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로켓, 봄꽃놀이, 프로야구
        2009년 04월 06일 11: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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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해, 일본 정부는 ‘비상체(飛翔体)’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도발행위”, “안보리결의 위반”이라고 선언했다. 유엔안보리 논의뿐만 아니라 독자적 제재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TV들은 연일 톱뉴스로 다루고 있으며, 신문들은 발사 당일 ‘북한 미사일 발사’라는 제목의 호외를 발행할 정도였다.

    ‘로켓 발사’는, 설사 북한이 ‘우주의 평화적 이용권’을 행사한 ‘인공위성’ 발사라고 해도 동북아시아 지역의 불필요한 분란을 막고, 이 지역에 지속가능한 평화의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유감스러운 일이다.

    북한이기 때문에 문제라는 단순 논리와는 다른 의미이다. 1998년 8월31일 북한이 ‘광명성 1호(서방에서 ‘대포동 1호’라고 부르는)’를 발사한 후, 그것을 핑계로 일본이 정찰위성을 쏘아 올렸을 때의 비판과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당시 일본은 ‘다목적 위성’이라고 했지만, 군사적으로 활용될 것을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로켓 기술이 언제라도 군사용도로 전용 가능하다는 것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핵개발을 하는 국가가 ‘핵의 평화적 이용’을 주장하지만, 핵기술이 ‘이중 용도의 기술’(dual technology)이기에 군사적 이용의 가능성을 배제한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북한 미사일 발사 보도신문을 읽는 일본 남성(사진=YTN), 일 이지스함, 일 PAC 3, 일 H-2A

    물론, 그동안 일본 언론은 대부분이 처음부터 ‘미사일 발사’라고 단정적으로 전제하면서 보도를 해왔다.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의 대북 강경여론 조성을 주도해왔고, ‘요격론’을 제기하면서 (준)군사적 대처까지 준비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소동’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드러난, 혹은 드러나고 있는 몇 가지의 대조적인 모습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리더십 보여주기 VS 오보 소동’이라는 대조적인 장면이다. 3월28일자 <아사히신문>은 “위기관리에 성공하면 지지율이 올라간다. 조심스럽지 않은 표현일 수 있지만, 카미카제(神風)다”라는 한 국회의원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그는 자민당 내 아소파에 속한 의원이다. 아소 수상과 수상 주변에서 북한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확실한 위기관리 능력을 보임으로써 정권의 구심력을 확보하겠다는 의도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일본의 반응, 세 개의 대비와 그 의미

    일본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원래 ‘요격’에 대해 가장 먼저 언급한 것도 아소 수상이었다고 한다. 3월2일 기자단에게 “(일본에) 직접 피해가 미친다면 자위대법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패트리어트3 미사일(PAC3)을 비롯한 이지스함 등 미사일 방어(MD) 시스템의 동원 과정은 연일 뉴스 등을 통해 생중계되다시피 했다. 특히, PAC3 미사일 배치와 이동 과정은 방위성-자위대가 ‘의도적으로’ 언론에 공개했다. 대낮에 도쿄의 도심을 가로지르는 패트리어트 부대의 이동은 그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서, 4월 4일의 오보(오탐지) 소동이 있었던 것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현장에 파견되어 있던 자위대원이 미국 정찰기가 보낸 신호를 잘못 해석해 경보를 보냈다는 것이다. 관방장관과 방위상이 직접 사과를 하는 ‘희극’이 벌어진 것이다. 리더십을 보여주고자 했던 수상과 그 측근들, 존재감을 어필하고 싶었던 방위성-자위대는 오히려 체면을 구긴 셈이다. 알고 보니 ‘허당’이었다는 이미지만을 남긴 것이다.

    한편, 일본 내에서도 너무 과민반응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몇몇 저널리스트들과 전문가들의 문제제기가 있었다. 이 부분이 지난 1998년과 1999년과는 다른 측면이기도 하다.

