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신과 공범 모두를 극복해야 한다”
        2009년 03월 23일 10: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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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고 있던 조합원 한 명이 불쑥 이런 질문을 한다.

    “박 전위원장님, 울산에 NCC노조라는 데가 어딨는 노조인기요?”
    “이것 보소, NCC노조가 민주노총 탈퇴를 선언했다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왔다 아인기요.” 이렇게 말하며 그 조합원은 신문을 내 눈앞으로 들이민다.
    “아~ 예, NCC노조는 민주노총 화학섬유연맹 사업장인데, 조합원 35명이라고 합디다.”
    “머라꼬요, 화섬연맹, 35명? 35명 조합원이 민주노총 탈퇴한다는데 이 신문에 와 이래 대문짝만하게 나왔능기요? 참, X팔.”

    신문들이 ‘민주노총 탈퇴’니 ‘민주노총 조직와해위기’ 등 선정적 제목들과 함께 ‘섹스노총’이니 ‘부정비리집단’이니 하면서 고 권용목의 이름을 빌어 ‘충격보고서’까지 던져주고 있으니, 혼란스럽고도 남는다.

    우리가 빌미를 제공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대대적으로 떠벌리는 ‘줄줄이 탈퇴’의 사례는 영진약품, NCC노조가 전부이다. 인천지하철은 탈퇴를 추진했으나 총회에서 부결되었다. 뉴라이트가 앞장서서 떠벌리고 있는 『민주노총 충격보고서』에 담긴 각종 비리 사건들도 이미 실체가 드러나 보도되어 다 알고 있는 사실에 최근 발생한 성폭행사건 만이 새로울 뿐이다.

    그런데 왜 <조선>, <중앙>, <동아>를 필두로 해서 정치권과 전경련이 합세해 민주노총 때려잡기를 새삼 벌이고 있는 것일까? 물론 민주노총 스스로가 도덕적 치부를 드러내면서 ‘빌미’를 제공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때문에 민주노총이 내부적인 자성과 자정, 그리고 뼈를 깎는 혁신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저들의 총공세를 어떻게 분석하고 대응할 것인지는 차원을 달리하여 면밀히 고민해 봐야겠다.

    미국발 경제위기에 이은 전세계 경제위기를 빙자하여 자본은 최근 현대중공업노조의 임금교섭 위임을 필두로 SK노조, 한화노조, NCC지회 등 크고 작은 사업장들의 임금동결 또는 교섭권 위임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고통분담’이라는 허울 아래 경제위기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시키고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등의 올해 임금인상투쟁에 대해서 초반부터 기선 제압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본의 공세는 ‘임금동결, 대졸초임삭감, 정규직노조의 양보교섭, 무쟁의’ 등을 부르짖는 이명박 정권의 노조대응전략과 그 맥을 같이 한다. 그러면서 그것들을 반대하거나 저항하려는 민주노조진영에 대한 무차별 공세의 또 한축의 일환일 뿐이다.

    배불러도 배고픈 재벌들

    이명박 정권은 훌륭한(?) 정권이다. 자본가들과 땅부자 등 가진 자들이 볼 때는 최소한 그렇다. 취임하자마자 부자들의 세금을 수천억씩 깎아줬고 부동산 규제를 무한정 풀어 땅부자들에게 기쁨을 안겨줬다. 금산분리와 출자총액규제를 풀어 재벌들에게 기쁨을 안겨줬고, 교육시장의 서열화와 경쟁을 가속시켜 사교육시장의 배를 불려주기도 했다.

    그런데도 재벌들은 여전히 배가 고프다. 그러니 그들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 이명박 정권은 재벌과 가진 자들에게 방송국을 운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언제든지 얼마든지 어디든지 비정규직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선물을 주고 싶은 것이다.

    나아가 아예 민주노조 운동을 박살낼 수 있는 전임자임금지급금지와 교섭창구를 하나로 봉쇄하면서 기업 내 복수노조를 허용하는 법을 마지막(?) 선물로 준비하고 있다.

    정부는 노동부를 앞장세워 지난 3월 13일 비정규직 기간제노동자의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고, 파견업종을 확대하는 개악안을 입법예고했다. 그리고 재벌과 거대신문사가 방송을 장악할 수 있도록 한 미디어법 개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전임자임금지급금지와 복수노조문제도 올 상반기 중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명박 정권의 이러한 친자본, 친재벌 정책의 입법과정에서 가장 걸림돌은 누구일까? 야당? 천만에 말씀이다.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인 노동자들이 강력한 저항을 전사회적으로 벌이는 것일 것이다.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들에 앞서 조직된 노동자가 최소한의 단결된 힘을 발휘하는 것 말이다. 민주노총은 우리가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이렇게 조직노동자들의 분명한 상징인 셈이다. 따라서 저들이 민주노총을 개떼처럼 달려들어 물어뜯는 것은 당연한 임무(?)이다. 이럴 때 민주노총이 각종 ‘빌미’를 제공한다면 저들은 얼마나 기쁘겠는가.

    민주노총 새 지도부의 임무

    지금 외부적으로는 민주노총에 대한 대대적인 여론 공격을 퍼붓는 동시에 민주노총 내부적으로는 끊임없이 탈퇴작업을 추진하면서 조직내부를 흔들고 있는 양상이 짙어지고 있다. 이러한 공세가 소위 제3노총 또는 새로운 노동단체로 이어질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그 이면에는 한나라당 내 차기 대권주자 중 한 명인 재벌2세 정몽준이 노동자에 대한 탄압과 착취의 본질을 덮어주고 노동자 허울을 뒤집어쓴 새로운 노동단체 설립작전이 진행 중인 것 아니냐는 분석도 흘러나오기도 한다.

    그냥 지켜보거나 맞아죽고 말 것인가? 이러한 때에 민주노총 새로운 지도부가 곧 선출된다. 그냥 막연히 기대해 보자는 것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새 지도부가 가진 임무가 막대하기 때문이다.

    새롭게 구성될 민주노총은 우선 이명박 정권과 자본, 그리고 그들의 앞잡이들이 민주노총을 죽이고, 민주노조운동의 숨통을 끊어 놓겠다고 덤비는 지금의 정세를 엄중히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만의 파업, 뻥카 치는 파업’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듣지 않도록 최고 지도부와 산별노조 지도부, 현장간부, 조합원들이 함께 소통하고 공감하는 투쟁을 기획해야 한다.

    한편, 민주노조 운동의 숨통을 끊겠다고 덤비는 총자본 앞에서 노조 조직력을 일단 흔들어보고 보자는 내부 갈등과 그것을 이용해 개인의 출세와 입신을 도모할 수 있겠다는 욕망이 잘못 결합되었을 때 그 결과가 또한 누구를 이롭게 하는 것인지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민주노총을 이렇게 무너뜨릴 수는 없지 않은가. 앞장서서 자본의 편을 들고 노동자를 죽이고 민주노조의 도덕성을 실추시킨 자를 우리는 배신자라 한다. 그러나 총자본의 공격 앞에 침묵하고 행동하지 않으면서 내부갈등만 조장하는 자는 결국 공범자가 된다. 배신과 공범 모두를 극복할 수 있는 민주노총의 재구성을 정말 기대해본다.

    * 이 글은 전국현장노동자회(http://nodong.nodong.net) 소식지 <주간노동운동동향> 20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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