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일자리 나누기 거대한 사기극?
    2009년 02월 27일 04: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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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제위기에 따른 경기침체로 일부기업들이 도산하고 또 기존 기업들도 신규채용을 줄이면서 실업자는 늘어나는 반면 괜찮은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실업이 증가하고 신규채용이 대폭 줄어들면서 정부도 심각성을 깨닫고 ‘일자리 나누기’를 하자고 나서고 있다.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진정성이 의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진정성 의심스러운 정부의 ‘일자리 나누기’

현대사회에서 산업의 자동화, 정보화, 전문화 등이 진전되어 일자리가 감소되고 또 양극화되는 장기적인 경향을 고려하면, 일자리 나누기는 우리 사회의 미래의 건강한 존속을 위해 사회구성원 모두가 고민하고 또 동참해야할 사회적 과제이다.

더구나 지금의 경제위기는 일자리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고 노동시장 유연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시장자유주의 정책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괜찮은 일자리들은 줄어들고 비정규직과 3D업종 중심의 불안정한 일자리들이 확대되고 일상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실질 실업자 수와 정부가 발표한 96만개 일자리 만들기 대책 (자료=MBC 100분 토론)

유럽의 복지국가들처럼 노동자들을 실업으로 인한 일상적 불안과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복지제도가 잘 갖추어져 있지도 않은 우리의 현실에서 일자리는 생존의 기반인데, 일자리의 불안정은 바로 이러한 생존 기반이 흔들리면서 사회가 불안정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일자리 나누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정부와 기업들이 이 사안을 주도하면서 우려스러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듯하다.

이명박 정부는 공공서비스 부문의 일자리를 늘리기는커녕 공무원 인력감축을 시행해왔고 그 대신 소위 ‘인턴’이라는 비정규 임시직을 늘려 일자리의 불안정을 가중시키고 있다. 일자리 나누기가 정규직 감축을 통한 비정규직 늘리기가 된 것이다.

비정규직 늘리기가 일자리 나누기?

정부가 재정지출을 통해 세금을 인상하고 공공서비스 부문의 일자리를 늘려 고용문제와 재분배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유럽 복지국가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리고 대기업과 금융기관은 일자리 나누기에 동참한다고 하면서 신입사원들의 임금을 삭감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처럼 최근 대기업, 금융기관, 정부와 공공기관 등에서 내놓고 있는 ‘일자리 나누기’ 정책들은 경제위기에 편승해서 괜찮은 일자리는 줄이고 임금비용도 줄이면서 ‘인턴’ 등 비정규직 고용을 늘리는 것으로 생색을 내려고 한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사실 신입사원 임금삭감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는 추가적인 비용부담 없이 사람을 더 쓸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연봉수준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에 대기업들에게는 장기적으로 이득이 될 뿐만 아니라 경제위기 상황에서 생색도 낼 수 있는 일석이조의 전략이다.

이런 점에서 신입사원 임금삭감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고통분담이 아니다. 진정한 고통분담을 하려면 우선 기업이 배당을 줄이면서 수익에 걸맞은 투자를 함으로써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고 또 일자리 나누기를 위해 임원들, 고액연봉자들을 비롯한 기존 임직원들이 임금수준에 따라 적절한 부담을 져야 한다.

신입사원이 아니라 임직원들이 임금부담을 져야

이런 점에서 SK가 임원들의 임금을 줄여 협력업체의 인턴 일자리를 만드는 데 지원하겠다는 계획은 그나마 낫다. 그렇지만 일자리 나누기에 신입사원을 이용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으며 분배적 정의에도 역행하는 일이다.

신입사원 연봉을 줄여 채용인원을 늘리는 것은 대기업들로서는 가장 손쉬운 일자리 나누기 방법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추가 비용부담도 없고 또 노동조합의 반발도 비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은 직접적인 부담이나 피해가 없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을 것이며, 반면에 신입사원들은 그나마 일자리가 생기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해서 경제위기에 따른 고통의 부담과 피해는 대부분 신입사원들에게 전가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88만원 세대’라 불리면서 일자리 불안으로 삶의 의욕이 꺾여있는 젊은 세대에게 경제위기의 부담을 전가하려는 것은 분배적 정의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얘기를 접하면서 문득 대학생 등록금 인상 협상에 관한 일이 떠오른다. 최근 대학생들의 등록금 인상반대 투쟁이 확산되면서 매년 학교 측과 학생 측 간의 등록금 인상 협상이 이루어져 왔는데, 그 결과들을 보면 대체로 재학생의 인상폭을 낮추는 대신 신입생의 인상폭을 높이는 방식이었다.

기업의 일자리 나누기와 대학등록금 협상의 공통점

신입생들은 협상의 결과로 인해 부담과 피해를 지지만 협상에는 전혀 참여하지 못한다. 신입생들은 이렇게 책정된 입학금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데, 등록금 협상은 결국 사회적 약자인 신입생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해결되어 왔던 것이다. 신입사원의 임금을 삭감하는 것 역시 이와 유사한 것으로, 결국 사회적 약자인 신입사원들을 이용하여 기업의 부담을 해결하고 일자리 나누기의 생색을 내는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기업이 노동자들과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일자리 나누기 정책을 결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에서 등록금 인상은 그나마 학생들과의 협상을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기업은 임금구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노동자들과의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풍조가 확산되면 아마도 앞으로 일자리 나누기를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노동자들에게 부담을 강요하거나 임금구조를 자의적으로 바꾸려는 기업들이 생겨날 것이다.

노동자의 경영참여가 봉쇄되어 있는 한국사회에서 정부와 기업은 경제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일차적 책임을 져야하고 또 기업은 호황기에 생산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많은 수익을 위기상황에서 일정 부분 사회에 환원할 책임이 있다.

기업의 수익은 기본적으로 자본가, 경영자의 노력이나 노동자들의 노동뿐만 아니라 그 기업의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들, 나아가 기업활동을 떠받쳐주는 사회가 있음으로서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상황에서 일자리 문제에 대해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과 협의하려고 하지 않고 고통의 부담을 신입사원들에게 전가하는 정책을 일방적으로 시행하려고 하는 것은 기업의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다. 게다가 신입사원 임금삭감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에도 어긋나 분배적 정의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신입들에 고통 전가하는 사회의 미래는?

물론 지금과 같은 세계적 경제위기 상황에서 우리나라 경제위기의 책임을 전적으로 정부와 기업에게 묻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제안하고 있는 것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고통을 분담하려는 바람직한 자세라고 하겠다.

이러한 제안은 정부와 기업이 보다 적극적으로 위기에 대처하며 고통을 분담하려는 태도를 가지도록 추동하는 힘이 될 수 있고 또 신입사원들에게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정부와 기업은 노동계의 제안을 비롯하여 보다 바람직한 일자리 나누기의 방안들을 모색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일자리 나누기가 공정하고 진정성을 가진 사회적 대책이 되려면, 정부, 기업뿐만 아니라 노동자, 실업자, 구직자, 일반시민 등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여 토론하고 협의함으로써 고통을 공정하게 분담하려는 자세에서 출발해야 한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비정규직을 양산함으로써 노동자들, 서민대중들의 삶을 더욱 더 불안정하게 만드는 정부의 일자리 정책과 생존권을 위협하는 복지정책 등은 빨리 수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호황기에 고수익을 독점하던 기업과 그 임원들이 불황기에 그 부담을 노동자들, 신입사원들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려는 정책은 철회되어야 마땅하다. 말 못하고 힘없는 신입들에게 모든 부담과 피해를 전가시키는 정의롭지 못한 방안들이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여지는 사회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

*. 이 글은 <프레시안>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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