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초, 없애지 말고 먹자?
    By 내막
        2009년 04월 03일 06: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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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자발적 가난』으로 출판계에 작지만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던 그물코 출판사에서 지난 3월 도시에서 농사짓기로 가난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두 – 도시를 경작하다, 사람을 경작하다』(변현단, 2009, 그물코, 이하 『연두』)를 펴냈다.

    『연두』는 조건부 수급자들, 이른바 생활보호대상자들의 ‘자활’이라는 목표 아래 2006년 시흥시 일원에서 시작된 집단농장사업이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을 담담히 기술한 일종의 성장 드라마이자 소규모 공동체를 꾸리는 리더십과 생태농업 방식에 대한 실용서이다.

    농사 생초보들의 좌충우돌 귀농기

       
      

    집단농장사업이 처음 시작될 때 참여한 30∼50세 사이의 여성 아홉 명과 신체장애 남성 한 명은 물론 사업의 팀장인 저자 역시 이전까지 한 번도 농사를 지어보지 않은 생초보들이었지만 진정한 의미의 생태농업을 통해 몸을 살리고 땅을 살리는 ‘농’의 가치를 체득해 간다.

    연두농장 사람들이 농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도시인들이 일반적으로 꿈꾸고 이야기하는 ‘낭만적 귀농’의 차원이 아니라, 말 그대로 가난을 이기고 자립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자 평생직장으로 농업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팀원들이 생계만을 위해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노동자’가 아니라 ‘농업 기획자’, ‘농업경영자’를 넘어 진정한 의미에서의 색부(‘아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농부의 다른 말)로 거듭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자신도 그렇게 변해 간다.

    연두농장의 초보 농사꾼들은 농약을 쓰지 않는 것을 넘어 비료까지 직접 만들어서 쓰는 친환경·유기농법을 몸소 하나씩 깨우쳐 나가고, 땅과 작물의 친구가 되는 법도 배워간다.

    잡초와 공생하는 법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의 하나는 까마중, 쇠비름, 개비름, 닭의장풀 등 우리가 흔히 ‘잡초’라 부르는 풀들에 대한 소개이다. 이 이름들은 모두 요즘 사람들에게 생소하게만 느껴질 수밖에 없겠지만 모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물들이다.

    ‘웰빙’을 넘어 ‘로하스’가 대세이고, 건강을 위해 값비싼 유기농 농산물을 찾아먹는 사람이 늘어나는 시대라곤 하지만, 현 시대 밭에서 재배된 ‘작물’이 모두 종자회사에 의해 생식력을 거세당하고 상품화된 씨앗에서 나왔다는 것까지 인식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연두』는 농사짓는 이들에게 가장 지긋지긋한 적(?)의 하나일 ‘잡초’의 생명력을 예찬한다.

    "생명이 있는 인간은 생명을 먹어야 한다. 생명의 기준은 생식능력이 있느냐다. 생식능력이 있는 것은 잡초말고는 거의 없다. 재배하고 있는 작물은 종자회사에서 생식능력을 없애고 상품으로 만든 것들이다. 유기농이라고 하는 것은 기의 순환을 의미하는 바, 아무리 유기농법으로 재배한다고는 하나 실제 유기농 식물은 아닌 셈이다."

    잡초를 먹기 시작하면서 쌈채소를 먹지 않게 되었다는 저자는 "밭의 개념을 바꾸는 것은 잡초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잡초를 이용하는 것이어야 한다"며, "농사에 대한 개념의 전환은 인간이 자연에 최소한의 노동을 들이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대학시절 농촌활동을 가서 한여름 뙤약볕 밑에서 ‘피 뽑기’를 해본 사람들이라면 생각만 해도 몸서리를 치게 만드는 ‘피’가 사실 먹을 수 있는 식물이라는 이야기도 재미있는 부분이다.(‘피죽도 못 먹었다’는 속담의 ‘피’가 바로 그 ‘피’이다)

    소비자, 없어져야 할 개념

    저자는 단순히 자본주의를 거부하려면 산속에 들어가면 되지만 자본주의를 저항하고 뛰어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이용하면 된다며,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농사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고 공동체적 인성을 만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고도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소비자가 왕’이라는 개념에 대해 저자는 반론을 제기한다. 소비자가 말 그대로 소비자로만 머물러 있을 때 농과 농업은 그 가치를 잃게 되기 때문에 생산자와 소비자의 분절된 개념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 연두농장의 지향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를 기반으로 저자가 정의 내리는 연두농장의 정체성은 "귀농을 하고 싶은데 돈이 없는 사람들이 1차 귀농을 하는 곳"이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귀농운동본부나 귀농학교에 가서 돈 주고 배우면 된다. 연두농장은 땅 한 평 자신의 이름으로 가지지 않은 사람들,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 일을 하면서 농업에 대해 머리 맞대고 부딪힘 다양한 실험을 해나가는 곳이다.

    연두농장이 거정이 되어 진행되며 연두농장에서 일을 하다가 남부 지방으로 귀농을 희망하는 사람들까지도 연계해 줄 수 있도록 그림을 그려나갈 예정이다. 연두농장이 연두농장의 일만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두』의 문장들은 섬세하게 다듬어지지 않아 다소 거칠게까지 느껴지는 측면이 있고, 처음부터 자세한 설명이 없이 두서 없이 시작되는 일기 형식의 구성은 독자에게 생경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찬찬히 읽다보면 이모의 푸근한 목소리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한편 이 책의 서문 자리를 대신하는 글은 ‘연두의 가치'(아래 전문)이다. 이 글은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 전체를 대변한다. 효율과 성과만이 최고의 가치로 인식되는 이 시대에 음미해볼 만한 글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수품은
    몇 벌의 옷과 계절이 내어주는 먹을거리
    그리고 가족이 잠을 잘 수 있는 몇 평의 집이 있으면 된다.

    내 손으로 만드는 옷,
    내 손으로 만드는 음식,
    내 손으로 만든 집에 살았던 오래전의 삶들은
    자신이 만들었기에 버릴 것 없이 소중하게 다룰 줄 알았다.

    자신이 디자이너가 되었고
    목수가 되었으며, 요리사가 되었다.
    이른바 우리 모두는 ‘탤런트’였던 셈이다.
    소비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가 되어 자신이 소비할 때 가장 검박한 생활이 가능하다.
    그럴 때 ‘돈’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이며,
    생산하는 노동은 즐거운 놀이가 된다.
    이것은 자연에 천착한 농(農)으로 출발하는 때 가능하다.

    연두의 가치

                                                        *     *     *

    저자 : 변현단

    농부, 사회운동가.

    경기도 시흥에서 자활공동체 ‘연두농장’을 운영하면서 사회문제와 자신을 바로 볼 수 있는 생태적 사유체계와 삶의 방식을 바꾸는 농(農)철학과 농생활문화 교육을 하고 있다.

    80년대 학생노동운동, 진보정당운동을 했다. 90년대 자유롭고 거침없는 성격으로 배낭여행을 자주 떠났다. 해외에서 원주민과 밀착된 삶을 살면서 국제어학원 운영, 강의도 했으며 다양한 문화를 접했다.

    2000년대 인터넷신문 편집국장, 민주노동당 환경정책을 만들고 2002년 인도에서 생태운동가인 반다나 쉬바를 만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이후 귀농을 결정하고 ‘도시빈민과 농생활’에 키워드를 가지고 도시농업과 생태농복지 운동을 하고 있다.

    연두농장(연두영농조합법인)대표, 전국귀농운동본부 도시농업위원, 인드라망생명공동체 불교생협연합회(준) 운영위원 토종종자모임 ‘씨드림’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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