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장이 문제고, 정부가 해법”
        2009년 03월 18일 04: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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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좌파당, 유럽녹색당에 이어 이번에는 유럽사회당의 경제 위기 대책을 살펴본다. 아래는 유럽사회당이 작년 11월에 채택한 「금융 시장 실패 – 재건하고 재편할 때, 정치의 값어치를 입증할 때」의 전문을 번역한 것이다.

    유럽사회당에는 독일 사회민주당, 프랑스 사회당, 스웨덴 사회민주당, 네덜란드 노동당,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 스페인 사회노동당, 그리스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 영국 노동당 등 유럽연합 내 각국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속해 있다. – 역자 주

    1. 은행가들만 구명조끼가 필요한 게 아니다

    이제는 모두에게 분명해졌다, 시장이 문제고 정부가 그 해법이라는 것이(역주 – 이것은 신자유주의자들의 유명한 명제, 즉 “정부가 문제고 시장이 그 해법”이라는 문구를 뒤집은 것이다).

    몇 주 전, 금융 시장의 극적인 실패로 인해 유럽과 세계는 경제적 파국 일보 직전까지 갔다. 막판에 각 국 정부가 공동으로 개입하고 나서야 유럽과 그 밖의 세계는 금융 부문의 붕괴를 막을 수 있었다. 이제 우리의 지도자들은 금융 부문 바깥에 있는 우리 서민들을 위해서도 같은 일을 해야 한다.

       
      ▲ 2006년 포르투갈에 모인 유럽 각국의 사민주의 정당 대표들

    우리는 80년 만에 최악의 경제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바로 이 위기의 와중에 우리의 제도들의 가치, 민주 정부의 가치, 유럽의 가치가 시험받고 있다. 우리의 지도자들이 이 도전에 응전할 수 있을까? 그들은 과연 일자리와 번영을 지키기 위해 협력할 것인가?

    보다 안정되고, 보다 진보적인

    당장 행동에 나서자. 그러면 지도자들은 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다 안정되고 보다 나은 경제 거버넌스와 보다 건강한 민주주의 그리고 보다 진보적인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이 실패한 곳에서는 오직 강력한 공동의 정부 조치만이 신뢰를 회복시키고 주문 장부를 채우며 기업과 소비자로부터 수요를 진작시킬 수 있다. 유럽 정부들은 공공 지출을 늘리고 기업 활동을 장려하며 중소기업의 창업과 성장을 촉진해야 한다. 이러한 조치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공동으로 벌여나갈수록 그 성과도 클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유럽연합이 실시할 수 있는 핵심 조치들은 다음의 네 가지다.

    ①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공동 행동에 나서기 위해 필요한 유럽 차원의 경기 부양 예산 규모를 분명히 한다. 그리고 모든 회원국들이 재정 여건이 허락하는 한도 안에서 경기 회복 프로그램에 기여할 것을 요구한다.

    ② 금융 위기를 겪고 있지만 자체 역량만으로는 이를 극복하기 힘든 회원국들을 지원한다. 유로 존 바깥(주 – 유로화 통용 영역 바깥. 가령 영국 등)에서는 환투기 공세로 인해 외환위기가 발생하거나, 금리 인하가 필요한 시점에 오히려 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곤 했다. 유로화는 유로화 사용국들을 외환위기로부터 보호하지만, 균형 재정을 달성하는 데 드는 비용이 급증해왔다.

    유럽은 공공 채무의 보증을 통해서나 유로본드(역주 – 한 나라의 차입자가 외국에서 제3국 통화 표시로 발행하는 채권)를 통해서 혹은 중소기업들과 녹색 투자를 위한 유럽 투자 은행의 확대를 통해 자본을 육성하고 환류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③ 필요한 조치들에 대해 분명한 메시지를 제시하기 위해 ‘리스본 전략’과 곧 발간 예정인 ‘경제 및 고용 지침’ 같은 기존 유럽연합 합의들을 활용한다.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응급 처방이면서 동시에 유럽 경제를 강화하고 현대화하는 해법이다.

    ④ 이러한 긴급 조치들에 따라 회원국들은 유럽 차원의 구명조끼를 지금 현재 이를 가장 절실히 원하는 이들(특히 소기업과 취약 가계)에게 제공해야 한다.

    2. 구제 금융을 받은 은행들은 그 값을 해야 한다

    정부는 은행을 사랑해서 1조 유로에 달하는 납세자의 돈을 은행에 제공하기로 한 게 아니다. 은행이 망하면 기업도, 서민도 필요한 돈을 대출받을 수 없고, 그래서 기업도 파산하고 집값도 떨어지고 일자리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은행은 구제 금융을 받았다. 이제 우리는 그 대가로 다음을 요구한다.

    – 가계와 기업, 특히 중소기업들에 대한 대출 수준을 빠르게 원상 회복시켜야 한다. 금융 감독 기구는 은행 여신 활동을 보다 엄밀한 조사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특히 공적 자금이 사적 치부가 아니라 공공선에 쓰였는지를 감시해야 한다.

    – 금리를 신속하게 그리고 충분히 내려야 한다.

    – 벼락 보너스나 황금 낙하산(역주 – 회사 중역에 대한 고액 퇴직수당 지불 보증 고용계약)은 더 이상 안 된다.

    – 강제 정리해고는 안 된다.

