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의 민주노조운동을 전개하자
        2009년 03월 09일 09: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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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들어가며
     
    민주노총 간부 출신으로서, 노동운동의 연장에서 진보정치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부끄럽고 죄송하기 그지없다. 이번 성폭력사건으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의 중앙조직인 민주노총의 이미지가 또 한 번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2005년 몇몇 대기업 노조간부 채용 비리, 민주노총 전 임원의 뇌물수수 의혹 이후 세 번째 대형사고인 셈이다.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민주노총’이라는 그간의 부정적 이미지와 함께 민주노조운동의 도덕성이 사정없이 추락했다.  

    사실 노조 간부 및 활동가들의 이완되고 해이한 모습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번 사건 같은 극단적 경우가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멀리는 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 이후, 가깝게는 95년 민주노총 창립 이래 노동운동의 양적 성장과정에서 질적 발전을 위한 목적의식적 노력, 특히 민주노조운동의 중심주체인 노조간부 및 활동가들의 도덕적, 정치사상적, 전략 전술적 준비를 철저히 하지 못한 탓이 아닌가 싶다.

    노동운동이 지난 3대에 걸친 민간정권 하의 사이비 민주주의에 방심하고 신자유주의에 길들여진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노조 간부와 활동가들의 흐트러진 생각·생활·활동을 어떻게 다 잡을 것인가. 노동운동의 질적 전환, 특히 대공황기 변혁 지향적 민주노조운동을 위해, 민주노총의 실추된 대조합원, 대노동자, 대국민 이미지 개선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2. 민주노총 위기의 배경과 근본 원인
     
    70년대 노동운동 선배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는 자기 무장과 각오가 없으면 노동운동을 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작은 꼬투리라도 잡히면 매장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보기관이 미인계를 써서 노동운동,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술집 가는 것도 조심하는 분위기였고 일부는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등 극단적 경우를 상정하고 생활을 철저히 관리했다. 그래서 사측 관리직들이 노동자를 성추행하는 일은 비일비재했어도 노동조합 내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한다.
     
    80년대 전두환 군사정권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70년대 민주노조운동이 반독재민주화를 넘는 사회 변혁적 목표와 방향이 분명치 않았다면, 80년대 전반기 노동운동은 과도한 변혁성에 비해 대중성이 취약했다.

    그러나 70~80년대 노동운동은 공히 높은 도덕성을 간직하고 또 이를 매우 강조했으며, 국민들로부터도 그 도덕적 우월성을 인정받았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양적 성장을 기반으로 노태우 정권의 공안탄압에 맞서 싸울 때도 노조 간부와 활동가들의 정신 상태는 매우 건강했다고 기억된다.
     
    김영삼 정권 시절, 전노협과 업종회의와 대기업노조연대회의의 민주노조가 총단결해 93년 노동법 공대위-94년 전노대-95년 11월 민주노총 건설-96년 말~97년 초 날치기 노동악법 철폐 총파업투쟁으로 노동운동이 승승장구할 때도 문제가 없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잘 나갈 때 조심하라’고 했던가. 바로 이 시기부터 노동운동이 병들기 시작하지 않았나 싶다. 그 이유는 첫째, 90년대 초 동구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사상적 동요와 방황이 시작되었고, 둘째, 90년대 초반부터 이미 신경영전략이란 이름으로 임금, 고용, 노조, 문화 등 광범한 영역에 걸친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가 시작되었으며, 셋째, 그럼에도 노동운동은 외형적 성장에 자족하고 주체의 사상적 도덕적 재무장을 소홀히 하고 임단투 중심의 기업별 의식과 체계와 투쟁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민주노조운동은 IMF위기를 맞았다. 노동운동의 질적 발전을 위한 사람과 조직의 준비나 노동운동의 방향에 대한 총체적 점검과 대책을 강구할 겨를도 없이 정권과 자본의 전면적인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공세에 맞서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의 정리해고 반대, 고용안정 쟁취→비정규직 철폐와 정규직화를 위해 잦은 총파업투쟁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협소한 프레임, 미숙한 전략전술, 고질적 분파 갈등, 형식적이거나 교조적인 산별노조, 낮은 연계 고리의 민주노총과 그 가맹・산하 조직으로 단결력과 조직력과 투쟁력을 발휘하지 못한데다가 가끔씩 대형 사고가 터지고 관료주의 병폐까지 겹쳐 오늘의 상황이 오지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최근 민주노총 사건은 민주노조운동이 느슨해지고 초기의 기풍과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지 못한 결과다. 전반적으로 노조 간부와 활동가들의 사상의식과 생활태도와 실천의지가 많이 약화된 모습의 반영이다. IMF사태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대응능력 부족과 전망 부재와도 관련이 있다.

