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창당은 없었다, 그렇다면?
        2009년 02월 27일 03: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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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일생의 일들이 그렇고, 바둑의 행마가 그렇고, 사람의 몸에 대한 처방이 그렇고, 경제상황에 대한 정책 개입이 그렇고, 대중운동도 그렇다. 때에 적절한 대응이나 작동을 가하면 도저히 안 될 것 같던 큰 결과가 빚어지기도 하고, 쉬이 될 것 같은 일도 때를 놓치면 몇 배의 힘이 들어가거나 종내 불가능해져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특히 정치를 ‘타이밍’이라고 하나 보다. 좀 거창하게 돌아보면 그렇게 때를 놓친 사례들이 여럿 있었다. 80년 5월 서울역 회군이 그랬고, 87년 민주화투쟁이 그랬다.

    진보정당운동에만 국한해 보면, 동의할 이들과 않는 이들이 있겠지만, 92년 백선본 이후 진보정당 추진세력들이 95년까지 허송세월하다 산산이 흩어진 게 그랬고, 96~97 총파업의 동력을 못살리고 97년 국민승리21이라는 왜소한 틀로 대응하게 된 게 그랬고, 2004년 이후 민주노동당이 더 이상 발전적 역할을 하기 어려워졌을 때 적극적 대안을 강구하지 못한 게 그랬다.

       
      ▲ 지난 해 1월 열린 새로운진보정당운동 공식출범 사진

    물론 ‘분당’도 가능하거나 필요한 때가 있으며, 세상더러 기다려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회당과 다른 좌파 정치세력들 입장에서도 그런 ‘때를 놓친’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 민주노총의 극심한 위기 상태에 직면해서 새로운 노동운동 조직 전망을 제기하지 못한다면 이 역시 때를 놓치는 일이 될 성싶다.

    어쨌든 민주노동당 분당과 진보신당 창당의 타당성이나 공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할 말이 있겠지만, ‘때’에 관한 이야기라면 주장은 좀 더 명확해질 수 있겠다. 의식적 정치세력은 주어진 조건과 시기의 특성에 순응하며, 그러나 이를 200% 활용하여 움직여 나가야 한다. 제2창당의 문제도 그러했다.

    가건물은 부술 수 없었나

    진보신당의 3월 1일 1차 당대회에서 제2창당 사업에 대한 보고가 이루어질 것이고, 2차 대회까지 이 문제는 아마 조금 더 논의될 것이다. 재창당 혹은 제2창당은 18대 총선 대응을 위한 급조 창당의 반대급부로 나온 제안이었고, 그 구체적 상에 대한 당 내 공유 정도는 불분명했다.

    그러나 총선 후 ‘가건물을 부수고 제대로 된 새로운 정당을 구성하자’는 합의는 존재했다. 내용으로 보면 한 축은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을 구성할 ‘세력의 재결집’이었고, 다른 한 축은 ‘진보의 재구성’이라 불리는 진보정당 운동의 노선과 컨텐츠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첫 번째 축의 경우 가건물을 부수는 시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왜,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적어도 누가 했어야 할 일이었는지는 분명했고, 총선 이후 유일한 의결기구인 확대운영위원회에서 수 차례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도 분명했다. 물론 핵심 지도부의 책임이었다.

    당시, 그리고 지금의 해명은 진보신당을 중심으로 같이 할 세력이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누구도 검증하기 어려운 판단의 차이였을 뿐이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타이밍의 문제였다.

    진보신당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존재하던, 지못미 당원이 밀려들던 5월에서 8월의 시기야말로 진보신당이 헤게모니를 쥐고 제안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가건물을 부수어도 진보신당의 문제의식과 세력에 대한 존중이 보장될 수 있는 기간이었다.

    헤게모니 시기를 놓치다

    구체적으로 보면, 사회당과 초록정치연대는 초록정치공동위원회를 만들어 진보신당과는 다른 선통합 혹은 독자 생존을 꾀하게 되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두 세력마저 위축되었다. 진보신당보다 왼편(?)에 있는 정치조직들은 진보신당의 정체와 의도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지 않았으며 제대로 된 대화 제의도 오간 적이 없었다. 이 와중에 노건추는 자기 일정을 가져갔고 당은 노동정치를 노건추에 위임했다.

