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0억 빼돌리고, 220명 정리 해고
        2009년 03월 16일 05:5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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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12일 아침 9시, 위니아만도에서 집회가 있었다. 바로 전날 민원식 대표이사가 담화문을 통해 "당면한 최악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불가피한 해고절차에 돌입하였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회사는 생존해야 하므로 정리해고 대상자를 서면통지하는 것이 숙명"이라는 내용을 발표한 것에 대해 항의하며 투쟁을 결의하는 집회가 열린 것이다.

    멀쩡한 회사를 투기자본(다국적 펀드인 씨티벤처캐피탈. CVC-‘구조조정’ 후 재매각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보는 관측이 있음-편집자)이 인수한 후 2002년부터 2006년까지 5년간 2천3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빼돌려놓고 뼈빠지게 일한 노동자를 한칼에 짜르는 것을 민원식은 ‘숙명’이라고 한다.

    해고는 노동자의 숙명?

    노동자가 현장에서 땀흘리며 일하는 사이 2번의 유상감자로 1천350억, 3번의 고율 배당으로 722억등 총 2천70억의 자금을 해외로 빼돌려놓고, 이제와서 220명을 정리해고 하는 것을 민원식은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길이라며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한다.

       
      ▲ 지난 1월 금속노조 위니아 만도지회 조합원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구조조정과 분할매각 반대를 외치며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금속노조 위니아 만도지회)

    어제까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정리해고 명단에 들어있다는 관리자의 말만으로 고개 숙이고 희망퇴직을 쓰고 나가는 동안 말못하는 가슴에 비수가 꽂힌 탓인가 집회에 참석한 위니아만도 조합원들의 어깨가 처져있다. 우리가 어떻게 일해서 만든 회사인대 송두리째 투기자본 한입에 털어넣고 위로금 몇푼 받고서 쫓겨나는 동료들의 뒷모습을 보며 억장이 무너진 탓일 것이다.

    내 머릿수 하나 더 보탠다고 불안하고 심란한 위니아만도 조합원들에게 얼마나 힘이 될까 싶지만, 딱 그만큼 내 머릿수 만큼의 마음을 담아 지지하고 연대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며칠 사이 눈에 띄게 초췌해진 노조 집행부와 대의원들에게 “밥은 잘 먹어요?” 물어보니 “점심 한 끼 먹는데, 소화가 잘 안 된다. 밤에는 잠도 안온다.”고 한다.

    그래, 그 마음을 나는 안다. 현대자동차를 만드는 공장에서 왼쪽 문짝을 다는 정규직 노동자와 오른쪽 문짝을 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운명이 왜 달라야 하느냐고, 노동부에서 불법파견이라고 인정한 현대자동차 안의 1만여명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요구를 하며 투쟁했던 2005년 여름 나는 지회장이었다.

    왼쪽 문짝은 정규직이, 오른쪽은 비정규직이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 더위가 극성을 부릴수록 현장에서 경비들과 관리자들의 폭행이 난폭하고 거칠게 조합원들을 몰았다. 점심시간이면 라인 중간에서 하는 집회에서 사진을 찍어대며 우리를 조롱하는 관리자들의 숫자는 조합원들의 숫자보다 많았다.

    주변에 연대해주는 정규직 노동조합 동지들이 있어 지금 당장 폭행을 당하는 것은 면했으나, 나를 보는 조합원들의 눈빛은 늘 분노로 날카롭고 또한 불안으로 흔들렸다. 그 예민한 사이에서 나는 우리가 이기는 방법에 대해 웃으며 말했다.

    “여기 모인 120명이 모두 나 혼자라도 마지막까지 남아 싸울거라고, 어떠한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믿고 동지를 믿고 가면, 우리가 이기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쉽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면 이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밥을 먹지 못했으나, 먹으면 토했고, 잠이 오지 않았다.

    위나아만도의 집회로 시작한 하루를 목요일마다 진행한지 스물한 번째가 된 ‘동희오토 비정규 투쟁 승리를 위한 촛불문화제’로 마무리한다. 그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많게는 100여명, 적게는 40여명의 노동자들이 목요일마다 지킨 그 자리에서, 오늘도 비가 오는데 먼길을 달려온 동지들과 앉아 민원식이 말한 숙명과 노동자의 운명에 대해 생각한다.

       
      ▲ 지난 12일 열린 촛불문화제 (사진=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 

    노동자의 뼈를 깎아 자본의 배를 불리는 숙명은 위니아만도와 동희오토가 다르지 않다. 원래 그런 거라고, 비정규직이라 어쩔 수 없다고, 괜히 입바른 소리하면 찍힌다고, 찍히면 짤린다고, 그것을 관철시키는 자본의 숙명은 합법을 등에 업고 집요하고 난폭하다.

    찬란한 날

    지난 12월 사내협력업체 대왕기업의 폐업과정에서 모두 23명의 비정규직노동자가 재계약을 거부당해 사실상 해고 된 후 2월에도 조합원이 징계해고 되었고, 3월 16일이면 또 한 명의 노동자가 계약해지 된다는 통보를 이미 받았다.

    그리고 6월이면 대양이라는 업체가 폐업을 한다. 또 몇 명이 재계약이 거부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래야 ‘동희오토는 원래 그렇고, 어쩔 수 없다’는 숙명이 예리하게 비정규직 노동자의 몸을 관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엎드린 비정규직 노동자의 뼈를 깎아 만든 기아자동차 모닝을 팔아먹은 돈은 모두 정씨일가에게 가고 바야흐로 900억짜리 전용기를 사 자본의 하늘에 야만의 날개를 펴며 정몽구, 그의 숙명은 흡족할 터이다.

    다만, 자본의 그늘에서 노동자의 운명 또한 위니아만도와 동희오토가 다르지 않다. 더 많은 이윤을 위해 노동자를 해고하는 자본에 맞서 싸울 수 밖에 없는 것은 운명이다. 운명을 건 싸움에서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지만 ‘나를 믿고 동지를 믿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면 이기는’ 방법 또한 똑같다. 노동자의 운명은 투쟁을 통해 결정된다.

    2003년 해고되었으나 아직 포기하지 않아 패배하지 않은 나의 운명과 위니아만도 조합원들의 운명과 동희오토에서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운명, 그리고 딱 자신의 머릿수 하나만큼의 마음으로 연대하는 지역동지들의 운명이 촛불로 만나 비를 맞는다. 찬란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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