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이야기>, 정신이 번쩍 났다
    2009년 04월 07일 10: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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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송지나였다. 정신이 번쩍 났다. 송지나 작가의 <남자이야기> 1편을 보면서다. 송지나는 <여명의 눈동자>와 <모래시계>를 작업한 신화적인 작가다. 그래서 기대치가 높았다. 하지만 동시에 불안하기도 했다.

요즘은 막장 드라마와 가벼운 코미디극의 시대다. 불황에 접어들면서 사람들은 강력한 자극이나 가벼운 웃음거리를 원했다. 그래서 <아내의 유혹>과 <꽃보다 남자>가 인기를 끌고, <내조의 여왕>이 화제를 뿌리고 있다.

   
  ▲ KBS2 TV 월화 드라마 <남자이야기> 포스터

대작형 작품의 성적은 좋지 않다. 한류 블록버스터라는 <카인과 아벨>의 경우 동시간대에 방영되는 통속 멜러극인 <미워도 다시 한번>에조차 밀리는 형편이다. 청춘스타의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돌아온 일지매>는 말할 것도 없고, 전통적으로 한국인이 선호했던 대형사극인 <천추태후>도 그리 성공적이진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남자이야기>는 시작됐다. 이 작품은 한류 스타를 기용한 정통 드라마다. 아주 진지하며,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증오를 다룰 드라마일 것이 분명했다. <카인과 아벨>도 이런 방식으로 증오를 다룬다. 하지만 이렇다 할 울림이 없었다.

대중은 <아내의 유혹>의 구은재가 품은 증오에 더 공명했다. 그쪽이 더 경쾌하고 자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정통적인 방식으로, 깊고 강하게 울리는 인간의 정서를 다룬 정극이 <꽃보다 남자>의 후속편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불안했던 건 당연했다. 송지나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불안도 컸다.

쓰레기만두 사건에서 빨려들다

박용하가 석궁을 가지고 방송국에 난입하는 것으로 드라마는 시작한다. 원래 도입부엔 이벤트를 배치하는 법이니까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 다음엔 박용하의 정감 어린 일상이 스케치됐다. 이건 곧 닥칠 비극이나 엄청난 사건의 충격을 크게 하기 위해 전형적으로 거치는 코스다. 이때까진 그저 그랬고, 도대체 어떤 사건이 등장할까 불안하기도 했다. 그 사건이 흡인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이 드라마는 <카인과 아벨>의 전철을 밟게 될 테니까.

그 사건이 <카인과 아벨>에선 가족의 배신이었는데, <남자이야기>에선 ‘쓰레기만두 사건’이었다. 바로 이때 정신이 번쩍 났다. 그전까지 눈앞에서 부유하던 이미지 속으로 그 순간 빨려 들어갔다고나 할까?

쓰레기만두 사건을 생각해낸 송지나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 사건의 묘사는 매우 현재적이며 동시에 보편적이었다. 본인은 열심히 일했지만 어떤 거대한 외부의 힘에 의해 삶이 처절하게 부서지는 비극성은 현재 한국인 다수가 당하고 있는 현실과 접점이 이어진다.

<카인과 아벨>의 비극성에 감정이입이 안 되는 것은 어머니나 형의 배신을 딱히 ‘우리’의 이야기라고 느끼긴 힘들기 때문이다. 어차피 남의 배신이고 남의 복수라면, 신애리와 구은재의 괴상한 이야기가 더 재밌다.

정통적인 극, 특히 대작일수록 공동체의 보편적인 정서를 건드려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그 작품에 빨려들게 된다. <모래시계>는 그 전범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남자이야기> 1화에 나온 ‘쓰레기만두’ 사건과 사채일당에 의해 한 가정이 파괴되는 이야기에는 보편적이면서 절절한 힘이 있었다.

   
  ▲ 극중 김신(박용하)의 형이 운영하는 만두공장이 쓰레기 만두공장이라는 오명을 쓰고 문을 닫게 되자, 사채 빚에 쫓기던 김신은 석궁을 들고 생방송 뉴스 스튜디오에 난입, 담당기자를 위협한다. 석궁난입 설정은 2007년 판사의 판결에 불만을 품고 석궁으로 판사를 쏘아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사건에서 착안했다.

<에덴의 동쪽>처럼 되지 않길

<에덴의 동쪽>도 비슷하게 시작했다. 이 작품은 도입부에서 1960~70년대 탄광촌에서 벌어진 사건을 절절히 그려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냈었다. 적어도 도입부만 놓고 보면 <모래시계>의 도입부에 그다지 뒤지지 않았다. 그래서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에덴의 동쪽>은 ‘준막장’이라는 삼천포로 표류하고 말았다. 두 집안의 핏줄타령에 함몰됨으로써 보편성을 잃은 것이다. 또 도입부에선 스타보다 극이 우선이었다면, 중반 이후엔 극보다 한류 스타가 우선이 됨으로써 이야기의 힘도 잃었다.

한류 스타가 엮어내는 준막장 이야기는 어쨌든 시청률 전선에선 성공했다. 하지만 도입부에서 줬던 작품에 대한 기대는 공허한 실망이 되었다. 그 실망이 사실은 동시간대 경쟁작인 <꽃보다 남자>의 기적적인 성공에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어차피 막장 대 막장이라면, 젊은 시청자 입장에선 핏줄 타령을 지켜줄 이유가 없으므로 트렌디 막장으로 아주 손쉽게 갈아탈 수 있었던 것이다.

<남자이야기>의 강렬한 도입부를 보고도 마냥 기대만 할 수 없는 것은 바로 그런 <에덴의 동쪽>의 학습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도입부가 아무리 성공적이었어도 중후반부엔 전혀 다른 드라마가 될 수 있으니까.

<남자이야기>는 이제 주인공이 고난을 겪는 수순으로 들어갔다. 그 속에서 주인공은 강해지고 인맥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복수하게 된다. 너무나 도식적인 전개인데 이렇게 될 것이 100% 확실하다.

어차피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기본적인 도식성은 문제가 안 된다. 그 속에서 어떻게 살리느냐가 관건이다. 1화에서 놀라운 사건이 터질 것은 어차피 뻔했지만, 쓰레기만두 사건을 선택함으로서 도식성을 뛰어넘는 생동감을 엮어냈듯이 말이다.

박용하의 예정된 분노에 개성과 보편성(당대의 고통)을 녹여 넣는 것, 그러면서 한류 스타를 위한 극으로 전락하지 않는 것이 <남자이야기>의 과제라고 하겠다. 어쨌든 시작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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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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