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면 안 돼, 매일 마음 다져요”
        2009년 03월 28일 10:0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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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선.(사진=이재영)

    까페에서 두어 시간 수다 떨어본 바대로라면 이명선은 ‘똑똑하고 착한 사람’ 같다.

    여자 아나운서나 앵커우먼과 이야기 나눠 본 적은 없지만, 적잖이 만나는 그 또래의 기자나 피디들이 저 다루는 분야에만 박통한 데 비해 칼라TV 이명선은 여러 사회 현안에 대해 월등한 정보와 식견을 내보였다.

    그는 대부분의 질문에 똑부러지는 답을 주는 편한 인터뷰이였다.

    삼성 사내방송 계약직으로 시작

    “처음에는 삼성 사내 방송에서 일했어요. 계약직이었죠. 그러다가 <딴지일보>에서 ‘오바라인 뉴스’를 하게 됐고, 그 때 막 생기던 미디어몹에서 전화가 와서 홍보동영상을 만들자길래 ‘좋아요’라고 답하고 만든 게 ‘헤딩라인 뉴스’였어요. 그냥 일회성 홍보동영상이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더라고요. 하나만 더 만들자 어쩌자 하다가 나중에는 ‘시사투나잇’에 매일 고정으로 나가게 됐죠.”

    “어때요. 지금 칼라티비도 재밌긴 하겠지만, 공중파도 타고 그 때가 이명선씨 황금기 아니었을까요?”

    “호호. 그렇죠. 게다가 그 때 제 나이가 스물아홉이었는데, 제가 하고 싶던 아나운서의 꿈을 포기하자니 미련이 남고, 다른 일을 해보자니 용기가 없고 그런 상황이었거든요. 그 때 ‘헤딩라인 뉴스’를 하게 됐으니, 힘들다는 아홉수를 가장 행복하게 지냈어요. 그러다, 한나라당과 마찰이 생겼고, 한나라당의 항의에 당시 KBS 사장이었던 정연주씨가 ‘그럼 그 꼭지 빼면 되죠’라고 한 게 끝이었어요.”

    이명선이 칼라TV 리포터로 재등장했을 때, 좀 젊은 축은 ‘어, 저 사람!’하고 반가워했을 테고, 늙은이들은 ‘누구냐? 칼라티비에는 아깝다’고 탄식했을 법하다. 다른 인터뷰를 보니 이명선이 ‘4년을 놀았다’고 소개돼 있다.

    “‘시사투나잇’에 안 나갔을 뿐이지, 딱히 논 건 아니예요. 미디어몹에서 ‘헤딩라인 뉴스 시즌2’도 1년 정도 더 했고. 그 다음 2년 정도는 집에서 그냥 굴러다녔어요. 게임하고 책 보고, 해 다 뜨고 일어나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더 캐보니 이명선이 굴러만 다닌 건 절대 아니고, 아나운서로서 그리고 ‘날생방송’인 칼라TV의 ‘얼굴’이 됨직한 경력을 차근차근 쌓아온 듯하다. 이명선은 그동안 EBS에서 주철환씨와 함께 ‘시선’을 진행했고, 정범구씨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시민단체 탐방 꼭지를 맡아 일했다.

    스스로 찾아간 칼라TV

    “‘헤딩라인 뉴스’가 정치에 국한됐었다면, ‘시선’은 그냥 팩트만 전하는 게 아니라 대안도 찾아보게 되고 조금 더 따뜻한 생각을 가지게 만들어줬죠. 시민단체들 취재하는 꼭지를 하면서는 환경단체, 아름다운 가게, 인권운동사랑방도 가보고, 신지호씨도 만나고, 박래군 선생님도 만나고.

    박래군 선생님더러 ‘선생님’하고 불렀더니 인권운동사랑방 사람들이 ‘박래군한테 선생님이래’하며 계속 웃고 그러더라고요. 좋았어요. 내가 가진 무언가를 함께 나눌 수가 있을까, 계속 생각하게 됐죠.”

    다분히 사회비판적인 ‘딴지’ 출신들의 매체나 사회참여성 프로그램 일을 했다고 할지라도, 이명선이 칼라TV에서 일하게 된 것은 꽤 의외였다. 요즘 말로 하면 칼라티비는 ‘막장’쯤 되겠고, 정장 차려 입고 KBS와 EBS에 나가던 사람이 그런 거친 곳에 선뜻 들어온다는 것은 커리어 관리에 열중하는 세속의 기준으로는 크나큰 일탈일 수밖에 없다.

    “촛불문화제 처음에는 저도 TV로 지켜보다가, 5월 초에 직접 참가했어요. 그냥 대열 끝에서 촛불 들고 걸어가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고 그랬는데, 먼 발치에 한홍구 선생님이 보이더라고요. 사인해달랄까, 같이 사진 찍자고 할까 가슴 설레하는데, 한 선생님이 ‘어디서 봤더라?’ 아는 척 하시길래 기분도 좋아지고 용기도 얻고.

       
      

    그래서 초 대신 마이크를 들어보자 결심하고 칼라TV를 찾아갔죠. ‘정태인, 진중권 얼굴로는 안 된다’는 여론도 있었고요. 호호. 6월 1일 회의에 처음 갔어요.

    국밥 같이 먹고, 운동권 논쟁하는 거 세 시간인가 네 시간인가 가만히 지켜봤어요. 술자리에 정태인 선생님도 오셔서 그 때 처음 뵀는데, 기억 못하시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현충일 3일 연휴 동안 계속 방송하는 게 가능하겠냐고 제안했더니, 칼라TV 스텝들이 진지하게 의논하더라고요. 그래서 나온 게 ‘85시간 방송’이었죠.”