    예컨대, 아사이 모토후미 히로시마평화연구소 소장은 <마이니치신문>에 ‘북한의 인공위성 비판 사설에 의문(3월 10일자)’이라는 글을 기고해 <마이니치신문> 사설(2월 27일 사설, 3월 14일 사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아사히신문>과 <토쿄신문> 등이, 일부 기사이기는 하지만 “파괴조치”의 실효성과 법적타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분명, 이 점은 1998년 9월 이후 사실, 일본 정부는 처음에는 “요격”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가 논란을 불러일으키자, “파괴조치”라는 자위대법의 공식용어로 표현을 바꿨다. 일본 영공, 영토, 영해에 일부분 혹은 파편이 떨어져 피해를 입힐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파괴조치’ 명령을 내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공위성이라면 파괴조치 자체가 법적 근거를 상실하고, 또한 파괴조치를 단행한다고 해도 ‘요격’ 가능하겠는가라는 의문이다. 게다가, 원래 패트리어트 미사일은 미사일을 요격하는 시스템으로 미사일을 맞는 것보다는 공중에서 파괴하는 것이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논리에 서 있다.

    따라서, 파편 등에 의한 ‘부수적 피해’는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발사한 로켓이 ‘탄두’를 탑재하고 있지 않다면 오히려 공중 파괴로 인한 파편 등에 의해 더 큰 피해를 초래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문제제기다.

    PAC3미사일 VS 꽃놀이, 프로야구

    여기서 두 번째 대조적인 모습, 즉 PAC3미사일을 비롯한 온갖 감시․정찰-요격체제와 꽃놀이(오하나미, お花見), 프로야구를 즐기는 일반시민들의 대조적인 모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논란들이 일반시민들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거나 관심 밖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한국 국내의 언론들도 일부에서 일본의 정부와는 다른 차분한 일상 모습으로서 보도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차분함’이라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동시에 ‘무관심’이라는 측면을 간과해서도 안된다.

    ‘북한의 로켓 발사’와 관련한 이런저런 논의들이 일반 시민들의 무관심의 영역에 속해 있다면, 그만큼 ‘오도(misslead)’될 가능성도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지만 매스미디어의 역할이 크다.

    특히, 일본의 일부 언론들은 북한의 ‘위협’을 부각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노골적으로 방위비 문제나 미사일방어체제, 전수방위 변경 등 방위정책의 변화까지 논의를 끌고 가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우익대변지인 <산케이신문>과 같은 계열사인 <후지텔레비전>의 경우이다. 4월 5일 당일 저녁 시간대에 방영된 ‘사키요미(サキヨミ)’라는 와이드쇼(일본식 종합정보교양프로그램)에서 시청자참여투표를 실시간으로 진행했다.

    그 타이틀은 “북한 미사일의 위협-방위비는 늘려야 하는가”였다.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방위비를 늘려야 한다는 답변이 다수를 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시청자 답변은 70퍼센트 가까이 방위비 증액 찬성의 결과로 이어졌다.

    지난 1998년의 경우에도,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활용해 일본 정부는 미국 주도의 미사일 방어 참여와 관련된 논란을 잠재웠다. 당시 논리는 MD는 ‘방어 무기’라는 것이었다. 또한, 신가이드라인(신미일방위협력지침, 1997년)의 법제화라고 할 수 있는 주변사태법(199년) 등 유사관련 법제의 정비를 하기도 했다. 정찰위성 발사 계획을 관철한 것도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었다.

    이번에도 일본 국내에서는 MD체제의 강화, 전수방위의 변경 등에 대한 논의가 이미 고개를 들고 있다. 즉,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직접적 위협’에 대한 ‘군사적 대비’가 필요하다는 논리에 기반 해 반대여론을 잠재울 수 있는 명분이 확보되는 것이다.

    그러한 효과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의도하지 않은 효과(unintended effect)’일지 모르지만, ‘정치적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그 후과에 대한 책임에서 북한이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정치에 있어 ‘책임의 윤리’라는 것은 그 결과에 대한 사려 깊은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로켓 소동’, 아소에겐 승부수 혹은 패착

       
      ▲ 아소다로 일본 총리

    세 번째로는 국제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러 VS 일-한-미’의 대비구도다. 일본 정부는 처음에는 북한의 ‘로켓’을 탄도미사일로 단정하고 접근하다가, 북한이 인공위성임을 주장하고 국제해사기구에 필요한 보고 등을 하자 인공위성이든 미사일이든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면서, 제재 추진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일본의 요청에 의해, 이미 유엔안보리가 소집되어 회의가 열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실제로 일본이 추진하는 ‘새로운 제재 결의’가 도출될 수 있을 지는 불확실하다. 무엇보다도, 중국과 러시아가 신중한 입장이기 때문이다.

