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 정치연합을 제안한다
    2009년 03월 02일 01: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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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자 증세와 정부 역할의 확대를 추진하는 내용의 오바마 미 행정부의 예산안이 공개되자, 미국 <뉴욕타임스> 등 주요 국내외 언론에서 ‘계급전쟁, 로빈후드식 개혁’이라는 말이 지면을 달구고 있다고 한다. 30년 만에 일어난 가히 혁명적 방향 전환이다.

혁명적 방향 전환

   
  ▲이상이 공동대표. 

보수주의 세력이 미국 사회를 지배하게 된 레이건 행정부 이래로 지난 30년 동안 미국은 영국과 함께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주도하며 영미식 신자유주의의 종주국으로 군림해왔다.

그런데, 부자 감세와 작은 정부라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30년 만에 뒤집는 도발적 발표가 있었으니, 어찌 전 세계가 놀라지 않겠는가? 이제 신자유주의의 종말이 신자유주의 종주국인 미국 정부의 정규 예산 작업에서도 명백해진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자신의 진보적 이념을 실현할 수단으로 조세개혁과 적극적 재정정책을 선택한 것이다. 향후 10년 간 부자들에게서 6,360억 달러의 세금을 더 걷고, 중산층 이하에게는 1,490억 달러를 깎아준다는 내용이다.

연소득 20만 달러(우리 돈 약 3억원) 이상의 고소득층에게서 추가로 걷은 세금은 의료보험과 교육 혜택의 확대를 통해 중산층 이하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인데, 특히 의료보험 혜택을 보지 못하는 계층을 위해 향후 10년 간 6,340억 달러가 투입된다는 내용이다.

미국 역사에서 1930년대와 1940년대에 걸친 뉴딜정책으로 인해 달성된 전후 중산층 중심의 미국 사회가 지난 30년 동안의 신자유주의 양극화 정책으로 인해 극단적으로 와해된 것에 대한 대대적인 반작용인 셈이다.

미국 의료제도 개혁될까

복지국가소사이어티(http://www.welfarestate.net/)는 출범 이래 여러 번의 각종 토론회나 책자 발간 등을 통해 복지국가의 비전을 제시해왔다. 그 핵심은 정부 재정의 대대적 확충을 통한 적극적, 보편적 복지국가 정책을 혁명적으로 수행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대규모의 적자재정을 감수하여 역동적 복지국가의 제도화를 단행함으로써 사회서비스의 획기적 확충을 통한 내수경제와 중소기업경제를 활성화하는 소위 ‘민생경제’의 성장을 도모하고, 이러한 성장을 통해서도 부족한 정부 재정은 단계적인 누진소득세의 인상을 통해 충당하자는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의료, 보육, 교육, 평생교육, 노후보장 등 복지국가의 제도화를 둘러싸고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 등 ‘자유주의자’들의 잔여주의 복지 논리인 ‘사회투자국가론’의 반복지적 성격을 경계하며 ‘보편주의 복지’의 원칙을 일관되게 강조하여 왔다.

오바마 행정부의 부자 증세라는 조세개혁과 의료와 교육 등 복지의 확충을 위한 적극적 재정정책은 앞길이 그리 순탄치는 않을 전망이다. 공화당과 주류 사회의 요소요소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 보수주의 세력들과 자본의 저항이 엄청날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조세개혁과 적극적 재정정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자본이 지배하고 있는 미국 의료제도를 구조적으로 개혁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오바마의 획기적 정책 전환은 많은 개혁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것이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배신과 분노 되살아나

필자 또한 이러한 미국으로부터의 소식에 가슴 설레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노무현 정부 5년이 떠올라 엄청난 배신과 분노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선거 날이 되면 악착같이 투표장에 가는 부자와 고령 인구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과 달리, 노무현 대통령은 행복과 희망을 꿈꾸고 싶었던 서민과 젊은층의 지지로 어렵게 당선되었다. 그러므로 노무현의 참여정부는 여느 정부들과는 달라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당선되자마자 자본과 손잡고 지지자의 기대를 저버리기 시작하였고,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체제를 앞장서 이끌었다. 감세 정책, 자본시장 통합과 금융허브 추진, 한미 FTA 체결, 각종 경제특구 추진과 규제완화, 영리법인 병원과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추진, 잔여주의 복지의 고수 등이 노무현의 참여정부가 대선에서 그를 지지하였던 중산층과 서민의 기대와 이익을 배반한 대표적인 정책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들은 현재 이명박 정부가 신공안정국을 조성하면서까지 그대로 관철하려는 것들이기도 하다. 결국, 이 두 정부는 신자유주의라는 큰 틀에서는 한 패거리인 것이다.

