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망해도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2009년 02월 27일 09:0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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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공황이 계속 심화됨에 따라서 머지 않은 미래에 ‘혁명’이라도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좀 많아지는 모양입니다.

   
  ▲ 필자

미국의 신문들을 보면 예컨대 정치적으로 미국과의 관계가 매우 소원하고 경제적 연관성이 취약한 러시아에 대해서는 "혁명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를 거의 희망적으로 발언하고, 반면에 미국의 경제를 뒷받침해주고 있는 중국에서의 ‘대중 폭동’을 거의 경계하다 싶은 논조입니다.

대공황 이후 혁명?

소망적 사고라 할까요? 일단 본인이 바라는 대로 세계를 보려는, 아주 인간적이고 고금동서에 늘 있는 취향입니다. 뭐, 보안 기관 출신으로 국가주의적 색깔을 가진 한 러시아 정치학도가 내년이나 내후년에 미국이 "6개 나라로 갈라지고 완전히 멸망할 것"이라는 예고(?)까지 했으니 피차간에 별로 차이가 없다고 봐야지요.

양쪽에서 마음속에 바라는 바를 현실에다 그대로 투사하려 합니다. 그리고 극좌파들 중에서는 ‘혁명의 도래’를 희망적으로 이야기하는 이들의 수도 급속히 늘어나는 것 같아요. 글쎄, 마르크스께서 "끝없는 끔찍함보다 차라리 끔찍한 끝이 더 낫다"고 하셨으니 저도 다른 방법으로 해결될 수 없는 모순들이 차라리 폭발이라도 되는 것이 꼭 이 시기에 불가피하다면 이를 역사의 필연으로 알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봅니다.

문제는 모순들이 첨예화됐다고 해서 과연 그 ‘첨예화’가 자동적으로 ‘내파’로 이어지는가의 여부입니다. 저는 적어도 후기 자본주의의 경우에는 그게 그렇게 단순하게 되어지지 않는다고 봅니다.

각종 사회-정치적 요인의 복합적 작용에 따라서 모순들은 사회를 폭발시키는 것이라기보다는 수많은 특정 개인들을 ‘폭발’시켜버리는 동시에, 사회는 자본주의의 또 다른 -더 매혹적이고 더 잔혹한- 방식으로 전환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 사례로 제가 직접 체험했던 1990년대의 러시아를 들겠어요.

더 매혹적이고 잔혹한 자본주의

지금은 세계 대공황 시기라 할 만하지만 1990년대의 러시아는 ‘대공황’ 정도도 아니고 ‘망국’의 경지이었습니다. 국내총생산의 약 50% 하락, 남성 평균 수명의 59세로의 단축, 약 2백만 명 가까이 되는 길거리 아이의 발생, 그리고 알콜 중독과 마약 등의 횡행…

   
  

그 때에 러시아를 가본 사람이면 대충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것입니다. 수학자처럼 외국에서 자리 잡기가 비교적 쉬운 직종의 전문가들 중 거의 절반 가까이 망명 격의 ‘해외 취직’을 하고, 해외 취직이 어려운 인문학도들이 터키나 중국에 가서 보따리 장사하고, 블라디보스토크나 하바로프스크의 여성 의사나 교사, 장교 부인들이 ‘벌이’ 삼아 대한민국에서 성노동(?)하면서 가끔가다가 인신매매의 대상이 되고…

이 정도면 지금 대한민국의 불황은 아이 장난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면 망국적 알콜 중독자 옐친의 정부는 성난 근로대중의 대오에 의해서 타도된 바 있었습니까? 오호통재라, 그 망국판에 근로대중들이 그다운 총파업을 한 번 해보지도 못한 것은 1990년대 러시아의 현실이었습니다.

탄압이 태심해서 그랬던가요? 글쎄, 탄압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정말이지 성난 노동자들의 대오들이 망치 등을 들고 모스크바를 향해 행진하기 시작했다면 아마도 군대 병졸과 중, 하급 장교들의 상당부분은 그들과 합류했을 것입니다.

노동계급은 물론이고, 군에서도 옐친에 대한 생각이란 ‘빨리 쳐죽여야 할 망국적’ 대상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빨간 깃발을 들고 모스크바를 향해 행진하는 근로인민대중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시도도 없었던 것이지요.

