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자유주의 우파와 힌두 근본주의 사이
        2009년 04월 01일 04:4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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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4월 16일부터 5월 13일까지 인도에서 총선이 실시된다. 유권자 수가 7억을 넘고 국토는 거의 대륙 수준인 인도는 이렇게 한 달 가까이 총선을 실시한다.

    중국이 아직 선거로 정부를 구성하지 않는 상황에서 인도는 가히 전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라 할 수 있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도 드러나듯, 그 ‘민주주의’의 이면에는 불평등과 빈곤, 억압과 폭력의 잔인한 현실이 존재하지만 말이다.

    신자유주의 우파와 힌두교 근본주의 사이에서

    예년의 인도 총선이 다 그랬듯이, 이번 선거도 양강 대결 구도를 보인다. 양강이란 곧 두 개의 정당연합이다. 하나는 국민회의가 이끄는 통일진보연합이고, 다른 하나는 BJP라는 약칭으로 더 유명한 인도국민당 중심의 전국민주연합이다.

    인도는 연방 국가이고, 각 주는 사실상 웬만한 국민국가보다 더 큰 인구 및 영토 규모를 자랑한다. 따라서 주마다 정치 지형이 크게 다르고, 각 주 안에서만 정치적 영향력을 갖는 지역 정당들이 많다.

    전국 정당은 국민회의, BJP를 비롯해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주요 전국 정당을 중심으로 지역 정당들이 연합하여 정당연합을 구성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부동의 강자는 현 여당인 국민회의 중심의 통일진보연합이다. 국민회의는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민족해방투쟁의 중심 기관 역할을 하던 유서 깊은 정당이다. 간디가 그 지도자였고, 네루가 그 뒤를 이었다. 네루 이후부터는 인디라 간디 등 네루 가문의 정치 엘리트들이 계속 당을 장악하고 있다.

    원래 이 당의 이념은 민족주의에 약간의 사회주의 색채를 가미한 것이었고, 실제로는 국가자본주의 정책을 통해 민족자본을 육성하는 데 진력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면에서 이 당 역시 남반구 신흥 독립국의 다른 비슷한 정당들처럼 신자유주의 이념에 투항하고 말았다.

    이 사정은, 세계 경제 위기가 시작된 지금도, 아직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통일진보연합의 총리 후보는 현 총리인 만모한 싱인데, 바로 그가 잇단 시장화 및 친미 외교 정책을 추진한 장본인이다.

    국민회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도전자가 제1야당인 BJP과 이들이 이끄는 전국민주연합이다. BJP는 국민회의를 누르고 집권한 경험도 갖고 있는 강력한 야당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BJP는, 비록 총선에 승리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상당한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BJP의 득세는 인도 사회의 커다란 위기 징후를 보여주는 것이다. 심지어는 일종의 ‘유사 파시즘화’로 이해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BJP의 이념은 힌두교 근본주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BJP보다는 그래도 국민회의”라는 인도판 비판적 지지 논리가 인도 지식인 혹은 중산층의 정치적 선택을 지배해왔다.

    하지만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국민회의의 시장주의 정책이 빈부 양극화를 부추길수록 빈곤층(그 중에서도 인도 인구의 다수인 힌두교도들)이 BJP의 유사 파시즘에서 대안을 찾아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회의는 어쩌면 BJP 성장의 원인 제공자 혹은 공범이었던 셈이다.

    마야와티 돌풍과 제3전선 

    그렇다면 인도 정치권에 이 두 세력 외의 다른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가? 그것은 아니다. 인도에도 대중적 좌파 정치 세력이 존재한다. 아니, 오히려 인도는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좌파 정치가 가장 활성화된 나라들 중 하나다.

       
      ▲ 인도 공산당-맑스주의파의 18차 당대회

    그 대표 정당이 인도 공산당-맑스주의파다. 이 당은 인도 공산당에서 갈라져 나왔는데, 지금은 인도 공산당보다 더 큰 세력으로 성장해 있다. 특히 케랄라, 웨스트벵골 등의 주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다.

    인도 공산당-맑스주의파는 인도 공산당을 비롯한 다른 좌파 정당들과 함께 그 동안 좌파연합을 구성하고 있었다. 이번 총선에서도 이들은 ‘제3전선’이라는 이름으로 통일진보연합, 전국민주연합에 맞서 정치권의 3분 구도를 만들려 한다. 물론 당장 선거로 집권할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최소한 총 500석 중 100석에 육박하는 의석을 차지하지 않을까 전망된다.

    다만 제3전선에는 총리 후보로 내세울 전국적 대중 정치인이 없다. 이 대목에서 주목을 받는 것이 양대 정치세력에 도전하려는 또 다른 도전자 ‘바후잔 사마즈’당(BSP)이다. ‘바후잔’이란 인도의 독특한 카스트 제도 내에서 다수 하위 카스트들을 일컫는 말이다. ‘바후잔 사마즈’란 이들 ‘바후잔’이 주인 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런 당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BSP는 카스트 제도의 철폐를 외치며 달리트(이른바 불가촉천민)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이다. BSP는 ‘인도의 정치 1번지’라고 하는 우타르 프라데쉬 주에서는 이미 집권 여당이다. 이념적으로는 달리트 해방을 위해 불교 운동을 펼친 암베드카르(인도의 초대 법무장관이자 헌법 기초자)의 전통을 잇고 있으며, 그래서 일종의 불교 사회주의를 주창한다.

       
      ▲ 쿠마리 마야와티. 그녀는 달리트들로부터 거의 여신으로 추앙받는다

    이 당은 이번 총선에 총리 후보로 쿠마리 마야와티(‘쿠마리’는 힌두교의 여신을 뜻함)라는 여성 정치인을 내세우고 있다. 마야와티는 현 우타르 프라데쉬 주 총리이기도 하다. 그녀는 달리트로부터 전국적인 지지를 받고 있어서 이번 총선에서 상당한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카스트 제도에 따른 억압과 불평등이 아직도 현안인 이 나라에서 이는 커다란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다만 마야와티 본인과 BSP가 일련의 부패 혐의에 연루돼 있어서 이들의 전진이 계속될 수 있을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많은 관측통은 마야와티의 BSP가 제3전선에 합류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지난 3월에 있었던 BSP와 제3전선 사이의 협상은 일단 실패로 끝났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둘 다 독자 세력으로 총선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앞으로 자본주의의 성장과 변화에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는 이 거대한 국가에서 세계 경제 위기 이후 처음 실시되는 이번 총선은 향후 세계사의 전개에 커다란 의의를 갖는다. 인도 노동자, 농민과 하층 카스트들이 과연 얼마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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