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잡지는 '진지'…좌파, 공부해야"
분리 민주당+통합 진보정당→대안
    2009년 04월 05일 03: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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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선진국 중심의 경제기구인 OECD는 지난 1995년부터 비밀리에 ‘다자간투자협정(MAI)’을 준비해왔다. ‘다국적 기업의 권리헌장’으로 불리는 이 협정은 초국적 금융자본의 이윤확보를 위한 권리가 국가 주권보다 우선하는 것을 규정하는 등, 자본에 대한 ‘울트라 자유’를 보장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특종

이 같은 사실이 97년 1월에 폭로되면서 전 세계적인 저항 운동이 신속하게, 광범위하게 조직됐다. 이 과정에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OECD 밀실의 움직임을 특종 보도했다. 또 보도에서 그치지 않고 이를 반대하는 실천적 대중운동을 조직하는데 앞장섰다. 결국 프랑스가 이 협정에 불참했다.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그>는 일등공신이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이 이번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의 편집인이 됐다. 그는 이 잡지를 “일종의 진지”라고 규정했다. 반자본주의 전선에 설치된 참호들의 네트워크인 셈이다.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인 <르몽드>가 발행하는 월간지인 <르몽등 디플로마티크>는 현재 73개국에서 26개 언어로 번역 발행되고 있으며, 매달 240만 부가 판매되고 있다.

<르몽드>가 통상 중도 좌파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는 반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그보다 몇 클릭 왼쪽에 있다.

특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지난 2000년 약 12만부-이것도 상당한 부수다-정도가 팔리다가, 2006년에는 30만부를 훌쩍 넘어섰다.

잡지 또는 진지

활자 매체 쇠퇴라는 세계적 경향을 보란 듯이 역류하면서 인류보편의 가치를 우선시하고, 당대에는 반신자유주의 입장을 분명히 하는 이 잡지를 독자들이 폭넓게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희망의 촛불’이다.

지난 2006년 한국어판이 나왔으나 재정적인 어려움 등을 겪으면서 발행이 중단되기도 했다. 우여곡절을 경험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이 이번에 <한겨레21>과 업무 및 콘텐츠 공유 계약을 맺었다. 사무실도 한겨레 사옥으로 옮겼다. 사실상 한겨레가 상당 부분 책임지고 운영을 하게 된 셈이다.

한겨레가 이 잡지와 손을 잡고 키워나가기로 결정을 하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하기도 했던, 홍세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인을 지난 3일 한겨레 사옥 8층에 있는 그의 방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 *

매체 이상의 매체 지향

– 먼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라는 잡지를 소개해 달라.

= 진보적인 좌파 지성지이다. 영어권보다는 중남미 등 라틴계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보고 있다. 이론적 수준에서 진보적 대안을 제시하는 언론이며 동시에 실천을 중시하는 매체다. 다자간 투자협정 폭로나, 이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인 ‘아탁’도 이 잡지가 주도적으로 움직이면서 만든 단체다.

또한 다보스 포럼에 맞서 포르트 알레그레의 세계사회포럼을 출범시키는데도 이 잡지가 많은 역할을 했으며, 멕시코 사파티스타 운동과 이 조직의 부사령관 ‘마르코스’를 널리 알리는데도 이 잡지가 앞장섰다.

자본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세계,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이론과 실천을 찾고 조직하는 ‘하나의 진지’라고 할 수 있다.

– 편집인의 역할을 무엇인가. 맡게 된 경위도 함께 밝혀 달라.

= 한국판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2006년 시작됐으나 재정적 어려움에 시달렸고, 이후 온라인 매거진 형식을 모색하기도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한국적인 인식 지형과 진보 역량이 취약한 상황에서 이 잡지가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의자를 고쳐 앉고 정색을 하면서)아프지만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 한국의 진보적이라고 하는 학자들이나 연구자들은 별로 공부를 안 한다. 노동조합이나 진보정당 활동가들, ‘운동권’이라 불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공부 안 하는 진보진영 인사들

진보적 대안의 모색과 이를 현실에 접목하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것은, 진보 진영 자체의 협애함도 있지만, 이쪽 사람들이 공부를 안 한다는 게 더 큰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월간이면서 30만부 이상의 독자들에 의해 선택된다. 일간지 <르몽드>가 40만부 정도라는 점을 비교하면 상당한 수준이다. 이는 이 잡지가 그만큼 폭넓게 프랑스 사회의 좌파 진영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준다는 의미가 된다.

