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기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
        2009년 04월 09일 12: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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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협력개발기구가 회원 국가들의 여러 가지 사회경제 지표들을 매년 취합, 비교하는 "2009년 통계연보"를 보면,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이렇게 살기 어려운지?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여러 지표들이 등장한다.

    우선, 한국인들이 가장 긴 시간 동안 일하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인의 연간 노동시간은 2007년 기준 2,316시간으로 회원국들의 평균(1768시간)을 크게 웃도는 1위를 기록했다. 하루 8시간 근무를 한다는 가정을 해 보면, 일 년에 289.5일을 근무하는 셈이다. 이는 일요일과 공휴일을 빼면 아직도 실질적으로는 주 6일 근무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에 소속된 국가들은 더 이상 근로시간의 연장이나 저가의 노동력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같이 할 수 있는 충분한 휴식과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학습 할 수 있는 시간, 그리하여 창조적인 활동에 투자할 수 있는 여유를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루어내고 있다.

    이렇게 보면, 근로시간의 문제는 단순히 노동 강도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결정하는 기술혁신력과 생산성을 좌우하는 핵심적인 문제이다. 대졸 초임자의 임금 삭감으로 마련한 재원을 바탕으로 신규 고용을 확대하는 대신, 근로시간 단축과 4교대 근무제 도입 등이 더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일자리 나누기(job share)가 아니라, 일 나누기(work share) 인 것이다.

    잡셰어와 워크셰어

    OECD 통계연보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연간 교육비 지출 또한 적지 않다는 사실도 확인해주고 있다. 우리의 교육비 지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7.2%로 회원국들의 평균(5.8%)을 넘어 핀란드, 스웨덴 등 세계 최고의 교육 선진국들의 수준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높은 교육비 지출 비율의 내부 구성이다. 우리나라 교육비 지출 중 민간 부문의 교육비 지출은 2.9%로 OECD 평균(0.8%)의 5배에 이르고 있다. 반면 공공 부문의 교육비 지출은 4.3%로 OECD 평균(5.0%)을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대해진 민간부문 교육비 지출로 인해 전체 교육비 지출 규모가 커진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교육부문에 가장 많은 돈을 쓰면서도 낮은 수준의 교육 만족도 밖에는 누리지 못하고 있다. 결국, 교육에서 정부의 역할과 공공성이 미약하여 교육의 성과가 부족하고 거시적 효율성이 저조한 것이다.

    어차피 국민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비를 부담할 상황이라면, 같은 액수의 돈을 사교육비로 지출할 것이 아니라, 공교육에 포함하여 지출하도록 하는 것이 올바르다. 우리 ‘복지국가 society’는 이렇게 될 경우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 환경을 구축할 수 있음을 누누이 강조해 왔다. 이 같은 주장의 정당성도 바로 이 지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높은 교육비, 기왕이면 공교육에

    지니계수는 소득 불평등 정도를 0과 1 사이 숫자로 나타내는데, 0에 가까울수록 소득이 균등하게 배분됨을 뜻한다. 덴마크(0.23), 스웨덴(0.23), 룩셈부르크(0.26) 등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의 지니계수가 상대적으로 낮은데 비하여, 우리나라의 지니계수는 0.31로, 조사 대상 29개국 가운데 13번째로 높았다. 그러나 다음의 자료들을 보면, 유독, 이 지수만 회원국들의 중간쯤 된다고 좋아하기에도 이른 것 같다.

    세전 소득에 대한 비교가 아니라 세금과 공적 부조 등의 국가의 역할을 통해 교정된 ‘세후 소득’으로 지니계수의 개선 정도를 비교해 보면, 스웨덴은 0.121, 벨기에는 0.119, 덴마크는 0.118 로 낮아진다. 즉, 이 나라들의 경우 정부의 재분배 정책을 통해 평균적으로 0.078 지니계수만큼 소득분배의 불평등이 완화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세후 소득으로 계산한 지니계수가 세전의 시장소득에 비해 단지 0.011 낮아지는 데 그치고 있다. 이는 정부의 소득재분배 정책을 통한 소득불평등 완화 정도가 OECD 회원국 평균(0.078)의 7분의 1에 그친다는 얘기가 된다. 적어도 소득재분배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나라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 정부들이 하는 역할의 14%만을 하고 있는 셈이다. 가히 작고 무능한 정부다.

