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9 경주 재보선의 이상한 구도
    By 내막
        2009년 04월 01일 05:5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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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9 재보궐 선거에서 난데없는 ‘사퇴압력’ 논란이 벌어지면서 정국이 소란스러워지고 있다. 이번 갈등의 소용돌이 핵심에는 ‘박근혜’라는 키워드가 자리잡고 있다.

    ‘친박근혜’ 성향을 표방한 무소속 정수성 예비후보와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한나라당 정종복 후보가 박빙의 접전을 벌이고 있는 경북 경주 국회의원선거구에서 ‘사퇴 압력 논란’이 벌어졌다.

    정수성 예비후보는 지난 3월31일 경주시청 기자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측으로부터 후보 사퇴 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날 정 예비후보는 "지난 3월29일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으로부터 이명규 의원을 만나보라는 연락을 받고 그날 저녁 경주 소재 한 일식집에서 이 의원을 만났다"며, "이 의원은 저에게 후보사퇴 권유를 했고, 저는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고 밝혔다.

    정 예비후보는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며, "이 문제에 대해 정종복 후보가 관여되었는지를 경주시민 앞에 진솔 되게 밝혀주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이명규 "쇼를 하고 있다"

    정 후보의 주장에 대해 이명규 의원은 한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날 정수성 후보를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후보 사퇴’의 ‘사’자도 안 꺼냈다"며, "정종복 후보 공천이 확정되어 위기감을 느낀 정수성 후보가 쇼를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명규 의원실 관계자는 <레디앙>과의 전화통화에서 "이 의원이 정수성 후보를 만나 정 후보의 출마가 박근혜 최고위원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많은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나온 것으로 이날 만남의 주제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정수성 후보가 떨어질 경우 언론에 박근혜 전 대표의 영향력 상실로 비춰질 수 있고, 당선되더라도 한나라당내에서 친이-친박간의 갈등이 깊어지면 결과적으로 박 전 대표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정치적 역학 관계에 대해서 설명해줬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또한 "당초 이 의원과 정 후보가 만나게 된 것도 정 후보 측에서 3월 22일 경 이상득 의원 쪽에 만나자는 제의를 했다가 취소한 일이 있어 이상득 의원이 이 의원에게 무슨 일인지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해 성사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주지역 선거브로커들은 어디에?

    그는 특히 "이번에 사퇴 압력을 제기한 것은 정수성 후보의 본심이 아니었을 것으로 믿는다"며, "정 후보 주변에 있는 사람들 때문에 정 후보가 자꾸 자충수를 두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이 의원측의 반박에 대해 정수성 후보측 관계자는 "경주에 있는 선거 브로커들은 전부 정종복 후보 쪽에 모여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 덮어씌우지 말라"며, "정수성 후보는 물론 캠프 멤버 대부분이 정치활동은 처음"이라고 재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레디앙>과의 전화통화에서 "3월 22일 이상득 의원 쪽에 전화를 걸게 된 이유는 경주 재보선의 선거판이 자꾸 혼탁해지는 것을 안타까워한 정 후보가 페어플레이를 하자고 말하려 했던 것으로, 선거를 앞두고 양측이 만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판단이 들어 약속을 취소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사퇴압력 논란에 대해 "정수성 후보는 4성 장군 출신으로, 정치판에 뛰어들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후보가 이명규 의원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듣고 매우 놀라고 충격을 받은 상태"라고 덧붙였다.

       
    ▲4·29 재보선 경주지역 정수성 무소속 후보 홈페이지에 게시된 박근혜 한나라당 최고위원과의 사진.

    경주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정종복 후보와 함께 2강을 형성하고 있는 무소속 정수성 예비후보는 자타가 공인하는 ‘친박 후보’이다. 지난 대선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안보특보를 지낸 경력도 눈에 띈다.

    박근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1일 기자들이 몰려와 경주 재보선 후보 사퇴압력 논란에 대한 견해를 묻자 "이번 일은 우리 정치의 수치"라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말했다.

    그동안 4·29 재보궐선거와 관련해 무겁게 침묵을 지켜온 박 최고위원의 이번 발언은 정수성 예비후보에게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심한 형님 정치"

    이번 논란에 대해 진보신당 김종철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영일대군식 상왕정치는 무소속 출마까지 개입하냐"며, "사실이라면 참으로 한심한 형님정치"라고 힐난했다.

    김 대변인은 "당 소속 유력 정치인은 무소속 후보를 옹호하기 위해 자기 당의 후보에 냉랭하고, 대통령의 형님은 무소속 후보 출마까지 막아보려고 하는 사태"로 이 사건의 성격을 규정지었다.

    정종복 한나라당 후보는 지난 3월 30일 공천이 확정된 직후 대구로 달려가 박근혜 대표를 만났지만, 박 대표가 "사진을 찍지 말라"고 말하면서 오히려 박 전 대표와의 냉랭한 관계만을 확인시켜주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정 후보는 선거홈페이지 첫 화면에 2005년에 촬영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응원 동영상과 2006년 발행된 주간잡지 <뉴스메이커>(현 위클리 경향)의 박근혜 대표 관련 기사(정종복 당시 의원의 코멘트 포함)를 걸어두고 있어 안쓰러움을 자아내고 있다.

       
      ▲ 4·29재보선 경주지역 국회의원 후보로 확정된 한나라당 정종복 후보 홈페이지 캡처

    ‘친박 공천학살 3인방’

    정종복 후보가 박근혜 최고위원의 눈길을 받아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유는 경주에서 ‘박근혜’라는 이름이 가지는 영향력 때문. 정 후보는 지난해 총선 당시 이재오·이방호 전 의원과 함께 친박계 공천학살 주범 3인방으로 지목되면서 낙선된 바 있다.

    지난 3월20일 있었던 정수성 후보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박 최고위원은 참석하지 않았지만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이 다수 참석했고, 정광용 박사모 회장이 축사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여의도 친박 진영 일각에서는 정수성 후보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존재한다. 정 후보가 한나라당에 공천 신청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친박연대와 함께 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태도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친박연대는 전지명 대변인이 이번 재보선에 경주 출마를 준비하다가 후보 등록을 포기한 바 있고, 한나라당의 공천경쟁 과정에도 친박계를 대표하는 예비후보가 있었다.

    친박연대 "경주 재보선 양상 비정상적"

    한 인터넷 언론에는 정수성 후보의 측근이 서청원 친박연대 대표에게 정 후보 공천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는 보도도 있었고, 이후 또 다른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친박연대를 비하하는 듯한 정 후보의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 사퇴 압력 논란과 한나라당 공천 문제에 대해 친박연대 측은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기 전에는 코멘트할 수 없는 입장"이라면서도 "이번 재보궐 선거가 비정상적으로 흘러왔다"고 밝혔다.

    한 친박계 인사는 정수성 후보에 대해 "일련의 행보가 원칙과 도리에 부합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외부에 깃발을 먼저 꽂아놓고 ‘친박’ 프리미엄을 선점한 결과로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 인사는 박사모가 정 후보를 지원하는 것에 대해서도 정 후보가 친박인사로서 뭔가 두드러지게 기여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기 보다 지난 총선에서 박사모의 집중 낙선대상으로 심판된 바 있는 정종복 후보에 대한 낙선운동의 성격이 짙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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