노동자들은 깃발을 들지 않았다

물론 그 이유들은 아주 복합적입니다. 하나는, 공업경제가 죽어가는 판에 노동자, 특히 숙련공들의 탈(脫)계급화와 분산화, 원자화 등이 이루어진 것이지요.

   
  ▲ 카메라를 손으로 가리는 모스크바 경찰

보기를 들면 군수 공장이 망하자 처자를 살리려는 일념으로 동대문 시장에 왕래하여 한국산 가죽 점퍼 보따리를 날라와 파는 업으로 전환한 선반공은 더 이상 ‘노동계급 혁명의 예비군’은 아니지요. 비공식 부문의 일개 종사자지요. 그렇게 해서 러시아 노동계급이 줄어들기도 하고 분자화되기도 했어요.

공장에서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으니 저녁에 시장터에서 과일장사나 하는 노동자는 그 당시 러시아 노동계급의 대표자이었지요. 한국산 가죽 점퍼를 나르고 과일장사한다고 해서 진정한 의미의 ‘부르주아’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물론 극소수는 성공하여 자본가가 되기도 했지요) 비공식 부문에 발을 담근 이상 그 가산의 정도도 천차만별이 되고 의식의 변화도 나타납니다.

‘경기’에 좌우되는 부문인지라 ‘경기 하락’을 가져다주는 대중적 저항 등을 또 별로 안좋게 보게 되지요. 그렇게 해서 ‘계급 연대’는 불가능하게 됩니다. 글쎄, 대한민국에서 지금 자영업이 점차 망해가는 추세지만 ‘한국적 사회구조’에서는 늘 어디론가 몸을 둘 수가 있지요.

부모에게 얹어 살면서 아르바이트하든지(일본형 ‘프리타’입니다), 각종 영업판매직을 전전하면서 생계를 잇든지 주변의 도움으로 끝이 안보이는 ‘취업 준비’에 몰두하든지… 구체적인 형태야 러시아와 다르지만 불황이 심회될 수록 ‘모래알 사회’ 현상도 -일본의 전례대로- 심화되지 않을까, 일단 우려를 떨쳐낼 수 없네요.

사회주의를 경멸했던 러시아 젊은이들

1990년대 러시아에서는 30년 이상의 기성인들은 그나마 ‘연대 정신이 강했던 사회주의 시절’을 그리워하기라도 했지만(저도 많은 면에서 지금도 스탈린주의 시절이 그립지요…) 젊은이들은 대개 사회주의의 ‘사’자만 들어도 벌써 쌍욕을 내뱉곤 했어요.

‘그때’는 규율사회이었지만 1990년대의 러시아에서는 돈으로 사는 섹스든 마약이든 길거리에서 맥주병을 들고 큰 소리로 쌍욕을 내뱉는 행위든 거의 모든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욕망의 해방’이라 할까요? 물론 별로 수준이 높은 욕망들은 아니었지만, 약간의 돈으로 여자를 사고 약간의 싸움 실력으로 조폭의 멤버가 돼 동네 사람들을 겁에 떨게 만들어도 된다는 데에 대해 대만족했던 이들을 많이 봤어요.

물론 이 정도의 ‘해방'(?)은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진 지 오래됐지만 아마도 앞으로도 깊어져가는 불황에 터지는 수많은 서민들은 바로 마약, 술, 범죄, 상업화된 섹스의 영역으로 흡수될 듯합니다.

중남미를 보시면 이명박 류의 정부(저런 류의 사람들을 저는 ‘정부’로 부르고 싶지도 않아요. 정부는 마땅히 국민에 대한 책임감이라도 있어야 정부지요)가 이끄는 대한민국이 무엇이 될는지 알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꼭 혁명이 일어나는 법은 없지요.

하여간 모든 시나리오에 다 대비하면서도 최악을 막아보는 것은 최선책이겠지요. 우리 상황에서는 최악이란 바로 중남미형 영속적 불안의 격차 사회로의 전락인데, 그걸 막는 방책으로서는 제가 그 전에 이야기한 ‘급진적 개혁’ 이외에는 저로서 도대체 보이지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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