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꿈을 위해 이용길을 지지한다"
        2009년 03월 16일 09:2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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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신당 부대표 후보 일반명부 기호 2번 이용길 후보 (사진=이용길 블로그)

    나의 소박한 꿈과 오늘의 현실

    내가 노동운동을 시작할 때의 꿈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 아이들이 나처럼 억압받고 차별받으며 살지 않기를 바라는 아주 소박한 바램뿐이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만은 평등한 세상을 물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20년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평등한 세상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억압과 착취와 불평등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아무리 탄압이 심하더라도 맞서 싸울 힘이 있다면 비관적이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노동운동은 위기에 처해있고 민주노동당을 통해 시도했던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실패로 끝났다. 진보정당운동의 새로운 희망으로 진보신당을 창당한지도 1년이 지났다. 총선 직전에 약속했던 제2창당은 지지부진했고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아무런 진전이 없이 오늘에 이르렀다.

    객관적 정세나 우리 자신의 역량 모두가 낙관적이지 못한 상태에서 진보신당 대표단 선거를 앞두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새로운 지도력을 어떻게 구성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노회찬 대표를 비롯해서 이번에 출마한 대표단 후보들 모두가 훌륭한 분들이다. 나는 그 중에서도 특히 이용길 후보에게 큰 기대를 건다. 10년에 걸친 노동운동과 10년에 걸친 진보정당운동에 헌신한 훌륭한 활동가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론 존경하는 선배이기도 하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향한 불굴의 소신

    이용길 후보는 일찍부터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진보진영 독자노선을 분명히 했던 사람이다. 그 역사는 1992년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정당을 만들고 대선에 출마했다. 거대 재벌인 현대그룹이 총동원되어 선거운동을 지원했다. 심지어 현대그룹 계열사의 노동조합 일부에서도 회사를 위해 정주영 회장을 도와야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당시 현대자동차 노조 조합원이었던 이용길 선배는 이 같은 움직임에 단호히 반대하고 민중후보 백기완 선거운동에 앞장섰다. 현대그룹 내의 광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소신을 굽히지 않은 것이다.

    통합적 지도력

    1995년 민주노총이 출범하면서 이용길 선배는 민주노총 대전충남지역본부 초대 본부장이 되었다. 이듬해인 1996년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노동법 개악안이 날치기로 통과되면서 역사적인 노동법 총파업이 시작되었다. 그간 총파업 ‘선언’은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96~97년 노동법 총파업 투쟁이야말로 한국 현대사에서 총파업이란 이름에 값하는 유일한 사건이라고 볼 것이다.

    그 당시 이용길 선배는 충남지역에서 전국 최초로 양대 노총의 공동 총파업을 조직함으로써 전국적 총파업의 불길을 일으키는데 결정적으로 공헌했다. 이용길 선배의 통합적 지도력을 입증한 사건이기도 했다. 물론 그 대가로 돌아온 것은 징역1년6개월(집행유예2년)과 3년간의 해고였다.

    행정, 조직, 재정운영에 관한 능력과 원칙

    1998년부터 6년에 걸쳐 민주노총 회계감사를 역임하면서 민주노총 회계 전산화, 상근활동가 임금지급 원칙(지금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어려운 일) 등을 수립하는 등 재정과 조직운영 능력을 입증하기도 했다. 이때 수립한 원칙은 이후 민주노동당 충남도당 위원장을 지낼 때도 어김없이 지켰다.

    중앙당에서 지역교부금이 늦게 지급될 때에도 충남지역 상근활동가들의 임금을 미루지 않고 제때 책임졌다. 행정과 재정운영에 대해 확고한 원칙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충남도당 위원장 시절의 활약은 그밖에도 많다. 도당 차원에서 신용회복운동을 적극 전개하여 전국 최초로 집단파산면책을 이끌어내고, 부도임대아파트 주민들의 소유권 쟁취투쟁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민생문제에 집중하여 성과를 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충남고용실업대책본부 공동대표, 충남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등을 지내며 축적한 고용과 환경문제에 관한 식견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런 경험은 현재 심각한 현안문제인 고용과 생태문제를 풀어나가는데도 크게 활용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원조 보수 자민련의 아성 충남에서 도당 위원장으로서 16개 시-군 중에서 15개 지역에 지역위원회를 건설하는 등 뛰어난 조직가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당을 위한 희생과 좌절, 묵묵한 하방활동

    그 당시 울산과 창원 등 일부 공단 밀집지역을 제외하고 진보정당에서 당선가능한 지역구는 없었다. 따라서 지역구에 출마한다는 것은 출세가 아니라 희생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이용길 선배는 진보정당 발전을 위해 매번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2000년과 2004년 총선에서 연거푸 충남 천안(을) 지역에 출마했고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충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했다.

    2006년 민주노동당 당직선거에서는 사무총장에 출마했다. 이미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을 통해 입증된 조직과 재정 운영 능력을 발휘하여 당에 헌신할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훗날 민노당 분당의 원인이 되는 극심한 패권주의에 의해 아깝게 패배함으로써 그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용길 선배는 남을 원망하지 않았다. 사무총장 선거와 도지사 선거 패배 이후 지역인 천안으로 낙향했다. 당의 가장 말단 조직인 지회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면서 지역현안을 의제로 평당원들의 일인시위 참여를 주도적으로 조직했다. 현대자동차에 복귀하여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매일아침 출근길에 일인시위를 점검하기도 했다. 묵묵히 하방해서 활동한 것이다.

    이런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민노당을 통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실패했고 분당에 이르렀다. 이용길 선배는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을 위해 진보신당(준) 조직위원장을 맡아 창당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진보정당운동 발전에 공헌할 활동가를 양성하고자 ‘전국노동자대안사회학습원’ 준비위원장을 맡아 오늘에 이르렀다.

    학습원 사업은 단지 노동조합원만이 아니라 당 활동가나 학생 등 광범위한 대중을 모집하여 대안사회 모색에 관한 기초 교양을 학습하고 활동가로 조직하기 위한 사업이다. 오늘날 재생산 위기를 겪는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인 것이다.

    나의 소박한 꿈을 위해

    이용길 선배는 노동운동 10년과 진보정당운동 10년에 걸쳐 자신의 소신에 따라 쉼 없이 활동한 불굴의 투사다. 또한 행정과 재정운영 능력과 조직가로서의 자질도 겸비했다. 민생, 고용, 생태 등 현안문제에 관한 전문지식과 경험도 고루 갖췄다. 당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했으며 그럴 준비가 되어있다. 그에게는 어떤 임무를 맡기더라도 손색이 없다.

    객관적 정세로 보든 우리 자체의 역량으로 보든 위기의 시기다. 무엇 하나도 낙관적으로 볼 수 없는 최악의 시기인 것 같다. 이런 엄혹한 정세에서 부디 진보신당의 당직선거가 잘 치러져 성공적인 조직정비를 이루길 바란다. 무엇보다도 이용길 후보가 대표단에 진출해서 그간에 입증한 능력과 경륜을 발휘하여 당을 위해 헌신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의 출마는 진보신당에 있어서 큰 행운이며 희망이라고 확신한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평등한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 나의 소박한 꿈을 위해 이용길 선배를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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