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강령’, 대략난감
    2009년 03월 20일 05:38 오후

Print Friendly

이제 2차 당대회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지난 1차 당대회보다 더 중요한 2차 당대회, 얼마전 확대운영위원회에서 강령이 당대회 안건으로 통과되었습니다. 2차 당대회 핵심 안건 중의 하나인 강령에 대한 제 의견을 토론회 토론 내용을 바탕으로 제시하고 당원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자 합니다(이 글에서 논하고 있는 강령은 진보신당 ‘강령전문’에 한정된 것입니다).

1. 강령의 의미 : 진보신당 소개서 첫 장, 당원들에게는 나침반

먼저, 강령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아직 우리 당 내에서 강령이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숙성된 토론이나 공유가 진행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 지난 3월 1일 열린2009년 정기 당대회 1차회의

제가 보기에는 강령은 대중들에게는 진보신당이라는 정당 소개서 첫 장 정도의 의미가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진보신당이라는 책의 겉표지에는 대표적인 정치인과 핵심 구호 정도가 있겠지요. 이런 대표 정치인들과 핵심 구호가 맘에 들어서 책을 한 페이지 넘기는 순간 만나는 첫 내용이 아마도 강령이 아닐까 합니다.

다음으로, 강령은 우리 당원들에게는 일종의 나침반 역할을 하겠지요. 물론 그 나침반의 지남철은 끊임없이 떨리긴 하겠지만, 그래도 떨리면서도 한 곳을 바라보고 있겠지요. 사실 당강령을 보고 입당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입당해서 당강령이라는 것을 마주하기도 사실 쉽지는 않지요.

물론 강령을 통해서 우리 자신에 대한 보다 진지하고 근본적인 고민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습니다. 일방적인 학습의 자료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당의 정체성의 핵심의 핵심만을 모아 놓은 것이 바로 강령이고, 당원들에게는 소중한 나침반이 되어서 그것이 기본정책으로 외화되고, 일상의 활동과 선거시기의 정책으로 외화되는 것이겠지요.

2. 강령은 무엇을 담아야 할까? 또 어떤 특징을 가져야 할까?

그렇다면 강령은 무엇을 담아야 할까요? 제가 보기에 가장 핵심을 말하자면, 정치세력으로서의 우리 자신에 대한 역사적 자기규정, 현 시기 시대 상황에 대한 인식, 추구해야 하는 시대적 소명과 가치,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이행 전략(이행 주체)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외부인에게 진보신당이 어떤 정당인지, 그리고 우리 자신들에게 우리 정당이 어떤 당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바로 위의 내용들은 반드시 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강령은 어떤 특징을 가져야 할까요? 일단 담아야 할 내용을 잘 담아내고, 분명하게 표현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언어사용에 있어서 잘못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경우는 최대한 배제하고, 우리가 바라는 사회상 등에 대해서 핵심적으로 말할 수 있는 어구를 선정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또한 가급적 일반인들이나 당원들이 보고 이해하는 데 어렵지 않게 서술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즉, 가급적 일반인(대중/당원)의 개념을 통해서 우리를 표현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을 최대로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별도의 개념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겠지요. 물론 이 경우에도 새로운 개념규정의 방식은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순서도 잘 구성해야 합니다. 진보신당이 궁금한 사람에게는 일단 진보신당에 대해서 개략이나마 먼저 제시하고 그 뒤에 설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분량의 측면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너무 짧은 것도 문제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와 같은 진보정당은 길어서 문제입니다.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고, 설명조라서 늘어지는 경우가 많게 되지요. 제가 보기엔 가장 적절한 강령 전문의 분량은 글자크기 10포인트일 경우 A4 1.5장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합니다.

3. 진보신당의 ‘만남강령’의 대략적인 내용 : "만남의 공동체"

어떤 분이 이번 강령을 ‘만남강령’이라고 하시더군요. 전체 강령본문에서 ‘만남’이라는 말이 21번이나 나오니, 이번 강령을 ‘만남강령’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일단 글 자체는 명문인 것은 분명합니다. 기존의 문체가 아닌 인문학적 문체를 사용하고 있어서 일단 정당의 강령에서는 신선한 측면이 있습니다.

물론, 저는 우리 ‘만남강령’이 이전과는 다른 문체로 쓰여서, 다른 방식의 서술이어서 비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강령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가장 잘 구현하는 방식과 내용은 무엇인지를 가지고 토론해 보자는 것이지요.

