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천만 오빠부대 거느린 꼴통 '림보'
    '성난 백인 정당' 공화당을 점령하다
        2009년 03월 06일 09: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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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화당 사과사태

    우선 이야기 한 토막.(아래 날짜는 모두 2009년임)

       
      ▲ R. 림보

    1월 16일.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 R. 림보: "나의 희망은 오바마 대통령이 실패하는 것" 발언.
    같은 달 27일. 공화당 하원의원 P. 깅그리: "림보 같은 방송 진행자들은 아주 쉽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그러면 안된다"고 발언.

    바로 다음날. 공화당 하원의원 P. 깅그리: 자신의 발언이 "아주 바보같은 것"이었다며 림보에게 사과.(깅그리 의원. 마치 림보의 노예처럼 처신한다는 평가를 받음).

    2월 28일. 공화당 전국위원회 의장 M. 스틸: "공화당의 지도자는 림보가 아니라 의장인 자신이며 림보는 선동적이며 저급한 방송 연예인일 뿐"이라고 발언.
    3월 2일. R. 림보: "스틸 의장은 공화당의 지도자가 아니라 전국위원회 의장일뿐. 좀 더 지도자 수업을 받으라"고 충고.

    같은 날.  M. 스틸 의장: "림보를 비난할 의도는 없었으며 자신은 림보를 대단히 존경할 뿐 아니라 림보는 당에 매우 중요한 보수주의의 대변자"라며 사과.(스틸 의장으로서의 리더십 크게 손상되었다는 평가를 받음).

    지금 림보에 대한 공화당의 굴욕적인 사과사태가 미국 뉴스, 특히 방송뉴스, 토크쇼를 도배하고 있다.

    R. 림보는 누구?

    도대체 림보가 누구길래 하원의원도, 당의장도 뭐라고 말했다가 바로 그에게 득달같이 사과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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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58세. 직업: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 프로그램: 1988년부터 매일 3시간씩 AM으로 미국 전역에 방송되는 ‘러쉬 림보 쇼’. 프로그램의 특징: 극우 보수주의 선동방송. R. 림보에 붙여진 수식어: 보수주의 지도자/공화당의 실질적 지도자 등. 청취자 규모: 대략 2천만 정도로 추산. 연봉: 수천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됨(2001년 3천만 달러였음).

    환경운동/여성운동 등에 극렬한 비난(예: 환경운동가 = 환경꼴통(environmental wacko), 여성운동 = 여성나치주의(feminazi)이라고 표현하는 등). 그러나 프로그램을 통해 AM 라디오의 중흥을 이끌었다는 점을 인정받아 여러 차례 진행자 상을 수상하는 한편 라디오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렸음.

    레이건은 1992년 림보가 미국 보수주의 목소리를 최일선에서 대변한 사람이라면서 공화당과 보수주의 이념을 전파한 공로를 치하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음.

    한편 림보에 대한 2007년 라스무센 일반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은 33%, 반대/비판여론은 62%로 대략 2대 1정도 비율로 반대/비판여론이 높음. 한편 림보는 조사 대상 언론인/방송 진행자 18명 중 최하위 평가를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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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하면 림보는 2천만이라는 청취자 수가 말해주듯 미국 보수주의의 기반, 즉 공화당의 핵심 지지층에 엄청나게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 아니다 다를까, 림보에 대한 비판 발언 이후 깅그리 의원은 그의 사무실로 쏟아진 비난전화와 이메일, 편지 때문에 결국 사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M. 스틸 역시 마찬가지다.

       
      ▲ R. 림보

    이들 뿐이 아니다. 다른 공화당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이 사안을 가지고 기자/앵커들이 아무리 질문을 해도 이들은 말꼬리를 흔들면서 요리조리 피한다. 오히려 어떤 의원들은 칭찬하기에 바쁘다. 왜? 막가파 림보가 무섭고 그의 막가파 청취자들이 무서운 것이다.

    대책 없는 공화당

    위의 이야기는 공화당이 공당으로서 과연 적절한 위상과 나아가 정책정당으로서의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를 묻게 하는 사례이다. 우선 공화당은 현재 지도자가 없는 정당이라는 것이다 -오죽하면 극우보수주의 선동 방송인에 끌려 다니느냐 하는 점에서.

    한편 지도자가 없다는 것은 정책정당으로서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오바마의 정책을 반대만하고 있다는 점에서-을 의미할 뿐 아니라 당을 하나로 묶어 줄 수 있는 비전도 없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지난 해 11월 선거에서의 대패로-대통령, 상하양원, 주지사 등등을 모두 포함해서-공화당이 충격에 싸여 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이것이 2006년 중간선거에서의 패배가 더 큰 규모로 이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그 충격의 깊이도 매우 클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당의 진로, 나아가 보수주의 전체의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고, 답이 나오려면 꽤 긴 시간이 걸릴 것 역시 당연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다.

