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조합, 희망이거나 두려움이거나
        2009년 03월 16일 06: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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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지역은 공단도시다. 입주업체는 1,700여개가 넘고 그 중 61개는 대기업이다. 고용인원이 74,000명에 연간 생산액 47조원, 연간 수출액 305억 달러이다. 규모면에서 울산이나 창원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구미공단은 그 어느 지역보다 노동자가 밀집된 도시다.

    구미는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두 개의 대교 이름을 삼성교와 LG교로 명명하자고 구미시에서 제안할 만큼 삼성과 LG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곳이다. LG 이름이 들어간 주부배구대회에 온 도시가 떠들썩할 정도니 삼성의 위세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2005년 수출 300억불 달성 중 절반이 삼성과 LG의 성과라니 공단에 미치는 절대적 영향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노조탄압 삼성과 LG를 뚫어라

    무노조경영의 삼성과 노사화합 대통령상을 수 차례 수상한 전력이 있는 LG가 장악한 여기에 우리는 미조직노동자 조직사업에 사활을 걸었다.

    98년 몰아닥친 경제위기는 구미공단을 구조조정의 광풍지로 내몰았다. 99년과 2000년 위기에 내몰린 노동자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노조결성의 깃발을 들었다. 대하합섬으로 시작해, 금강화섬, 보광, 대광, 새한, 도레이새한, 한국오웬스코닝, 두산전자 등 신규노조 결성도 잇따랐다.

    그러나 2002년부터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시험대에 오른 것은 오리온전기였다. 그리고 2003년 금강화섬, 2004년 코오롱, 2005년 한국합섬이 파산과 정리해고, 폐업으로 치달았다. 이 시기 동안 구미지역의 민주노조는 단 하루도 천막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어떤 싸움도 쉽게 승리한 적이 없었다.

    이 시기 구조조정은 대공장 정규직만 아니라 공단 전체를 휩쓸어 한때 10만 명에 달하던 구미 노동자는 8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사내하청, 비정규직, 협력업체 노동자들로 고용형태를 완전히 바꾸어놓고 말았다. 투쟁은 치열했으나 전쟁이 남긴 상처는 깊고 쓰라렸다.

    2006년 많은 지역의 활동가들은 장기투쟁사업장으로만 남은 오리온전기와 코오롱, 한국합섬 동지들을 보며 힘들어했다. 80만 민주노총 조합원은 고사하고 1천명이 넘는 집회도 버거운 상태였다. 그 시간 공단의 노동자들은 소리도 없이 계속 일터에서 쫓겨났다. 최저임금조차 못받는 노동자들이 늘어났고 노동법의 사각지대는 넘쳐났다.

    노조가입의 희망과 두려움

    그해 가을에서 겨울까지 우리는 어디에서 다시 출발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바로 노동자들을 주체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 지역의 희망은 없다는데 일치했다. 몇 년째 투쟁체계로만 기능하던 지역조직에 미조직위원회를 꾸리고 사업의 중심을 잡았다. 지회별 임원이 지부의 미조직위원으로 직접 결합하기로 했다. 주1회 공단 출근선전전과 공단게시판 현수막붙이기, 조직활동가교육, 상담교육, 노동법교육을 진행했다.

    임단투 기간에 나오는 상근간부들을 모두 미조직 선전전에 결합시켰다. 확대간부 수련회에서 미조직사업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다른 지역의 미조직 사례를 찾아보기도 했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었다. 우리가 몇 년에 걸친 구조조정 투쟁의 터널을 지나는 동안 노동자들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전 조직력을 다해 미조직 사업을 하자고 결의한 그해 우리가 만난 노동자들은 예전에 비해 현저하게 자신감을 잃고 있었다. 힘들고 어렵게 노동조합의 문을 두드렸지만 해고의 위기 앞에서 그들은 버텨내지 못했다. 노조가입과 결성이 희망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지 못했다.

    노동자들은 신자유주의가 휩쓰는 일터에서 자신과 동료, 그 누구도 믿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삼성과 LG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한 노동자들은 노조가입이 곧바로 사업장 폐쇄로 이어질거라는 두려움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조직활동가인 우리 자신이었다. 그 노동자들을 설득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그 안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다. 이대로 당하며 살 수 없어 노조의 문을 두드린 노동자들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자세가 부족했다. 그래도 모두 노조를 원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성장하고 있다. 미조직위원으로 참가하는 동지들의 목적의식이 높아지고 있었고, 출근선전전을 함께 한 동지들이 미조직사업에 대해 열의가 생기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저임금에 분노하게 되었고, 비정규직의 문제가 더 이상 남의 문제만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노조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었다

    노동자를 조직한다는 것이 한철 장사만 잘 하면 되는 일이 아니라 목적의식과 끈기를 가질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배운 것이 가장 큰 성과다.

    작년 말부터 우리는 출근선전전을 넘어 보다 직접적으로 노동자들에게 다가가는 사업을 벌여나갔다. 공단지역 노동조건 실태조사와 거리 상담이다. 3차례의 실태조사를 통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이 갈수록 양극화되고 있으며 여성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가 열악해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노동조합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었다.

    노동자를 조직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조합원이 없는 노동조합은 존재 이유가 없다. 세상을 바꾸려는 노동자의 노력이 있는 한 노동자를 단결시키는 일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매일 수요일 아침 츨근차량에 선전지를 건네는 구미 동지들의 힘찬 뜀박질은 계속된다. 미조직사업에 왕도는 없다. 물귀신보다 끈질기게 노동자를 만나고 조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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