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적 논의기구’ 위상 놓고 대리전
        2009년 03월 04일 09: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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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야는 3일 언론 관련 법안 심의를 위해 이달 초 구성키로 합의한 ‘사회적 논의기구’의 성격과 구성 방식을 놓고 논란을 벌였다. 한나라당은 이 기구의 역할에 대해 “자문기구로 둔다”는 여야 합의를 따르면 된다는 생각이다. 민주당은 사실상 언론법 해법을 도출하는 기구로서 위상을 부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조선·중앙일보 등 보수 성향 신문들과 경향신문, 한겨레 등 진보를 표방하는 신문들도 여야처럼 편을 갈라 전선을 구축했다.

    국회는 이날 출자총액제한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산업은행 민영화 기반 마련을 위한 한국정책금융공사법 등 주요 경제관련법을 처리했지만 여야 합의에 따라 이날 처리키로 예정돼 있던 금융·산업자본 분리 완화를 위한 은행법 개정안과 디지털방송 전환법, 저작권법 개정안 등 언론 관련 2개 법안 등 일부 쟁점법안의 처리는 여야 조율 실패로 무산됐다.

    책임 공방은 당사자인 여야뿐 아니라 신문들 사이에서도 벌어졌다. 동아일보의 경우 “여야가 이날(3일) 국회에서 통과시키기로 전날 합의한 금산분리 완화 관련 법안과 미디어 관계법은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의 의사진행 방해로 끝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반해 한겨레는 “이날 한나라당의 일방적인 국회 운영은 야당의 반발을 불러왔고, 한나라당 의원들의 뒤늦은 본회의장 입장으로 법안 처리 시간을 스스로 단축시켰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4일자 주요 아침신문들의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경기 불황의 늪…병드는 한국사회>
    국민일보 <금산분리완화 법안 처리 무산>
    동아일보 <국정원 부서장급 대폭 물갈이/ 85% 교체…30%는 대기발령>
    서울신문 <‘금산분리 완화’ 은행법 처리 무산>
    세계일보 <금산분리 완화법 처리 무산>
    조선일보 <‘2차 쇼크’로 세계 경제 또 휘청>
    중앙일보 <‘금산분리 완화’ 은행법/ 국회 본회의 처리 무산>
    한겨레 <“국회 폭력도 형사사건처럼 엄정 처벌”>
    한국일보 <은행법 국회 처리 무산>

    “의결기구가 아니라 자문기구다. 논의된 결과는 참고의견일 뿐 수용할 의무도 없고 거기에 구속되지도 않는다.”(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전문가 집단의 의견과 여론 수렴을 통해 논의한 것을 바탕으로 독소조항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정세균 민주당 대표)

    3일 여야 대표의 발언이다. 중앙일보는 5면 기사 <미디어법 ‘사회적 논의 기구’ 신경전>에서 이를 두고 “전혀 다른 내용으로 들리지만 실제로는 같은 조직을 가리킨다”며 “전날 발표된 여야 합의안에 명기된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소속의 미디어 법안 관련 자문기구인 ‘사회적 논의기구’ 얘기”라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6면 머리기사 <‘미디어법 100일 시한’ 여야 동상이몽>에서 “자문기구로 설치키로 한 ‘사회적 논의기구’의 구속력을 놓고 동상이몽”이라며 “전날 합의를 놓고 한나라당은 ‘표결’에, 민주당은 ‘여론 수렴 등의 과정’에 방점을 찍고 있어서다”라고 전했다.

       
      ▲ 경향신문 3월4일자 6면.  
     

    ‘사회적 논의기구’의 성격이 일단 핵심 논제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3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그 결정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가 수용할 의무도 없고, 구속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의결 기구가 아닌 만큼 그 논의 결과는 참고만 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반면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여야가 합의한 대로 기구를 통한 여론 수렴 결과는 당연히 입법에 반영돼야 한다”며 “한나라당이 그 합의에 따른 법안 수정 등 여론 수렴 결과를 반영하는 노력을 게을리하고 원안을 고수하는 것은 전혀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법안 내용에 대해서도 다른 궤도를 타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한나라당은 재벌의 지상파 방송 지분 확보에 대해 “0%까지 수정할 수 있다”고 제안한 바 있으나, 미디어특위 정병국 위원장은 “논의가 새로 시작된 만큼 신문이나 대기업은 20%라는 당초 안에서 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은 재벌과 신문의 방송 진출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100일이 지난 뒤 합의에 이르지 못했을 때 한나라당은 “의회주의 원칙에 따라서 표결처리한다고 여야가 합의했다”(박희태 대표)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는 “실질적 국민 의견 수렴 과정이 이행되지 않고 일방 처리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독소 조항’이 고쳐지지 않으면 표결을 막겠다는 취지라고 신문은 풀이했다.

