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고사는 평가가 아니다”
        2009년 03월 31일 02: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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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31일에 또다시 진단평가라는 이름의 일제고사가 치러진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생까지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국영수와 사회, 과학 시험을 ‘일제히’ 보게 된다. 이에 따라 교육계에는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심드렁하다.

    일제고사를 찬성하는, 혹은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반대하는 것도 아닌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의 근원적인 논리는 ‘평가를 거부하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할 수 있다.

    일제고사를 추진하면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무리수들에 대해선 탐탁지 않게 생각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평가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생각. 그래서 일제고사를 하긴 하되 합리적으로 잘 하자, 무조건 거부는 안 된다는 식의 생각을 막연히 하게 된다.

    이런 생각 때문에 ‘일부 운동권’의 열성적인 일제고사 반대에도 불구하고 더 넓은 저변의 동력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일제고사는 평가가 아니다

    사람들은 착각하고 있다. 일제고사와 평가를 동일시한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착각이다. 일제고사는 평가가 아니다. ‘일부 운동권’이 반대하는 것은 ‘평가’가 아니라 ‘일제고사’다.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르다.

    평가(評價)는 대상의 가치를 산정하는 행위다. 교육에선 교육이 잘 되었는지 그 결과를 판단하는 절차이기도 하다. 이런 평가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일제고사는 이런 평가와 전혀 다른 것이다.

    일제고사는 아이들에게 획일적인 학력고사를 보도록 강요하는 행위다. 이런 학력고사를 평가라고 하는 것엔, 학력고사 점수가 아이들의 가치라는 사고방식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말도 안 되는 발상이 깔려 있는 것이다.

    또, 일제고사를 평가라고 부르는 것엔 학력고사 결과가 교육이 잘 되었는지 판정하는 기준이 된다는 사고방식도 깔려 있다. 이런 생각이 없다면 일제고사를 평가라고 스스럼없이 규정할 수 없다.

    그런데, 학력고사 점수는 아이들의 가치를 산정하는 기준이 될 수도, 교육이 잘 되었는지 판정하는 기준이 될 수도 없다. 그 점수는 아이들의 진짜 가치, 진정한 교육적 가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제고사를 평가와 동일시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일제고사는 절대로 교육적인 의미의 평가가 아니다. 이것은 그냥 일제히 보는 시험일뿐이다. 우리 학생들은 이미 인류역사상 초유의 시험지옥에 빠져있으므로, 여기서 시험 더 보라고 강요하는 것은 피자 한 판 다 먹은 아이에게 맘모스 햄버거를 억지로 우겨넣는 것 같은 살인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짓을 지금 이 땅의 자칭 교육자라는 사람들이 교육과 평가라는 단어를 내세워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시사문제를 섭렵하고 전문서적을 독파한 사람조차 평가와 일제고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반복한다. 일제고사는 원론적인 의미에서의 평가가 아니다. 이미 배가 터질 것 같아 헐떡대는 아이들에게 독약이 될 음식물을 강제투입하는 미친 짓일 뿐이다.

    학부모의 욕심은 채워질까?

    이렇게 말하면 학부모들은 코웃음 칠 것이다. 원론적인 의미에서의 평가를 논하는 태평한 사람들과 달리 학부모들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 이들은 교육이 어떻게 되건, 평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건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내일 교육이 망하고 학교가 붕괴해도 자기 자식의 학력향상을 원할 뿐이다.

    이들에겐 위에서의 논의는 사치다. 오직 성적, 오직 자식 성적이다. 일제고사를 통해 자식 성적이 올라 갈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이 유지되는 한, 그 어떤 논리를 들이대도 이들은 일제고사에 찬성할 것이다.

    학부모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일제고사는 자기 자식만의 특별 코스가 아니란 사실 말이다. 일제고사는 전국의 모든 아이들이 동시에 보는 시험이다. 그러므로 내 자식 한 명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내 자식의 점수가 10점이 올라봐야, 전국 모든 아이들의 성적이 일제히 10점씩 오르면 아무 일도 아니게 된다. 학부모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성적이 아닌 석차이니까.

    즉, 전국의 모든 아이들이 일제히 시험을 보든 안 보든, 일제히 학력이 올라가든 떨어지든, 내 자식 석차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소리다. 내 자식 석차 상승과 일제고사를 연결 짓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착각이다.

    내 자식 한 명의 성적과 연결된 것은 개인특별교육인 사교육뿐이다. 이것은 나 혼자만 지불할 수 있는 것, 즉 내 돈과 연결되어 있다. 그 돈으로 고3 때 있을 대입 일제고사의 석차를 사는 것이 한국의 교육과정이다.

    그런데 일제고사를 보면 볼수록 사야 할 석차가 많아진다. 그래서 더욱 사교육에 돈을 지불해야 할 필요가 생기고, 학부모는 가난해진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내 자식의 학력에 어떤 변화가 올까?

    ‘시험 바보’ 되기

    학부모들에겐 죄송한 일이지만 더 내려간다. 어쩌면 전체 평균은 올라갈 수 있다. 전체적으로 시험 바보가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 이미 말했듯 한국에서 중요한 학력은 절대 성적이 아니라 석차다. 일제고사를 통해 그 석차를 돈으로 사는 과정이 반복될수록 부모들의 재산 차이가 자식 석차에 깊게 반영된다. 그에 따라 일반서민인 다수 학부모의 자식들은 학력의 상대적 하락을 경험하며 돈만 축내게 된다.

    앞에서 평가는 대상의 가치를 산정하는 행위라고 했다. 일제고사를 평가라고 하면, 일제고사 석차가 필연적으로 낮을 대다수 국민의 자식들이 무가치한 존재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일제고사를 볼수록 부잣집 자식과 일반 국민 자식 사이의 학력차가 확연해져, 설사 전체 평균이 올라가건 말건 일반 국민의 자식은 무가치하고 저열한 존재로 전락하는 것. 이것이 일제고사의 본질이다.

    학부모의 욕심은 전혀 채워지지 않고, 아이들은 시험지옥에 빠지며, 돈은 돈대로 쓰게 된다. 일제고사 대비 사교육비가 두렵지 않는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 학부모는 철저히 버려진다. 아무 것도 얻는 것 없이, 가중되는 시험경쟁으로 인해 교육만 붕괴될 것이다. 백해무익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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