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설적 영화 보며 졸았던 사연은?
        2009년 03월 13일 09:2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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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은 한 세계를 신비롭게 한다. 아무리 그 기원에 다가서려 해도 실체의 그림자가 던지는 모호함, 자꾸만 본질에서 미끄러지는 안타까움 때문에 전설은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이들을 자극하면서 자꾸자꾸 새로워진다. 한국영화계에도 그런 전설이 몇 있다. 춘사 나운규의 <아리랑>이 그 하나요, 하길종 감독의 <병사의 제전>이 또 다른 하나다.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아리랑>을 찾으려는 노력은 지금껏 한국영화계의 숙원 사업이다. 그 내용이나 파장이 영화가 만들어졌던 일제 식민시대를 지나 신자유주의의 문화적 외압을 이겨내려는 오늘날까지 한국영화의 자부심을 일깨우는 <아리랑>과 달리, 하길종 감독의 UCLA 영화과 졸업 작품 <병사의 제전>은 MGM이 최우수 학생감독 4명에게만 수여하는 메이어 그랜드 상을 수상할 정도로 미국영화계에서 인정받은 작품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알려진 바가 없는 작품이었다.

       
      ▲ 영화 <병사의 제전>의 한 장면

    전설, 하길종 <병사의 제전>

    비운의 천재, 척박한 한국영화계를 제대로 돌파하지 못하고 자신의 작품 세계를 미처 꽃 피우지 못한 채 스러진 하길종 감독에 대한 회한을 달래려면 그가 가장 자유롭고 자신있게 만들었을 학생 시절의 작품 <병사의 제전>을 만나야 하리라. 그러나 그렇게 자료 수집에 열정적이라는 미국에서조차 <병사의 제전>은 찾을 수 없던 차에 지난 2월 27일, <병사의 제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영상자료원의 하길종 감독 추모전 ‘성난 얼굴로 돌아보다’에서 제한상영으로 공개된 <병사의 제전>은 그러나 여전히 온전한 실체를 지니지 못했다. 하길종 감독의 동생이며, 배우이자 감독이기도 한 하명중 감독이 개인소장하고 있는 필름을 어렵사리 찾아내 상영된 영화는 완성된 편집본도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사운드가 미처 복원되지 않은 상태였다.

    마침내 전설의 실체를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다는 기대감으로 미리 관람신청을 하고, 신청자 명단에서 이름을 확인받아 들어선 극장에 앉아 영화가 상영되기를 기다리던 적극적 관객들은 작품 상영 전, 영화가 완성된 편집본도 아니고 사운드 복원이 되지 않은 상태라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드디어 상영관의 불이 꺼지고 스크린에 <병사의 제전>이 비춰지는 순간, 영화라는 것이 얼마나 미묘한 매체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전설을 앞에 두고 졸다니

    영화 오래보기 대회 기록 68시간 7분에는 한참 못 미치는 32분짜리 필름을 보는 동안 전설에 대한 기대와 경외심으로 스크린을 바라보던 관객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스르르 눈을 감기도 하고, 애써 고개를 흔들어 잠을 떨치느라 애를 쓰게 된 것이다. 작품이 기대에 못 미치는 졸작이어서도 아니고, 이해하기 너무 난해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소리’없이 영상만 움직이는 상황이 자아내는 몽롱함 때문이었다.

    광학기술의 산물인 영화는 연속해서 빛을 통과하는 정지된 이미지들이 움직이는 동작인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시각적 환영의 매체로 출발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영화가 시청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것은 시각정보를 기록하고 재현하는 기술과 청각정보를 기록하고 재현하는 기술의 발전이 선행되어 있고, 그 두 가지 기술을 결합하는 기술이 발전이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필름에 소리를 기록하는 기술은 아직 출현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소리의 녹음과 재현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 출현하기 전까지 영화가 침묵의 세계에서 돌아가는 활동사진으로 존재한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정상적인 인간이 보고 듣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영화가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미 영화는 그 시대에 가능한 방식으로 소리를 동반하고 있었다.

    영화에서의 소리 유무에 대한 여러 미학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사운드는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으나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운드를 영화의 본질적인 요소인 움직이는 영상에 비해 부차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단순히 리얼리즘의 창조를 위한 재현적 수단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사운드는 영상보다 부차적 요소?

