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혁적 지식인' 여러분, 제 말씀 좀..."
        2009년 04월 10일 10: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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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노무현 게이트’ 터진 데에 대해서는, 저는 이상하게도 별다른 관심조차 느끼지 않았습니다. 이상하다는 것은, 2002년 벽두 대선 결과를 봤던 제 시선을 생각할 때에 그렇다는 것이지요.

    푸틴, 고이즈미, 부시 그리고 노무현

    이미 머나먼 시절인 것처럼 느껴지는 그 2002년 벽두에, 저는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대한민국이 무한히 자랑스러웠습니다. 푸틴의 러시아, 고이즈미의 일본, 부시의 미국에 비해서는, ‘노무현의 한국’은 그 당시로서 왠지 ‘희망의 오아시스’로까지 느껴진 부분은 있었지요.

    그러나 그 뒤로는 가슴 아픈 일이 하도 많아 ‘그 때 그 감동’은 결국 여지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시민 김선일의 희생된 목숨과 함께 말씀이지요. 이라크 파병과 김선일의 죽음 이후에는 제게 ‘노무현’이란 더이상 그 어떤 ‘의미 있는’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봉하마을을 찾은 한 가족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을 흉내낸 그림판을 나란히 하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노무현 홈페이지)

    사실, 지지한 일도 없고 약간의 ‘희망’을 가져봤을 뿐인데, 2003년 이후로는 그 ‘희망’도 없어지고 말았고, "일체 보수 정치인에 대한 관심을 아예 끊는 게 좋다"는 결심은 섰습니다. 지금도 그 결심대로 살고 있지요.

    하여간 저도 ‘노무현 게이트’가 있으나 마나 "보수 정치인이란 대한민국에서는 원래 그것이지요…"라는 생각 이외에 별다른 감상이 없는 것이고, "정치인이란 원래 그냥 도둑이다, 단 일반적인 도둑보다 훨씬 악질적이다"라는 상당수 한국인들의 정치관을 공유하는 제 아내도 무관심, 무표정이었습니다.

    노무현 게이트와 개혁적 지식인

    아니면 군사 정권 말기보다 숫자가 그래도 좀 줄었다는 데에 대한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을지도 모르지요. 그 때야 단위는 백 억대이었지 않았나요?

    저야 ‘추락한 노무현’에 대한 눈물도, 솔직히 이렇다 할만한 분노도 (‘대한민국 보수 정치인’ 중에서는 그보다 나은 이가 있으면 그에게 먼저 돌을 던지시라!) 관심도 없는데, 제 주위에 이번 일을 많이 비관하실 분들이 좀 계십니다.

    다름이 아닌 노무현을 ‘끝까지 지킨’ 소위 ‘개혁적 지식인’ 분들입니다. 이 분들의 이라크 파병이나 한-미FTA, 비정규직 양산 등에 대한 감상은 저와 별로 다르지도 않았는데, "그래도 개혁이지 않나", "그래도 역사의 진보이지 않나"라는 말로 끝내 ‘차악론’을 펼치신 것입니다.

    즉, 노무현 정권도 ‘문제’가 많지만 ‘반대쪽’에 비해 그래도 덜 악하고 조금 더 선하지 않나, 조금 더 ‘개혁 지향적’이지 않나, 이것이었습니다.

    그 분들이 말씀하시는 ‘개혁’이란 뭔지 제가 늘 궁금해왔는데, ‘햇볕 정책’ 이외에는 대체로 △악법 (국보법 등) 폐지 △ 관료제 합리성 제고 (각종 토착 비리 척결) △월권을 행사해온 각종 대자본 (특히 삼성/조중동)에 대한 적당한 국가적 견제 △부동산 시장 정상화 (‘거품 터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단계적 땅값 내림세 유도, 투기 방지책), 그 정도였습니다.

    뭐, 발상이야 좋은 발상이지요, 저도 하등의 반대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자유주의적 ‘개혁론’의 기본적 문제점이란, ‘자유주의’라는 틀에 갇혀 있는 이상, 위에서 나열한 아주 ‘온건한’ 목표들도 사실 달성할 수 없다는 슬픈 현실입니다. 노무현 정권의 완전한 실패는 바로 이 부분을 입증하기도 합니다.