    언론 관련 법안 처리와 관련, 여야가 합의 다음 날부터 유리한 고지 선점을 위한 각축전에 들어간 가운데 신문들도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 4일자 조선일보(앞)와 한겨레의 사설 제목은 다음과 같다. <국회, ‘사회 기구’에 결정 떠넘겨선 안 된다>와 <‘사회적 논의기구’에 실질 권한 부여해야>. 제목에 드러난 입장이 제가끔 뚜렷하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사회적 논의기구가 입법 주체일 수는 없다. 법안을 제출하고 심의하고 통과시키는 것은 국민들이 직접 뽑은 국회의원의 고유 권한”이라며 “이 기구에 사실상 의결권을 주자는 것이나, 합의한 내용을 국회가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국회의 권한을 뺏거나 줄이자는 위헌적 주장이다. 일부 야당 의원이 이런 주장에 동조하는 것은 스스로 ‘거수기’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 조선일보 3월4일자 사설.  
     

    중앙일보도 사설 <‘사회적 논의기구’는 자문 역할로 그쳐야>에서 “우리는 이 같은 기구는 법안 심의의 주체가 국회라는 원칙을 위협하는 편법이며, 현실적으로도 갈등을 봉합하기보다는 확대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자사 논조를 환기시킨 뒤 “이런 기구는 국회법에 없는 일종의 국회 자문기구다. 그러므로 자문에 그쳐야지, 기구가 법안을 압박하거나 정당이 기구에 기대어 정치적·이념적 주장을 내세워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겨레는 사설에서 “한나라당이 진정 언론장악 의도가 없다면,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논의기구에 새로운 해법을 도출해 낼 수 있는 위상과 권한을 주는 게 마땅하다”며 “그러지 않고 이를 단순히 요식행위로 취급한 채, 결국에 가서는 의석수를 앞세워 힘으로 문제법안을 밀어붙일 생각이라면, 누가 그 들러리를 서려 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실질적 논의가 가능한 인적 구성과 합의도출 절차 및 회의 내용에 대한 투명한 공개, 그리고 기구 의견 존중 등의 원칙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관련 당사자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힘을 갖고 있는 한나라당이 진지한 태도로 임하는 게 관건”이라고 조언했다.

       
      ▲ 한겨레 3월4일자 사설.  
     

    경향신문도 사설 <족벌신문 방송진출 길 터주자는 것인가>에서 원칙론을 폈다. 신문은 “한나라당의 미디어법은 몇몇 족벌신문들의 방송 진출 길을 터주기 위한 것이라는 혐의를 피하기 어렵게 됐다. 철두철미 정권에 우호적인 족벌신문들의 논조를 볼 때 이는 결코 억측이 아니라는 생각”이라며 “신문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이들이 지상파에까지 진출하게 된다면 여론다양성은 회복불능 상태에 빠질 우려가 높다. 이는 여야가 합의한 ‘사회적 논의기구’에서 깊이있게 다뤄져야 할 중대 사안”이라고 했다.

    서울신문도 사설을 통해 “정치권에서 벌써부터 ‘참고만 한다’느니 ‘자문만 하면 된다’면서 (사회적 논의의) 의미를 격하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세계일보와 한국일보 등은 ‘사회적 논의기구’의 출범 자체가 일단 중요하다는 시각이다. 세계일보는 사설에서 “자기만 옳다는 일방적 주장으론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벌써부터 이래서야 논의기구가 순조롭게 출범이나 하겠는가”라며 여야를 싸잡아 비판했다. 한국일보는 “여야 동수로 구성한 기구에서 논의가 접점에 이르면 당연히 수렴ㆍ반영되고, 평행선을 그리면 참고용에 그친다. 지금은 그 여부를 예단하는 대신 조속한 기구 구성에 임하는 게 여야의 책무”라고 충고했다.

