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당 없는 복지개혁 어디까지?
    '계급전쟁'은 과도, 부시 이전 복귀
        2009년 03월 06일 08: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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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얼마 전 필자의 집안에서 심장수술을 한 사람이 있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병원비가 걱정이었다. 나중에 청구서를 받아보니 총 진료비는 2,000만원 정도이고, 이중 보험급여 대상이 1,300만원, 나머지는 비급여와 선택급여로 실제로 부담하여야 할 액수는 700만원 정도였다.

       
      ▲ 영화 <식코>의 한 장면, 한 남자가 찢어진 무릎을 직접 꿰매고 있다

    이 청구서를 보고 영화 식코가 생각이 났다. 손가락 두 개가 짤렸는데 하나는 2만달러(3,000만원), 다른 하나는 3만달러(4,500만원)가 들어 한 손가락 밖에 붙이지 못했다는 미국인의 이야기에 비한다면 아직은 부족하지만 우리의 건강보험은 썩 나쁘지 않은 것이었다.

    전국민 의료보험제도가 없는 몇 안되는 이 세계 최고(?)의 선진국에서 오바마 정부의 주도 하에 야심찬 조세-재정개혁안이 발표되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미국에서 ‘계급 전쟁’ 또는 ‘로빈후드식 개혁’이 시작되었다고 호들갑이다.

    이러한 호들갑은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왜냐하면 미국의 정책변화는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처럼 지배엘리트들이 미국의 압도적 영향을 받는 나라는 더더욱 큰 영향이 있다. 문제는 이러한 평가가 정당한지에 대해서 검토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고, 우리가 여기서 시사받을 만한 점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일 것이다.

    먼저 우문이자 난문을 하나 내보자. OECD 30개 회원국 중 조세부담률이 가장 낮은 나라를 꼴찌부터 4개국을 순서를 매겨보라.

    일단 꼴찌는 멕시코이다. (19.9%, 2005년) 그 다음은 한국이며(25.5%), 그 다음은 그리스와 미국이다.(각각 27.3%) 아마 조세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OECD의 통계를 보기 전까지는 이 순위를 알기는 매우 어렵다. 참고로 OECD 평균은 36.2%이며 OECD 국가 중 유럽 평균은 38.4%이다. (2005년)

    2.

    이 복잡한 조세통계를 검토해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왜 미국은 조세부담률이 유럽과 차이가 날까하는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하지 않고서는 오바마 정부의 조세재정 개혁에 대해서 올바로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의 획기적 증세라고 하는 것도 2009년 중앙정부 세입보다 2013년 세입을 GDP 대비 3.6% 올리는 것이고 재선되었을 경우 2017년 세입하고 비교하면 GDP 대비 3.9% 올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오바마는 재정적자 확대를 제외하고 자신의 임기 8년 동안 GDP 대비 약 4%의 증세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4%라고 하니 얼마 안되는 것 같은데, 이는 약 1조 8,560억달라(한화로 약 2,784조이고 우리나라 1년 세수의 12배정도 된다.)이다.

    그러나, 미국이 원래 조세부담률이 낮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조세부담률은 OECD의 평균치였다. 아래의 표를 보자.

       
      

    그런데, 70년대 중반부터 유럽이 전체적으로 지속적으로 증세가 되었던 반면 미국은 증세와 감세를 반복하였고, 클린턴 정부 시절 경제호황으로 한 때 29.9%(2000년)까지 달했던 조세부담률이 부시 행정부 이후에는 25.9%(2003년)까지 떨어지게 된다.

    미국이 전체적으로 조세부담률이 낮은 이유는 여러 가지 요인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조세구조상 미국은 연방세제로서의 부가가치세가 없기 때문에 GDP 대비 소비세 비중이 유럽보다 낮고, 사회보험이 발달해 있지 않기 때문에 사회보험료 부담 비중도 낮기 때문이다.

    OECD 세입 분류 상 소비세에 해당하는 항목 5,000의 GDP 대비 비중은 미국이 4.8%(2005년), OECD 평균이 11.4%(2005년)이고, 사회보험료인 항목 2,000의 경우 각각 6.7%, 9.2%이다.(참고로 한국의 조세부담률 증가는 사회보험료 증가에 힘입은바 크다.)

    이러한 조세구조의 정치적 원인으로 노동당이 없기 때문이라는 주장 또한 가능하다.(그러나, 유럽의 경우에도 노동당이 힘이 약한 경우에도 조세부담률은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을 보면 이것이 유일한 원인이 아닐 것이다.)