    정부는 일자리, 기업 그리고 가계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어떠한 추가 조치도 취할 태세가 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는 정부 스스로 서민들의 돈을 관리하는 데 훨씬 더 높은 수준의 투명성을 보일 것을 요구한다. 정부는 은행의 여신 정책, 거버넌스 그리고 급여 체계에 대한 규제 방안, 그리고 금융 투기 세력에게 고삐를 채울 방안을 분명하고 공개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 유럽사회당(PES)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3. 지금은 지구를 구할 때

    불황은 현재 세계의 가장 긴급한 현안이다. 그러나 앞으로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기후 변화다. 생태계 파국을 피할 유일한 길은 저배출, 저에너지 경제로 급전환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제까지는 이를 위해 필요한 규모의 투자가 이뤄지지 못했다.

    이제는 유럽 경제의 심각하고 지속적인 불황을 막기 위해서도 대규모 투자 촉진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우리는 일종의 유럽 차원의 녹색 투자 프로그램을 주창한다. 이것은 일거양득의 방책이 될 것이다.

    유럽은 생태 기술, 환경 상품 그리고 재생가능에너지 발전 기술 등 급성장하는 부문에서 전 세계 선두다. 유럽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녹색 성장을 통해 2020년까지 천만 개의 새 일자리를 만든다는 행동 프로그램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목표를 달성하고 기후 변화에 대해 유럽의 역할을 다 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한다. 우리는 유럽 지도자들이 신속한 녹색 투자 프로그램을 통해 이러한 도전에 응할 것을 요구한다. 그렇게 되면 유럽이 다시 움직이게 될 것이고, 기후 및 에너지 목표에도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될 것이다.

    4. 협력과 연대 –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한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금융 위기의 고통을 가장 심각하게 겪는 것은 취약 계층이다. ILO는 부국들의 신용 위기 때문에 내년에 개발도상국들에서 1억 5천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금융 기구들이 자기 자본의 안전한 도피처를 찾아 떠나는 바람에 저개발국들에 너무도 필요한 자본이 이들 나라로부터 철수하고 있다.

    유럽은 전 세계 최대의 해외 지원금 제공자라는 영예를 자랑할 만하다. 하지만 보다 안정되고 진보적인 원칙에 따라 전 지구적 금융 및 무역 체계의 기본 규칙들을 다시 구축하지 않는다면, ‘밀레니엄 발전 목표’(역주 – 전 지구적인 발전을 위해 UN의 192개 회원국이 2001년에 합의한 8대 발전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의 교역 대상국들이 불황에 빠져 있는 한 유럽 국가들 역시 불황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유럽이 ‘밀레니엄 발전 목표’에 도덕적으로 헌신해야 한다는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유럽의 재화와 서비스를 팔려면 강력한 시장들이 필요하다. 개발도상국들을 돕는 게 곧 우리 자신을 돕는 것이다.

    개발도상국 도와야 시장 존속

    금융 붕괴의 교훈은 분명하다. 일국 차원의 노력이 실패한 그곳에서 유럽 차원의 공동 행동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물 경제 영역에서도 유럽과 전 지구적 차원의 공동 행동이 순전히 일국에 제한된 해법보다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우리는 보다 책임 있고 보다 안정되며 보다 공평한 새로운 전 지구적 금융 거버넌스를 만들기 위해 일종의 새로운 브레튼우즈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뜻을 같이 한다.

    단기적으로는 G20 경기회복 계획을 통해, 선진국 중앙은행과 정부 그리고 현금을 다량 보유한 국부펀드들과 함께 IMF가 개발도상국과 신흥국들에게 불황에 맞서 싸우는 데 필요한 신용을 풍부히 제공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성공적이며 발전 친화적인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도하 무역 라운드를 신속히 소집해야 한다.

    5. 경제학자들은 학교로 돌아가라[다시 배워라] (그리고 정치인들 역시)

    2008년의 불과 몇 주 동안 경제학 체계는 완전히 뒤집어져 버렸다. 거의 30년간 세상을 지배하며 정치적으로 가능한 것의 경계를 설정하고 정치 경제 담론을 지배해온 사상이 오류로 판명났다.

    똑같이 빠른 속도로, 오래된 진리(주류 정치에서 오랫동안 사라졌던)가 재발견되었다. 시장, 특히 금융 시장은 강력한 규제와 공적 감독이 없으면 필연적으로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정부는 금융 부문의 건전성뿐만 아니라 경제 활동 수준에 대해서 궁극적 보장자가 되어야 한다.

    수요 관리가 다시금 정부의 핵심 임무로 부상하고 있다. 게다가 이제 통화 정책이 그 한계를 드러내는 상황에서는 재정 정책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불황 대책이다.

    우리는 금융 부문의 위험천만한 성장이 야기하는 위험을 비싼 수업료를 내고 배웠다. 이것은 환율 불안정 등의 리스크를 보다 복잡한 시장적 방식으로 해결하려던 부단한 금융 혁신이 불러일으킨 결과다. 이것은 과거에는 정부의 기능이었다.

    지배적 경제 모델의 실패는 그 때마다 경제학 흐름과 통치 방식의 근본적 변화를 낳았다.

    – 1930년대의 대공황은 케인스주의적 ‘복지 자본주의’ 시대를 낳았다.

    –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은 최근까지 우리를 지배해온 통화주의 반혁명을 낳았다.

    이제 지난 30년간의 시장 물신주의의 실패, ‘탐욕은 좋은 것’이라는 철학의 실패는 경제학자와 정치인 모두의 근본적 자기 성찰로 이어져야 한다.

    경제학자들은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자신들의 전공을 통해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해 보다 폭넓은 비전을 재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시장의 마법 앞에서 자신들의 책임을 면제하려고 하기 전에(역주 – “권력이 시장에 넘어갔다”는 노무현의 발언이 좋은 사례일 것) 숙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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