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심이 의원 돼야 진보정당 산다”
        2009년 03월 07일 09: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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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노동당사』와 『복지한국, 미래는 있는가』를 내놓았던 고세훈 교수(고려대 공공행정학부, 정치학)가 이번에는 1,600쪽이 넘는 케인스의 전기 『존 메이너드 케인스』(후마니타스)를 번역해 내놓았다.

    영국학술원 회원이고, 영국사민당 창당멤버이자 현재는 무소속 상원의원이기도 한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가 30년에 걸쳐 완성했다는 이 책은 고세훈 교수가 번역하는 데만 4년이 걸렸다.

    공급사이드 경제학이 퇴조하고, 케인스주의자가 노벨경제학상을 받는 이 때에, <레디앙>이 고세훈 교수를 만나 지금 시대에 다시 케인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들었다. 그리고 영국노동당 연구자인 고 교수에게 한국의 진보정당들에 관련한 의견을 물었다.

       
      ▲ 고세훈 교수

    고세훈 교수는 “실현가능한 정도의 이론적 입장이라서 케인스가 매력적”이라고 말하면서 “주류경제학적 계량 방법론에 함몰된 케인스주의와 케인스의 원래 주장이 다르다”고 “케인스 정신을 잃은 케인스주의 경제학”을 비판했다.

    이어, 고 교수는 “탈규제나 감세로 부자들의 투자를 유인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케인스의 주장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매력을 주자는 게 케인스의 주장”이라고 케인스 이론의 현재적 의미를 전했다.

    또, 고 교수는 “지금의 정당정치 단계에서는 구조가 아니라 개인이 굉장히 중요하다. 미숙하고 전망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영웅에게 의존하는 것이 전략적 선택”이라며 “심상정과 노회찬을 빨리 의회에 보내는 게 진보신당의 살 길”이라고 주장했다.

    아래는 고세훈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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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학자들은 케인스에 관심 없더라

    – 정치학자가 『케인스』를 번역한 이유는 무엇인가?

    = 차분히 앉아서 생각해보면 케인스가 별 거 아니지 않느냐. 중도이념으로서 내세울 수도 있는 케인스를 차분히 보자는 의미다. 실현가능한 정도의 이론적 입장을 이야기해줄 수 있는 인물이 누가 있을까, 그런 점에서 케인스가 매력적이라 생각해왔다.

    그런데 경제학자들은 케인스에 관심이 없더라. 지극히 소수 경제학자들만 케인스에 관심 있는데, 그들도 주류경제학에 의해 훈련돼 있어서인지 케인스의 원래 모습과 정신을 소실하고 있는 것 같다. 케인스는, 정치학에서도 접근할 수 있을 정도로 주류경제학의 계량적 방법 같은 데서 많이 떨어져 있다.

    – 1,600쪽이 넘는 책이라 번역에 시간이 오래 걸렸을 것 같다. 여러 언론에 보도된 것을 보니 세 권짜리 원본도 있다 하고, 이번에 번역된 것은 한 권짜리 단행본이라 하는데, 두 책 사이에 차이는 무엇인가?

    = 2004년 말에 번역을 시작해서 2008년 2월에 마치고, 수정하는 데 또 1년이 걸렸다. 처음에는 세 권짜리 방대한 것을 보고 저자 스키델스키에게 연락했더니, 저자가 그것을 번역하는 건 무리라면서 새로 낸 단행본도 있는데 그걸 번역하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하길래 그걸 번역했다. 일반 출판사에서는 이런 책을 내기가 많이 어려운데 후마니타스 박상훈 박사가 출판해준다고 해서 고마웠다.

    3부작에는 케인스 이론 부분이 더 상세하게 설명돼 있고, 부록에 어지간한 문서가 다 갖춰져 있다. 이번 번역본은 그런 부록 부분 등이 조금 축약된 것이다.

    케인스 이론은 역사와 공공적 책무의식의 산물

    – 책이 워낙 두꺼우니 읽지 못할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케인스』를 소개해달라.

       
      ▲ 『케인스』(후마니타스)

    = 이 전기에서는 이론도 상세히 다루고 있는데, 독특한 것은 현실과 이론을 함께 다루고 있는 점이다. 케인스의 이론 작업 자체가 현실에 대한 실천적 대응으로 나온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주 충실한 케인스 소개자인 조순 선생이 이론적 해설에 충실하다면, 이 책은 어떤 시대적 배경, 어떤 논쟁을 통해 케인스의 주장이 도출됐는지, 그리고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변증법적으로 이야기한다.

