해를 하겠는가. 또 그 사실 전부를 믿을 수 없고, 정보기관의 조작일 뿐이라고 ‘명토’만 박아 댈 것인가.

    콩알만한 것이 갈라졌다고 개탄하기 전에 손석춘은 그 콩알의 반쪽에 무슨 독이 퍼져 있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콩알의 ‘꼭뒤’를 어느 세력이 틀어쥐고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관철시키려 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사소한 차이’가 아니라는 것을 모른다면 손석춘씨는 유감스럽지만 판단력이 떨어진다고 볼 수 밖에 없고, 안다면 죄송하지만 정치적 사기의 혐의를 벗어나기 어렵다.

    무책임한 시누이

    그가 감격하여 예를 든 ‘평택 민주단체연대회의’는 말 그대로 연대회의다. 미군 기지가 들어서는 것을 막고자 하는 사안에 손을 보탠 사안별 연대 활동일 뿐이다. 사안별 연대까지 손을 뿌리칠만큼 아둔한 진보신당도 아니고, 일부러 참여를 막을 정신나간 민주노동당도 아니라면 그것은 당연한 일일 뿐이다.

       
      ▲ 평택민주단체 연대회의 출범식 모습 (사진=평택 평화 센터)

    개별적인 이슈라면 보수단체들도 ‘대동단결’에 동참하는 것이 귀한 사례는 아니잖은가. 문제는 이 지당한 결과를 "진보-민주세력의 대단결로 새로운 대안을 만들라는 시대적 과제"의 상서로운 조짐으로 지레 규정짓는 ‘속보이는’ 행동일 뿐이다.

    몇 번을 ‘톺아’ 얘기한들 손석춘씨가 알아들을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단결의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다. 지금 콩알의 크기에 집착할 일이 아니라, 어떤 콩알로 키워가야 할 것인가에 더 주안점을 두어야 할 때이다.

    대체 무엇을 위하여 단결할 것인가를 공유하지 못한 채 무조건 단결을 운운하는 자신의 모습이, 짐승처럼 두들겨 맞다가 집 나간 아내에게 "너도 잘못이 있고 가정은 깨지 말아야 하지 않겠니."하면서 무조건 귀가를 종용하는 무책임한 시누이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손석춘씨는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대동단결론과 연환계

    단결이라는 소리는 일견 단순하나 복잡하다. 뭉치면 산다는 말은 언뜻 멋있어 보이나, 자칫하면 적벽의 연환계에 빠진 조조 함대의 참극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배와 배들을 쇠사슬로 얽어맨다고 단결이 아니며 결국은 다 함께 불쏘시개로 변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이승만 휘하의 단결은 단결이 아니다.

    몇 년을 두고 진행된 정치적 동거 과정에서 이미 서로의 정체를 알대로 알아버린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동료들의 정치적 평가를 다른 나라 정보 당국에 납부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그 의혹을 푸는 것조차 가로막으며 동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우겼던 이들과 도저히 함께 갈 수는 없다고 자신들이 씨를 뿌린 정당의 터전을 벅벅이 피눈물 흘리며 나와야 했던 사람들에게 "애초 당을 쪼갤 일이 아니었다"고 눈흘기는 손석춘씨. 지금 내 눈에 그는 송창식의 노래 피리 부는 사나이의 주인공 이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 나는 피리부는 사나이 바람 따라가는 떠돌이 단결 피리 하나 불고 다닌다.~~~~~~"

    그놈의 단결 피리 그만 불자.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 번이다.

    "모진 비바람이 불어도 거센 눈보라가 닥쳐도 ….. 단결 피리 하나 불고서 언제나 부는 멋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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