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념논쟁 말고, 일자리 대안 내놔라”
        2009년 02월 28일 10: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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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져 누웠던 황광우가 돌아왔다. 2년 전 봄,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를 내고 출판기념회도 치르지 못한 채 쓰러진 후, 말문이 돌아왔다는 둥, 거동은 한다는 둥 풍문으로 떠돌던 황광우가 『철학콘서트2』(웅진지식하우스)를 들고 돌아왔다. 아직은 어눌한 말투, 뒤뚱거리는 발걸음의 황광우를 만났다.

       
      ▲황광우

    “광주를 떠나 인천 생활을 시작한 게 건강에 무리를 줬던 것 같다. 발이 무거워지는 자각증상이 있어 한의사에게 진찰을 받아보니 뇌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하여 광주기독병원에서 MRI를 찍었다. 뇌경색이 왔는데 모르고 지나갔다고 하더라.

    요양하라길래 큰 형님이 이용하시는 광주 근처 암자를 소개받아 들어갔다. 일주일 묵을 계획이었는데, 이틀째 밤에 쓰려졌다. 화장실 가다 쓰려져 엉금엉금 방으로 기어들어온 나를 큰 형님이 칼로 손발을 찢어가며 돌봤다.

    병원에 가야 하는데, 산 아래로 내려올 방법도 전화도 없었다. 큰 형님이 민가까지 걸어내려가 전화를 했고, 목포에서 헬기가 날아와 마치 베트남 영화에서처럼 산 주변을 돌려 나를 찾아 헤맸다.

    의식은 분명했지만, 이미 몸은 못 움직이는 상황에서 헬기 밖에 묶여 실려가다 보니, 이렇게 죽겠다 싶더라. 그게 2007년 4월 10일이었고, 6월 초까지 두 달 동안 병원에 있었다.

    헬기에 묶여 실려가다

    퇴원 후에는 거식증에 걸렸었다. 아내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줘, 그걸 먹으며 다시 살아났다. 생계 문제가 가장 심각했다. 말도 못하고, 글도 못쓰고,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데 대한 상실감, 좌절감을 크게 느꼈다.

    매일 아침 집 주변을 돌며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했다. 그리고 무리하게 강의하며 몸을 되살려갔다. 그 때 웅웅거리는 말소리 강의를 들어준 제자들이 고맙다.

    하지만, 창의적 사고를 할 수는 없었다. 책을 읽는 정도는 가능했지만, 그걸 평가하거나 생각할 수는 없는 수준이었고, 손가락이 굳었으니 타이핑도 할 수 없었다. 조금 움직이는 왼손가락만으로 타이핑을 하려니 자괴감에 우울증 비슷하게 되더라.”

    의식을 되찾은 황광우가 읽고 쓰기부터 하려 했고, 그 재기를 책 쓰기로 시작한 것은 당연하고도 반가운 일이다. 『철학콘서트2』를 쓰고 내놓은 사연을 물었다.

    “1년 이상을 멍한 머리로 지내다, 작년 7월 말부터 조금 더 나아져 창의적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대한 글을 써서 후배에게 보여줬더니 좋다고 하더라. 자신감이 붙어 맹자, 무함마드에 대해서도 읽고 쓰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옛 고전과 철학자들에 대해 쓰다 보니, 아리스토텔레스나 피타고라스, 무함마드의 글들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고 문화적으로도 생소하여 직접 현지에 가보고 싶었다. 몸이 다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자신있는 글쓰기를 하고 싶어 10여일 동안 조카와 함께 터키와 그리스를 직접 갔다 왔다. 그곳에 남겨진 유적을 보았고, 느낌이 잡혀 작년 12월에 책을 탈고할 수 있었다.”

    노자의 『도덕경』에서부터 맑스의 『자본론』까지를 다룬 1편에 이은 『철학콘서트2』는 호메로스나 무함마드와 같이 우리가 이름은 익히 알지만 정작 그들의 삶이나 생각이 어떠했는지는 소상히 알지 못하는 10명의 인물을 다루고 있다.

    “1권에 나온 맑스, 예수, 석가, 공자는 많이 익숙한 인물들이다, 2편에 오른 인물들은 이름이야 알겠지만, 한국의 진보적 사람들에게 익숙한 사람들은 아니다. 우리들의 지성의 폭을 넓힐 수 있지 않을까 해서 2편을 썼다.

    맑스보다 탁월한 무함마드

    그런데 나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해서 공부하며 쓰다 보니 어려움이 많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저작이 워낙 방대해서 1년 넘게 공부하면서도 윤곽이 안 잡히더라.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는 문과 출신인 나로서는 모르는 이야기가 많았고.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영어로 읽는데 ‘이심원’, ‘주전원’ 같은 천문 전문 용어를 몰라 힘들었다.

    세종과 한글에 대해서도 썼는데, 왕조실록을 다 뒤져도 훈민정음에 대한 내용이 너무 없었다. 실록이 외면하고 있다는 자체에서 영감을 얻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세종을 찬양하는 교육을 받은 탓에 세종에 대해 쓰려니 쑥스럽기도 했는데, 공부하다 보니 그럴만 하더라. 한글이 문자 중에서 가장 합리적, 과학적인 것은 분명하다. 민족적 차원에서 한글을 볼게 아니라, 인류언어사의 획기적 성취로 봐야 한다.

    무함마드에 대한 글을 쓴 게 흐뭇하고 자랑스럽다. 이슬람은 문화상대론을 소개하는 소재로만 쓰이지, 이슬람의 정신이 무엇인지는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무함마드는 맑스보다 더 탁월한 인물이다. 이론은 맑스만 못하겠지만, 그 실천성과 대중성은 맑스보다 더 뛰어났다.”