    가장 직접적인 것은 아마도 전국민 의료보험제도 내지 공적 의료시스템의 미비가 미국의 낮은 조세부담률을 강제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실제로 유럽의 경우 소비세와 같은 간접세 비중이 상당히 높은 편인데도 이것이 정당화되는 이유는 공적 의료시스템의 필요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비록 소비세가 부과 단계에서는 공평하지 않더라도 그 대부분이 지출단계에서 복지에 쓰인다면 소비세 부과가 어느 정도 정당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에는 세입 측면에서는 소득세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고 여전히 소득세가 강력하여 공정성은 확보되나 세출 측면에서 충분한 복지지출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오마바가 대선 선거운동 당시 자신의 어머니도 말년에 병원비 걱정을 했다라고 한 맥락은 이런 의미인 것이다.

    3.

       
      

    특히 오마바 정부의 조세 재정개혁안을 보면 2010년부터는 2조달러 이상을 사회보장과 메디케어(medicare)와 메디케이드(medicaid)에 쏟아 붓고 있고, 미국 사회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매우 부족한 사회복지의 확충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는 복지의 확대를 주창하고 있는 한국의 진보세력에게는 매우 고무적인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언론에서 떠들고 있는 계급전쟁이나 로빈후드식 개혁인지에 대해서는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마바 정부가 부자 증세를 유력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그것은 부시 정부 때의 부자감세 제도를 수정하는 의미가 강하다.

    예를 들어 부시정부는 소득세 최고세율을 39.6%을 35%로 내리는 등 부자들의 감세를 추진하였는데 오마바의 경우 이것을 다시 35%를 36%로 올리고, 25만달러(부부 합산, 싱글은 20만달라) 이상인 자에게 39.6%의 세율을 부과하여 과거의 세율을 회복시키려고 하고 있다.

    따라서 오마바 정부는 부시 이전 상태로 조세제도를 복원시키려고 하는 것이지 급격한 증세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8년간 GDP 대비 약 4%의 증세를 한다는 것도 결코 작은 것은 아니나 ‘계급전쟁’이나 ‘로빈후드’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과도하다. 오히려 오마바 정부의 개혁은 조세와 재정을 OECD 평균에 조금 더 근접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마바 정부의 제안대로 실행이 되더라도 미국의 조세부담률은 여전히 OECD 평균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며, OECD 국가 중에서도 하위권을 기록할 것이기 때문이다.

    4.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여기서부터이다. 오마바 정부의 개혁이 제대로 집행되는지도 보아야 겠지만, 노동당이 정치적으로 부재한 상태에서도 그것이 어디까지 진전될 수 있는가이다. 일단은 지금의 계획으로는 오마바 정부는 미국의 의료시스템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재정을 더 투여하는 방식을 취한 것 같다.

    그러나, 만약 여기서 더 나아가서 유럽식 내지 유럽에 준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한다면 필연적으로 재정은 더욱 필요하게 될 것이고, 과연 여기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하는 것이 필자의 관심사이다. 만약, 오마바 정부가 이를 실시할 수 있다면 노동당이 부재한 상태에서도 의미있는 복지확대가 가능하다는 하나의 예가 될 것이며 이는 한국의 진보진영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클 수 있다.

    한마디만 더 첨언하자. 한국은 왜 조세, 재정 개혁이 어려운가. 그 정치적 이유는 분명하다. 증세-복지 모델에 대한 정치적 지지는 그래도 40%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 끊임없이 감세기조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종부세와 상속세는 사회적 형평성을 위해서는 중요하지만 세수가 크지 않기 때문에 결국 오마바처럼 소득세를 개혁해야 많은 재원이 확보되는데, 이 양 정부는 소득세 감세에 누구보다 앞장섰다. 이렇기 때문에 현재의 야당은 정치적으로 현 정부의 부자감세에 대해서도 제대로 맞설 수 없는 것이다.

    필자는 오바마를 보면서 2002년의 TV에 나와서 독일의 라인모델의 긍정성을 역설하던 노무현을 연상되었지만, 이 둘이 분명히 다른 점이 있었다. 그래도 오바마는 최소한 조세 재정 정책에 있어서 로빈후드까지는 아니지만 자신의 지지층을 배신하는 정책은 택하지 않았다.

       
      ▲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 세율 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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