    발사 당일인 4월 5일에도 나카소네 외상은 한미중 3국의 외무장관과 전화회담을 했는데, 한미 양국의 외무장관이 협력을 약속했음에 반해 중국의 양제츠 외교부장은 “대국적 견지에서 차분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특히, ‘인공위성 발사’라는 점이 분명해 진다면 중국과 러시아의 이러한 태도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한국 정부가 일본의 보조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미국이 이해를 표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일본의 의도대로 결론을 이끌어 내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에 대비해 일본은 이미, 독자적인 제재 연장과 추가 제재를 실행,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독자적인 제재의 효과에 대해서는 그 실효성이 이미 오래전부터 의문시되고 있다. 정부여당의 관계자들은 텔레비전에 나와 효과를 강조하지만, 그 신뢰성은 이미 침식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는 일부 납치피해자 가족들로부터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북한에 납치되었다가 2002년 10월 귀국한 하스이케 카오루씨의 형인 하스이케 토오루씨는 일본 정부의 행태에 대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알리바이 만들기”에 불과하다고 혹평을 하기도 했다.

    그런 점도 있어, 아소 정권은 안보리 논의를 통해 가능한 강도 높은 형식과 내용을 도출하기 위해 외교력을 동원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국내정치와 경제에서 잃은 지지율을 외교에서 회복해보고자 하는 아소 정권의 의도가, G20정상회담에서 보여 진 것처럼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G20정상회담에서 최대의 존재감을 획득한 것은 중국이었다. 일본은 외교무대에서 오히려 중국에 대한 상실감만을 반복해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안보리 대북제재 논의가 아소정권의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아소 내각은 또다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로켓발사와 관련해 두 번째 체면구기기가 되는 것이다. 오히려 패착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말을 바꾼다면, 이명박 정권이 일본의 입장을 ‘추종’하면서 협력한다면 아소 정권의 입지 강화를 도와주는 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결과를 초래한다면, 이명박 정권이, 대한항공기 ‘폭파범’ 김현희의 공식기자회견 협력에서도 보여지는 것처럼, 일본의 우익-극우 세력과 ‘연대’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지옥에 이르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북미관계 뿐만 아니라, 6자회담은 냉각기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긴장감이 더 고조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에, 북한이 ‘대담한 제안’을 하면서 나올 수도 있다. ‘정부의 능력’은 바로 그러한 시기에 확인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처럼 일본의 페이스에 끌려 다니고, 북한과는 대화채널도 확보하지 못한 채 변죽만을 울리고 다닌다면 위기관리의 무능력, 향후 ‘복원되어야 할’ 대화의 틀에서의 외교적 입지 확보의 실패만을 노정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북한이기 때문에 문제다’라는 논리의 단순한 말바꾸기에 불과한 ‘일본이기 때문에 안된다’라는 식으로 단세포적으로 읽혀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현재 아소 정권이 취하고 있는 대북 정책은 ‘평화와 안전의 보장’이라는 선의(善意)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은 국내정치의 복잡한 역학과 맞물려 있을 뿐 아니라 일부 ‘오도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일본은 ‘현실성’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납득하기 어려운 태도를 취하곤 하는 것이다. 이에 협력한다는 것은 이명박 정권이 표방하고 있는 ‘실용’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얘기다.

    우리가 귀 기울어야 할, 일본의 목소리는 ‘반북’이 당연한 것처럼(혹은 유행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도 분투하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다. ‘평화포럼’과 ‘북일 국교정상화연락회의’, ‘허용하지말라! 헌법개악 시민연락회의’ 등의 단체들은 북한의 자제를 요구함과 동시에, 일본 정부의 과잉대응과 미사일 방어 시스템 동원 등 군사적 대응을 반대하고, 북한과의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을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노력들도 북한의 ‘도발적 행동’에 의해 입지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외교적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혹은 “강성대국의 문을 열어 제끼는” 데 일보전진했다고 해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해석에 ‘치루어야 할 비용’과 결국 ‘그 비용을 누가 치루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고려가 포함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권과 한국 사회 일각에서 제기하는 MD참여, PSI참여, 그리고 군비증강 움직임 등은 남북한의 ‘적대적 의존’의 구조를 강화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일본 우익-극우 세력의 입지를 강화해주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우주의 “평화적 이용”, 핵의 “평화적 이용”, “평화와 안전”을 위한 군사적 대비, “평화를 위한” 전쟁(혹은 무력개입), 그리고 미사일 “방어”,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 등 ‘선의(善意)’로 포장된 길들에 대해, 혹시 우리를 지옥으로 이끄는 길은 아닌지에 대한 사려 깊은 행동이 필요한 이유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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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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