    그러나 영화와 사운드의 관계는 그보다 더 깊고 넓은 것이다. 사운드 또한 영상이 주는 것보다 덜하지 않은 환각을 영화에 부여함으로써 이차원적인 스크린의 세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사운드의 위력’은 우선 시각적 주의에 청각적 지각이 수반될 수 있게 하며, 영상해석 방법을 능동적으로 형성하도록 하고, 영상에 대한 주의를 특정한 방향으로 이끈다. 거기에 더해 관객이 기대를 갖도록 하는 단서를 제공하고, 침묵의 새로운 표현 기능을 발견하도록 하며, 임의의 음향적 현상들을 하나의 전체 속으로 혼합해내면서 무한한 시각적 가능성들을 무한한 음향적 이벤트들과 결합시킨다.

    마술쇼든 패션쇼든 눈으로 감상하는 다른 시각적 퍼포먼스와 마찬가지로 영화도 보이는 것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서 별도의 사운드를 필요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 영화 초창기인 무성시대의 상영방식도 완전한 무성은 아니었다.

    물론 처음 영화가 등장했던 시절에는 필름에 소리를 기록하는 기술은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소리의 녹음과 재현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 출현하기 전까지 영화가 침묵의 세계에서 차르륵 돌아가는 영사기 소리만을 배경음으로 하는 활동사진이었던 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고 듣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아무 소리 없이 영상만 보고도 오랜 시간 버틸 만큼 집중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영화가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미 영화는 그 시대에 가능한 방식으로 소리를 동반하고 있었다.

    ‘영화’와 ‘접근 노력’의 차이

    스크린에 비친 기차가 다가오는 모습에 놀라 관객들이 비명을 질렀다던 뤼미에르 형제의 첫 영화 상영 시절부터 이미 피아니스트가 영상에 맞춰 반주를 했다고 하니 진정한 무성영화란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 故 하길종 감독

    그러니 전설로 전해지던 <병사의 제전>을 앞에 두고 감히 졸았다고 해서 부끄럽게 여길 일도 아니다. 오히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새로운 영상으로 자기 세계를 펼쳐 보이려던 재기 넘치던 감독을 피폐하게 만들고 작품을 훼손시킨 역사를 부끄러워 할 일이다.

    하길종 감독은 ‘한국 영화의 현실과 전망’이라는 글을 통해 사람들이 일정한 장소에 모였다고 해서 곧 사회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듯이 배우를 등장시켜 어떤 이야기를 영화의 기술적 제작과정을 통해 그려놓았다고 해서 모두가 다 영화가 될 수는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당대에 흥행에 성공한 화제작들인 <별들의 고향>이나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 여자>, 심지어 자신의 작품 <바보들의 행진>과 같은 영화들이 단연코 영화가 아니라고 일갈하면서 이런 작품들은 단지 영화에 접근하려는 노력에 불과하다고 했다.

    <병사의 제전>에 찬사를 보낸 미국 영화계의 손짓을 거부하고 돌아온 한국에서 영화가 개인의 재능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예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한국인들은 아직도 영화를 사랑하고 또 한국영화계가 잘해서 그 관객들에게 생활의 양식을 주리라고 믿었던 하길종 감독.

    "아직은 영화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것이다. 있으려면 가만히 있거나 말 잘 듣는 개가 되면 시대를 살아가는 현면함일 것이다"라는 자괴감 뒤에도 "작가정신을 키워나가는 영화작가들이 육성되고 영화정책이 영화를 위한 본래의 정책으로 환원될 때, 그때 우리는 참다운 영화를 기쁜 마음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한국 영화계의 부끄러운 현실

    그런데 하길종 감독이 70년대에 비통하게 짚어냈던 영화에 대한 시대와 정책의 어리석은 꼬락서니가 바로잡히기는커녕 오늘날에도 영화를 정책적으로 훼손시키고 통제하려는 문화부와 영화진흥위원회를 보아야하는 마음은 참담하다.

    ‘독립’이라는 말이 좌파냄새를 풍긴다며 ‘다양성’영화라고 바꿔 부르고,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을 생색만 낼 정도만 남기고 줄여버리는가 하면, 시네마테크조차 공모제로 전환하려고 한다.

    <병사의 제전>에서 복원되지 못한 사운드에 대한 아쉬움보다, 검열로 뭉텅뭉텅 잘려나간 다른 작품들을 통해 그의 영화세계를 짐작이나 해야 하는 답답함보다, 하길종 감독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한국영화의 미래’가 아직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부끄러움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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