만남 강령이 담고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1절은 인간에 대한 존재론, 국가에 대한 새로운 관점(나라와 국가, 국가의 끊임없는 지양), 만남(관계)의 확장으로서의 정치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2절과 3절은 시대적 상황에 대한 설명인데 2절은 전체적 차원, 3절은 한국적 차원에 대한 설명입니다.

4절은 (세계적 차원의) 역사적인 진보운동, 민중운동의 흐름과 진보신당이 이를 대하는 자세, 5절은 한국의 민중운동의 역사와 성과, 위기. 6절은 우리가 추구하는 새로운 나라(만남의 공동체)의 운영원리를 제시하고 있고, 7절은 한국 진보정당 운동의 한계와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의 필요성. 8장은 진보정당의 주체와 지향(노동자, 서민, 여성 / 녹색)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 지난 3월 1일 열린2009년 정기 당대회 1차회의

4. ‘만남강령’에 대한 대략적인 평가 : 대략 난감

이제 그 동안 강령 만드시느라 고생하신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만남강령’에 대해서 약평해 보겠습니다.

첫째, 정치세력으로서 진보신당이라는 집단에 대한 역사적 자기규정이 없습니다.

물론 한국 민중운동의 역사나 역사적 진보운동과 민중운동의 흐름에 대한 설명은 있으나 실제 그러한 흐름이 과연 진보신당이라는 정치세력에 어떠한 역사적 자기규정과 맞닿아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거나 있다하더라도 불분명합니다.

참고로 우리의 경쟁 상대인 한나라당의 강령 전문을 한 번 살펴보죠.

“새로운 한나라당은 지난 60년 동안 대한민국의 비약적인 발전을 주도해온 발전적 보수와 합리적 개혁의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하는 한편 퇴행적 잔재를 청산하여, 문명사적 전환기를 주도하는 미래지향적 국민정당으로 거듭 태어남을 선언한다.

우리는 일제의 질곡에서 벗어나 적화의 위협을 물리치고 대한민국을 건국했고, 한 세대 만에 최빈국에서 중진국으로 올라선 산업화를 이끌었으며, 나아가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민주화의 정착에도 앞장섰다” – 한나라당 강령전문

물론 재수 없지만, 한나라당이 한국사회의 역사 속에서 과연 어떤 정당인지에 대해서 강령전문은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지요. 그들은 스스로를 “대한민국 건국세력이며, 산업화 세력이며, 발전적 보수인데, 최근에는 미래와 자유민주주의, 개혁 부분도 지향한다” 정도로 강령 전문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민주당의 강령 전문 첫구절입니다.

“민주당은 항일독립운동의 애국애족정신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건국정신, 4․19혁명․광주민주화운동․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진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숭고한 가치들을 계승․발전시킨다. 우리는 또한 그동안 추진해온 정치사회개혁과 경제정의실현, 그리고 남북화해협력의 성과를 계승한다.” – 민주당 강령전문

민주당도 명확하네요. “민주당은 일제치하 임시정부, 4.19, 광주, 6월의 민주화운동을 계승하며, 남북화해 세력이다”정도로 요약가능하며, 명쾌하게 이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내용에 해당하는 ‘만남강령’ 구절은 어디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4절, 5절, 7절 정도에 서술되어 있는데, 명쾌하지 않습니다. 두루뭉술한 역사서술과 이에 대한 평가, 자세 정도만 서술되어 있지, 우리가 과연 한국 민중운동, 진보정당운동의 역사 속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습니다.

둘째, 대중들에게 생소한 개념을 쓰고 있으며, 과도한 새로운 개념규정으로 인하여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만남강령에 쓰이는 단어 자체는 어려운 단어는 많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강령의 내용에서 새로운 개념규정을 계속하고 있으므로 인하여 단어는 어렵지 않은데 내용은 어렵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또한 새로운 개념규정으로 인하여 정확한 개념 전달이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만남강령이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강령이라는 것이 ‘쉬워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분명 목적이 아닙니다. 강령이라는 목표를 가장 잘 수행하기 위한 방식과 내용으로 쓰여져야 하겠지요. 그러나 이 목적에 위배되지 않는 한 강령은 가급적 쉬워야 합니다.

저는 이번 강령이 기존의 운동권 사투리에서 가급적 좀 더 대중적 언어로 표현되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강령은 운동권 사투리에서 학문적 사투리로, 대중의 개념 위에서 혹은 다른 어떤 곳에서 놀고 있는 그런 강령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만남강령에서 대중의 언어, 개념과 보다 가까이 가고자 하는 노력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물론 앞에서도 말했지만, 쉬운 언어 자체가 제 1의 목표는 아닙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대중적인 언어로 구성이 안 되는 부분은 우리 나름의 개념을 사용할 수도 있지요.