    케인스의 이론은 민감한 책임의식과 공공적 책무의식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런 책무의식에서 케인스가 이론화 작업에 몰두한 것이고, 그런 책무의식을 실천키 위해 무급의 경제관료로 일하기도 했다.

    경제학도들에게는 케인스 이론의 배경을, 비경제학도들에게는 역사와 실천, 케인스 삶의 놀라운 철저함을 보여주는 교양서다.

     

       
      

    지금 상황에서 사회적 타협 가능성 제로

    – 주대환 전 의장이 근래 사민주의나 영국노동당 모델을 전파하는 데 정력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런 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주대환 선생 스스로 정직한 분이라 생각한다. 시대를 정직하게 고민하고. 주 선생이 간여하고 있다는 단체가 문제를 조금 미시적으로 보고 사안별 개혁에 치중하는 느낌이지만 건전한 단체라 생각한다. 열정을 가지고 자기 방식대로 노력하는 걸 탓할 수는 없다.

    주 선생이 사민주의 같은 걸 많이 얘기할 텐데, 사민주의는 다른 걸 배척할 정도로 형성된 이념이 아니다. 사민주의 자체가 굉장히 포괄적인 개념이고, 다른 개념에 공격적 이념이 아니다. 고전적 사회주의가 사민주의를 공격하지 않는다면, 사민주의도 공격해서는 안 된다.

    주대환 선생이 영국노동당을 모델로 한다는 건 뭘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 당에도 강온이 있고, 시대에 따라 끝없이 변해간 다양한 모습의 당이다. 주 선생이 영국노동당의 어떤 측면이나 특징을 강조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영국노동당뿐 아니라 독일사민당이나 스웨덴사민당에 대해서도 극좌에서 극우까지 다양한 시각에서 이런 당들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는 이 당들에 대한 표준적인 연구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모델을 따라가자는 것은 왜곡된 상을 미리 만들어놓고 우기는 것일 수 있다.

    가능하면 연대, 내적 봉합하며 쟁점을 줄이고 최대공약수를 만들어야 한다. 진보신당이라는 새로운 조직이 생겨나니까, 조직에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집단도 생겨난다. 조직이 정치단체로서 지향해야 할 이념과 이런 집단들의 이해관계가 뒤섞여 혼란을 주기도 하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노-심 살리는 것이 진보정당 전략적 선택

    – 정치학자로서 요즘의 정당정치를 보자면 어떤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 조언한다면?

    = 지금의 정당정치 단계에서는 구조가 아니라 개인이 굉장히 중요하다. 진보정당에서는 심상정이나 노회찬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렇게 미숙하고 전망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영웅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전략적 선택이다. 민주주의라며 노-심을 끌어내리려는 것은 천박한 짓이다. 심과 노를 빨리 의회에 보내는 게 진보신당의 살 길이다.

    영국노동당 같은 경우 기본적으로 실용주의 정당이고, 개인들의 역량이 당의 구조를 만들어 왔다. 영국노동당에서 노동조합이 굉장히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중요한 계기에서는 한 발 물러나 지도자들에게 당 진로를 맡긴다.

    열정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들이 중요하다. 지도부는 당 내외에서 협상해야 하기 때문에 언제나 실용적일 수밖에 없다. 그들을 이론이나 독트린을 빌미 삼아 끌어내려서는 안 된다. 노회찬이나 심상정 같은 사람들 없이 진보신당이 성장할 수는 없다.

    노-심이 국회 밖에 있는 것은 진보정당의 손실일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손실이다.– 이야기 중에 ‘케인스의 원래 모습’이라거나 ‘진짜 케인스’라는 표현을 쓰는데, 무슨 뜻인가?

    = 주류경제학적 방법론에 함몰된 케인스주의와 케인스의 원래 주장이 다르다는 뜻이다. 『일반이론』이 나온 직후부터, 케인스 자신은 반대했던 계량적 방법론화가 시작됐고, 결국 주류에 포섭됐고, 그 포섭 과정에서 케인스의 정신은 소실됐다. 편견일 수도 있지만, 요즘의 이러저런 케인스 학파들이 케인스 정신을 잘 이해하는지 모르겠다.