    한총련 끝세대

    “어때요? 칼라TV는”

    “그 전에 프로그램은 누군가 저를 불러줘서 한 건데, 칼라TV는 제가 직접 찾아간 거죠. 예전에는 스튜디오에서 대본 읽었었는데, 지금은 대본도 없고 상황도 어떻게 될지 모르고. 너무 고생한다고들 하시는데, 저는 스튜디오라는 프레임, 카메라의 정해진 프레임에서 벗어나서 너무 좋아요. 일선 취재기자 같고. 제가 달리기를 좀 잘해요. 칼라TV 남자 스탭들보다 더 잘해요.”

    당하는 이명선이야 씩씩하다지만, 칼라TV를 지켜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전경 방패에 얻어맞는 순간을 지켜보기가 끔찍하고, 붕대를 칭칭 감은 채 마이크를 든 손이 안쓰럽다. 그리고 무섭다. 이건 시위 리포터가 아니라, 아예 종군기자다.

    “제가 한총련 끝세대예요. ‘연대 사태’ 직후에는 강의실에 모여앉아 한총련 탈퇴서도 쓰고 그랬던 것 같아요. 등록금 투쟁 외에는 데모 같은 거 해본 적도 없어요. 제 세대에게는, 사회운동은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접할 수 없는 영역이죠. 언론고시를 준비하던 제가 대학 졸업 후 10년 만에 이명박식 어법의 ‘전문 시위꾼’이 됐다는 게 아이러니 아닌가요.”

    “그래도 칼라TV는 많이 무서워요. 사람도 없고 돈도 없으니 데모하는 데만 찾아다닐 수밖에 없기도 하겠지만, 사람 사는 게 충돌만 있고 눈물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부모형제 죽어도, 울다가는 밥먹으며 웃고 하는 게 진짜 사는 거잖아요. 칼라TV도 이명선씨도 그런 거 좀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백골단이 사람 때려 잡아가는 걸 보면 아무 말도 안 나오고, 우는 걸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어요. 촛불 문화제 반대하는 사람이 칼부림질을 했을 때는 바닥에 피가 흥건하고, 피냄새가 진동하고, 그 피에 파리들이 까맣게 모여들고.

    "사는 게 극한 상황이었죠"

    우리들 사는 게, 촛불, 기륭, 일제고사, 용산참사까지 극한상황이었죠. 눈물이 끊이지 않다 보니 많이 부대끼고 많이 힘들었어요. 육체적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마음에 생채기가 생기고.

    하지만 칼라TV 일이 눈물로만 채워진 건 아니예요. 얼마 전 인권위 축소 반대 농성장에 계시던 분이 연행됐었거든요. 48시간 잡혀 있다 나오시면서 ‘고맙다’ 문자 보내시더라고요. 전경이 잡아가려던 열다섯 여자 아이들 악다구니로 빼냈더니 ‘언니 고마워요’라며 사탕 주더라고요.

    촛불 데모 때는 연행당하신 분한테서 자동차 키 넘겨받아 그 분 차에 갇혀 있던 코카스파니엘 강아지 ‘베컴’을 구출해서 며칠 데리고 있었어요. 처음에는 인터뷰도 꺼리시던 용산 철거민들과도 지금은 콩나물국밥 같이 먹으면서 지내고. 방송되지 못할 뿐이지, 칼라TV는 따뜻해요.”

    칼라티비에 돈 좀 내야겠다. ‘당신은 뭐 하고 싶나?’ 안 해도 그만인 마지막 질문을 던져봤다. 눈물을 글썽이며, 그리고 금방 헤헤 웃으며 이명선이 답했다.

       
      

    “제가 원래 계획성이 없어요. 지금 처해 있는 현실에 충실히 살자는 거. 전에는 ‘행복해지게 해주세요’ 그랬었는데, 요즘은 ‘마음 편안하게 해주세요’라고 주문 외우며 다녀요.

    제가 정말로 눈물이 많거든요. 단단해져야겠다, 생각이 들어요. 감정적으로 무감각해지자는 게 아니라, 의연해져야겠다는 거.

    그래도 아직까지 울음이 먼저 터져 나와요. YTN, MBC 사람들 잡아가는 거 보면, 내가 뭘 말할 수 있을까, 어떻게 숨을 쉴 수 있을까, 저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예요.

    야전상의가 어울리는 일

    그렇지만 저는 모든 여대생들의 선망인 아홉시 뉴스 앵커우먼이 아니라, 칼라TV 리포터예요. 엄마는 제 일에 야전상의가 어울린대요. 이제 봄이고, 새 운동화를 사야겠어요. 갑자기 투사가 되겠다는 건 아니고, 방송 잘해야 하니까요.

    ‘헤딩라인 뉴스’ 때는 윤기 있는 삶이었죠. 지금 겉으로는 윤기가 없지만, 안이 채워지고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살이 찌나. 호호.”

    마지막으로 인터뷰 중에 느꼈던 단상 몇 가지.

    조금 의외였던 것은 평소에도 그런지 인터뷰어에게만 그리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내 친절했다는 점이다. 이명선은 티백을 챙겨주고, 설탕봉지를 치워줬다. 그리고 인터뷰가 끝났을 때는 찻잔과 쟁반을 들고 일어섰다. ‘예쁘고 잘 차려입은 한국의 성인 여성’은 대개들, 그런 짓을 절대 하지 않는다.

    또. 딱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닌데, 이명선과 이야기하다 보니 ‘수다 친구’인 참여연대의 박영선 사무처장이 떠올랐다. 사람 이것저것 챙겨주는 언니랄까, 뭐 그런 거. 이명선이 아직 그만한 나이도 아니고 그만한 몸둘레도 아니지만, 그런 징조가 조금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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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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