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종권과 박지성
        2009년 03월 19일 03:0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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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박지성의 장점은 경기장 구석구석을 뛰어다닌다는 것이다. 외신은 가끔 박지성을 보고 ‘이름 없는 영웅’이라고 하고, 세계 최고의 구단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저평가 된 미드필더’라고 소개한다.

    축구에 대해 그리 잘 알지 못하는 내가 봐도, 그는 어느 때는 공격의 최전선에서 상대방에게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이다가, 어느 순간에는 가장 후미에서 수비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일 만큼 뛰고 또 뛰어 다닌다.

    화려하진 않지만, 그의 성실한 플레이는 서서히 찬사를 받기 시작했다. 경기가 끝나면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사나이”, “양발이 닳도록 뛰어 다닌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부대표로 출마한 정종권 후보와 박지성은 닮은 구석이 있다.

       
      ▲ 진보신당 부대표 후보 일반명부 기호 1번 정종권(가운데)

    일단, 박지성처럼 필요한 곳에 반드시 있는 성실함과 부지런함(조금 진부한 표현이지만)이 그의 장점이다. 박지성의 경기를 중계하던 아니운서가 수비하는 박, 공격하는 박, 볼을 가로채는 박을 외치고 나서 시청자를 향해 “그 박이 모두 한 사람입니다”라고 했단다. 정종권 후보가 그랬다.

    필요한 곳에 반드시 있다

    몇년 전, 정종권이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을 할 때, 그의 수첩을 본 일이 있다. 일정 많기로는 나도 뒤지지 않을 사람인데, 그의 수첩을 보고는 적지 않게 놀랐다. 매 시간 단위로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었는데, 한 달 달력 전체가 아예 새까맣게 일정으로 채워져 있었다. 기자회견부터 간담회, 또 사람을 만나는 약속까지.

    정종권은 좀처럼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언뜻 보면, 좀 성실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스타일인데 실제로는 정반대다. 그는 남들의 두 배 이상의 활동량을 내게 보여줬다. 박지성이 두 개의 심장을 가지고 운동장을 뛰어다녔다면, 그는 네 개의 발로 집회현장을, 기자회견 현장을, 투쟁의 현장을, 단체들과의 정책 간담회를 소화했다.

    어느 날에는 하루에 몇 번을 그와 마주칠 때가 있다. 이리저리 혼자서, 한 손에는 어울리지 않는 책을 들고, 서울의 끝에서 끝까지 홀로 뛰어다닌 정종권은,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무얼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박지성에 간간히 따라 붙은 수식어, 저 평가된 미드필더. 그것도 정종권과 비슷하다. 정종권이 저평가 된 이유는 뭘까.

    비록 리그 하위권에 머물고 있지만, 진보신당이란 ‘구단’에서는 타 구단을 긴장시킬 뛰어난 두 명의 스트라이커를 보유하고 있다. 개인기 출중하고 골도 많이 넣는 두 명의 스트라이커 뒤에서 정종권은 묵묵히 뛰었다. 어시스트도 많이 했다. 무엇보다 주로 전방에서 활동하는 스트라이커를 커버하기 위해서, 정종권은 가장 깊숙한 수비라인까지 뛰어다녔다.

    스트라이커 노심 뒤에 그가 있었다

    그러나 진보신당이란 팀에서 주목을 받는 건, 수비까지 가담하며 양말이 벗겨지도록 뛰어다는 미드필더가 아니었다. 여전히 스트라이커에 모든 관심이 집중됐다. 당원들에게 정종권 집행위원장이란 존재감은 극히 미약했다.

    화려한 발기술로 상대방 수비 한두 명은 가볍게 제치는 스트라이커에 그는 늘 가려져 있었다. 무엇보다도 정종권은 창당 초기 내부적으로 당 체계를 세우는 데 집중하다 보니 당 안팎을 뛰어 다니며 일과 사람을 엮는 그의 재주가 빛을 발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난 지역에 있는 간부들로부터 정종권을 성토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집행위원장의 자리에 있으니 당연하다. 정종권을 향한 비판을 들을 때, 난 한 번도 정종권 편을 들어본 적이 없다. 왜냐면 모두 중앙당 집행위원장으로서 새겨들어야 할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정종권은 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느낌을 준다. 업무상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그는 늘 상대방에게 “내가 지금 당신께 이 시간 최선을 다고 있소”라는 느낌을 심어준다.

    난 정종권에게 개인적으로 빚을 졌다. 마포에서 ‘민중의 집’을 건립하기 1년 전. 민중의 집 구상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면 좋겠네”라는 약간의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아마도 실제로 민중의 집이 세워질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민중의 집과 정종권

    그때 정종권은 국내에서 내노라하는 관련 기획자와 만남을 주선했다. 정종권은 자리에 동석해서, 아직 세워지지 않은 민중의 집에 대한 진실한 얘기를 내게 전해줬다.

    그 후에는 정종권은 늘 내게 기회가 있을 때면 민중의 집 진행과정을 물었다. 오지랖도 넓지 싶었지만, 민중의 집 건립이 왜 중요하고, 그것을 통해서 어떻게 진보정치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해 자기 구상을 전달하기에 바빴다.

    아직은 여전히 실험 중에 있는 민중의 집이지만, 지금의 민중의 집 건립에 정종권의 숨은 도움이 있다는 걸 당원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정종권은 오늘도 뛰고 있다. 발기술도 별로 좋아 보이지 않고, 화려한 플레이를 하지도 못한다. 언제나 그의 역할은 패스였다. 당원과 중앙당을, 중앙당과 사회운동 단체들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정종권은 언제나 패스를 한다.

    그는 단 한 번의 정확한 패스를 구사하기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의 활동가와 수많은 조직들, 그리고 진보정당과 한국 사회운동의 비전을 엮어 가는 사고를 늘 멈추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 가끔은 문전 앞에서 슛을 날릴 것을 주문한다. 당신에게도 뛰어난 슈팅 능력이 있다는 걸 이제 보여줘야 할 때라고 충고한다. 주인공이 되라는 얘기가 아니다. 문전 앞에서 골 욕심을 부리더라도 정종권은 패스하는 법을 잊어버리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기 때문에 난 그에게 과감한 도전을 당부한다. 어쨌든 그는 늘 팀을 위해서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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