    ‘우리는 이런 세상을 만들 거야’라는 노동운동의 목표와 그 경로에 대한 확신, 자신감, 보람이 흐릿해진 탓이기도 하다. 아울러 생활 문화적 측면에서 필자를 포함해 노조 간부와 현장 활동가들, 각 부문의 진보운동가들조차 민주주의와 진보적 가치를 일상적으로 구현하지 못하고 천민적 신자유주의의 포로가 되어 있었음을 뜻한다.

    노동운동이 책임져야 할 많은 문제를 정권과 자본의 공세와 탄압으로 돌리고 스스로에게는 너무 관대한 게 아니었는지 곱씹어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현재 노조 간부의 구성을 보면, 87년 이전 민주노조가 없을 때부터 현장생활을 한 사람은 20~30% 뿐이다. 나머지 70~80%는 체험을 통해 민주노조의 귀중함을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끊임없는 사상교양과 조직생활, 실천투쟁을 통해 노조 간부와 활동가들을 단련시키지 않으면, 민주노조와 어용노조의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질 것이다.

    노동운동 혁신이 강조된 지도 수년이 지났는데, 혁신 실천과 그 성과가 부족한 것도 그 만큼 우리들 자신이 관성화되고 형식주의에 빠져 있다는 말이다. 오늘 민주노조운동이 이런 상황에 놓이기까지 민주노동당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민주노동당이 당원들부터 노동운동 혁신의 튼튼한 주체로 세워내지 못했고 형식적이고 분열적인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능동적으로 극복하지 못했다. 
      
    3. 민주노총의 혁신 과제
     
    노동운동 혁신, 민주노총 혁신을 위해서는 이에 몸담고 있는 사람의 혁신, 그 사람의 사상 혁신이 제일 중요하다. 민주노총, 산별조직, 지역조직, 단위사업장 조직의 모든 간부와 현장 활동가들부터 ‘전태일 정신 배우기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전태일 열사의 자기희생성과 헌신성, 약자를 향한 진정성을 배우자. 그리고 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높은 도덕성과 조합원 중심의 일상 활동과 현장조직력 강화에서 소중한 교훈을 얻자. 그리고 80년대~90년대 초 노동운동의 변혁성과 전투성을, 90년대 중반 민주노총 전반기의 사회개혁투쟁을 통한 국민적 지지에서 배우자.

    그래야 실업・반실업자, 비정규직, 영세기업 노동자와 함께 하는 민주노조운동, 전 민중과 함께 하는 민주노조운동으로 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일회적으로 개별적으로 선포식으로는 노조 간부와 활동가들의 올바른 관점과 태도와 자세를 확립하기 어렵다. 온오프라인 방식의 일상적이고 조직적인 사상교양과 생활총화와 실천투쟁 없이는 저들의 공세를 막아내고 세상을 뒤집어엎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생활문화의 홍수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조 활동으로 충분할까? 다양한 의식과 정서와 처지에 있는 전체 조합원을 관장하는 대중조직, 노동조합 차원의 혁신 운동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현장 제조직이나 노동자 정치조직, 진보정당의 현장분회의 몫이 크다. 이들 조직이 노조 집행권을 겨냥한 선거조직이나 인간관계에 기초한 패거리조직, 생활과 실천에서 모범을 보이지 못하고 특정 이념을 신주단지처럼 간직한 정파-분파 조직에서 탈피해야 한다. 그래서 노동운동 혁신 소모임의 집결체, 노동운동 혁신 실천단으로 과감히 전환해야 한다.
     
    이들이 노조 간부 및 현장 활동가들의 올바른 생각을 뒷받침하는 온오프라인 사상교육 토론기관이자 자기반성과 성찰을 통해 낡은 생활방식을 고치는 생활총화 단위이며, 제반 활동과 투쟁에 앞장서고 조합원들과 함께 하는 혁신실천단의 위상과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노동조합, 협동조합이나 주민자치조직을 지원하는 활동가들을 포함한 선진적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들의 결집체인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써클과 같이, 단위노조와 상급, 최상급 단체 안에 수백수천개의 혁신 소모임 운동이 전개되어야 세상을 바꾸는 노동운동으로의 질적 전환만이 아니라 내실 있고 통일적인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통해 민중집권을 내다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현재 민주노총과 그 가맹・산하 조직의 임원들과 사무처 활동가들도 집단적 사상교양과 생활・실천 총화단위인 혁신 소모임 운동에 착수해야 한다.

    그리고 노조 상급단체에 오래 머물면 본의 아니게 일상에 매몰되고 관성 화되는 경향이 있는 만큼, 현장이나 가맹・산하 조직, 아니면 지역운동, 진보정당운동, 연대연합운동 등으로 순환하고 보직 이동해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는 동시에 변혁에의 신념과 의지, 대중적 사업 방법과 작풍, 전투적인 기풍을 강화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 공백은 단위 노조와 지역・산별 조직에서 검증된 간부 및 활동가들이 올라와 채우고 민주노총의 분위기를 일신해보는 것도 종을 듯하다.
     
