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거품 붕괴후 계급전쟁 시대 도래
        2009년 02월 27일 03:39 오후

    Print Friendly

       
      ▲필자

    미국발 금융 위기의 해일이 가장 먼저 덮친 나라 중 하나가 아이슬란드였다. 북유럽의 섬나라 아이슬란드에서는 이 때문에 지난 1월 말 대중 봉기로 정부가 무너지고 좌파 연정이 들어섰다.

    그런데 불과 한 달 뒤인 지금, 그 해일이 유럽 북쪽의 또 다른 섬나라 아일랜드를 덮치고 있다. 이 나라는 지금 GDP 규모의 몇 배나 되는 은행 부실 때문에 국가 부도 상황에 몰려 있다.

    아일랜드 모델 왜 몰락했나

    아일랜드에서도 경제 위기는 정치, 사회 격변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고통을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 하자 지난 주 수요일(2월 25일) 12만 명에 달하는 공공 노동자들이 수도 더블린의 거리를 메웠다(참고로 아일랜드 인구는 440만이다).

    아이슬란드나 아일랜드나 모두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기에 금융을 중심으로 초고속 성장을 한 나라들이다. 아이슬란드는 작년 1인당 명목 GDP가 6만 달러로 세계 7위의 ‘부국’이었고, 아일랜드는 그보다 더 많은 6만 4천 달러로 한 등수 위인 6위였다.

    특히 아일랜드는 신자유주의 예찬론자들이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한 나라였다. 법인세를 10% 대로까지 낮춰서 해외 자본을 유치한 덕분에 고성장을 달성했다는 것이었다.

    보수파만이 아니었다. 이른바 ‘신진보’를 외치는 중도우파 논자들도 정부와 재계, 노동조합 사이의 합의를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적응한 이른바 ‘제3의 길’의 모범으로서 이 나라를 찬양하곤 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 시대에는 ‘스웨덴’ 모델, ‘네덜란드’ 모델에 이어 이른바 ‘아일랜드’ 모델이 유례없는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한때 10%에 가까운 고성장의 주동력이었던 해외 자본들이 보따리를 챙겨 떠나자 이제 이 나라에 남은 것은 국가 부도와 빈부 격차 그리고 잃어버린 세월에 대한 상실감뿐이다.

    아이슬란드, 동유럽, 아랍에미리트(두바이) 그리고 이웃 나라 영국과 함께 이 나라는 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면에서 이뤄진 경제성장 사례들이란 게 하나 같이 다 금융 거품에 불과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제 그 끝에 남은 것은 계급투쟁의 현실이다.

       
      ▲시위대 앞에 선 노동당 지도부

    경제 위기 상황과 아일랜드 노동당의 독자 노선

    지금 아일랜드의 여당은 공화당(아일랜드 어로는 ‘피어나 포일’)이다. 공화당은 20세기 초에 아일랜드 민족해방투쟁을 이끌었고 그래서 독립 이후 줄곧 가장 강력한 수권 정당이었다(161석 중 78석).

    공화당의 라이벌은 통일아일랜드당(아일랜드 어로는 ‘피네 게일’)이다(51석). 통일아일랜드당은 민족해방운동 내에서 영국과의 유연한 타협을 추구했던 세력이 떨어져 나와 만든 당이다.

    흔히 공화당은 보수 우파, 통일아일랜드당은 중도 우파라고 한다. 하지만 어쨌든 둘 다 아일랜드 자본주의를 이끌어온 양대 보수정당이다. 이 양당 구도 속에서 어렵게 성장해온 좌파정당이 제3당인 노동당이다(20석). 노동당 역시 그 뿌리는 민족해방투쟁에 있다.

    민족해방투쟁에 참여한 사회주의자들이 이후 아일랜드 노총의 지지를 받으며 만든 당이 바로 노동당이다. 최근(1999년)에는 구 공산당의 후신인 ‘민주좌파’가 노동당과 통합하기도 했다.

    보수 양당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더구나 선거제도도 소선거구제인 상황에서 노동당은, 제3당이라고는 하나, 아일랜드 정치의 주도 세력이 되기 힘들었다. 최근까지도 노동당 스스로 양대 보수정당의 연정 파트너로서 생존하는 전략을 취해왔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노동당의 전통적인 선거연합-연립정부 전략은 최근 들어서야 변화하기 시작했다. 지난 2007년에 새로 노동당 대표가 된 에먼 길모어는 ‘민주좌파’ 출신으로서(말하자면, 당내 좌파) 기존 당 노선의 전환을 꾀했다.

       
      ▲아일랜드 노동당 대표 에먼 길모어

    그는 선거연합보다는 노동당의 독자 노선을 강조했다. 그가 내세운 구호는 “우리는 공화당도 아니고 통일아일랜드당도 아닌, 노동당이다”였다.

    경제위기가 가져온 정치적 격변

    최근의 상황 전개 속에서 노동당의 이러한 신노선은 일정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경제 위기로 공화당의 인기가 급락하자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당이 여론조사에서 2위권 안에 들기 시작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은 공화당을 멀찍이 따돌린 채 통일아일랜드당과 1, 2위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조기 총선을 치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러한 지지도 변화는 곧바로 아일랜드 정치의 격변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공화당의 몰락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예전 같았으면, 이는 통일아일랜드당이 주도하고 노동당이 참여하는 연정으로 귀결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독자 노선을 강조하는 현 노동당 지도부는 그와는 다른 선택을 할 것으로 보인다. 아일랜드 정치사(史) 상 처음으로 노동당이 권력을 놓고 통일아일랜드당과 겨루게 되는 것.

    그렇게 되면 노동당으로서는 최소한, 창당 이후 처음으로 제2당, 즉 제1야당으로 도약하는 기회를 잡게 된다. 게다가 공공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시작된 대중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수십 년 동안 불가능했던 정치 변화가 불과 몇 달만에 실현되는 일이 아일랜드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그만큼 이번 세계 경제 위기의 여파는 크고 깊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