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 안에 민주노동당 있다
    2009년 02월 23일 05:3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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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종북주의’라 불리는 그것

구 민주노동당 내에서 상이한 세력들간의 공존의 토대가 정확히 어디서부터 붕괴되었는지 밝히는 것은 매우 어렵다. 언뜻 보기에 조승수 전 의원의 ‘종북주의’가 분당의 랜드마크인 것 같다.

   
  ▲ 지난 해 열린 2월 3일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일심회 등 주요 쟁점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피케팅이 진행되었다(사진=미디어오늘)

셀 수도 없이 많은 분당의 요인들 중 최소한 절반 이상이 ‘종북주의’라고 불려졌던, 구 민주노동당 주류 세력들이 많은 당원이 집단적으로 탈당하더라도 바꿀 수 없었던 그것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의 일부 당원들이 반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그것이 하필이면 ‘종북주의’로 명명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그것을 ‘종북주의’가 아닌 다른 아름다운 용어(?)로 규정했다고 해도 그것의 실체는 ‘종북주의’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감정과 다르게 ‘종북주의’라고 불리던 것은 더 이상 진보신당의 관심사가 되지 못한다. 분당 이전에는 바로 나의 정체성과 관련된 중요한 이슈였지만 이제는 가치관을 달리하는 다른 진보정당 내의 일이기 때문이다.

분당의 효과

민주노동당 분당은 진보정당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다. 민주노동당을 ‘정상화’시켜 현재의 민주노동당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럴듯한 진보정당 하나를 더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내에서는 더 이상 최저위원회, 봉숭아 학당이라는 지도부에 대한 조소가 들리지 않는 것 같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린 조카의 명의까지 빌려야 했던 페이퍼 당원의 양산, 대리투표를 비롯한 온갖 해괴한 선거부정 시비도 없어진 것 같다. 뿐만 아니라 항명사태를 초래했던 북핵을 둘러싼 갈등도, 누가 적인지 동지인지를 다투어야만 했던 일심회 관련 당원의 징계를 둘러싼 대립도 사라졌다. 이 정도면 분당으로 인한 실보다 득이 많다고 주장해도 어색할 것이 없다.

진보신당의 경우 당원의 많은 수가 탈당 세력이 아닌 새로운 당원이다. 이 점에서 이전의 민주노동당이 담보하지 못했던 새로운 영역을 포괄함으로써 진보정치의 영역을 확장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하다.

남은 과제는 양대 진보정당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연대의 틀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것의 해법은 양당의 통합이 아니라 성공적인 새로운 연대의 틀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진보신당 내의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1년이 지난 요즈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 논의가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다. 그 이야기의 근원지는 아직도 진보정당이 하나여야 한다고 믿는 순진한 운동가들과 비판적 지지의 망령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MB론자들, 이야기꺼리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기자들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몽상에 가까운 주장들이 점점 더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양자가 다르다는 진보신당의 주장은 안쓰럽기 그지없다. 다르다는 주장 자체만이 다르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고 있을 뿐 그 이외의 어떤 것으로도 다름을 증명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진보신당의 활동 방식, 정책, 정당 운영 등에서 민주노동당과의 차이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

처음 맞닥뜨리는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재보궐선거를 위해 당원들에게 특별당비를 걷은 적이 없다”는 회상적 발언을 할 정도로 규범과 가치, 경험의 뿌리를 민주노동당에게 두고 있다. 진보신당의 당직자는 민주노동당의 그 당직자와 다르지 않으며, 심지어 진보신당의 노회찬·심상정도 민주노동당의 노회찬·심상정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성찰의 부재와 영혼 없는 진보신당

진보신당에게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통합의 대상으로 거론되는 것이다. 그것은 민주노동당과의 다름을 부정하는 것으로 진보신당의 실패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보신당은 왜 실패하고 있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과 다른 새로운 가치와 비전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보신당은 분당과 창당으로 민주노동당과 ‘다르다는 것’을 물리적으로 인식시켰을지는 몰라도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과 가치를 구축하는 데에는 지속적으로 실패하고 있다.

진보신당이 새롭지 못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성찰의 부재’에 있다. 특히 민주노동당 파탄 원인의 절반을 제공한 소위 ‘무능한 좌파’로 일컬어지던 이들은 아무런 반성 없이,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평가의 주체로 진보신당의 주류가 되었다.

   
  ▲ 지난 해 10월에 열린  ‘진보정당의 분화과정에 대한 평가와 새로운 진보정당의 가능성’ 토론회(사진=정상근 기자)

이들은 ‘무능한 좌파’로써 진보신당에 점령군으로 뿌리를 내림으로써 새로운 주체의 형성을 봉쇄했다. 언제, 어떻게 입당할지도 모르는 소위 ‘노건추’의 수천 조직원을 기다리며 제2창당을 미루는 지도자들에게 진보신당이 거듭나기를 바라는 새로운 당원은 기껏해야 한 표씩에 불과한 것이다.

조직과 이해관계가 아닌 비전과 가치로 경쟁하라

기계적으로 진행되는 제2창당은 결국 스스로를 통합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릴 뿐이다. 제도나 정책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영혼, 즉 진보신당의 철학이 투영되지 않은 제도나 정책은 인물정치나 정파정치를 정당화 시키는 도구로 전락할 뿐이다. 영혼을 만들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주체의 형성과 성찰과 비전, 가치를 중심으로 한 리더들의 경쟁이다.

진보신당 창당 이후 노·심의 경쟁은 지속되었다. 하지만 노·심의 철학이 무엇인지는 도대체 알 수 없다. 진보신당에는 단 하나의 평가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진보신당의 리더와 구성원들은 스스로를 성찰의 대상에서 제외시켜왔다. 그 결과 자신만의 새로운 철학은 없고 오로지 당에서 작성한 민주노동당이 아님을 증명하는 단 하나의 평가만이 존재했다.

따라서 진보신당에서 경쟁은 민주노동당에서 그랬던 것처럼 리더의 비전과 가치가 아니라 조직 경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결국 진보신당이 살아남는 방법, 제2창당의 성공여부는 노·심이 성공하는 것, 훌륭한 제도를 만드는 것, 수천의 노동자 조직을 포괄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신당이 성찰의 주체이자 대상으로서 자신만의 철학과 비전을 창출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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