신공안정국을 조성하며 중산층과 서민의 민생민주주의와 복지 열망을 핍박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분노’다. 그런데 노무현의 참여정부는 여기에 하나 더, 그를 지지하였던 중산층과 서민에게 ‘배반’의 죄를 지었다.

‘친노파’ 자유주의자들 깊이 참회해야

참여정부 시기,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주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나눠가졌던 유시민 전 장관과 386 측근 등 소위 ‘친노파’는 깊이 참회해야 마땅하다.

이들 친노파 ‘자유주의자’들은 경제부처의 장관 자리 등 주요 직책을 모조리 친자본적 경제 관료들에게 줘버렸고, 자칭 ‘자유주의자’인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은 ‘사회투자국가’라는 영미식 자유주의 논리를 들고 나와 사실상 보편주의를 거부하고 잔여주의 복지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일조하였다.

그래서 당시 범시민사회는 그에게 최악의 복지부 장관상을 수여하였던 것이다. 참여정부에서 한미 FTA 체결을 마지막까지 진두 지휘하였던 한덕수 전 국무총리는 현재 이명박 정부의 주미대사가 되어 있다.

대선에게 승리한 노무현의 참여정부에게 그를 지지하였던 서민과 개혁진영은 지금 오바마가 하려는 것과 같은 획기적인 조세개혁과 적극적 재정정책을 기대했던 것이다. 이러한 경로를 통해 적극적, 보편적 복지국가 정책을 제도화하길 바랐던 것이다.

그런데 참여정부의 친노파 ‘자유주의자’들은 사회 공공성의 확대를 염원하던 기층민중과 지지층을 사실상 배반하는 방식으로, 친자본적 행보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참여정부의 ‘배반’의 정치와 민중의 분노가 역작용을 일으키고, 부유층과 보수진영의 대단결이 성공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탄생한 것이다.

친노파 재세력화 불행한 일

세계적 경제위기의 시기에 이명박 정부의 부자 감세 등 신자유주의 정책 추진에 보수 세력의 무능까지 겹쳐 양극화가 심화되고 민생은 매우 어렵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가 처한 이러한 정치경제적 위기에 대응하고자 범민생민주 세력과 야당들이 진보 개혁적 입장에서 힘을 모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기에 일부 친노파 ‘자유주의’ 세력이 사실상 영미식 신자유주의이자, 잔여주의 복지체제에 불과한 내용을 ‘사회투자국가’ 등으로 포장하여 머리를 내밀고 세력화를 도모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는 대단히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국민적 심판을 받은 세력은 자진 해산하고, 소멸하는 것이 역사의 순리다.

지금의 주어진 정치사회적 환경과 경제사회의 역사적 발전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 친노파 ‘자유주의’ 세력이나 민주당에 근거를 둔 다양한 종류의 자유주의 정치세력 또는 자유주의 추종자들이 나설 때가 아니다.

이미 이들의 본질이 영미식 신자유주의나 그 아류에 불과함은 지난 참여정부에서 크게 행세하였던 자칭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의 행태에서 명백히 확인되지 않았던가. 지금은 지난 30년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작은 정부 등 각종 자유주의 정책에 대항하여 국가의 책임과 역할을 확대하는 ‘민생민주주의 보편적 복지국가’ 노선이 필요한 때다.

그러므로 이명박 정부의 권위주의적 신자유주의에 대응하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주도세력은 당연히 적극적, 보편적 복지국가 세력이어야 마땅한 것이다.

자유주의, 사회주의 말고 복지국가 노선을

오바마의 개혁을 보면서 떠오르는 또 하나의 생각은 우리나라의 전통적 좌파 운동권에 관한 것이다. 이들의 이념적 순수성과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은 대단하며 당연히 존중받을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문제점은 현실에서 나타나는 민생의 고통에 대응하는 당장의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이다. 집권을 염두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개혁은 집권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당장의 집권의지와 집권계획이 없는 불임 정당이나 불임 정치세력에게는 꾸준한 지지를 보내주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통한 가까운 미래의 가장 바람직한 집권을 위해서는 자유주의나 사회주의가 아닌 복지국가 노선을 중심에 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범진보개혁 세력의 ‘복지국가 정치연합’이 우리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가능하고도 타당한 유일한 길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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