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여전히 정파는 안되는가
        2009년 03월 27일 09: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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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전한 혼란, 대체 정파란?!

    우선 권병덕님께서 하신 정파에 대한 정의에서 시작하겠습니다. 님께서는 "정파란 정치의 영역에서 공통의 의견을 가지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모든 집단을 의미한다"고 하셨습니다. 한가지 질문드리지요. 이 정의는 왜 ‘당’이 아니고 ‘정파’입니까?

    ‘당’이야말로 정치 영역에서 공통의 의견을 가지고 이를 실천에 옮기려고 만든 조직입니다. 그래서 다른나라에는 사민주의하겠다는 사람들은 사민당 만들고, 사회주의 하겠다는 사람들은 따로 노동당 만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운동과 이념이 다른 이들이 하나의 정당으로 모이는 경우가 있는데 민주노동당 때처럼 서로 다른 애들이 모여서 당을 만든 경우가 그것인데 이러한 경우의 정당을 <정파연합모델>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파연합모델은 좌파정당이 제도권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하기 어려운 조건들… 소선거구제, 보수일변의 정치 풍토 등등의 특수한 조건에 의해 주어지는 모델입니다.

    즉, 당내 정파란 필연적이고 반드시 존재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정치조건 속에서 주어지거나, 당 내의 일정한 정치적 입장차이가 당내의 정치과정을 통해 이념적, 운동적 차이로 분화되면서 ‘형성’되면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즉, 정파란 운동이지 제도가 아닙니다.

    그런데 권병덕님께서는 당적 정의를 ‘정파’의 정의와 혼동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당내 계모임, 술모임까지 모두 포함해도 이상할 게 없는 느슨한 개념으로 정파의 정의를 확장합니다. 위 문장에 이어 권병덕님의 정파의 정의는 바로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이들은 일시적일수도 있고, 장기지속적일수도 있습니다. 그 조직은 수직적일수도 있으며, 수평적일수도 있습니다. 고도의 단결성을 가질 수도 있고, 고도의 자율성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조직의 단결성을 척도로 보면 한쪽 극단에는 볼세비키같은 조직도 있고 진보신당 내에서와 같이 각종 자발적 소모임들이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조직이 수직적이든 수평적이든 그건 지들 맘인거고, 단결이 잘되는 철의 조직인지 지멋대로의 당나라 조직인지는 조직역량에 달린 것이지만 단, 정파조직은 두 가지를 전제해야 합니다. 첫째, 정파는 이념적, 운동적 차이로 인해 당내의 정치지형을 형성하며 대립하는 조직이며 둘째, 이러한 대립은 일시적이 아니라 지속성을 지닌다는 것입니다.

    2. 정파는 ‘제도’의 산물이 아니라 ‘운동’의 산물입니다.

    권병덕님 그리고 여러 <사회민주주의 공개정파를 준비하는 모임 (이하 ‘사민준’)> 동지들과 저의 정파에 대한 기본적 관점의 차이는 이것입니다. 사민준 동지들에게 ‘정파’란 현대 민주주의가 다당제로 인한 대의제인 것처럼 현대정치의 정당은 여러 정파들에 의해 경쟁적으로 운영되는 대의체계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민준 동지들은 그 정파들이 구분되는 ‘차이’와 그 ‘운동’이 무엇인지를 묻지 않습니다. 그래서 당 내에 어떠한 운동이 어떠한 차이를 형성하는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정파 할당제>가 당의 민주적 운영을 위해 필요한 <제도>라고 판단하고 수정동의안을 발의하셨던 겁니다.

    사민준 동지들에게 ‘정파’란 <제도>이지만 저의 판단에, 그리고 지금껏 진보진영의 역사에서 ‘정파’란 운동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제가 집요하게 묻는 것은 ‘정파’의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정파들이 어떠한 운동과 대립 위에 지형을 구축하고 있느냐라는 <정파지형>입니다.

    그래서 사민준 동지들은 <전진>이 어쨌든 조직이니까 당내 정파라고 하시지만, 저는 이들이 당내에 어떠한 정치적 지형과 대립을 구성한 바 없으며 스스로 그럴 의사를 분명히 하지 않았음으로 <전진>을 우리당의 <정파>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권병덕님께서는 <사회구성체 논쟁> 책 그림 밑에 "이런 책을 읽지 않아도 정파질(?)을 할 수 있다"고 미주를 다셨습니다. 전 "이런 책을 읽고 정파질을 했기 때문에 민노당이 망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민노당에서 정파들은 80년대의 사구체 논쟁에 기반한 정파들인데 새로운 한국사회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논쟁과 새로운 운동 속에서 정파지형을 새롭게 구축하지 못하고 과거의 지형 위에서 조직적 대립을 반복했기 때문에 민노당의 정파운동은 ‘망한 운동’이었습니다.

    사민준 동지들에게 민노당의 실패는 "음성적 정파를 양성화하는데 실패한 <제도>의 실패"였지만, 저의 평가로는 민노당의 실패는 "낡은 정파들이 구성한, 낡은 운동지형… 당내 <정파운동>, 그 자체의 실패"인 것입니다.

    3. 세계 어느 정당의 정파도 ‘정파조직’ 자체를 목적으로 수립된 정파는 없다

    전 대체 언제부터 사민주의자들이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 수준의 ‘책임정치와 대의 민주주의’ 개념을 좌파정당의 핵심적 원리로 주장했는지 의문입니다. 단순히 책임정치와 대의 민주주의를 위해 ‘정파’가 필요하다면 <노빠 정파>와 <심빠 정파>가 당 내에 제도적으로 안착해서 정파할당 받고하면 안되는 건가요?

