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고사 왜 봐야 하는거예요"
        2009년 04월 10일 01: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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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금했다. 어른들은 일제고사를 두고 말들이 많은데 정작 시험을 보는 아이들의 생각은 어떨지 말이다. 그래서 직접 만나서 아이들의 얘기를 들었다. 듣는 내내 놀라웠고 미안했다. 놀라운 건 시험을 싫어할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을 몰랐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런 얘기하는 것도 부담돼요"

    미안한 건 이렇게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해 어른들은 무엇을 했나 싶어서다. 아이들은 일제고사를 보는 것을 끔찍이 싫어했다. 그리고 시험이 싫다는 얘길 하는 것조차도 겁에 질려 있었다.

    인아(중3)는 “뉴스에 나오잖아요. 일제고사 반대했다가 선생님 잘리고 그런거요. 학생들도 괜히 싫다고 했다가 불이익을 당하면 어떡해요. 그래서 솔직히 이런 얘기하는 거 좀….”라며 부담스러워했다.

       
      ▲ 사진=윤춘호 현장기자

    일제고사 시험 자체는 쉬운 편이었다고 했다. 미애(중3)는 “쉬워요. 엄청 쉬워요. 저도 그렇고 웬만한 애들은 10분만에 다 풀어요. 남는 시간에는 자거나 놀아요. 어떤 애들은 답안지에 하트 표시를 하거나 4번을 다 찍거나 그래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려웠다는 아이도 있다. 원철이(중2)는 “일제고사가 지난 학년 걸 보는 건데요. 전 다 까먹었거든요. 저는 학원도 안 다녀요. 그냥 학교에서 배우는 것 만 듣고 공부하는데 그전 꺼 하라니 부담이 돼서….”라며 입을 쭉 내밀었다.

    한 번 정도면 봐주겠는데

    한번 정도는 봐줄 만하다는 아이도 있다. 준형이는(중3)는 “1년에 한 번 정도 보는 것은 괜찮은데 두 번은 정말 정말 싫어요”라고 말했다. 한번이야 어떻게든 참아보지만 두 번까지는 정말 못 참겠다는 투다.

    일제고사와 중간고사(내신에 들어가는)가 연이어 있어서 짜증이 난다고도 했다. 인아는 “일제고사 뒤에 바로 중간고사 있으니까요. 일제고사를 준비해야 할지 중간고사를 준비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아이들은 왜 일제고사를 봐야 하는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미애가 정말 궁금한 듯이 물었다. “일제고사는 왜 봐야 하는 거예요?” 그러자 아이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정말 정말 그거 왜 보는 거예요?”

    선생님들이 일제고사를 왜 봐야 하는지 가르쳐 주지 않았냐고 했더니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다. 준형이는 “그냥 보래요. 나라에서 하는 거니까 선생님들도 그냥 보라고만 하세요. 설명도 안 해주고. 어떤 선생님은 ‘시험지 나눠줬으니까 그냥 봐’ 이래요”라며 어이없어 했다.

    “아니야. 특목고 보내려고 그런다고 하는 것 같던데”, “성적 좋으면 돈 준다고도 했어”. 여기저기서 일제고사를 보는 이유에 대한 얘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정작 정부가 주장했던 일제고사를 꼭 봐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이해하거나 동의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일제고사를 보면서 느끼는 스트레스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일제고사를 보고 난 후 아이들이 받는 상처다. 미애는 “강남 애들하고 우리 동네 애들하고 너무 비교를 해요. 일제고사 보고 나면 우리 동네는 못 보고 강남 애들은 잘 봤다고 하니까. 우리만 못난 것 같잖아요”라며 짜증이 난다고 했다.

    "나라에서 하는 거니까 그냥 봐"

    준형이도 “잘하는 애들하고 못하는 애들하고 비교하는 건 아니잖아요. 잘하는 애들은 ‘천재’라고 하고 못하는 애들은 ‘쓰레기’라고 하는 건 잘못이에요. 서태지는 고등학교도 중퇴여도 성공했는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인아는 일제고사 성적표도 불만이다. “성적표가 너무 자세해요. 넌 이거 못하고 저것도 못하고 그런거 보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얼마나 자세히 나오는지….”. 원철이는 “전 사실 공부를 잘 못해요. 그런데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는 반 등수하고 학교 등수만 나오는데 일제고사는 전국으로 다 나오니까 내가 더 못하는 것 같고. 하여튼 엄청 짜증나요”

    얘기하는 내내 ‘그냥 시험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원래 시험을 싫어하니까’가 아니라 진심으로 아이들은 더 이상 이 시험을 보고 싶어하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른들은 왜 우리 얘기는 하나도 들어주지 않는 거지요?”라고 물어보는 아이들에게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일제고사 이래도 계속 해야 하나?

    아이들이 생각하는 일제고사 – 일제고사는 00다?!

    인아 : 일제고사는 ‘감옥’이다.

    미애 : 일제고사는 ‘쓰레기’이다.

    준형 : 일제고사는 ‘자기진단’이다.

    원철 : 일제고사는 ‘나를 무너뜨리는 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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