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면 죽으라고?!"
        2009년 03월 19일 10: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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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정부가 영리법인 병원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며 세몰이에 나섰다. 작년에 제주서 시작해보려 했으나 촛불의 저항에 막혀 불발된 바 있었다. 경제부처가 총대 메고 나섰고, 이번에는 더욱 공세적으로 의료민영화를 추진할 태세다. 기획재정부는 내국인 영리법인 병원의 도입으로 일자리를 늘리고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의료서비스가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견인차가 되도록 하겠다는 내용의 공식 발표를 이미 여러 차례 한 바 있다.

    영리법인 병원을 허용하고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 하는 과정에서, 그 부작용으로 국민의료비가 치솟고 의료이용의 양극화가 일어나더라도 ‘자본 주도형 의료민영화’를 달성하는 것이 곧 의료서비스 산업의 선진화라는 주장이 경제부처의 일관된 입장이다. 이번에는 강력하게 밀고 나가겠다는 경제부처의 의지는 곳곳에서 읽힌다. 다음으로 보건복지가족부의 입장에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마침내 보건복지가족부의 김 모 국장이 2009년 3월 12일 입을 열었다. 그 내용은 “영리의료법인 도입 검토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의 후퇴나 변경이 절대 없다는 전제 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내일신문> 3월 13일자 17면)”라는 것이다.

    청와대와 경제부처의 강력한 의지

    이에 대해, 이 신문은 “이는 건강보험체계의 기본 틀인 당연지정제도가 유지되는 선에서 영리의료법인 도입을 허용할 수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청와대와 경제부처의 강력한 의료민영화 추진 의지에 보건복지가족부가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것이 옳다. 그 편이 복지부가 나서서 국민을 속이는 것보다는 훨씬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영리법인 병원을 허용하면 많은 문제점이 발생한다는 것은 경제부처 등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는 세력들도 다 알고 있다. 국민의료비의 폭발적 증가, 의료이용의 불평등 심화, 의료서비스의 질적 편차 확대, 거시적 비효율, 고용의 불안정 등이 그것인데, 이들 중에서 의료민영화 추진 세력이 가장 난처해 하는 문제점은 의료민영화로 인한 ‘의료비 상승과 의료이용의 양극화’다.

    경제부처의 입장에서는 의료민영화의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책을 제시하지 않고서는 국민을 설득하기가 용이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던 차에, 보건복지가족부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의 적용을 받는 영리법인 병원’ 허용 검토라는 주장을 내 놓음으로써 구원투수로 나선 것이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을 받는 영리법인 병원은 ‘건강보험 수가’가 적용되기 때문에 의료비가 기존의 병원들과 같고, 모든 국민이 건강보험증만 들고 가면 누구나 영리법인 병원을 이용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런데, 이는 사실이 아니며,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의 당연 적용을 받는 영리법인 병원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병원 경영에서 더 유리하다. 기본적인 병원 수입은 국민건강보험 환자를 진료하여 충당하고, 이들에게 각종 비급여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여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분야에서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한다.

    이에 더해, 건강보험 적용을 원치 않는 부유한 환자 등을 진료하여 추가적인 수익도 창출할 수 있다. 주식회사 병원은 돈을 벌기 위해 태어난 병원이므로 수익 극대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게 된다.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고가 의료서비스의 개발이 붐을 이룰 것이다. 이런 병원은 애초부터 중산층과 서민의 것이 아니다.

    이러한 영리추구 경향은 주변의 비영리병원으로 전파되고, 국민의료비는 치솟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재정적으로 버티기 어려워지고, 민간의료보험은 시장 영역을 확충하여 엄청나게 돈을 벌게 된다. 그만큼 국민건강보험은 위축되고 무력해진다.

    영리추구의 전염

    사정이 이쯤까지 진행되면, 민간의료보험과 계약관계를 맺고 있는 소위 ‘잘 나가는’ 영리법인 병원들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라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서 더 많은 돈을 벌길 원하게 된다. 헌법재판소에 ‘영리법인 병원에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를 강제 적용하는 것은 직업과 재산권 행사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위헌 심판을 제소할 것이다. 재판 결과는 자명하다. 그들이 이긴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는 국민건강보험법 제40조에 규정된 것으로 ‘전국의 모든 병의원과 약국은 국민건강보험을 의무적으로 적용해야 하며, 따라서 건강보험 환자를 당연히 진료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대만 등 주변 나라들이 요양기관 계약제를 운영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가 이렇게 국민건강보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것은 공공의료기관이 10%에도 미치지 못하여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의료계가 집단적으로 자율계약에 임하지 않을 개연성이 있는 등의 이유로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요양기관 자율계약의 토대가 미약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9년 의료계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를 헌법재판소에 위헌으로 제소하였는데, 2002년 12월 31일 재판 결과 7대 2로 합헌 결정이 났지만, 합헌의 취지는 공공의료기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조건에서 민간의료기관의 집단적 계약 거부로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작동하지 않음으로 인해 국민의료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했던 것이었다.

    이러한 합헌 취지를 미루어 판단해 볼 때, 수적으로 전체 의료기관의 일부에 불과한 영리법인 병원들이, 영리를 추구할 목적으로 세워진 주식회사 병원들이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를 위헌으로 제소하면 당연히 위헌 판정이 나올 것이다.

    결국,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를 적용하는 영리법인 병원의 허용"이란 본질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다. 첫째, 돈벌이를 목적으로 설립된 주식회사 영리법인 병원에 논리적으로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를 적용하겠다는 발상은 위헌 판결이 나올 줄 뻔히 알면서도 ‘국민의료비 급증’과 ‘의료이용의 양극화’라는 사회적 비판을 희석하기 위해 동원한 치졸한 국민 기만책이라는 것이다.

    당연지정 영리병원이라는 치졸한 사기책

    둘째, 제주특별자치도, 인천 송도와 같은 경제특구에 이미 허용된 외국인 영리법인 병원에는 적용되지 않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를 내국인 영리법인 병원에는 적용하자는 것은 결국 국민의료이용의 불평등 최소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영리법인 병원들이 더 많이 손쉽게 생겨나도록 하는 유인책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즉,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를 적용하는 영리법인 병원의 허용"은 국민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리법인 병원 사업을 하고 싶어 하는 자본과 사업자들을 위한 조치다.

    영리법인 병원 허용 정책을 추진하고 싶으면, 정부가 정당한 방법으로 국민을 설득해서 여론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추진하면 될 일이다. 그렇게 하려거든, 정공법으로 하라. 찬성과 반대 의견을 공평하게 국민에게 제시하고, 국민이 선택하게 하라. 국민을 속이는 짓 따위는 이제 그만하길 바란다.

    여론을 조작하고, 불공정한 여론몰이를 통해 여론을 호도하는 짓은 좋은 행정이 아니다. 영리병원을 ‘투자개방형 병원’으로 새롭게 작명하여 부르며, 도민을 우롱하고 있는 제주도의 행정은 결코 용납되지 않을 도민 기만행위에 다름 아니다.

    중앙정부는, 청와대든 경제부처든 보건복지가족부든, 국민을 기만하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 국민을 속여서 추진한 정책이 얼마나 성공하겠으며,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이명박 정부의 깊은 성찰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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