    한겨레의 경우 기사를 통해서도 여당의 태도를 비판했다. 6면 머리기사 <여당 ‘언론법 논의기구’ 위상 깎아내리기>에서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사회적 논의기구’를 “단순 자문기구”라고 입맛대로 규정하고 대기업의 지상파 진출 배제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이 “원점에서 다시 토론해야 한다”고 했다는 건 이 기구의 위상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란 것이다. 신문은 “한나라당은 사회적 논의기구와 별도로 상임위 차원의 공청회를 따로 열겠다고 밝히는 등, 논의기구를 갈수록 격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같은 면 하단에 <앞선 2차례 방송법 개정땐 ‘합의기구 제안’ 대부분 반영>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어 압박했다.

    한겨레는 14면 통단 기사 <지상파 양보하는 척, 대기업 종편(종합편성채널)은 사수…‘고단수 한나라’>를 통해선 한나라당이 전략적으로 입장을 선회했다는 주장을 폈다. 신문은 “언론관계법을 놓고 민주당과 대치했던 한나라당은 ‘대기업의 지상파방송 지분 보유를 원천 금지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조선·중앙·동아의 지상파 진출 및 대기업의 보도·종합편성 채널 진입 허용’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버텼다”고 전한 뒤 “대기업의 지상파 진출 허용은 애초부터 ‘접을 수 있는 카드’임을 전제로 꺼내든 고도의 ‘협상용 조항’의 성격이 크다. 지상파보다 종편에 주목해야 한다”는 강상현 연세대 교수의 말을 인용했다.

       
      ▲ 한겨레 3월4일자 14면.  
     

    이어 “종편채널은 케이블방송이지만 지상파방송처럼 보도·교양·드라마·오락 프로그램 등을 종합편성할 수 있다. 한나라당이 종편에 집착하는 까닭은 정치적 부담이 큰 지상파 허용 없이도 뉴스 보도가 가능한 종편채널 확보만으로 지상파 진출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경향신문은 23면에서 “한결같이 ‘합의 처리’를 강조하면서도 각론에선 엇갈리는 보수·진보 성향 언론시민단체 대표들의 ‘사회적 논의기구’ 관련 제언을 3일 들어봤다”면서 김영호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와 이민웅 공영방송발전시민연대 공동대표 의장을 인터뷰한 내용을 나란히 실었다.

    김 대표는 “야당인 민주당이 큰 실책을 했지만 여야가 논의기구를 꾸린다면 한나라당의 미디어법안만 다뤄서는 안되고 야당과 시민단체·학계의 대안을 함께 놓고 토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논의기구에서는 법안과 함께 현재 국내 방송산업 실태를 객관적으로 조사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법안이 뭔지 따져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경향신문 3월4일자 23면.  
     

    이 의장은 “이번 논의기구는 입법 주체인 국회가 주도해야 하겠지만 미디어학자와 방송 전문가 외에도 이해당사자인 방송사와 신문사의 대표자가 반드시 논의기구에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논의기구에서 한나라당의 미디어법안뿐만 아니라 야당과 시민단체·학계가 내놓은 대안을 함께 포함시켜 토론하자는 진보적 시민단체의 주장에 대해서도 찬성한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논의기구 구성안에 대해서는 “문방위가 제 기능을 하도록 합의기구는 국회의장이 아닌 문방위 밑에 두는 게 마땅하다”며 “한나라당과 민주당 측 인사를 동수로 구성하기보다 국회 의석 비율에 따라 참여자를 배분하고 합의 기한도 엄수해야 한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민동석 전 정책관이 3일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한 MBC TV <PD수첩> PD 6명 등 제작진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정식 고소했다. 한겨레는 “농식품부는 지난해 6월 명예훼손 혐의로 피디수첩 제작진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으며, 이번 고소장 제출은 검찰이 이들을 형사처벌하려는 조처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해 4월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의 위험성을 보도한 이후 이를 ‘왜곡 보도’라고 주장하며 지난해 6월 검찰에 수사만 의뢰했었다. 이들이 직접 고소장을 제출함에 따라 수사팀이 교체되며 9개월을 끌어온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와 관련한 검찰 수사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 경향신문 3월4일자 23면.  
     

    경향신문은 23면 기사 <검·경·방통심의위, MBC ‘전방위 압박’>에서 경찰이 MBC 노동조합 집행부 3명에 3번째 출석을 요구하고 노조의 ‘5개 국어 유튜브 동영상’ 제재를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검찰이 <PD수첩> 재수사에도 나선 사실 등을 들며 “이명박 정부가 검찰·경찰·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을 통해 MBC에 대한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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