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친구, 젊은 영화인을 애도하며
    By mywank
        2009년 03월 20일 01:43 오후

    Print Friendly

    그날은 4월 1일, 만우절이었다. 그러니까 누군가 뜬금없는 이야기를 하거나 황당한 상황을 전해주면 피식 웃으며 속아주지 않겠다고, 아니면 속아주는 척하며 외려 받아쳐주겠다고 마음 다잡고 시작하는 날이었다. 그 만우절 무렵은 마침 여름에 촬영 시작할 영화를 준비하느라 한창 바쁘게 돌아다니던 때였다.

    마땅한 촬영장소를 찾아 여기저기 ‘헌팅’이라는 걸 다니느라 가끔은 도로 위에서 멈춰버리곤 하는 낡은 자동차 운전대를 잡고 함께 길을 나선 연출부 친구와 고속도로 위를 달리며 푸념을 하고 있었다.

    아직 봄기운이 덜 들어 산도, 들도, 내도 메말라 있는 내륙 한가운데 풍경 속에서 한여름 바닷가 로망의 배경처럼 보일 장소를 찾아내라니, 참 난감하네 어쩌구 하면서.

    제작비 줄이자고 이렇게 장소 헌팅 다니는 시간과 비용이 시나리오에 딱 맞는 현장에 바로 가서 촬영하는 것보다 더 경제적일까, 제작비 절감을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는 자세를 보이는 것 자체로 투자자와 제작자를 만족시키는 게 더 중요한 걸까 이런 이야기를 나누던 차에 영화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후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뭐 다른 방향으로 가보라거나, 계획이 바뀌었으니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라거나 하는 내용일 줄 알았는데 대뜸 후배가 느닷없는 이야기를 했다. "언니, 장국영이 죽었대." 순간 든 생각은 아무리 만우절이라지만 도대체 사람 목숨을 가지고 장난질이라니, 하는 불쾌감이었다.

       
      

    내 청춘의 한 자락이 사위어지는 그런 느낌

    그러나 그건 이미 벌어진 사실이었다. 황사로 뿌옇게 흐려진 하늘, 봄 가뭄으로 메마른 땅 사이에서 가버린 장국영의 소식을 듣는 것은 한 배우의 죽음이라는 사실에 대한 안타까움에 내 청춘의 한 자락이 사위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렇게 아름답고, 논쟁적이던 한 배우와 더불어 내 청춘과, 그를 통해 불붙었던 영화에 대한 열정과, 어떤 존재를 순수하게 동경하는 마음을 실어 보낸 지 여섯 해가 흘렀다. 다시 봄이 왔고, ‘장국영 메모리얼 필름 페스티발’에서 봄에 떠난 그를 추억하며 나의 그 시절을 되새겨 볼 작정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혼백과 사랑에 빠진 순수한 서생의 모습으로 동양적 SF의 새 장을 연 <천녀유혼> 이야기를 할까, 100년의 세월을 지나 마카오와 홍콩이 다시 중국으로 반환되는 나라끼리 얽힌 조약과 연표의 외교사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누비고 조각내는지를 비춘 <아비정전> 이야기를 할까?

    전통과 근대, 정치와 예술,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허물며 아름다움 자체의 서글픔을 배우 자신과 하나로 만든 <패왕별희> 이야기를 할까, 성정체성이 통념과 다르다는 이유로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머나먼 세계를 떠돌며 존재의 외로움과 소통의 절실함에 몸서리치며 화해의 손길을 내민 <해피투게더> 이야기를 할까 생각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미처 생각을 정리하기 전, 다른 소식이 들려왔다. 가까운 후배로부터 조심스럽게 전해진 그 소식은 또 다른 죽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000 누나가 사고를 당했어요.’ 뭐라고? 아직 만우절도 아닌데 

    사고를 당했다는 지인은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내가 영화를 배우던 학교의 선배였고, 내가 일했던 영화사의 전임자였고, 나와 프로젝트를 함께 한 팀원이었다. 사고 당시에는 차마 알리지 못했노라며 이미 상을 치른 다음에야 닿은 부고였다.

    빈소에도 가보지 못하고 떠나보낸 그 지인의 마지막 모습을 어이없게도 뉴스 다시보기를 통해 확인하게 되었다. 지인이 당한 사고는 얼마 전 한참 논란이 되었다던 ‘압구정 화재 사건’이었다.

    아직 만우절도 아닌데…

    아파트 11층에 불이 났고, 베란다에 나와 구조를 기다리던 사람이, 출동한 소방당국이 인명구조는 뒤로 한 채 화재진압에 급급한 사이 뜨거운 불길을 피하려다 베란다 난간 너머로 떨어져버리는 안타까운 모습이 고스란히 뉴스영상에 담겨 세상 떠난 지인의 마지막을 기록하고 있었다.

    훤한 대낮에 화재신고를 하고 무려 20분 동안 그녀가 불길이 넘실대는 베란다 난간에서 버티는 동안 연기는 점점 자욱해지고, 소방차 12 대에 소방대원도 60여 명이나 있었다고 하지만 그녀를 구하려는 움직임은 없었다. 얼마나 절박하고, 두려웠을까…. 아무리 기다려도 도움의 손길이 없는 상황을 동영상 화면으로 고스란히 지켜보면서 그녀가 느꼈을 절망과 공포의 아득함에 소름이 끼쳐왔다.

    인터넷에는 인명구조를 소홀히 여긴 소방당국의 처사에 대한 논란과 스포츠 관련 논객으로 활동했던 지인에 대한 추모글들이 줄줄이 올라있었다. 그런데 그 지인이 살아생전 영화인으로 지냈던 모습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다. 내가 알아왔던 그 지인은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에 대한 일을 하고, 영화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 했던 사람이었는데.

    서른일곱, 아깝고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녀는 한국영화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따스한 기대를 담은 논문으로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와 민족국가 서사의 한계를 짚어냈으며, 여성영화제의 일원으로 세계 여성 영화인들을 불러 모아 큰 축제를 벌이는데 이바지했으며, 아름답고 슬픈 서사와 영상으로 호러영화의 지평을 넓힌 <장화, 홍련>을 기획한 것을 비롯해 여러 영화의 제작과 기획에 힘을 보탠 젊은 영화인이었다. 그러나 한국영화계는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영화를 통해 마음껏 뜻을 펼치기에는 너무나 척박했고, 야박했다.

    장국영과 동시에 주성치를 좋아했고, 영화와 동시에 스포츠를 좋아했고, 형편없는 수준의 임금으로 영화판에서 일하는 동안 한턱 낼 여유가 없으면 사람들과 만날 때 손수 만든 음식을 선물로 들고 오기를 좋아했고, 일단 자리를 함께 한 순간부터 좌중을 이끄는 입담으로 모두의 귀를 사로잡았던 그녀에게 푸근하지 못했던 영화판 사람의 하나로서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이제는 결코 전할 수 없다는 것이 새삼 저려온다.

    이래저래 애달픈 봄, 그녀에게 뒤늦은 인사를 보낸다.
    ‘잘 가, 경은아. 정말 고마웠고, 많이 미안해.’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