노엄 촘스키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세계의 창’이라고 불렀다. 한국판이 우리들을 세계와 연결시키는 ‘창’이 되기를 바란다. 한국에서 쉽지는 않겠지만, ‘몇 천 부’만 소화돼도 가능하다. 그 정도는 있어야 되지 않겠나.

(그는 이 잡지의 성공적 생존과 안착이 ‘사업적 성과’라기보다는 ‘운동적 성과’로 보고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진지’를 성공적으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사업’으로서도 성공해야 된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었다)

광고와 편집은 한겨레에서 맡기로 했다. 한겨레 내부에서도 무리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그래도 한겨레가 붙잡아야 된다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결정이 날 수 있도록 발언을 많이 했다. 그러다 보니 ‘엉겁결에’ 편집인을 맡게 됐다.

동아시아, 남북문제 많이 다룰 생각

– 불어 원고와 한국에서 제작하는 원고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

= 한국에서 제작하는 기사나 원고의 비율이 30% 정도 된다. 프랑스판의 필자 대다수는 그 나라의 저널리스트나 학자들이다. 물론 가끔 홉스봄이나 촘스키 같은 사람들이 기고하지만 주로 프랑스 필진이다.

그래서인지 동아시아 지역이나 남북문제는 상대적으로 많이 비어 있다. 프랑스판은 28~32면이 제작되는데 한국판은 광고 2개 면을 포함한 40면(베를린 판형-타블로이드보다 크고 기존 신문판형보다는 작음)을 발행할 계획이다.

– 왜, 지금 여기서 이 잡지를 읽어야 하나. 독자 대상은 누구인가.

= 자본주의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이론과 실천이 필요한 시기이다. 지식인은 물론, 진보 진영과 노동 시민운동 그리고 여성과 생태 등의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본주의적 제반 폭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와 관련된 연구자나 활동가들에게 필요한 잡지다.

특히 지금까지 미국 시각이 일방적으로 우리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이 잡지가 프랑스에서 발행되긴 하지만, 유럽적 시각을 일정 부분 대표하는 것으로 ‘균형자’는 아니더라도, 균형을 잡는 역할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미국 일변도 담론을 넘어서

미국에서 학위를 하고 온 사람들이 모든 부분에서 주름잡는 미국 일변도의 담론 구조인 한국 사회에 다양한 담론 소통에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미국의 패권에 대해 문제제기를 꾸준히 해온 매체다. 국제문제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갖기 위해서라면 이 잡지가 역할을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다.

– 한국에서 제작되는 기사들의 주요 필자와 내용은 무엇인가.

= 주로 <한겨레21> 기자들이 많이 참여할 것이다. 물론 다른 분들도 참여한다. 기자들도 결국 지식인이다. 우리도 공부해가면서 만들 것이다.

이 잡지는 국제 관계가 기본이어서 우리도 동아시아 문제나, 남북 관계 등과 관련된 내용들이 상대적으로 많을 것이다. 이와 함께 영화와 그림 등 문화적 접근에도 관심을 가질 것이다. 이제 이런 문제들을 함께 할 기자와 관련되는 사람들과 좀더 상의할 예정이다.

홍세화 기획위원의 윗옷 안주머니에 뭐가 들어있는지 아는 것은 아주 쉽다. 한두 번만 함께 앉아 있으면 저절로 밝혀진다. 그 자신이 반드시 꺼내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건 한겨레, 한겨레21, 씨네21 등 한겨레에서 발행하는 모든 매체의 정기구독 신청서다.

인터뷰를 준비하는 동안 예견한 것처럼, 인터뷰 중에-정확하게 말하자면 채 시작하기도 전에-그는 예의 그 안주머니에서 예상되는 ‘물건’을 꺼내들었다. “쓰지.” “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3년 구독신청서.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구독신청서에는 아예 그의 실적이 인쇄돼 있었다.

<한겨레21>만 해서, 2006년 114부, 2007년 130부, 2008년 331부. 필자는 씨네21 강매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러니 일간지와 <한겨레21>, <씨네21>을 강매당해 그것들을 읽고 있는 사람의 합은 얼마나 많을까.