    이와 같이 노동운동 주체 혁신, 사상 혁신에 박차를 가하면서 민주노총은 조합원들의 대중적 토의에 기초해 민주노조운동의 이념과 노선을 하루빨리 정립해야 한다. 일찍이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세상을 바꾸는 노동운동’이란 캐치프레이즈는 있었으나 아직 전 조합원이 공유하는 통일적인 노동운동의 이념과 노선, 기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상을 바꾸는 사회 변혁적 노동조합주의라는 이념, 자주적 단결을 토대로 투쟁을 중심으로 교섭을 결합하는 투쟁 노선,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자주적이고 민주적이며 변혁지향적인 산별노조운동, 총연맹과 산별노조와 지역조직의 유기적 관계와 각자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조직노선, 내실 있고 통일적인 제2의 노동자정치세력화를 통한 노동자 중심의 진보대연합당 건설이란 정치노선에 대해 본격적인 토론을 전개해야 할 때다.
     
    그리고 민주노총은 대공황기에 일자리 지키기, 나누기, 만들기 대책은 물론이고 대안 경제 담론 확산에 나서고 그 구체적인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범국민적 투쟁을 선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 96년 말~97년 초 위력적인 날치기 노동악법 철폐 총파업투쟁도 93년 이후의 지속적인 노동법 개정투쟁과 95년 민주노총 창립 이후의 사회개혁투쟁 강화를 통한 국민적 지지의 축적이 크게 작용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른바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민주노총’이란 왜곡된 이미지를 벗어던지기 위해서라도 실업・반실업자, 비정규직, 영세기업 노동자와 소외된 민중들을 위한 사업을 계획적으로 배치하고 그 성과를 국민들에게 널리, 그리고 뚜렷이 알려야 한다.
     
    뿐만 아니라, 민주노총은 분파 갈등을 완화하고 통합 지도부를 합의 추대하며 산별노조들의 총의를 기반으로 올 상반기에 주체역량에 걸 맞는 대중투쟁을 승리로 이끌어 조합원의 마음을 한데 모으고 민중의 심장을 조금이라도 뛰게 해야 할 것이다.

    민주노총의 위기상황에서 상당수 현장조직 활동가들도 정파운동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 엄격히 평가하고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분위기를 살려 민주노총의 단결력을 배가해야 한다.

    아울러 진보정치세력들의 분열의 고착화가 민중에게 큰 절망을 가져다주고 있는 만큼, 2009년 4월, 10월 재∙보궐선거, 2010년 지방선거에서 후보단일화를 실현하고 늦어도 2012년 총선 이전에 노동자 중심의 진보대연합당을 건설해야 한다.

    동시에, 반제 반신자유주의 연대체의 통일단결을 바탕으로 반MB 범국민전선을 비상히 강화해야 하다. 바로 이 진보대연합의 당과 전선 구축을 민주노총이 강력히 추동해주길 바란다. 민주노동당도 민주노총의 결의를 받아 안고 이미 천명한대로 반신자유주의 제 진보정치세력의 혁신과 대단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리라 믿는다.   
     
    4. 마치며
     
    노동운동 혁신, 민주노총 혁신에는 노조 간부와 현장 활동가들의 ‘나로부터’ ‘너와 함께’ ‘우리 하나로’의 정신이 요구된다 할 것이다. 누구랄 것도 없이 먼저 깨닫는 활동가들부터 자주적이고 민주적이며 통일적인 관점과 태도로 노동운동의 혁신, 제2의 민주노조운동에 떨쳐 나서자.

    나부터 바꾸고 세상을 바꾸자. 나의 거짓과 위선을 걷어내야 세상을 바꾸는 주체로 설 수 있다. 간부와 현장 활동가들부터 ‘일신 우 일신’하고 남에게는 관대하고 자신에게 엄격하자.
     
    제2의 민주노조운동의 출발점은 ‘전태일 열사 정신 배우기 운동’이다. 자신에게 물어보자. ‘전태일이 술 먹고 사고 쳤냐?’ ‘전태일이 상갓집에서 노름 하드냐?’ ‘전태일의 손에 근로기준법 책은 뭐냐, 너는 왜 공부 안 하냐?’ ‘전태일이 투쟁 안하고 교섭만 하드냐?’ ‘전태일 같으면 용산참사 추모집회에 안 갔겠냐?’

    전태일의 삶과 투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대대적인 사상운동, 도덕성운동을 벌이자.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사회 변혁적 노동운동임을 분명히 하자. 외세와 자본과 정권의 간담이 서늘하도록 노동운동의 자정 결의, 정신재무장을 무섭게 추진하자.

    희망은 언제나 현장에 있다. 현장 속으로, 대중 속으로 들어가자. 현실은 어렵더라도 의지로 낙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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