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 인도 사람, 인도 영화
    By mywank
        2009년 04월 03일 01: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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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출신 영국 소설가 샐먼 루시디의 <악마의 시>는 대천사의 이름을 가진 인도 최고의 인기 배우 지브릴과 영국에서 배우가 되고자 하나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못하고 배역의 이미지에 맞춰 목소리를 바꾸는 더빙 배우로 성공한 살라후딘이 비행기를 타고 가다 영국 하늘에서 추락하는 데서 시작한다.

    ‘영국/현상’ 앞에서 두 인도 배우는 신 또는 악마의 배역을 떠맡아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을 오가며 죽음과 부활의 시련을 겪으면서 자신들의 존재 전체를 걸고 ‘인도/실존’을 겪어내는 시련을 겪는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영국 감독 대니 보일 감독이 인도를 배경으로, 인도 배우들을 등장시켜서, 인도 영화적 성격을 양념 삼아 버무려낸 영화다. 그리고 영화에서 주인공이 겪는 파란만장한 삶을 엮어 보이는 얼개는 ‘백만장자 퀴즈쇼 Who wants to be a millionaire?’는 영국이 고안한 로또 방식 퀴즈 프로그램이다.

    이 퀴즈쇼의 기금 마련 방식은 독특하다. 퀴즈쇼에 출연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거는 출연신청전화에 매겨진 요금이 상금의 재원이 되는데, 운 좋게 신청전화 연결이 된 사람들이 간단한 예비 퀴즈를 통과하면 정식 프로그램에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 문제를 맞출 때마다 다음 문제의 상금은 첫 상금의 두 배가 되는데, 다음 문제를 틀리게 되면 상금은 날아간다. 적당한 선에서 상금을 챙기고 물러서거나, 끝까지 도전해보다가 상금을 몽땅 날리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뒤로 갈수록 문제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퀴즈왕에 오르고 어마어마하게 뛰어오른 상금으로 백만장자의 꿈을 이루는 것은 로또 당첨처럼 운이 따라줘야 한다.

    빈민 출신에 교육도 못받은 청년이 어떻게?

    그러니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시작하면서 이 퀴즈쇼에 출연한 자말 말릭이라는 빈민가 출신의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청년이 2천만 루피,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6억 원의 상금이 걸린 마지막 단계에까지 어떻게 오르게 되었는가를 묻는 데서 시작하는 것도 당연하며, 그 의혹을 풀기 위해 경찰이 자말을 잡아가서 윽박지르는 것도 나름 그럴싸하다.

    감독은 자말의 승승장구에 대해 이렇게 보기를 던진다.
    A:사기쳤다. B:운이 따랐다. C:그는 천재다. D:그러기로 되어 있다(It is written).
    그러더니 천연덕스레 그러기로 되어있어서라고, 즉 감독 마음이니까 그냥 영화를 따라오라고 주문한다.

    마지막 문제를 풀기 직전에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그날의 퀴즈쇼가 끝나고, 막 경찰에 끌려온 자말은 어떻게 지금껏 나왔던 문제의 답을 알 수 있었는지를 가혹하게 추궁당한다. 그러느라 퀴즈쇼 처음부터 되돌려보며 하나하나의 문제를 다시 짚어보고, 자말이 그 답을 알게 된 사연이 펼쳐진다.

    참 희한하게도 문제가 한 단계씩 나아가는 것에 맞추어 자말이 답을 알 수 있는 경험을 했던 과정은 어린 시절로부터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간순으로 나아간다. 빈민가에서 나고 자라면서 삶의 고비마다 겪었던 중요한 사건들이 용케도 퀴즈의 문제가 되었으니 자말이 그 모든 답을 아는 것은 당연해진다.

    퀴즈 문제가 아무리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지만 자말의 삶도 그 못지않게 파란만장해서, 그리고 어떤 문제도 인도 뒷골목 세계의 경험에서 비껴가지 않고 있어서 경찰은 마지막 문제를 앞둔 자말을 풀어줄 수밖에 없다.

    마지막 단계의 딱 한 문제를 남겨둔 자말이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삶의 고민도 딱 하나, 사랑이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과거를 지나 현재진행형이 되는 동안 서양식 영화 문법에 맞춤하는 세련된 시나리오와 촬영, 편집으로 인도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두루 훑어 보인다.

    회교와 힌두교 사이에 벌어지는 참혹한 종교분쟁, 살아남기 위한 고아 소년의 고군분투, 폭력과 살인으로 얼룩진 암흑가의 암투, 그리고 첫사랑과의 순애보를 가로막는 형제끼리 벌이는 선과 악의 다툼까지. 거기에 빈민가에서, 타지마할을 거쳐, 첨단 고층빌딩이 즐비한 뭄바이의 풍광은 덤이다. 마지막으로 아주아주 인도영화스러운 춤과 노래로 마무리.

    인도스럽다는 것은 뭘까? 인디언?

    그렇다면 인도스럽다는 것은 뭘까? ‘인디언(Indian)’은 영어에서 인도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인디언이라고 부르는 데는 익숙하지만 인도 사람을 이렇게 부르는 건 영 어색해 한다. 틀린 표현인 줄 알면서도.

    가장 오래된 문명의 발상지, 세계 4대 종교 가운데 둘이나 퍼뜨린 나라, 중국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나라, 우리가 구구단을 외우는 동안 12×12단을 외우는 나라, 자기네가 개발한 핵무기를 지닌 나라, 아직도 자국 음반 시장이 건재한 나라, 그리고 전세계를 통틀어 한 해에 가장 많은 영화를 만들어내는 나라.