    한편 공화당과 보수주의 집단은 돈(기업 후원), 정치권력(선거 승리), 정책능력(보수 씽크탱크들) 등에서 지난 30~40년간 감히 넘볼 수 없는 헤게모니를 구축해왔다.

    그러나 우익 기독교 집단의 대중동원/조직능력에 기대서, 시장만능-신자유주의, 네오콘-신보수주의-미국패권주의 같은 극단주의 정책을 펼친 결과, 당뿐 아니라 나라까지 경제 쓰나미, 전쟁 쓰나미의 역풍에 휘말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역풍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공화당과 보수집단이 남부 지역의 백인 정당, 시대적 변화에 동떨어진 집단으로 추락한 모습뿐이다. 또 말로는 균형예산, 낮은 세금, 국가안보, 경제정책 등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그것을 배신한 집단이라는 것이다.

    영원할 것 같았던 자본의 전체주의, 제국 아메리카의 꿈이 속절없이 무너져가는 것이다. 이것이 잠시의 일탈이라고 해도 힘겨운 판인데 그것이 아니라 지금 전개되는 양상이 근본적인 차원에서 다른 정치경제 체제가 시작되는 거대한 전환이라면?

    당혹스럽다. 무엇을 할 것인가? 뚜렷한 답이 없다. 그러다보니 오바마/민주당 법안에 뚜렷한 논리적 근거도 없이, 대안도 없이, 일단 반대부터 하고 보는 것이다. 마침 보수 유권자 집단을 사실상 지휘하는 림보도 그렇게 하라고 강력한 지침을(?) 내렸다.

    이것이 오바마의 경제회복 법안에 대해 반대표를 던진 178명 공화당 하원의원들 모두의 쓰라린 내면풍경이었을 것이다. 또 이런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41명의 공화당 상원의원 중 단 3명만이 찬성표를 던졌을 것이다. 물론 반대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이 세금감면 같은 흘러간 옛 노래만 틀어댈 뿐, 지금의 위기를 헤쳐 나갈 이렇다할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안개 속에서

    이 혼란 속에서 림보 같은 사람이 당의 갈 길을 주문하는 사실상의 지도자로 나선 것이다. 한편 공화당의 사과사태가 논란을 일으키고 문제가 점점 커지자 오히려 림보는 아예 맞장토론을 하자고 오바마 대통령에게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명실공히 보수의 대변자, 공화당의 지도자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민주당이나 리버럴들은 공화당이나 부시가 실패하기를 원했다. 오바마가 실패하기를 원한다고 말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림보는 반박한다. 감정적으로는 꽤 와 닿는 표현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정책이 잘못되었다, 그렇게 가면 실패한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대통령이 실패하기를 원한다’는 막가파식 발언은 전혀 다른 문맥의 이야기이다.

       
      

    미국민들에게 ‘정책대안 없는 정당’, ‘성난 백인들의 정당’ 쯤으로 인식되는 것은-TV 토크쇼 진행자로 명성을 날리는 D. 레터맨은 그가 동유럽의 조폭 두목처럼 보인다고 말한바 있다-정치적 자살골이다.

    그런데도 공화당 의원들이나 지도부는 극우선동가인 림보가 당의 지도자로 인식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지 아닌지조차 전혀 판단치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초라한 신세로 위축된 공화당의 무지가 낳은 굴욕이다.

    이 와중에 오바마와 그의 경제회복 법안이나 각종 정책을 두고 사회주의자라느니, 사회주의 정책이라느니, 미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몰아가고 있다느니 하는 선전도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공화당 의원들도 그렇고 각급의 보수주의자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나서서 사회주의, 사회주의 운운하고 있다. 어려운 살림살이에 누구하나 붙들고 분풀이라도 해야 속이 풀릴 애통터지는 사람들을 향해 바람을 잡고자 하는 선전이다.

    오바마의 실패를 원한다는 막말을 하거나 오바마가 사회주의자라는 선동구호를 통해서 증오와 우려를 털어내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또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잠시의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해 준다. 그러나 막말과 선동은 정책대안이나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선전선동이나 전술적 구호를 내세워 얻는 잠시의 심리적 안정감은 긴 분노와 우려의 시간으로 이어진다.

    이것밖에 길이 없다며 지난 수십 년간 열심히 만들어놓은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 정치경제 체제가 허물어지면서 공화당은 안개 속에서 헤매고 있다. 사상적으로 고갈되고 지적 자산을 탕진한 집단. 토크쇼 진행자한테 제대로 말 한마디 못한 채 끌려 다니면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공화당. 비극이다.

    * 이 글의 필자는 현재 미국의 한 대학에서 ‘미국 보수주의의 뿌리와 역사’에 대해서 연구 중이다.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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