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자가를 내팽개친 한-일 기독교
        2009년 04월 06일 10: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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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대 한-일 관계사 속의 기독교』표지 (이미지=yes24)

    요즘 양현혜 교수(이대)의 『근대 한-일 관계사 속의 기독교』(이대출판부, 2009)를 유심히 읽고 있습니다.

    아이를 봐주고, 학교 일을 해야 하는 정신 없는 생활에 독서 시간은 많지 않지만 지하철, 버스를 타는 시간을 이용할 수 있어 천만다행입니다. 참, 자동차보다 대중교통이 훨씬 우월하다는 제 평소 지론의 또 하나의 증거이기도 하지요.

    ‘출퇴근’을 ‘독서시간’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어쨌든 이제 이 두껍고 아주 흥미로운 책의 약 70%를 독파했기에 정식 서평을 쓰기 이전에 약간의 ‘독후감’ –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이 책을 읽으면서 제 머리에 든 잡념의 정리 – 을 시도해볼 수 있을 듯합니다.

    한-일, 근대성의 두 변종

    이 책의 커다란 장점은, 근대 기독교 역사를 ‘한-일’을 하나로 묶는 방식으로 쓰는 기본 접근의 형태부터입니다. 사실, ‘민족/국민’ 개념의 역사도 그렇고 대중 문화의 역사나 관료제 역사도 그렇지만, ‘한국적 근대’의 정리를 ‘일본적 근대’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하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이 두 개의 근대성의 변종은 서로 너무나 깊은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독교라면 ‘일본’보다 ‘미국’을 먼저 떠올리고 또 그럴 만한 이유도 있지만, 한국 기독교의 수용, 토착화, 그리고 왜곡 등은 많은 면에서 일본 기독교와 흡사성을 가집니다. 물론 차이점도 만만치 않지요.

    소수의 종교인 일본 기독교와 달리, 한국 기독교는 3.1운동이 계기가 돼 근대적 민족주의의 담지세력으로서의 위상을 굳힌 일도 있고(105~130쪽), 또 한경직과 같은 지도자적 인물들을 통해서 청교도적 색채의 복음주의가 자본주의적 ‘세속적 금욕’ 윤리나 국가주의, 안보주의와 습합돼 ‘한국적 지배 이데올로기’의 한 축을 이룬 부분도 있었기에(395~447쪽) 근현대의 한국은 – 기독교인들은 ‘다수’를 차지하지 않아도 – 어쩌면 ‘기독교 국가’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 대한 아주 근본적인 접근법에 있어서는 근대 한-일은 참 닮았습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기독교의 중핵이 돼야 할 ‘십자가’를 팽개친 것은 똑같다는 것이지요.

    기독교 중핵을 팽개치다

    교회가 동네마다 몇 개씩 있어서 그런지 우리는 대개 교회와 기독교를 아주 쉽고 간편하게 인식하지만, 사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붓다나 마르크스보다 훨씬 더 급진적이지요. 황제에게 황제의 것(세금)을 돌려도 마음만큼은 하나님과 이웃사랑에만 바쳐라, 악마에 의해 정복된 이 세계와 선을 그어라, 이 악마적 세계에 포획된 가족들과 필요하면 주저없이 떨어져라, 돈/신분/행복과 같은 우상을 팽개쳐라, 그리고 결국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고서 이 모든 일을 해낼 수 없다면 십자가를 행복하게 받아들여라 – 이건 원래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잘 사는’ 것을 가르치지 않아요. 이 세상의 사람으로서 ‘잘 죽는’ 것을 가르치고 다른 세상의 사람이 되는 걸 가르치지요. 기독교의 핵심이라면 교회도 아니고 예배도 아닙니다. 우상파괴와 십자가지요. 원칙상 기독교는 비폭력적이지만 우상파괴 과정이란 꼭 그렇지도 않아요.

    예수께서 채찍을 들고 성전에서 상인을 축출한 것은 엄밀히 세속적 의미에서는 ‘폭력’이었을 것입니다. 폭력은 나쁘지만, 간디 말마따나 비겁함은 훨씬 더 나쁜 것이지요. 이웃 사랑에 자기 몸과 마음을 바친 체게바라야말로 – 그의 신념체계를 꼭 그대로 긍정할 필요는 없지만 – 어쩌면 이 세계의 뭇 목회자들보다 ‘예수’의 상에 훨씬 가까웠지요.

    ‘십자가’의 기독교를 한국과 일본이 경험하지 않은 것도 아니거든요. 17세기 초기의 일본의 천주교도 박해나 1880년대 이전까지의 조선에서의 박해 속에서는 ‘십자가의 교인’들은 속출했어요. 그런데 개항기 이후의 관점에서 볼 때에 이게 이미 ‘과거’이었어요.