    인구의 83%는 힌두교도, 11%는 무슬림, 그리고 펀잡 지방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시크교도에, 불교의 발상지답게 일부 불교도까지 신도, 인간도 엄청나게 많은 나라. 종교 의식과 궁정의 전통이 여전하며, 문화적 억압보다는 문화적 교환을 즐기고, 서로 대립되는 문화적 전통도 두루 화해하고 지내는 나라. 인도.

       
      

    인도의 연간 영화제작편수는 무려 700편 가까이 된다지만 정작 우리가 영화를 통해서 인도를 알기는 힘들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화에서 보는 인도는 <소공녀> 새라가 기숙학교 다락방에서 고생고생할 적에 기적처럼 나타나 불행에서 벗어나게 해준 옆집 하인이나, <인도로 가는 길>에서 성추행범으로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쓰고 영국 상류층 아가씨의 자아발견에 본의 아니게 이용당하는 식민지 의사, 아니면 미국인의 휴머니즘으로 구원받는 가난하고 무지한 <시티 오브 조이> 속의 사람들 정도가 고작이다.

    좀더 영화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야 영화사에 고전으로 올라있는 사트야지트 레이 감독 작품이나 이런저런 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예술영화들을 통해 인도를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영화들은 당대 인도 대중들이 즐겨보는 영화는 결코 아니다. 갖가지 양념들이 섞여 있다는 뜻의 ‘마살라’ 영화가 인도 대중영화의 주류니까. 이를테면 스타와 노래, 춤, 액션, 전쟁에 에로틱한 사랑까지 고루 버무려 해피엔딩에 이르는 영화.

    ‘고루 버무려 해피엔딩’

    인도 영화에서 영상이나 줄거리, 스타 배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음악이다. 역사적으로 인도 남부의 왕들은 음악 발전을 장려했지만 북부의 음악은 영국 지배를 받게 되면서 쇠퇴하게 된다. 북부에 집중된 도시 엘리트들이 서구 음악의 우월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더니 이 엘리트들은 1950년대에 이르러 국제화된 대중문화의 수용을 권장하게 된다.

    1920년대부터 활동한 감독 샨타람에 의해 영화음악이 시작되었고, 1947년 독립하면서부터 영화산업과 라디오 방송이 발전하면서 영화음악도 발전했지만, 1952년 인도 고전음악을 권장하기 위해 정부가 영화음악 방송을 금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청중은 여전히 영화음악이 듬뿍 들어있는 영화를 보고, 그 음악을 즐겨들었기 때문에 마침내 1957년 금지 조치가 폐지된다. 그래서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아카데미 음악상과 주제가상을 안겨주었듯 인도영화에서 음악은 영화의 흥행과 음반시장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중요한 부분이다.

    인도영화의 특징은 장르나 주제의 특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특징적인 인도 문화를 영화에 새기고 만들어내는 방식에 있다. 인도 대중영화는 한 작품 안에 낭만적 사랑, 남자들의 우정, 모성, 재결합, 운명, 전통의 존중, 사회적 불의 등 여러 주제가 고루 담겨 있어야 하고, 그러자니 대중의 반응과 상상이 형성되는 방식에 있어서 판타지, 액션, 노래, 볼거리를 결합하는 데 노래와 춤이 제격이다.

    서구영화와 달리 인도에서는 과도한 성적 표현이 금지되기 때문에 남녀가 어우러져 부대끼는 노래와 춤으로 암시하고 풍자하고 표현할 수밖에.

    형식적으로는 멜로 드라마적 뮤지컬 안에서 이야기가 일관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우회적으로 진행되거나, 이야기 안에 이야기가 끼어들어가면서 진행되는데 사실 이런 순환 형식은 인도의 고전 서사나 민속 문학에서 일반적인 형태다.

    인도영화 흉내낸 <슬럼독 밀리어네어>

    내용적으로는 대부분의 인도 대중영화는 선악 대립 구도를 중심으로 한다.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세력에 조응하는 악 개념이 드라마 안에서 중심 역할을 하면서 오락을 통해 도덕적 교화를 이끌어낸다.

    이런 독특한 내용과 형식을 갖춘 인도영화시장에 섣불리 헐리우드가 도전하지 못하는 대신 영국 출신 감독을 통해 인도영화의 특징 몇 가지를 슬쩍 빌어온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그래서 좀 수상쩍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 쿠바 음악을 되살리는 듯하더니 침체된 음반시장세계에 ‘월드 뮤직’이라는 이름으로 효자 상품 노릇을 하게 만들었듯,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인도스러움을 빌어 아직껏 미국적 영화보다 자국 영화를 사랑하는 3세계 영화의 알맹이를 홀랑 까먹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악마의 시’에서 인도 최고의 배우 지브릴이 영화 속에서의 자신과 현실에서의 자신 사이에서 신의 모습을 한 악마가 되어 몰락해가고, 인도인의 모습으로 영국인의 삶을 살고 싶었던 목소리 배우 살라후딘이 악마의 모습을 하고서야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게 되었듯이 비서양 문화권이 서양에 비춰지는 순간은 늘 미심쩍다.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제대로 인도의 현실을 재현했는가 아닌가보다 이렇게 찬사를 받은 인도스러움이 앞으로의 영화세계를 어디로 이끌어나갈지가 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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