    특히, 실질적으로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 생활비의 수준을 반영해 줄 수 있는 지표인 소득재분배액이 가계 가처분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이러한 차이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경제협력 개발 기구 회원국 가운데 오스트리아는 전체 가처분 소득의 36.6%가 각종 공적 부조의 형태로 정부를 통해 개별 가계로 이전되는 ‘이전 소득’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이전 소득’의 규모는 프랑스(32.9%), 스웨덴(32.7%)이 30% 이상의 수준이고, 회원국 평균은 21.4%에 이른다.

    이전소득 : OECD는 21%, 한국은 3%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단지 3.6%에 그치고 있다. 상위권 국가들의 1/10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즉, 우리나라는 현 정부가 강부자, 고소영 정책을 추진하지 아니하더라도 이미 중산층과 서민들은 가장 살기 어려운 나라, 상위 고소득층은 가장 살기 좋은 나라인 것이다.

    한미 FTA에 이어 한-유럽 FTA 등 개방과 세계화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OECD 수준의 규제 완화와 경제 질서를 주장하는 대기업과 기획재정부의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러한 경제사회 통계는 왜 애써 외면하려 하는지 대답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 국민들은 이제 감세 아닌 증세가, 작은 정부가 아닌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는 제대로 된 ‘책임 있는 큰 정부’가 가계의 가처분 소득 증진에 더 유리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우리의 잘못도 아닌 미국발 경제 불황 때문에 전 국민이 이렇게 고통을 받아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세계적으로 낮은 소득 재분배율과 이로 인한 실질적인 가처분 소득의 부족에 그 원인들 두고 있다. 보육, 교육, 노동, 복지, 보건의료, 노인 요양, 주거 등에 대한 국가의 보편적 역할이 방기되고 있는 것에서 기인하는 측면을 OECD 통계연보가 잘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자살통계를 보자.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18.7명(2007년)으로 헝가리(22.2명), 일본(19.1명) 다음으로 높았으며, 노인 인구를 제외한 20대와 30대의 자살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OECD 회원국 평균(79.0살)과 큰 차이가 없는 한국인의 평균 수명(79.1살)에도 불구하고 40대의 사망률은 여전히 1위를 보이고 있다. 초등학교부터 일제고사를 시작하여 중,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 진학까지, 그리고 졸업 후 취업까지 극심한 경쟁 속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 젊은이들은 높은 자살율로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보다 더 참혹한 것은, 한국의 가장들이 각종 과로와 스트레스, 이로 인한 성인병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소득재분배 등에 대한 국가의 역할이 다른 회원국들의 14% 정도에 그치고 있어, 한국의 가장은 가계의 모든 부담을 혼자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가처분 소득 늘릴 정치세력 선택해야

    이제 우리 국민들이 잘 사는 길은 부자 증세를 포함한 적정 수준의 담세와 보편적 복지의 제도화 등으로 국가의 역할을 크게 강화하여 소득불평등과 경제사회의 양극화를 줄이고 전체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늘리려는 정치세력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는 길이 공교육 강화를 통해 야만의 경쟁이 아니라 협력과 다양성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드는 선택이며, 우리나라의 40대 가장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노동 강도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지 않도록 하는 길이기도 하다.

    어떠한 정치세력이 우리를 더불어 잘 살게 해 주는지, 어떠한 정책들이 우리를 억울하게 죽어가지 않도록 하는지, 장차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경제사회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이제는 국민들이 되돌아보고 결정해야 할 때다.

                                                 2009년 4월 9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www.welfarestat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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