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단일화에 목매지 않는 이유"
        2009년 03월 30일 04: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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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일화 어떻게 됐노?”
    지난 27일 밤 12시, 야식 먹기 위해 식당 앞에 줄서있는데 한 선배가 물었다.
    “우째 잘 안되네요.”
    “그렇지 단일화가 쉽지 않을기라.”
    “와요?”
    “세상 이치가 그렇지. 단일화는 마음을 비우거나, 양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 단일화가 뭐여, 묶어서 하나로 하겠다는 것인데 과연 묶여지겠어?”

    다음달 29일 치러질 울산북구 국회의원 재선거와 관련한 진보정당 후보단일화에 대한 이야기다. 식사 뒤 다시 생각해봤다. 지난 3월 12일 이후 지금까지의 후보단일화 논의과정을 보면 단일화가 필요하다는 당위성만 바깥에 발표하고, 이로써 이목을 집중시킨 효과만 거둔 데 그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일화되면 좋은데, 그거 되겠어?”

    한 인터넷신문의 기사를 보니 「강기갑 ‘노동자 중심’ vs 노회찬 ‘그들만의 리그 극복’」이라는 제목이 눈에 띈다. 협상 테이블에서 만난 양당의 대표들과 후보들이 반갑게 악수를 나눴으나 이날부터 협상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사실상 표현한 것이다.

    강기갑 대표는 “울산은 노동자 1번지로 노동자 중심성이 아주 튼튼한 지역”이라며 ‘노동자’를 강조했다. 반면 노회찬 대표는 “그동안 진보정당이 과거 비판받았던 ‘그들만의 리그’, ‘민주노총당’, ‘운동권 정당’이라는 과거를 극복해야 한다”며 ‘노동자’만 전면에 세운 강기갑 대표의 발언을 반박했다고 한다.

    한쪽은 외견상 노동자를 강조했고 다른 쪽은 그것을 비판하는 꼴로 그려졌다. 그런데 외견상 표현되는 것 이면에 둘은 서로 구체적으로 뭐가 다른 것일까? 현장노동자들은 바로 이것을 ‘구체적으로’ 궁금해 한다.

    일단 현장노동자들은 단일화의 바램을 어렴풋이 갖고 있다.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에 따로 당을 꾸렸는지 현장노동자들은 사실 잘 모르기 때문이다. 대신 ‘분열’되는 것은 분명히 싫어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것이 단일화를 막연히 기대하는 현장의 심리이다.

    두 진보정당이 단일화의 당위성을 내세우는 궁극적인 이유가 이것을 그대로 반영한 것뿐이다. 반면, 현장노동자들은 또한 바램과는 달리 단일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직감한다. 한쪽은 이것을, 다른 쪽은 저것을 강조하는 서로 다른 초점을 가진 정당이라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서로 초점을 달리하며 강조하는 실제 내용의 차이점은 잘 모른다. 어느 것이나 현장노동자들에게는 그저 ‘막연함’일 뿐이다. 그리고 진보정당은 그냥 “이명박과 한나라당에 대응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내가 어느 정당에도 가입 안한 이유

    현장노동자들은 언제인가부터 ‘선거판’이 벌어지면 쉽게 말문을 열지 않고 자기 의사를 잘 표현하지 않고 있다. 노조 선거든, 공장 밖의 정치인 뽑는 선거든 다 마찬가지다. 이는 다 이유가 있다. 선거에 나서거나 그것을 이전부터 준비하는 각종 세력(?)들이 모두 그저 맞는 이야기만 하기 때문이다.

    운동세력조차 막연한데 현장노동자들이 구체적인 속내를 드러내면 뭔가 손해 본다는 피해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구체적인 자기 입장이 드러났을 때 생기는 오해나 서로간의 불편함을 피하고 싶어 한다.

    내가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나서 지금 어느 진보정당에도 가입하지 않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이것에서 비롯됐다. 나는 과거 민주노동당식 정당운동은 민주노총의 ‘묻지말고 지지하라’는 방침과 맞물려 현장노동자를 대상화시켰다고 봤다.

    당 이름에 ‘노동’이 들어가고 당대표가 ‘노동자’를 강조하니까 ‘막연하게’ 무조건 지지해야 한다는 논리로는 현장노동자들이 결코 흔쾌히 동의하고 움직여주지 않는다. 실제 현장노동자가 움직이지 않는 노동자정당을 두고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라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아직 진보신당이 이 막연함을 극복했다고 보여지지도 않는다. 과제라고는 이야기하지만 말이다.

    “너희들 구체적으로 뭐 할 건데?”

    문제는 바로 이 상태에서 또다시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또다시 선거가 펼쳐진다는 것. 이러니 현장이 조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조합원들과 부대끼면서 그 속내를 잘 들여다보면, 겉으로는 싸늘해도 현장노동자들의 관심은 높다는 것을 한편에서는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조용한 듯 보이지만 각 세력(?)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활동가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누가 신심있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누가 뭐래도 역시 ‘선거’는 현장노동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는 일종의 정치적 ‘이벤트’임에는 이론의 여지는 없다.

    강력한 노동자 도시라 불리우는 울산의 노동자들은 이렇게 20년 동안 각종 선거를 되풀이 하면서 이런 과정들을 반복했고, 그렇게 나름대로 단련되어왔다. 막연하기에 조용하지만 보이지 않게 관심을 가지는 태도로 말이다.

    그리고 이들은 이번에는 속으로 이렇게 되묻고 있다. “민주노동당에는 누가 있고, 진보신당에는 어떤 활동가들이 같이 하고 있는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도대체 구체적으로 무엇이 다른데?”, “김창현은 왜 동구에서 북구로 출마했으며, 조승수는 다시 뭘 하려고 출마했는데?” 이같은 질문에는 ‘묻지 말고 무조건 누구를 지지하라’는 것이 뚫고 들어갈 틈은 이미 없어 보인다.

    “동참할만하다”고 느껴지게 해줘야

    그렇다면 이제는 현장노동자들이 묻는 조용한 질문에 구체적인 답을 내어놓거나, 그 답을 찾으려 같이 모색해야 하는 법이다. 더 이상 ‘막연함’만으로는 현장노동자들이 순순히 움직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 각각 어떤 활동가들이 있고 서로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을 내세우는지, 김창현과 조승수가 출마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여론화하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누구나 다 아는 뻔한 ‘한나라당에 맞서려한다’는 뻔한 대답을 이제 극복해야 한다.

    이것이 생략된다면 진보양당의 후보단일화가 성사되든 불발되든 현장노동자의 입장에서 그 과정과 결과는 단지 ‘운동권 상층’이 언론과 여론을 집중시키는 효과만 극대화하려고 저렇게 했다고 보고 말 것이다. 그리고 현장노동자들은 또 싸늘해 하며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우연히 주어진 재선거라는 공간. 노동조합운동에만 갇혀 있던 현장노동자로 하여금 “그만하면 나도 동참할만하다”고 느껴 움직일 만큼의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넘실대기를 기대한다.

    선거일까지 한 달이면 부족하지만 그래도 할 만하지 않은가. 나는 당위적인 ‘단일화’ 성사 여부보다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정치세력화 과정에 관심이 더 크다. 내가 몸담고 있는 현대차 민노회와 전국현장노동자회가 아직 정치방침을 정하지 않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 이 글은 전국현장노동자회(http://nodong.nodong.net) 소식지 <주간노동운동동향> 21호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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