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건추는 왜 해산하였나?
        2009년 03월 09일 08:0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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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면서 

    며칠 전 진보신당을 탈당했다. 민주노동당 탈당사태를 전후하여 전진을 탈퇴하고, 2월 28일 노건추도 해산됐으니 이제 완벽하게 노동자 정치운동에서 손을 떼는 셈이다.

    민중당을 거쳐 백기완 선거대책본부, 한국사회주의노동당, 국민승리 21, 민주노동당으로 이어져 왔던 20여년 젊은 날의 청춘이 고스란히 담긴 노동정치를 정리하면서 마지막 시도였던 ‘노동자 진보정당 건설 전국추진위(준)'(이하 노건추)를 왜 해산했는가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

    “진보진영의 재구성을 말하려면 그 정도의 준비와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민주노동당이 아니다’라고 얘기하기 전에 운동이 어떻게 재편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신당 논의는 너무 준비 없이, 급하게, 대중적 논의 없이 진행되고 있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보내지지 못한 기고문

    특히 노동운동의 재편과 어떻게 맞물려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에 대한 종합적인 고민이 없습니다. 지난 1월 11일 민주노총 정치위원회에 보고된 것에 따르면 현재 민주노동당에는 32,320명의 조합원 당원이 있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우리가 설득하고, 조직한 소중한 당원들입니다. 대부분 현재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조만간 큰 혼란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정치운동의 복잡함이 그대로 대중운동의 혼돈으로 옮겨질 것입니다. 생각해 보시지요. 한 사업장 안에서 두 개 혹은 세 개의 정당으로 나뉜 모습을…

    그것도 하나의 역사적 선택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 적어도 왜 그래야 하는지는 설명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1년 전 분당사태를 둘러싸고 논쟁이 한창일 때, 공공연맹 정치위원장을 그만 둘 때쯤 <레디앙>에 투고하려고 썼던 글이다. 물론 보내지는 않았다. 어제(7일) 어느 노동조합의 지부장을 만났다. 그는 조합원의 대부분이 민주노동당의 당원이었던 대규모 사업장의 지부장이다.

    “아직도 민주노동당 당원이야?”
    “조합원이 1명이라도 있으면 난 남아 있을 거야.”
    “몇 %나 탈당?” “글쎄 한 30% 정도? 문제는 탈당한 사람들이 진보신당에 거의 가지 않았다는 거지.”

    그런 그의 고민이 바로 노건추를 만든 이유였다는 점에서 노건추의 해산이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왜 노건추를 만들었나

    노건추를 처음 고민한 것은 민주노동당 탈당 사태 직후 차분하게 새로운 정당을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과거에 있었던 노정추, 노진추, 진정추, 사정추 등 수많은 시도들을 돌아보고 이름을 작명했다.

    탈당을 전후로 하여 상처를 받았던 사람들을 만나고, 조합원들의 탈당과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 방침 사이에서 골머리를 썩고 있는 노조 간부들을 만나면서 새롭게 노동정치를 시작해 보자고 설득했다.

    적어도 폐허 위에서 노동정치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반성과 철저한 돌아봄이 필요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민주노총이 주도하여 만든 정당이 민주적이지도 않고 거꾸로 패권적인지, 왜 조합원이 소외당하는 구조로 발전했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은 어떤 것인지를 규명해 보고자 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모여 “진보신당의 노동위원회냐, 아니면 새로운 노동정치의 구심이 필요하냐?”에 대한 논의를 했고, 그 결과로 노건추가 만들어졌다. 진보신당의 노동위원회 정도로는 노동정치의 재구성이 어렵다는 데 동의가 이루어 졌다. 2008년 2월 11일의 일이다.  

                                                                                                                                  초기 논의를 위한 자료에서
     
    진보신당 직접 참여
    노건추 건설로 참여
    조직형태
    진보신당 노동위원회 형태
    노건추 전국위원회 형태
    장점

    신속한 방침에 의한 집행

    조직내 혼선 없음

    독자적인 구심 형성 가능

    참가 폭을 넓힐 수 있음
    단점

    노동자가 하나의 세력으로 대응 어려움

    반성과 이후 대안의 협소함

    총선 전 신당 미참여자 조직화 어려움

    방침 확정 토론까지 시간 걸림

    일정한 조직 내 혼선

    진보신당 추진세력과의 협의문제

    그러나 정당법상의 이유로 정당의 꼴을 갖춘 ‘총선 대응기구’에 불과했던 진보신당은 태생부터 하나의 정당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창당을 다룬 원탁회의에서 문제제기를 했지만 도도히 흘러가는 물줄기에 기껏 돌 하나 던지는 것 정도였다.

    아래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모아나가자는 의견은 정치 현실을 모르는 철부지의 것이었다. 당시는 진보신당이 총선을 앞두고 사활을 건 질주를 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건추 구성원 내부에서도 ‘동의는 했으되 내용이 서로 달랐음’이 바로 드러났다. 막 시작한 선거운동을 함에 있어서 노건추가 현장에 혼선을 준다는 우려로 인해 내부 논란이 시작되었다. 심지어 진보신당의 비례대표에 출마자를 내야 한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노건추에 대한 판단이 달랐다. 이런 내부 혼선으로 인해 가장 중요했던 초기에 노건추는 활동을 정지하고 말았다.

    무엇이 문제였나?