    님들의 개념으로는 ‘계파’는 양성화와 제도화가 안된 것이 문제일 뿐 그 대립이 구성하는 천박성- 이념적, 정치적, 운동적 차이가 아닌 ‘인맥관계’가 당내 질서의 중심이 되는걸 문제삼을 이유가 없습니다. 과연 세계 어느 좌파 정당의 정파가 <사민준>처럼 ‘다당제 대의 민주주의’ 개념을 정당 정치의 개념으로 그대로 빌려와 단지 경쟁적 대의체계를 구성하기위해 당파를 구성한 사례가 있습니까?

    수많은 정치적 사안 속에서 집결과 해산을 반복하면서 당내의 운동이 각자의 차이를 근본적인 이념과 운동의 차이로 형성할 때 당내 정파는 바로 그 운동 위에서 형성되고 발전해온 것입니다.

    4. 체질적 소수파의 습관적 무능

    전 민노당 시절 평등파의 문제를 ‘체질적 소수정파의 습관적 무능’이라 생각합니다. 민노당 시절 평등파가 자신을 하나의 정파로써 스스로 정립할 근거는 이미 <사회구성체 논쟁>이 종결되면서 상실했습니다.그래서 새로운 운동 위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지도 못하면서 오로지 ‘자주파의 운동에 반대’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존재이유를 지녔습니다.

    바로 이러한 ‘반정립’으로써의 운동은 결코 ‘정립’으로써의 운동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평등파가 당 내에서 소수파로 입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말 그대로 ‘체질적’인 것이었죠. 그러한 체질은 상대가 정립한 운동을 새로운 정립을 통해 극복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습관적 무능’이 되었습니다.

    전 현재 우리 당의 <사민준>이 원단부터 디자인까지 철저하게 ‘체질적 소수정파의 습관적 무능’을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당내 정파라고 정의한 바 없고, 조직 자체도 당나라 조직이 된 <전진>을 끊임없이 물고 들어가는 이유는 바로 스스로 당내에서 ‘운동’으로 정립할 능력과 비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패권’은 커녕 당 내에서 조직적 역량을 발휘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전진>을 은연 중에 <자주파>에 자꾸 비유하는 것은 스스로 당내 운동을 가동하고 분화할 구체적 운동과 능력이 없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패권’의 그림자와 싸우려 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민노당 시절 평등파스럽고 더 이상 우리에게 필요 없는 정치 마인드입니까?

    5. 다시 한번 당의 새로운 모델을 생각하며

    저의 이전 글에서 가장 크게 받았던 오해는 저의 글이 ‘정파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읽히는 것이었습니다. 전 이렇게 독해되는 것 역시 상관없다고 했습니다. 우리 당은 매우 느슨한 ‘진보’라는 개념으로 집결했습니다. 뭐 이런 당나라 당이 따로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당은 언젠가 이념적, 운동적으로 전선이 구성되어 당 내에 여러 정파들을 형성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 묻는 것은 ‘먼 훗날의 가능성’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발딛고 서있는 ‘당 내의 운동’입니다.

    과거 민중운동이 NL/PD의 정파적 질서를 구축하는데 수많은 정치 현안들의 논쟁과 운동을 거치는 ‘만 7년의 형성기’가 필요했으며 그 역사 속에는 뚜렷한 정치적 차이 없이 조직들이 각자의 조직 이기주의에 빠져드는 ‘써클주의’와 ‘종파주의’와의 투쟁이 공존했습니다.

    전 민노당이 80년대 낡은 정파적 대립에 기반해 21세기 민노당의 당적 운동을 구성했던 것을 비판했던 것과 정확히 같은 이유로 지금 21세기 진보신당이 20세기의 낡은 사회주의와 사민주의의 정파적 대립 위에 서는 것을 반대합니다. 이것이 지금 제가 아직 아무런 힘도, 규모도 없는 <사민준> 동지들을 집요하게 물고들어가는 이유입니다.

    저는 당내의 사회주의와 사민주의의 경향적 흐름이 당의 새로운 운동과 새로운 정치적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집결되고 해산하면서 먼 훗날 당의 자양이 될 새로운 운동의 조직적 모태가 된다면 기꺼이 이를 반기며 하나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참가할  의지도 의사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당내의 정치 속에서 실질적으로 만들어갈 운동의 결과일 뿐, 따라서 지금 중요한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대립을 가정한 <제도>가 아니라 실질적인 현안 속의 치열한 논쟁과 소통이며, 진보를 구성할 다양한 주제들의 운동입니다.

    그리고 전 이것이 가능한 분화된 운동과 조직으로 흐트러지기보다는 소통을 통한 통합으로, 우리 당이 보다 흐트러짐 없이 하나의 큰 흐름으로 한국의 진보정치사에 단일한 100년 정당이 되길 희망합니다. 따라서 지금은 구체적 논쟁과 소통에 집중하며, 존재하지도 않는 이념적, 운동적 대립으로 당을 분할하려는 각종 써클주의와 종파주의와 투쟁할 때입니다.

    대립과 분할의 이념적, 운동적 차이 없이 단지 <다당제 대의 민주주의>의 순진한 당내 정치로의 적용은 과거 정파 형성기에 우리 운동이 끊임없이 빠져들었던 ‘써클주의’와 ‘종파주의’의 또 다른 반복임을 <사민준> 동지들에게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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