    1868년 이후의 일본의 개신교는 다수의 기독교 불신을 씻기 위해, ‘국민’으로서의 자신들의 위치를 확립시키기 위해, 그리고 궁극적으로 일개 ‘세력’이 되기 위해 일차적으로 ‘문명화의 사도’를 자청했어요. ‘십자가’를 싣고 골고다에 가는 것은 아니고, ‘힘이 있는 구미 문명의 일본적 이식’을 담지한 ‘세력’으로서 그 위상을 구축한 것이지요.

    힘이 있는 문명을 장사의 밑천으로 

    ‘힘이 있는 문명’을 장사 밑천으로 삼은 만큼 국민국가의 ‘힘’을 비판할 근거도 찾을 수 없는 것이었고, 그 반대로 구미 국민국가들만큼이나 ‘신생 문명국 일본’이 강해지기를 갈망한 것이었지요. ‘힘이 있는 나라’가 되자면 ‘국민 일체화를 위한 국민의례’가 필요하니 신사 숭배를 긍정해도 되는 것이고, 또 힘이 있는 구미 국가들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야수’ 대신에 ‘먹이’가 되니 조선을 ‘먹이’ 삼아 잡아먹은 것을 또 반기고 긍정했어요.

    끝에 가서 1941~45년간 일본 기독교의 모태라고 할 영미를 상대로 국가가 벌이는 전쟁까지도 무조건 궁정해야 하는 것은 이 노정의 아이러니였어요(17~44쪽). 물론 일제가 패망하자마자 그것도 긍정해 맥아더장군이라는 새로운 ‘힘’에 무조건 귀의했지만, 남은 문제는 하나 밖에 없지요.

       
      ▲ 필자

    이 ‘힘’의 광란 속에서는 십자가의 힘은 어디에 있는가요? 전쟁을 끝까지 부정, 거부해 감옥에서 죽은 몇 안되는 여호와의 증인에게야 ‘십자가’는 있었지만, ‘주류’ 기독교는 십자가가 아닌 안락의자에 앉아 ‘근대’를 즐길 뿐이었지요.

    한국 교회의 근대적 여정이란 그것보다 훨씬 복잡다단했어요. ‘근대’를 마음껏 즐기고 싶어도 1948년까지 근대의 핵심이라 할 ‘국민국가’가 부재하기에 자의로든 타의로든 좀 급진화될 수밖에 없었어요.

    한국 교회의 근대적 여정

    그래서 한국 교회 안에서 ‘우리’와 박해 받는 이스라엘 백성의 공통점을 찾으려는 분위기도 있었고, ‘약자를 위한 신의 공의’에 목말라하는 오산학교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적 그룹도 있었고, 김교신처럼 ‘약자 조선의 기독교’를 체계화해 결국 십자가를 짊어진 예언자들도 있었고, 병역거부자들의 큰 스승 함석헌도 있었어요.

    힘이 없는 자에게 오게 돼있는 복이라 할까요? 힘이 없는 자는 힘을 아무리 숭배하고 싶어도 한계가 좀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윤치호 등으로 대표되는 식민지 시대의 기독교 엘리트는 ‘힘’과 ‘신’ 사이에서 양자택일해야 하는 결정적 순간에는 큰 주저없이 ‘힘’을 택했어요 (165~191쪽).

    한경직과 같은 해방 이후의 ‘지도자’들은 국가의 힘과 자본의 힘을 기독교적으로 옹호, 합리화하는 논리를 개발, 보급했고, 오늘날 한국 교회는 ‘힘의 예찬’에 도취된 상태입니다.

    교세 확장, 교회 성장이라는 이름의 힘, 해외 선교라는 이름의 힘 과시, 커다란 교회 건물, 그리고 "우리 신자"들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데에 대한 기쁨… 특히 소망교회가 정치 기관쯤 되는 듯한 인상이 풍겨지는 요즘 같은 시절에는 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어요: 한국에서 기독교는 과연 존재하는가요?

    한국에 기독교는 있나?

    양현혜 교수의 이 신간의 약 70%를 읽은 이 시점에서는 저의 답은 "함석헌과 김교신과 같은 신앙을 가진 이들의 마음 속에서는 존재합니다. 나머지는 예수님과는 큰 상관은 없으며, 한국 교회 건물들의 99%를 복지관이나 공연장으로 그 용도를 변경해도 신은 노여움을 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지요.

    뭐, 남의 종교를 ‘비판’하는 것은 늘 송구스러운 일이며, 우리 불교의 상황이란 대동소이한 것이니 자칭 불자로서 할 말 없기도 하지요. 하여간 교회 다니시는 분들께 성경책을 펼 때마다 생전의 예수을 떠올리고 이 사회에 대해 예수님께서 과연 뭐라고 하셨을까를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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