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는 반기독교적인 크리스찬”
    By mywank
        2009년 03월 06일 03: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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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당과 합장한 두 손. 보통 기독교 목회자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다. 하지만 ‘용산 참사’를 취재하면서 만난 최헌국 목사(47)를 생각하면, 거리에 있는 모습과 투박한 팔뚝질이 먼저 떠오른다. ‘싸우는 목사’, ‘거리의 목사’라는 수식어가 제법 어울릴 법도 하지만, 그는 “기도 생활도 열심히 하고 있다”며 “성경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평범한 목회자”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팔뚝질이 떠오르는 목사님

    최 목사는 진보성향의 기독교운동 단체인 ‘예수 살기’에서 서울경기 총무로 활동하면서, 지난해와 올해 ‘광우병 기독교 대책회의’와 ‘용산 참사 기독교 대책회의’ 결성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등 적극적으로 사회문제에 참여하며, ‘MB 정부’와 맞서고 있는 기독교 목회자 중 한 명이다. 

       
      ▲5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법정 앞에서 만난 최헌국 목사 (사진=손기영 기자)

    그는 ‘용산 참사 기독교 대책회의’ 활동과 함께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 집행위원을 맡으며, 각종 추모집회와 기자회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또 ‘촛불 교회’ 후신 격인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 활동을 지난 주부터 동료 목사들과 함께 하고 있다.

    최 목사는 평소 잘 웃는 편은 아니지만, 인상은 비교적 온화하다. 그런 자신을 두고, “주변에서 ‘부흥회를 잘 집도할 것 같은 외모’라고 말한다”며 농담을 종종 건네기도 한다. 그는 현재 교회를 개척하지 않은 채, 구파발에서 몇몇 가정을 방문하면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5일 오후 최 목사를 서울중앙지법 형사법정 앞에서 만났다.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 당시 경찰에 연행된 뒤, 벌금형이 선고된 동료 목사의 재판을 지켜보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것. 그는 “(기독교의 대표적 보수 교파인) 침례교 신앙을 갖고 있다”고 밝힌 뒤, 80년대 초반 신학생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침례교의 ‘별난 신학생’

    “보수 교단의 신학교를 다녀서, 진보적 시각의 학문과 신앙을 교수님을 통해서 접할 기회는 없었어요. 그래서 ‘KSCF(한국기독학생회 총연맹)’ 등 기독교운동 단체에 가입해 활동을 했어요. 또 신학교 내 독서모임에도 참여하면서 진보적 신앙과 학문을 접하게 되었죠.

       
      ▲최헌국 목사가 지난 2월 3일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의 사퇴를 요구하는 경찰청 앞 회견에 참석해,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82년 신학교에 들어갔는데, 은폐된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아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됐었죠. 그래서 동료 신학생들과 함께 진상규명을 요구하면서 신학교에서 ‘광주민주화운동 추모기도회’를 개최했어요. 보수적인 침례신학대학교에서 처음으로 벌어진 일이었죠.

    또 신학교 연극부 활동도 했는데, 공연 전에 불을 끄고, 객석을 향해 전두환 정부를 규탄하는 유인물 뿌리기도 했어요. 신학교 때 기도를 열심히 해서 ‘모범생’이란 말도 듣곤 했는데, 그런 행동을 벌인 제 모습에 깜짝 놀랐던 분들의 얼굴이 기억이 나네요.”

    최 목사가 생각하는 ‘진보적 신앙’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그는 “일부 보수교단에서는 성경의 문맥적 내용만 가지고 신앙을 이해하는 것 같다”며 “이들이 말하는 표면적 내용과 성경 속에 내재된 깊은 가르침에는 괴리가 있는 것 같다”고 비판한 뒤, 이야기를 이어갔다.  

    “고통당하는 자, 억압당하는 자, 가난한 자 등 ‘낮은 자’들과 함께 하고, 그런 분들을 위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고 목회자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예수의 정신을 제대로 담지 못한 기독교 신앙을 저는 오히려 ‘이단’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낮은 자’들 위해 거리로

    최 목사는 80년 대 말 처음으로 자신의 교회를 개척했지만, 이런 ‘신앙관’ 때문에 예배당에 머무르기보다는 ‘낮은 자’들의 아픔이 서려 있는 거리로 나서려고 했다. 그는 또 “침례교의 특성상 운동 지향적인 교회는 당시 만들 수 없었지만, 목회는 그런 방향으로 하려고 했다”고 회상했다.

    “고통과 아픔의 현장을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89년 교회개척을 시작했지만, 신학생 때 소중히 간직했던 정신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당시에도 철거민 문제가 심각했죠. 교인들과 현장에 가서 철거를 막고 이들을 위로하던 생각이 나네요. 기독교 운동 속에서 우리 사회에 작은 희망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시절이었죠.”

    2008년, 최 목사는 다시 거리로 나오게 되고, 이곳에서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수많은 ‘촛불 시민’들을 만난다. 그는 “경찰이 어린 학생들까지 무자비하게 연행하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며 이명박 정부와 맞서기로 결심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지난 1월 22일 ‘용산 참사’ 현장에서 ‘용산 참사 기독교 대책위’ 주최로 열린 추모기도회 모습 (사진=손기영 기자) 

    “지난해 5월 말이 되면서 촛불문화제 규모가 커졌고, 경찰은 집회를 막기 위해서 강경 진압까지 일삼았어요. ‘어린 학생들이 연행 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에 경찰 폭력을 막으러 동료 목사들과 함께 다시 거리로 나왔죠. 학생들까지 진압의 대상으로 보는 이명박 대통령은 참된 기독교인이 아닌 것 같았죠.”

    “MB, 반 기독교적 크리스찬”

    최 목사는 마지막으로 같은 기독교인인 이명박 대통령을 “반 기독교적인 크리스찬”, “한국 대형교회가 낳은 성장 지상주의 산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분은 거짓을 일삼고 그런 행동에 결코 거리낌이 없어요. 그분의 신앙심이 의심되는 부분이죠. 최근에는 반기독교적인 모습까지 보이고 있어요. ‘용산 참사’로 철거민, 경찰관 6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사과는 물론 이 분들의 죽음에 대해 전혀 안타까움을 내비치고 있지 않고 있어요. 생명 존중과 이웃 사랑을 강조하는 기독교정신에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죠.

    한국의 일부 대형교회들이 교세 확장 등 성장 지상주의로 나가면서, ‘기독교가 우리사회에서 해야 할 본연의 역할을 망각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어요. 이 대통령의 모습은 한국 대형교회의 왜곡된 성장주의가 낳은 산물인 것 같아요. 성장과 발전 앞에서는 도덕성, 인간성 그리고 생명존중 정신도 모두 쓸모없이 되버리는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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