    재창당이 아닌 ‘제2창당’으로 개념이 정리되고, 외연 확대를 위한 작업이 시작된 것은 더운 바람이 지나는 시절에서였다. 그러나 때는 지나갔다. 진보신당은 가건물을 허물 ‘의지’가 없다는 것이 모두에게 인식된 후였고, 각 조직 및 부문과의 간담회는 요식행위로 치러졌다. 제도 정비 정도의 제2창당이라면 이 역시 여름에서 가을까지 끝내면 됐을 일이었다. 그리고 먼저 그렇게 창당을 하면 당의 문호를 닫게 된다는 주장 역시 궤변이었다.

       
      ▲ 지난 해 3월 열린 진보신당 창당대회 모습

    여전히, 만약 총선 직후 신속한 행보가 있었다면 진보신당이 진보정당운동 세력 재편에 성공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원탁회의’ 정도를 다시 시급히 제안하고 개방적 태도와 적극성을 보였다면 다른 세력들도 외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왜 같이 할 수 있거나 아직, 혹은 절대 할 수 없는 이유라도 정리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진보신당의 주소가 되고 향후 유의미한 좌표로 남았을 것이다.

    다시, 가건물은 왜 허물어지지 않았는가? 무엇보다 핵심 지도부가 상황의 불확실성을 감당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진보신당이 모아낼 수 있는 세력의 폭에 만족할 수 없었던 게 이유였다고 필자는 해석한다. 동의하지 않는다면, 대신할 수 있는 평가와 설명이 필요하다.

    진보의 재구성은 불가능했나

    분당의 이유로 ‘종북주의’는 협소했다. 그러나 ‘종북’이 싫어서가 아니라 종북주의로 인해 정상적인 진보정당 운동이 불가능했다는 팩트가 있었다. 다른 한편 민주노총 운동이 무의미해서가 아니라 현 민주노총 운동이 당과 노동운동의 발목을 잡고 새로운 과제 해결을 어렵게 한다는 팩트가 있었다. 그래서 운동권의 양대 금기를 지적하며 분당은 이루어졌다. 그리고 새로운 진보 노선이 공언되었다.

    이에 대한 공감이 있었고, 그것이 역시 ‘진보의 재구성’을 가능케 할 타이밍이었다.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의 구호나 ‘사회국가’ 구상, 사회연대전략, 평등 생태 평화 연대의 수식어는 새로운 진보를 버무려낼 자원이었다. 사회주의-사민주의 논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대체 무엇을 하고자 하는 당인지를 합의해내면 되는 것이었다.

    필자가 이전에 <레디앙> 기고를 통해 이야기한 적이 있듯이(「제2창당 토론은 왜 재미가 없을까」), 다들 만족할 수는 없더라도 당원들의 의견을 제대로 적분하고 미분하면 진보신당이 갈 길이 나오고, 대중적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적분과 미분은 정치노선 토론을 통해 필시 강령과 당명으로 구체화되는 게 마땅했다.

    그러나 제2창당의 첫 순회토론으로 준비된 정치노선 논의는 이러한 작업과 거리가 먼 뜬구름 잡기 교육장이었다. 오히려 당의 포지션과 색깔을 의식적으로 물타기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쟁점을 회피했고, 정치노선 논의가 결과적으로 강령이나 당명 결정으로 이어지지도 못했다.

    따라서 제 2창당의 다른 한 축의 문제인 노선과 컨텐츠 작성 역시, 아직, 달성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또한 당의 핵심지도부는 당원 구성의 다양성 등을 핑계로 논쟁과 비전 작성을 회피하거나 게을리했다.

    쟁점 회피, 의식적 물타기

    다시 세력 재편과 다시 연관해 보면, 진보신당의 포지션과 정치적 입장이 불분명한데 규모조차 크지 않은 당과 마음을 열고 대화할 세력이 존재하기란 애초에 힘들었던 것이다. 진보신당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모르겠는데 누가 어떤 기득권이나 지위를 포기할 생각을 했겠는가.

    문제는 앞으로다. 진보정당의 존립 이유와 당원과 지지자의 열광 이유가 되어야 할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멋진 깃발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은, 그리하여 당의 정치적 청사진이 선명하게도 충분하게도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냥 공복감 타령이 아니다. 당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때를 놓친 이후, 재보궐선거와 2010 지방선거 및 각종 투쟁과 정치적 계기들에 맞닥뜨릴 때 당이 더욱 실용주의, 한건주의로 흐를 우려와 결부된다.

