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돈 써야, 경제가 살지요”
    2009년 03월 02일 05: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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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대우조선 노동조합 백순환 부위원장이, 올해 임금교섭을 회사에 일임한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의 오종쇄 위원장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입니다. – 편집자 주

오종쇄 위원장님! 어려운 시기, 이른바 대기업노조 임원 역할 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지난달 26일 오종쇄 위원장님께서 저에게 직접 전화를 하셨지요. 대우조선노조는 조합 소식지를 통해 2009년 단체교섭을 회사에 위임한 현대중공업노조에 대한 비판 글을 실은 바 있습니다.

이에 소식지 발행인인 최창식 노조위원장과 최인동 편집국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겠다는 이야기를 그때 들었습니다. 저는 설마 했는데 다음날 울산 동부경찰서에서 출석통지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금치 못했습니다.

오 위원장을 처음 본 것은 정확히 기억할 순 없지만, 지난 금속산업연맹 2기 임원을 같이 하면서 서로를 많이 알게 되었지요. 벌써 7~8년은 된 셈이네요. 오 위원장과 가깝게 지내면서 나는, 서글서글한 성격에 붙임성이 좋아 누구와도 빨리 사귀는 능력을 정말 부러워했습니다.

   
  ▲ 오종쇄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왼쪽)과 백순환 대우조선 노조 부위원장

옛 동지, 서로의 철학이 이렇게 다르다니

특히 한국방송통신대학에서 경제학을 함께 공부하면서 사물을 보는 관점에 공감이 형성되는 부분이 많았지요. 당시 연맹 임원 역할을 함께 수행하면서 가끔씩 의견 차이도 있었지만 노동자적 관점과 원칙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우리 두 사람의 철학이 이렇게 다르게 나타날 줄 정말 몰랐습니다.

오 위원장이나 저나,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불씨를 지핀 현대엔진 노조결성과 대우조선 노조설립투쟁의 핵심이었지요. 그 당시에는 노동자의 참삶을 위해 목숨까지 걸고 싸웠지 않습니까?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였지요.

그 어려운 길에서 정말 아끼던 동지들의 죽음을 보며 피눈물을 흘리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들이 구속되고 해고되고 가정이 파탄나고, 괴로워하고 슬퍼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오 위원장도 이 사실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쟁취한 소중한 노동3권을 경제위기란 명분으로 허망하게 내던질 수 있습니까? 노동3권을 버리면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까? 저는 절대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적어도 오 위원장은 경제의 기본인 수요와 소비의 원칙은 아시고 있지 않습니까? 상품을 사줄 고객이 있어야 상품을 생산하고 운반하고 운반도구를 만들고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야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상품을 구매할 돈이 없어 계속 소비가 줄어들면 경제가 다시 살아나겠습니까? 그것은 아니지요. 지금 우리나라에 아직 일감이 좀 있는 대형조선소에서 일자리와 소비력이 창출되지 않으면 도대체 어디에서 경기활성화 방안을 찾겠습니까?

돌이켜 보면 87년 대투쟁은 노동자들을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대한민국 경제를 한 차원 향상시킨 역할도 하였던 것이지요.

84년부터 대한민국은 엄청난 무역흑자를 기록했지만, 국가경제규모는 후진국을 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중에 민주노조가 등장하면서 임금인상이 이루어졌고, 각 가정마다 TV를 비롯한 가전제품이 팔리기 시작하면서 굴지의 대기업들은 내수를 바탕으로 세계적 기업으로 탄탄하게 성장하였습니다.

91년부터는 자동차 판매가 급격하게 늘어났고, 아파트 수요 급증에 따라 건설경기까지 호황을 누렸습니다. 이처럼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은 소비를 촉진시키고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토대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임금인상은 오히려 경제활성화 토대

그러던 와중에 한국경제는 관(官)과 한보, 기아 등 부패재벌이 벌인 놀이에 의해 IMF사태를 맞았습니다. 오 위원장도 지금의 경제위기가 노동자들의 잘못이 아니라, 세계 투기금융자본이 원인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부지런히 일하고 임금 받아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그런 노동자가 경제위기의 책임을 모두 뒤집어쓰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으리라 봅니다. 누구는 이 불황에도 몇 백 억의 전용기를 구매하는데 말입니다.

오 위원장님! 위원장께서 세계1위 수주량을 자랑하며 수조 원의 유동성 현금까지 보유한 자본에게까지 우리의 노동3권을 위임하자고 하는 바람에, 진짜로 자금력마저 한계가 있는 중소영세사업장 사장들이 “대공장도 저러한데 작은 곳에서 웬 파업이고 임금인상이냐”고 술렁이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립니다.

정말 어려운 사업장에까지 임금인상을 기대하기 힘들 수 있겠지만, 올해 임금인상을 어떻게 할지 노동자 스스로 자주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기회 자체를 자본에게 떠넘길 수야 없지 않습니까. 87년 노동3권 쟁취의 주역이 지금은 전국의 크고 작은 현장의 노동자들에게 ‘노조는 무슨 노조냐’고 말해버린 주역이 되어버린 게 씁쓸할 따름입니다.

‘비정규직 보호’ 믿을 수 없어

물론 오 위원장은 임금인상권한을 전적으로 자본가에게 위임하는 대신 사내 비정규직까지 포함한 총고용을 보장하라고 단서를 달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비정규직 노동자를 생각하는지 그 진정성을 되묻고 싶습니다.

제가 연맹 위원장이던 시절 현대중공업노조는 민주노총에서 제명됐습니다. 그곳의 비정규직노조를 대하는 정규직노조의 태도 때문에 그랬던 것이지요. 물론 현재에도 그 태도는 별로 변한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비정규직의 고용을 보장하겠다고 하니, 그 진정성을 누게 믿겠습니까. 결국 그 고용보장의 모든 권한조차도 회사에게 위임하면서 말입니다.

오 위원장의 ‘임금위임선언’이 마치 대단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오히려 노동자 전체를 장기적으로 더욱 어렵게 한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논리나 철학이 언뜻 보아서는 어렵고 허구적인 것처럼 보여도 많은 분들의 경험과 연구에 의해서 검증된 것임을 인식합시다.

오위원장님, 앞으로도 서로 부끄럼 없이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은 제가 그 여지를 조금 남겨두도록 하지요. 다만, 오 위원장의 최근 태도는 철학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결코 용납할 수는 없다는 점은 분명히 해두겠습니다. 일단 저도 이 어려운 시기에 조합원들의 일자리 확보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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