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녀를 통해 정치의 희망을 본다
        2009년 03월 18일 11:15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평소에 사람 이름을 잘 기억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 유난히 눈에 띄는 사람은 일부러 머릿속에 여러 번 이름을 새겨 둔다. 전국의 많은 지방의원들을 만나면서, 그 중에 머릿속에 꼭꼭 새겨 놓은 이름들이 있다. 그 이름들 중 하나가 ‘윤난실’이다.

    사실 나는 ‘윤난실’이라는 개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지방자치 관련된 모임이나 광주에 강의를 가거나 했을 때에 몇 번 인사를 나눈 것뿐이다. 그리고 이매진 출판사에서 나온 『아름다운 왕따』라는 책에서 읽은 운동역정이 내가 아는 개인 ‘윤난실’의 전부이다.

       
      ▲ 윤난실 후보 (사진=윤난실 미니홈피)

    광주시장과 같은 지역구를 가진 지방의원

    그러나 나는 ‘윤난실’이 진보정당의 지방의원으로서 눈에 띄는 의정활동을 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것은 그녀가 발의했던 여러 조례들 속에서, 그리고 그녀가 부딪히며 풀어냈던 복잡하고 어려운 지역현안들 속에서 발견되는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또한 여러 곳에서 지방의원이자 진보정당의 지역정치인인 ‘윤난실’에 대한 높은 평가들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어디서 상을 받았다든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윤난실’이 늘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서, 그리고 주민대중의 편에서 의정활동을 해 왔다는 것이다. 중증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조례 제정활동, 복잡하게 얽힌 대중교통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활동, 낭비되는 예산을 바로잡기 위한 활동들이 ‘윤난실’이 행동으로 한 의정활동이다.

    사실 기득권 정당이(호남에서 민주당은 분명 기득권 정당이다) 완전 장악한 의회에서 홀로 올곧은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왕따’를 당하기 쉽고, 추진하는 일마다 부결된다고 해서 ‘부결의원’이라는 별명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윤난실’이 추구했던 것은 자신의 소신이고 변화를 위한 희망이다.

    한편 소수파 정치인으로서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이 눈앞의 선거에 매몰되는 것이고 ‘좁은 시야’에 갇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윤난실’은 참으로 마음에 드는 정치인이다. 『아름다운 왕따』를 보면, 윤난실은 지역구가 어디냐는 질문에 “제 지역구는요. (광주)시장 지역구입니다. 시장하고 똑같이 일합니다. 하하하”라고 답한다.

    사실 소수파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무기는 ‘넓은 시야’와 의지뿐이다. 그것을 윤난실은 의정활동으로 보여주었다.

    지역에서 분투해 보지 않은 자, 정치를 논하지 말라

    지역에서 일을 해 본 사람들은 누구나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의 지역사회는 보수적이고 기득권 중심이다. 수도권이든 비수도권이든 영남이든 호남이든 지역사회는 기득권적 흐름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민주주의의 후퇴’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모두 설명할 재간은 없지만,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특히 2002년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기득권세력은 지방권력과 지방의회를 완전히 장악했다고 할 수 있다. 서울시의회, 경기도의회의 90% 이상이 한나라당인 실정이다.

    이뿐만 아니다. 호남에서는 민주당이 기득권세력이다. 영남에서도 한나라당 공천만 받으면 아무나 당선된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그 반대편인 호남에서도 민주당 중심의 일당지배체제가 구축되어 왔다.

    이런 지역정치질서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정치활동을 하는 지방의원들은 경험을 통해 단련될 수밖에 없다. 중앙정치처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고군분투에 악전고투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동료의원들과도 싸워야 하고 이권에 관련된 이해관계자들과도 싸워야 한다. 주민들의 무관심과도 싸워야 한다. 단지 싸우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설득도 해야 하고 토론도 해야 하고 때로는 타협도 해야 한다. 때로는 사람들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좌절과 분노를 곱씹어야 한다. 그것이 지역의 현실이다.

    ‘윤난실’은 소중한 존재다

    이런 척박한 지역정치의 현실 속에서 어렵게 성장해 온 여성들이 있다. ‘윤난실’이 그렇다. 늘 중앙언론의 카메라들이 번쩍이는 국회에서 보이는 정치인들은 어떤 때에는 연극배우같이 보인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같이 느끼고 같이 고민하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그런 정치인들보다는 지역에서 주민들과 함께 부대껴 온 지역정치인들이 쌓아온 역량과 소통능력, 감수성이야말로 중요한 자산이다. 그런 점에서 ‘윤난실’은 한국의 지방자치, 지역정치가 낳은 소중한 존재이다. 이런 사람이 더욱 성장해야만, 그리고 이런 사람이 가진 역량이 더 크게 발휘되어야만, 한국사회에서 의미 있는 정치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