       
      

    더 큰 안타까움은 진보의 재구성 과정은 단지 정치노선 문서의 작성과 채택이 아니라, 당원들의 고민과 재구성을 통한 당의 재구성 과정이었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제2창당의 성공여부는 노·심이 성공하는 것, 훌륭한 제도를 만드는 것, 수천의 노동자 조직을 포괄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신당이 성찰의 주체이자 대상으로서 자신만의 철학과 비전을 창출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이영제의 글(「진보신당 안에 민주노동당 있다」 )에 공감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무엇을 할 것인가

    총선 직후 제2창당이 물건너가면서 진보신당 중심의 소통합은 어려워졌고 이제 진보신당에 특별한 가중치를 줄 당외 정치세력도 별로 남아있지 않다. 다른 한편 민주노총에서 진보정당 통합 추진이 이야기되듯 진보신당 독자 정립에 대한 이의제기와 진보신당 상대화는 더 심해질 것이다.

    여기에 재보궐선거와 2010 변수가 있다. ‘도로 민노당’ 강요는 아니더라도 자유주의 경향 및 시민진영에서 통합 혹은 연합 제의가 점증할 것이며 당 일부도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 인정할만한 깃발과 내용을 갖지 못한 세력에게 당 외부가 아량을 베풀어줄 이유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2009년, 세계경제 위기와 고조되는 국내 정치투쟁이 기다리고 있다. 촛불은 비슷하게 그러나 다른 양상으로 재연될 것이다. 정권은 노골적으로 무식하게 초기 섬멸을 의도하겠지만, 여론과 대외 경제여건이 나쁜 만큼 벌거벗은 대립이 전개될 것이다.

    작년에 비해 조기 점화와 조기 진화 이후 급속히 재보궐과 지방선거로 휩쓸려갈 수도 있고, 정권퇴진 내지 조기교체(개헌을 포함하여) 국면으로 길게 갈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칼라TV와 스타마케팅으로 버티긴 어려우며, 당은 전체 판과 당 자체의 전환 구상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87년 체제의 지연된 잔존과 모순이 막바지에 이를 텐데, 고용위기에 대처하는 민주노조운동의 모습이 그 단면이다. 양산되는 광범한 불안정 고용/비고용 집단과 운동 동력을 받아안는 새로운 대중조직에 주목하고 촉매가 되지 않는다면, 당은 기존 민주노총과 전농 등을 대체할 대중적 운동지반을 확보할 수 없다.

    전체 판에 대한 전환 구상 내놓아야

    제 2창당은 없었다. 그럼에도, 3월 1일 당대회와 당 지도부 선출, 3월말 예정된 2차 창당대회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첫째, ‘무엇을 하고자 하는 당인지’를 정리하고 천명해야 한다. 곧 노선과 당명의 문제다. 이제까지 해온 작업이 부진해서 어렵다는 것은 이유가 못 되며, 해온 만큼 정리해내려는 노력으로 답해야 한다.

    둘째, ‘누가 어떻게 하고자 하는지’를 뚜렷하게 합의하고 공유해야 한다. 이는 지도부가 누구인가와 함께 어떤 비전을 갖는 지도부인가 하는 문제다. 후보군이 어떻게 되느냐와 무관하게 창당과 지난 1년에 대한 자기 평가와 당원과 공유할 당의 기획, 한국사회 재편의 구상이 반드시 제출되어야 한다.

    셋째, 당면에 ‘누구와 어떻게 하고자 하는지’를 가시화해야 한다. 소통합에서부터 정치 연합 전술에 대한 구체적 노력을 점검하고 향후 원칙과 계획으로라도 제시되어야 한다. 사실 이는 방대한 연구나 보고서가 필요한 일이 아니라 당의 정체성과 비전이 확인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부분이다.

    넷째, ‘당원들과 당 내 정치세력의 존재와 자리’가 있어야 한다. 당 대회 자리에도 그 이후에도 그러해야 한다. 정파의 재형성과 평당원 민주주의의 여정은 이제부터다. 국민과 언론에 내보일 폼새는 그 다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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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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