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뜨내기 노동자, 창녀, 전과자
    By mywank
        2009년 03월 27일 09: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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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만희 감독은 장르 영화와 모더니즘의 코드 둘 다를 잘 이해하고 있는 창작자로서 60년대 한국 영화의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토양 속에서 다양한 지반을 옮겨 다니며 그 속에서 장르 영화와 모더니즘 영화의 결합을 시도하기도 하고, 또 리얼리즘 경향을 흡수하기도 한 감독으로 평가된다.

       
      ▲ 故 이만희 감독

    한국영화사의 큰 흐름을 볼 때 60년대 전반에는 스릴러 형식의 영화가 유행하였으며 특히 1964년에서 1967년에 걸치는 5년간은 그 경향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다. 이만희 감독 역시 60년대에 남성적인 장르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64년에서 69년에 걸쳐 한 해에 4편에서 많게는 무려 11편까지도 만들었다고 하니 상당한 다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이만희 감독의 <마의 계단>은 범죄 스릴러 영화 가운데서도 가장 초기 형태인 단독 범행에 따른 범죄 스릴러 영화라고 분류될 수 있다. 이 당시 범죄 스릴러 영화가 유행하게 된 배경은 50년대 말부터 수입되었던 미국의 스릴러 영화들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이만희 감독의 또 다른 스릴러 영화 <다이알 112를 돌려라>의 제목은 히치콕 감독의 <다이알 M을 돌려라>를 바로 떠올리게 한다. 또한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가난한 애인을 배신하고 부잣집 딸과 결혼하는 남자의 야망이 결국 비극적 결말을 초래한다는 <마의 계단>의 내러티브는 <젊은이의 양지>의 기본 줄거리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외국 영화의 그림자, 익숙함

    <마의 계단>은 내러티브에서 뿐만 아니라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외국 영화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흑백영화인 <마의 계단>의 표현주의적 영상이나 음악은 이미 미스테리 스릴러 장르의 컨벤션을 충실히 따른다. 또 거의 호러 영화를 연상시킬 정도로 강박적인 죽은 자나 귀신에 대한 공포, 범죄자의 죄의식, 형사의 추적이 얽히면서 영화의 서스펜스를 이끌어 내는 방식도 이미 범죄 스릴러 영화에서는 낯익은 플롯 구성 방식이다.

    그러므로 <마의 계단>은 당시 한국 영화의 맥락에서는 새롭고 낯선 것일 수도 있겠지만 장르 영화에 익숙할 대로 익숙해져 있는 오늘날의 관객 뿐 아니라 이미 외국 영화 관람 경험이 적지 않은 당대 관객들에게도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으로 받아들여지는 영화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점이 이만희 감독이 장르를 통해 대중성을 확보하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체계적으로 영화를 공부하고 만들만한 여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당시 상황에서는 외국의 유명한 영화를 보는 것이 가장 큰 영화 공부였을 것이며, 외국의 뛰어난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작품을 만드는 것은 장르 영화의 출발에 있어서 당연한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 영화 <마의 계단>(왼쪽)과 <젊은이의 양지> 포스터

    장르 자체가 반복과 변형을 통해 구축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외국의 장르 영화가 한국 영화의 장르 형성에 어느 정도 흔적을 남기고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이만희 감독의 장르 영화를 낮춰보게 만드는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그보다 <마의 계단>을 어디에 견주어도 뛰어난 장르 영화라기보다 ‘한국적 장르 영화’로 만드는 것은 아마도 이 영화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엉성한 추리 과정이나 관객의 기대를 무너뜨리는 논리의 비약이다. 그러나 이런 비약은 탐정 서사의 문화적 배경이 취약한 상태에서 외국으로부터 유입된 장르를 모방한 데서 나오는 한계가 그대로 드러나는 약한 고리이면서 동시에 당대의 균열된 상황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근대화 과정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 전근대적 성격이 가장 근대화된 장소로서의 병원이라는 공간이나 가장 근대적인 서사인 형사의 추리과정을 넘어서서 영화를 마무리짓고 있는 점이 <마의 계단>을 한국 영화사에서 관심을 갖고 보아야 하도록 만드는 요소 가운데 하나라고도 할 수 있다.

    <삼포로 가는 길>에 이르러…

    이렇게 언뜻언뜻 드러나는 근대화의 균열과 틈새는 이후 이만희 감독의 리얼리즘 계열 영화 <삼포로 가는 길>에서 제대로 그 깊은 심연을 드러낸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는 최대의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해 필요한 최저 임금만으로 노동하는, 생산수단으로부터 전적으로 소외된 ‘자유로운’노동자를 필요로 하며, 그런 자유로운 노동자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서, 또 노동자를 최저 임금에 묶어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언제든 반항하는 노동자를 대체할 수 있는 잠재적 최저 임금 노동자로서의 실업자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밝혔다.

    자본주의는 산업화 또는 근대화를 통해 구체화된다. 그 과정에서 근대화의 거점으로서의 도시가 해체된 농촌으로부터 흘러나온 ‘자유로운’노동자들의 노동력을 발판으로 성장해나간다. 이때 노동자로 흡수되지 못하고 도태된 자들은 룸펜 프롤레타리아가 되거나, 윤락 여성이 되거나, 범죄자가 된다.

    이만희 감독의 유작 <삼포가는 길>은 바로 이들 근대화에서 낙오된 이들에 대한 영화다. 개발과 발전이라는 그럴싸한 허울로 포장된 근대화의 이면에 숨겨진 자본주의의 폭력과 그 폭력의 희생자들에 대해 끊임없이 발언한 작가 황석영의 같은 제목 소설을 영상화한 이 영화에서 우리는 고향으로부터 뿌리 뽑히고 도시로부터 밀려난 뜨내기 노동자 영달과 창녀 백화, 갓 출소한 전과자 정씨를 통해 근대화의 상처를 보게 된다.