    주류경제학에 포섭된 ‘케인스주의’

    – 케인스주의의 방법론, 계량 등이 케인스의 인식이나 깨달음을 압도했다는 뜻인가?

    = 방향 감각도 잃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구태여 경제학적으로만 접근하지 않아도 될 만큼 케인스 이론은 현재의 경제학으로부터 멀어져 있다. 비경제학적인 시각에서 케인스에 접근할 수도 있고, 그래야 케이스 이론에 대한 이해와 활용이 훨씬 더 풍부해진다고 생각한다.

    – 요즘, 케인지안으로 불리는 몇몇 학자들에게 자주 묻는 질문이 있다. 신자유주의와 케인스주의가 과연 다른 것일까?

    = 근본적으로 다르다.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 철학에서 나온 것이고, 시장의 작동에 신뢰를 보내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에서는 비자발적 실업은 없다고 하지 않느냐. 임금을 낮춰 구직하면 될 것을, 그게 싫어 취업하지 않는 자발적 실업이고, 노조가 그런 시장 작동을 방해한다고 적대한다. 그런데 케인스는 노조는 주어진 제도이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 학자나 학파로 보면 케인스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다르지만, 경제 상황에 따라 때로는 케인스주의로 기울고 신자유주의로 기울며 이어지는 일관된 자본주의 국가 정책이지 않는가?

    = 물론 그렇다. 완전한 케인스주의도 완전한 신자유주의도 없다.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정도의 차이다. 상황에 따라 국가 개입의 정도가 정해져야지, 사전적 선험적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케인스도 그렇게 말했다.

    – 그래서 지금 다시 케인스를 이야기한다면 무엇일까? 그 함의는?

    = 지금 금융위기가 실물에 영향을 미치고, 침체된 실물이 다시 금융에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케인스는 금융에 굉장히 적대적이었고, 이자율은 늘 낮아야 하고, 금융소득자들이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조업보다 금융업 종사자들이 더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보며 분개했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은 돈을 퇴장시키려 한다. 지금 돈이 없는 게 아니다. 재벌들이 엄청난 사내유보금을 움켜쥐고도 투자하지 않는 것만 봐도 그렇다. 탈규제나 감세로 부자들의 투자를 유인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케인스의 주장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매력을 주자는 게 케인스의 주장이다.

    자본주의는 불안정하다, 가난한 사람들 구매력 늘려라

    이명박 정부는 신자유주의를 신봉한다는데, 정작 그 정부에는 철저한 자유주의자도 없다. 관치경제 시절부터 이리저리 살아남은 사람뿐이다. 이미 실패로 끝난 레이거노믹스 실험을 무작정 따라할 만큼 역사의식도 없다.

    – 부자들이 자기자산의 상대가치를 높이기 위해 화폐를 퇴장시킨다는 주장, 유효수요 창출 주장 외에도 케인스의 현대적 의미가 더 있을 것 같다.

    = 케인스가 지금 시대에 말하는 것은 명백하다. 자본주의 시장체제는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보유되나 투자되지 않는 화폐,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시간이 존재하는 한 자본주의는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없는 비합리적 세계임에도, 주류경제학은 자신들이 자연과학 방법론에 가장 가까이 가 있다는 식으로 주장하며 자본주의를 계산하여 확실성을 부여한 양 행세한다. 그러면서 그 계산에 입각해 수많은 파생상품을 만들었고, 결국 재앙을 맞은 것이다.

    – 경제위기 탓도 있고 하여 노조운동 안에서도 ‘일자리 나누기’가 의논되고 있다. 평소 사민주의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주장해온 학자로서 이를 어떻게 평가하나?

    = 그런 사회적 합의를 하려면 합의 주체들이 대체로 대등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노-자의 권력자원이 현저하게 차이 난다. 한국 노동운동이 너무 세다, 과격하다고들 말하는데, 한국 노동운동이 실제로는 매우 취약하다는 걸 알려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려면 국가가 열등한 세력 편을 들어주며 개입해야 하는데, 김대중 노무현 때도 그렇게 하지 않아 노사정 위원회가 실패했었다. 더구나 지금 정권에서 사회적 대타협 같은 것은 말도 안 된다.

    힘이 있어야 한다. 힘이 있으려면 연대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에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조직에 생존을 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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