만약 그가 한겨레 매체만 ‘팔고 다니면’ 그 의미는, 필요한 언론을 지키는 운동이라는 차원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충성심 높은 조직 구성원의 임무 수행이라는 평가가 더 높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안주머니에는 그것만 있는 게 아니다. 예컨대 ‘구속노동자 후원회원 가입서’ 등도 그의 심장 가장 가까이 맞닿은 ‘왼쪽’ 안주머니에 들어있다.

홍세화의 윗옷 안주머니

– 손익분기점 맞추는 독자 수는 몇 명인가.

= 이 내용은 꼭 적어 주기 바란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미리 연락해서 구독신청 해라. 괜히 나중에 지적당하지 말고.”(우문에 현답이다. 참고로 정기독자 5천명 수준만 확보되면 할 만하다고 한다. 이거 그리 만만한 수자가 아니다.)

– 얘기를 다른 데로 좀 돌리겠다. 인터뷰 주제가 주제인 만큼 이명박 정권의 언론정책에 대해 한마디 해 달라.

= 이 정권은 치밀하고 분석이나 뚜렷한 판단을 가지고 언론정책을 펴나가는 것이 아니다. 다만 MBC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조중동 방송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장기집권은 ‘따 놓은 당상’ 아닌가, 딱 이 수준이다.

지금의 상황에서도 30% 수준이 지지하고 있는데, 이런 수준의 자발적 지지자들에다가, 교육도 이미 평정해버린 마당에, MBC만 돌려놓으면 게임은 끝난다는 생각에 집중하고 있다. 핵심은 거기에 있다.

– 이명박 정권의 민주주의에 대한 조롱이 계속되고 있다. 민주적 제도와 장치들이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다. 이명박을 욕하는 것처럼 쉬운 것은 없다. 그를 이기는 것이 중요한데, 대안적 정치세력이라든지, 사회적 신뢰집단이 부재한 상황에서 이도 어려운 것 같다.

= 살기 어려워서 저항에 나서지 못하고, 살기 괜찮으니까, 먹고사는데 불편함이 없으니까 정의나 민주주의 등의 가치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민주와 반민주 구도에서는 저항 전선에 참여가 가능했던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그렇지 않게 됐다. 소수지만 그때보다 잘 살게 된 사람들이나 중산층 해체로 더 어렵게 된 사람들 모두 그렇다.

이와 함께 물질에 귀의(歸依)하는 풍토가 강하게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참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민주당의 분리와 진보정당의 통합

정치적 구심이나 대안이 마련되기 위해서는 일단 민주당이 분리돼야 된다. 현재의 상태로는 대중들이 한나라당과 다른 게 없는 민주당에 힘을 실어줄 이유를 찾지 못한다. 지역이라는 문제 때문에 어렵긴 하겠지만, (분리되지 않으면)보수 정당, 지역 정당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또한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분리 문제도 어떤 방식으로든지 정리돼야 한다. 이번 울산의 단일화 협상을 지켜보고 있다.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민주당의 개혁적 가치가 중심이 된 분화와 진보정당이 (어떤 수준으로든)결합이 가능해질 때 새로운 정치적 대안으로 대중들에게 비쳐질 수도 있다. 지금은 없는 정치적 대안의 가능성이 생긴다는 말인데, 이 모두가 어려운 기대인 것만은 사실이다.

울산북구 단일화에 대한 이야기와 민주노총 울산본부의 움직임 등에 대한 홍세화 편집인의 이야기가 있었으나, 그는 현재 조승수 후보의 후원회장이기 때문에 이 대목은 생략한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라는 어려운 제목의 월간지가 노동조합 현장의 일선 간부들에게도 많이 읽혔으면 하는 마음으로 “국내에서 제작하는 기사나 원고가 국제문제 등을 많이 다룰 거라고 했는데, 노조 활동가들이 관심을 갖게 하려면, 노동문제 등과 연관해서 다루는 기획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제안성 질문을 했다.

즉각 돌아오는 말. “노동이 우물 안 개구리가 돼서는 안 된다. 자본과 맞서는 것이 노동인데, 자본의 국제적 움직임 같은 것은 그 자체로 관심 대상이 돼야 한다. 국제적인 문제를 제대로 알아야 노동운동도 제대로 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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