    이만희 감독은 65년 영화예술지에서 "나는 부정적 인간을 많이 그려왔다. 나는 이들을 위해 교도소를 운영하거나 회개하도록 설교를 하기에 앞서 이들이 저지른 행위가 있기까지의 동기, 환경 등을 세밀히 관찰한다. 나는 악인을 내동댕이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악인을 내동댕이치지 않는다"

    1961년 <주마등>으로부터 이후 1975년까지 15년에 걸쳐 그리 길다고 할 수 없는 감독 생활을 하면서 미스터리 범죄영화, 전쟁영화, 멜로영화, 문예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무려 49편의 영화를 남긴 이만희 감독이 한참 전성기를 누리며 활동해야 했을 시기는 하필 유신정권의 개발 드라이브 정책과 극단적인 반공 이데올로기로 대표되는 시기였다.

    나운규의 <아리랑> 이래 한국영화사에서 하나의 큰 줄기를 이루어왔던 리얼리즘 정신이 군사정권 아래서 압살되고 있던 이 시기에 이만희 감독은 리얼리즘 정신을 잃지 않았던 감독이었다. 명색이 반공영화라고 제작했던 <7인의 여포로> 때문에 용공혐의로 구속되어 옥고를 치러야했던 아이러니가 말해주듯이 당시의 영화를 둘러싼 정치적 환경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 영화 <삼포가는 길> 중에서

    더구나 유신의 폭압이 극에 달해가던 1975년에 만들어진 <삼포가는 길>은 그러므로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보다는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를 통해 리얼리즘을 구현하고 있다.

    우연히 동행이 되어 눈길을 헤치고 나가는 세 남녀의 여정에서 구체적인 메시지 제시나 갈등의 인위적 봉합을 피하고, 그저 그들이 겪었던 삶의 단편이나 동행길에 겪는 사건들을 통해 근대화에서 낙오된 밑바닥 인생의 애환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가고자 하는 곳은 궁극적으로 ‘고향’이지만 정씨의 고향 삼포는 이미 예전의 모습을 잃었고, 고향이 어디인지도 몰라 정씨의 고향 삼포를 고향 삼겠노라는 백화는 다시 술집으로, 정씨의 고향에 같이 가겠다던 영달은 또다른 노동판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동행길에서 형성된 듯했던 연대 의식은 각자의 마음속에만 남아있을 뿐 아무런 기약도 없이 각자 자신의 삶으로 돌아간다.

    명절마다 ‘민족의 대이동’을 해야 하는 엄청난 실향민의 나라 한국에서 ‘고향’이 가지는 각별한 의미를 생각할 때, 한겨울 눈보라를 헤치고 함께 가던 이들이 보여주는 결말은 참담하기까지 하다.

    원작 소설과 다른 이런 비극적 결말은 이만희 감독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의 비극성을 예술의 이름을 빌어 허구적으로 대충 봉합하는 대신 현실 그 자체의 모습을 고스란히 남겨두는 데서 목적의식적이고 계몽적인 리얼리즘이 아니라 휴머니티는 살아있되 치열하게 투쟁하지 못했던 당대 현실의 리얼리즘을 보여 주는 것이다.

    황석영 소설과 다르다

    당대의 평론가로부터 스릴러적인 작품 계열에서는 현실고발적 테마를 중심에 두면서도, 리얼리즘계열의 작품에서는 그것을 해석하는 자신의 눈을 통해서 주관적인 세계를 노출하는 패러독스를 보인다는 평가를 받은 이만희 감독은 네오 리얼리즘에서처럼 철두철미하게 주인공들을 즉물적으로 내던져버리는 대신 불쌍한 주인공들에게 행복을 약속하지는 못하되 그들 속에 자신의 분신과 운명의 그늘을 불어넣었다.

    이렇게 해서 허구화 일보직전의 아슬아슬한 분계선을 지킨 이만희 감독의 리얼리즘은 교조적 리얼리즘을 주장하는 쪽으로부터는 감상적으로 굴절된 리얼리즘이라는 억울한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이만희 감독은 현실인식과 문제의식이 보다 첨예해지는 80년대에 <바람 불어 좋은 날>, <어둠의 자식들>, <우묵배미의 사랑>과 같은 영화들에서 소외된 계층에 카메라가 렌즈를 들이대는 리얼리즘의 전통을 부활시키는 데 어느 감독보다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웠다.

    또한 밑바닥 인생을 사는 두 남자와 한 여자의 로드 무비 형식은 <고래사냥>, <바보선언>, <안녕하세요, 하나님>, <세상 밖으로>, <삼인조> 등의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 영화에서 하나의 컨벤션이 되었다. 서양의 로드 무비가 대개 동성 – 특히 남성 – 짝패 영화인 것과는 다르게 세대가 다른 두 남자와 그들 사이에 끼어들게 되는 한 여자의 동행 형식은 성차, 세대차를 뛰어 넘는 소외된 사람들끼리의 연대 의식을 보여 주는 한국적 로드 무비의 효과적 장치로 기능한다.

    1975년 4월3일, <삼포가는 길>의 편집을 하던 중 갑자기 쓰러진 지 열흘 만에 이만희 감독은 마흔다섯이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작품에 대한 검열과 삭제 뿐 아니라 구속과 수감이라는 시련을 겪고도 꺾이지 않았던 영화 천재가 떠난 자리는 영화에 대한 놀라운 평가는 남아있지만 그 실체를 찾아볼 길 없는 <만추>처럼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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