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대 앞’이 위험하다
        2009년 03월 11일 09:4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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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녀들의 수다’에 나오는 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지역은 바로 홍대 앞이다. 프랑스에서 온 사람도, 미국에서 온 사람도 홍대 앞 이야기를 한다. 어떤 외국인 출연자는 시간이 날 때마다 홍대 앞 거리에 그냥 있는 게 취미라고 했을 정도다.

    뉴질랜드에서 온 캐서린은 아시아 최고의 여행지로 홍대 앞을 꼽았었다. 캐서린이 그 말을 하자 모두들 황당하다는 듯이 웃었다. 사람들은 여행지나 관광지라면 그저 경치 좋은 지역만을 생각했던 것이다. 남희석도 홍대 앞이 최고의 여행지라는 말을 옮기며 허리를 구부리고 웃었다.

    웃을 일이 아니었다. 외국인들이 그렇게 느꼈다면 정말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홍대 앞이라는 지역의 가치를 너무 모르고 있다. 혹은 오해를 한다. 홍대 앞 개발은 그런 오해의 소산이다.

       
      ▲ 홍대앞 길거리 공연 공연모습

    타자들에게 매력적인 곳

    외국인들이 홍대 앞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은, 그 공간이 그만큼 타자에게 열린 공간이라는 뜻이다. ‘한민족’만의 폐쇄적인 곳이라면, 신기한 마음에 한 번은 가도 계속 가지는 않을 것이다. 자주 간다는 것은 ‘편안하다’는 뜻이고, 그건 그 공간의 ‘관용성’을 말해준다. 타자에게 열려 있다는 말이다.

    물론 단지 열려있고 편안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이 그 공간에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는 않는다. 깊은 산속 정자는 모든 사람에게 차별없이 열려 있는 편안한 공간이다. 홍대 앞엔 그것에 부가되는 무언가가 있다.

    홍대 앞이라는 지역에는 ‘활력’이 있다. 그것은 사람들로부터 나온다. 홍대 앞 지역의 거리 디자인이 특별히 훌륭하다거나 특이한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그곳에 모이는 사람들의 개성이 그 거리의 매력을 형성하고 있다. ‘개성’이 ‘활력’을 만드는 것이다. 이 활력이 홍대 앞을 다른 유흥가와 구별시킨다.

    또, 홍대 앞에는 창조적 문화성이 있다. 그곳은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이는 공간이다. 애초에 미술과 인디음악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이젠 영화, 출판, 디자인 등 대중문화 전 부문을 망라하는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창조적 열기를 뿜어낸다.

    정리하면 창조적이고 개성 넘치는 사람들이 모여, 관용적이고 개방적인 지역문화를 형성한 것이 홍대 앞이라는 곳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 외국인이라는 타자들이 ‘편안함’과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홍대 앞은 도시의 허파

    삼림만 허파가 아니다. 홍대 앞도 허파다. 바로 ‘도시의 문화적 허파‘라고 할 수 있다. 서울엔 홍대 앞과 같은 유형의 활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없다. 서울은 문화적으로 극히 획일적인 도시다. 어딜 가나 비슷한 사람들이 비슷한 건물 속에서 비슷한 행태로 일하고 먹고 마시고 어울린다. 이건 정말 숨 막히는 노릇이다.

    서울에서 그 숨을 틔워주는 역할을 하는 지역이 강북 좌우에 있는 홍대 앞과 대학로다. 한쪽은 인디 대중음악 집적지고 다른 한쪽은 공연예술 집적지다. 이 두 지역이 서울에 매력과 활력을 부여한다.

    그중에서도 홍대 앞은 특화된 지역이다. 대학로가 과도하게 발전한 유흥문화로 점차 몰개성적인 유흥가가 되는 것에 반해, 홍대 앞은 아직까지는 개성과 활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홍대 앞엔 ‘일탈’이 보장된 ‘클럽’이라는 특수공간이 있다. 이것은 나이트클럽의 획일성과는 전혀 다른 풍토다.