    『철학콘서트』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베스트셀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황광우의 시각으로 읽는 고전 철학이기도 하다. 황광우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이 책의 지면에는 본격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나름의 바램이 있다. 우리 한국인들은 물질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정신적으로는 공허하다. 그 황폐해진 정신을 어떻게 살찌울 것인가가 이 책을 쓰기 시작한 화두다.

    뿌리없고 힘없는 지식인이 아니라, 세계적 보편 정신에 동양적 특수성과 조선의 고유성을 두루 갖추고 소화하는 그런 지성으로 우리 진보와 노동운동이 재충전되어야 한다.

    정신적 공허함에서 벗어나 자아를 풍부하게 살찌워야 우리 운동이 되살아날 수 있다.”

    남원연수원은 초록배움터로

    황광우의 귀환은 책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남원연수원의 변모를 통해서도 나타나고 있다. 두동공동체 소유로 민주노동당에 임대됐던 남원연수원은 민주노동당과의 계약이 해지되고, 황광우와 함께 다른 활동을 모색하고 있다.

    “1월 중순 뜻이 맞는 박승옥, 전희식, 조승수 등 10여 명이 모여 연수원을 ‘지리산초록배움터’로 자리매김해보자고 의논했다. 그 자리에서 나더러 대표를 하라고 해서 그리 하기로 했다.

    구체적 내용은 여럿이 의논해야 하고, 오래 연수원을 운영해온 안상연, 이순규 동지가 더 잘 알텐데, 초록대안을 학습하고 체험하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것이 대강의 계획이다. 자세한 계획과 추진은 카페(http://cafe.daum.net/energyschool)에서 볼 수 있다.”

    2년 가까이 와병, 칩거했지만 진보정당의 정치운동가인 황광우가 대선과 분당, 창당과 총선, 촛불시위를 그저 지켜보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멍한 머리’와 ‘굳은 손가락’으로 당시에는 아무 목소리를 낼 수 없었을 문제들에 대해 황광우의 의견과 평가를 듣고 싶었다.

    “대선 때 아내가 ‘권영길이 안 나와야 한다’고 말하더라. 진보정당을 사랑하는 평범한 아줌마인 아내의 주장에 아무런 반박을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권영길 대표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는데, 분당 과정에서 그런 기대, 믿음, 바램이 처참하게 무너져 괴로웠다.

    3개월 전쯤에, 쓰러진 이후 처음으로 당토론회에 나가봤다. 주체사상파와 헤어지면 진짜 새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는데, 그걸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웠다. 민주노동당 안에서는 주체사상파 때문에 북한 문제, 사회개조방향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는데, 그들과 헤어지고 난 후에도 공부, 학습, 토론하지 않더라.

    청년실업에 대해 토론하고, 대안 내자

    우리가 사회주의자라면 노동의 사회적 재편,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대안과 청사진을 내놓아야 하는데, 좌파니 우파니 사회주의니 사민주의니 논쟁만 하고 있는 게 안타까웠다. 몸이 더 좋아지면, 우석훈 같이 젊은 이론가들과 함께 청년고용대책, 노동 재편에 대한 청사진을 내놓고 싶다.”

    황광우는, 1980년대에는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 같이 통렬한 사회고발 책을 냈고, 근래에는 『철학콘서트』 같은 베스트셀러 교양서를 내놓고 있다. 그런데 황광우는 이러저런 이론의 소개자, 번역자일 뿐 아니라 제 스스로 철학자이며 활동가다. 그렇다면 맑스나 피타고라스의 주장을 이리저리 소개하는 게 아니라, 제 목소리를 담은 온전한 제 책을 내놓을 때도 되지 않았을까?

    “내 젊은 시절은 맑스의 해설자이며 전파자였다. 『레즈를 위하여』를 쓰고난 후부터는 맑스로부터 독립하여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독자적 세계관으로 책을 쓰려면 몇 년 더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철학콘서트』 같은 책을 쓰는 것도 스스로 공부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다음에는 나의 언어로 된 책을 쓰는 날이 오겠지. 솔직히 말하자면, 20대 이후 9할은 바빴고, 1할을 짬내 공부해왔는데, 이제부터는 5할 정도 공부하며 몇 년 더 공부해서 책임질 수 있는 글을 쓰겠다.”

    황광우의 동료와 선후배들은 그가 병상에 있던 동안에도 제 각각의 길을 갔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과 또 어떤 곳인가에서 지금도 바삐 움직이고 있다. 황광우는 근 2년 동안 그들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황광우가 아프지 않았다면 좋든 싫든 그 동료와 선후배들은 어떤 조언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막 일어난 황광우는 기탄없이 말했다.

       
      ▲인터뷰를 끝내고 초록배움터를 찾아온 진보신당 당원들과 현지에서 담근 과실주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는 황광우(모자 쓴 사람). 

    주대환 선배 너무 플라톤적

    “주대환 선배는 너무 플라톤적이다. 주선배는 이데아를 먼저 찾고, 그 이데아를 세계에 전파하려 한다. 노회찬 대표는 그 반대로 철저히 현실적이다. 이러한 각자의 특징들이 모여 하모니를 이루어야 하는데, 현재의 상태는 각 개인의 색깔로만 보여지고 있어서 문제다.

    당 안팎의 젊은 이론가들이 과감하게 제 생각을 펼쳤으면 좋겠다. 장석준 실장은 관념적인 글만 쓰지 말고, 현실 이야기를 좀 했으면 좋겠다. 김정진 같이 정력적인 이론가들이 진보신당이 어디로 갈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노회찬, 심상정 탓하지 말고 당을 어디로 끌고 갈지를 서로 이야기하자. 그리고 조승수 소장이 대안에너지운동 하듯이 각자 하나씩 개척해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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