    노건추는 아래로부터 다양한 세력을 모아 노동정치를 새롭게 추진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단지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것을 넘어서서 노동정치의 재편과 계급적 노동운동의 복원이라는 ‘전략’을 가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전략을 전술로 이해하는 사람들과의 의견을 조율하기 위해 지난 해 7월경 다시 모여 토론을 전개하고, 마침내 10월 18일 공식적으로 준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그 길은 예상보다 훨씬 힘든 길이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의 분당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졌던 사람들, 좌파정치의 통일을 얘기 하던 사람들, 정치에는 관심이 없으나 그래도 중요하다고 말을 하던 노동단체들 그 누구도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물론 노건추 발족을 앞두고 노동조합의 초청을 핑계로 미국으로 도망친 내 책임도 작지 않다.

    미국에서 돌아 온 후 운영위원회 등에 참가했지만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아서 여전히 서로의 생각을 맞춰가는 중이었다. 심지어 최근 어느 지역에서는 현장 활동가들의 토론을 통해 진보신당과 함께 가자는 선전물을 발간하기도 했다.

       
      ▲어느 지역의 선전물 내용 

    더 힘들게 한 것은 총선 직전과 마찬가지로 현실 정치의 흐름이었다. ‘노동자의 힘’을 해체하고 만든 ‘사회주의노동자 정당 준비모임’과는 2월 11일 서울지역 토론회를 시작으로 이제 막 본격적인 얘기를 시작하고 있는 상황이었음에 비해 진보신당은 3월 1일 제2창당을 앞두고 있었다. 따라서 긴 호흡을 가지고 노건추를 지속할 것인지, 해산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2월 28일 총회를 통해 해산을 결정했다. “시간은 좀 더 걸리겠지만, 노건추의 애초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하고 가능하다”는 사람들은 유지에, “사회주의정당 준비모임 등과의 노동정치 통일은 1~2년 안에 실현되기 어려우므로, 우선 진보신당에서 노건추의 문제의식을 실현하자”는 사람들은 해산에 초점을 두고 의견을 나누었지만 결국 내부 문제를 안고 그대로 가기에는 길이 멀었다.

    “방향은 맞다고 보면서도 여러가지 혼선이 생기고 있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방향이 맞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닌 상황이다. 판단을 내려야 한다. 조직이 목적이 달성되어서 없어질 수도 있고, 그 능력이 안 되어 없어질 수도 있다. 전망이 같아야 하는데 그 전망을 두고 계속 의견이 다르다면 현실을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라는 것이 내 입장이었다.

    돌아보면 해산된 이유는 처음부터 노건추를 바라보는 문제의식에 차이가 존재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던 셈이다.

    이후의 노동정치를 위해

    정치는 종합예술임에 틀림없다. 지난 3월 5일 열린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에서는 ‘진보정당세력의 단결과 통합을 위한 민주노총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통합시키기 위한 통합추진위원회가 구성된 것이다.

    한편 “탈당이 적어도 민주노동당을 빨리 망하게는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렇게라도 하는 게 역사적으로 기여하는 거 아니겠는가?”라고 민주노동당에서의 탈당을 적극 주장했던 사람들이 울산북구에서의 민주노동당과의 후보단일화 논의에는 함구한다. 이건 분명 희극(喜劇)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웃지 않는다는 데 있다.

    “왜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방침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진보신당, 사회주의 정당과 간담회를 하는 게 사업계획에 올라왔는가?”
    “잘 봐라. 사업계획 자체가 정당과 노동조합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다. 연구를 하는 데도 그게 문제가 되는가?”

    얼마 전 운수노조의 대협실 사업으로 정치위원회 구성을 올렸다가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논쟁이 된 내용이다. 결국 정치위원회 사업 전체를 삭제했다.

    아무리 좋은 씨앗일 지라도 제대로 된 흙을 만나지 못하면 죽고 만다. 노건추의 전략은 “첫째, 지난 10년을 겸허히 평가하고, 다시 쓰러지지 않을 노동정치의 대안을 마련하고자 한다. 둘째, 당장 어쩔 수 없는 것은 뒤로 미루더라도, 노동정치의 통일을 도모하고자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진보정치의 통일을 모색하고자 한다. 셋째, 노동정치를 다시 세우는 작업을 통해 노동조합운동의 복원에 복무하고자 한다.”라는 것으로 정식화되었었다. 그 꿈은 이제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노건추 해산 총회 모습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 결정을 존중하고 이해한다.”는 신뢰유지의 원칙을 확인하며 해산하던 날 밤 12시가 다되어 남은 사람들끼리 술을 한잔 했다. 서로 다른 길을 가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은 잃지 말자는 약속을 한 셈이다. “이렇게 웃으면서 해산하니 기분이 좋다”고 말했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어떤 길이 맞았는지는 훗날 역사가 말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 증명조차도 이제 내 손을 떠나 새롭게 노동정치를 실현해 나가는 사람들의 몫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10여년간 반목과 질시가 이어져 온 노동운동 안의 좌파정치를 마무리 지을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해 아쉽고, 아래로부터 제대로 된 진보정당을 다시 만들어 보려는 시도가 좌절되어 아쉽지만 그 역시 내 몫이 아닌 것 같다.

    수렁에 떨어진 노동운동과 진보정치를 다시 세울 조직적 토대가 만들어 질 수 있는 다른 기회를 기다릴 뿐이다.

    어려운 시기 양경규, 전재환, 장혜옥 대표 등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함께 한 동지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실력이 안 되어 단 한 번의 토론회 밖에 진행하지 못한데 대해 ‘사회주의노동자정당 준비모임’에 미안함을 전한다.

    조만간 노건추는 해산에 대해 공식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글은 온전히 개인의 생각일 뿐임을 분명히 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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