    이런 지역이 발전하면 1차적으로 ‘미녀들의 수다’에서 지적된 것처럼 관광지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개방적이고 활력 있는 문화성 자체가 관광자원이 되는 것이다.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지역이 도시의 매력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도시의 경쟁력까지도 창조해낸다는 데 있다. 특히 한국처럼 군사독재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획일성이 문제가 되는 나라에선 이런 지역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한 지역의 개방적인 문화성은 그 획일성에 균열을 내 도시 전체에 새 기운을 불어넣게 된다.

    획일적인 저임금 조립산업에서 창조적인 단계로 진화해야 하는 한국에게 이것은 중요한 일이다. ‘가난뱅이 예술가와 타자’들이 활개치는 관용성과 개방성은 그 도시의 창조적 활력을 높인다.

    또 도시의 매력을 높여 창조적인 두뇌들이 그 지역에 정주하게 하는데, 우리처럼 고급두뇌 유출 정도가 심각한 나라에겐 이 지점도 중요하다. 말하자면 홍대 앞은 우리에게 일종의 전략지역인 것이다.

    삽질은 이제 그만

    서울시가 홍대 정문 앞 길을 ‘디자인서울거리’로 말끔하게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우리 국가가 홍대 앞에 관심을 안 갖는 것은 문제인데, 이런 식으로 관심을 표명하는 것은 더 문제다.

       
      ▲ 홍익대학교 앞 캔버스 거리 조감도 (사진=서울시 마포구)

    애초에 홍대 앞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인 것은 그 지역이 낙후된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에게 주목을 받고, 그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점점 더 지나치게 개발된 지역으로 바뀌고 있다. 그것은 그 지역의 상업적 가치를 높인다.

    그 가치를 노리고 자본이 들어오게 되면 해당 지역은 문화성이 아닌 이윤 원리에 따라 전면적으로 재편된다. 이윤 원리는 철저히 획일적이고 몰개성적인 도시 풍경을 만들게 된다. 이미 대학로 지역이 그런 식으로 해서 평범한 유흥가가 돼버렸다.

    홍대 앞도 ‘걷고 싶은 거리’라든가 하는 식의 개발사업으로 인해 문화성이 날로 추락하고 있다. 가난한 인디 예술가들이 쫓겨나고 술집과 고기집만 즐비한 유흥가로 변해가는 것이다. 클럽도 점차 나이트클럽처럼 변해가고 있다.

    자본은 타자와 약자(가난뱅이), 소수자에게 극히 냉혹하다. 그리하여 돈 많은 주류이거나, 다수소비대중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획일적인 공간을 만든다. 이런 식으로 변화가 진행되면 결국 홍대 앞의 개성은 사라지고, ‘미녀들의 수다’에서 홍대 앞이 언급되는 일도 사라질 것이다. 그것은 서울이라는 도시를 더 추하고 답답하게 만들 것이다.

    홍대의 매력은 그 지역이 지금보다 훨씬 지저분하고 복잡했을 때 형성됐다. 도로가 정비되자 개성이 사라진 대신에 자본과 유흥이 판을 친다. 서울시의 ‘디자인서울거리’ 조성 계획을 절대로 환영할 수 없는 이유다.

    정말로 홍대 앞을 디자인 거리로 진흥시키고 싶다면, 거리 단장에 돈을 쓸 것이 아니라 그곳에 모여드는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쓸 일이다. 서두에서 지적한 것처럼 홍대의 매력을 만든 것은 거리디자인이 아니라 그곳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경쟁력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경쟁력의 핵심을 놓치나? 말끔한 거리는 강남에도 이미 있다. 그래서 무슨 문화적 활력이 생겼나?

    정부는 관광산업을 강조하며 도처에서 삽질을 하려 든다. 대운하 추진에도 이런 이유가 있었고, 도시의 문화성을 파괴하는 재개발도 관광산업진흥이 이유가 된다. 그러나 ‘미녀들의 수다’ 출연자들이 홍대 앞을 최고의 여행지로 꼽은 것은 강남 같은 도시경관 때문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문화성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사람’이다. 홍대 앞 삽질예산을 사람과 그 사람들이 모일 싸고 개방적인 문화적 공간에 대한 지원으로 돌려야 한다. 지금처럼 계속 가면 홍대 앞은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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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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