그러지 않은 부분은 대중들에게도 우리 당원들에게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는 만남 강령이 여전히 엘리트주의의 한계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셋째, 지향(가치)에 대한 핵심적언 어구가 없거나 명쾌하지 않습니다.

강령이 지녀야 할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그 강령을 가지고 있는 정치세력이 과연 무엇을 추구하는 정치세력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만남강령에도 물론 이러한 지향이 제시되어 있지요. 대략 1절, 6절, 8절에 그 내용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대표할 만한 핵심적인 어구가 없거나 명쾌하지 않습니다.

지금 제시된 것을 그나마 찾아본다면 ‘만남의 공동체’입니다. 6절은 우리가 추구하는 새로운 나라(만남의 공동체)의 운영원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핵심 어구는 기억에도 남지 않고, 별다를 감흥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그 핵심어구와 보통사람들의 뇌리의 개념 속에는 간극이 많기 때문에 인지가 잘 안 되는 특징을 갖고 있고, 지향을 도드라지게 표현하는 단어 또한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의 핵심 어구는 ‘선진화’입니다. 대략 미국식 선진화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일반 사람들의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고, 이해하기도 쉬우면서 한나라당의 지향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고 봅니다. 민주당의 핵심 어구는 ‘민주와 개혁’입니다.

   
  ▲ 필자

민주당이 가지고 있던 역사적 포지션과 김대중 이후의 신자유주의의 한국식 변형으로서의 개혁을 말하는 거겠지요.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의 이러한 ‘핵심어구’를 들어볼 때 오는 느낌이 뭘까요? 그 정당과 그 핵심어구가 정확히 매치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남강령에는 이게 없습니다. 있다하더라도 ‘만남의 공동체’입니다. 느낌이 오나요? 이해가 되나요? 저는 느낌이 오지도 않고, 이해도 안 됩니다. 보통의 경우 이 ‘핵심적 어구’는 당의 핵심 슬로로 제시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슬로는 무엇인가요? 평등, 평화, 생태, 연대인가요? 민생인가요? 그렇다면 이러한 슬로건이 우리의 강령에서 핵심을 차지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령은 강령이고 슬로건은 슬로건인가요?

넷째, 분량이 너무 깁니다. 화자와 청자의 관계 설정이 불분명합니다.

제가 보기에 만남 강령의 분량이 너무 깁니다. 저는 만남 강령의 긴 길이가 우리에게 여전히 강령이라는 존재가 너무 무거운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생각을 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결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엘리트적으로 상대에게 구구절절이 설명하다보니 길어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요약 부분을 빼고 당헌전문이 대략 10포인트 기준으로 6페이지입니다. 참고로, 한나라당 강령 전문이 2페이지, 민주당의 경우가 1페이지입니다. 물론 당강령 전문의 적절한 분량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은 없습니다. 중간 중간에 보이는 구구절절한 군더더기 설명을 간략하게 정리해 나간다면, 분량을 지금보다는 반절정도로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강령의 화자와 청자가 명확하지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떤 분은 “운동권 선배가 후배한테 이야기하는 것 같다, 혹은 당 지도부가 당원들에게 하는 이야기인 같다”라고 하십니다. 제가 보기에도 화자-청자 관계가 일관되어 보이지 않습니다. 과연 이 강령이 누가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지가 일관되게 관철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5. 2차 당대회를 앞두고

강령에 대해서 다른 분들과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당강령에 대해서 이런 저런 관점도 있고, 만남강령에 대한 의견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는 당강령에 대해서 이러한 차이와 의견을 실질적으로 교환해 본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과거 민주노동당을 만들면서는 거의 1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강령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진보신당은 단 몇 개월 만에 정치일정을 고려한 빠듯한 창당 일정에 맞추어 당강령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위에서 말씀 드린 당강령에 대한 저의 생각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른 분들과의 토론을 통해서 잘못된 생각은 바꾸고, 함께 공유하고, 그 과정에서 또 발전된 강령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제 2차 당대회 일정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시간은 많지 않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리를 해서라도 통과를 시켜놓고 보아야 할까요? 아니면 보다 숙성된 토론의 시간을 가지면서 강령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할까요? 어려분의 고견을 기다리겠습니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