    ‘온건한 자유주의적 노선’마저도 사실상 ‘자유주의’보다 더 진화된 (사회주의적/사민주의적) 세력들만이 제대로 실행할 수 있다는 게 ‘한국적 정치’의 재미있는 역설입니다. 그게 한국 자본주의 형성 과정, 성장 통로, 그리고 현존 지배계급 새력 분포/지배 형태와 관련이 있어요. ‘온건 자유주의 개혁’ 목표 별로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지요:

    1) 악법 폐지

    국보법 폐지라도 성취하자면 한국적 ‘지배 연합’의 한 축인 ‘안보 블록’ (군+ 정보기관)과의 심각한 대결을 불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특히 군 고위급들의 현 입장에서는 북한과의 대결을 법제화시키는 국보법이야말로 ‘거대한 육군’의 존재 근거이기도 합니다.

    국보법을 폐지해가면서 이북과의 ‘평화공존’을 심화시키자면 "꼭 군인 머릿수가 70만이어야 되느냐"라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거든요. 그런데 그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고 너무나 귀중한 ‘밥통’의 문제입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에서 ‘자유주의 정치인’ 중에서 ‘안보 블록’과의 아주 심각한 불화를 감수할 사람은 있나요?

    2)관료제 합리성 제고

    사실 조금씩 나아져가고 있긴 하지만, 중앙, 지방에서 엄청난 토건 예산을 풀어주곤 하는 ‘토건 국가’ 체제 안에서는 예산 집행자와 시공업자 사이의 ‘검은 컨넥션’을 완전히 끊기는 어렵지요.

    한국보다 훨씬 진화된 일본의 관료제 작동법을 보시면 아실 것이지만, ‘토건 국가’로서의 한계라는 게 있어요. 그러면 ‘토건 국가’ 자체를 점차 해체시키자면, (역시 토건 업자들에게 여러가지 신세져온) ‘자유주의 정치인’으로서는 불가능하지요.

    3) ‘문제적 대자본’ 견제

    총수출의 15%를 삼성전자 하나가 보태주는 ‘독점 자본 위주의 수출 주도 모델’라는 틀 안에서는 그게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각종 ‘삼성관’이 많이 새워진 ‘명문대’를 봐도, 상당수 최고 국가 기관들의 현황에 대한 X파일이 제공하는 정보를 봐도, 삼성경제연구원과 역대 정권들의 경제 비전을 서로 대조해봐도 이 나라를 누가 실제적으로 지배하고 있는지 오척동자도 알 것입니다.

    이건 본격적으로 해결하자면 아예 수출 주도 모델을 해체시켜가면서 주요 독점 자본에 대한 준국유화 정책까지 고려해야 하는데, 그걸 ‘개혁주의자"들이 해낼 것 같아요?

    4) 부동산

    한국 지배계급의 가장 선호하는 저축 형태이기도 하고, 중산층 상위, 중위 부문의 포섭 도구이기도 합니다. 월급쟁이가 서울/경기도의 ‘괜찮은 동네’에서 아파트 한 채를 갖고 있어도 벌써 ‘서민’ 대열을 이탈해 ‘신분 상승’한 것처럼 느끼니까요. 부동산 시장 대수술을 계획하자면 역시 상류층뿐만 아니고 중간 계층들의 ‘윗부분’들의 반감 살 일까지 감수해야 합니다. 어느 자유주의자도 하기 어려운 일이지요.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개혁’ 담론이라는 게 한국에서 더 이상 의미가 없어요. 물론 제2, 제3의 노무현도 집권할 수야 있지만, 그 실적은 제1대 노무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걸요.

    자유주의자들은 그 무슨 ‘개혁’ 이야기를 들먹여도 ‘한국적 체제’ – 군사/안보 국가, 부동산 과열, 토건 집중, 관료들에 대한 대자본의 지배, ‘명문대’ 학벌 우대, ‘현대판 천민’ (비정규직) 과중 착취 등등 – 그냥 그대로 갈 것입니다.

    1998~2007년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으면, 그게 아예 바뀔 수 없다고 판단해야 합니다. 사회주의적/사민주의적 세력들이 정치, 사회적으로 ‘세력화’되지 않고서는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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