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라리 성적조작을 허하라
        2009년 02월 23일 10: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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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류사회에선 임실 사태 이후 일제고사가 아니라 성적조작이 화두가 되고 있다. 과거 학력위조 사태 당시 학벌사회가 아니라 학력위조가 화두가 됐던 것과 같은 양상이다. 그때 한국 주류사회는 어떻게 학력위조가 광범위하게 퍼질 수 있었는지 분석하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검증시스템’을 만드는 데 골몰했었다.

    이번엔 일제고사 결과 공개를 성급히 밀어붙인 교과부의 ‘속도전’이 비판받고 있다. 그렇다면 ‘천천히 용의주도하게’ 시행하면 괜찮다는 말인가? 교총은 평가의 신뢰도 제고를 위해 철저한 진상조사와 재발방지방안을 주문하고 있다. 조작되지 않은 투명한 일제고사 관리를 요구하는 것이다.

    평가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역시 나온다. 채점을 각 단위학교 별로 하는 것이 문제라는 내용이다. 이를 두고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었다고 자탄하고 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국가가 채점 과정을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강제성이 없어 대충 보는 시험과 시험감독 소홀도 지적된다. 모두 기술적인 문제들이다.

    안병만 교과부 장관은 이번 일을 계기로 채점, 집계 과정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나경원 의원은 이번 사태를 ‘신뢰의 문제’라고 규정하고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일제고사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신뢰할 수 있는 학력 검증시스템, 신뢰할 수 있는 성적 검증시스템, 언제나 이런 식이다. 한국사회 주류는 근본을 보지 않고 시스템 합리화에만 집중한다. 주류 언론도 시스템의 문제만을 파헤친다.

    투명한 시스템은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투명하고 합리적이고 믿을 수 있는 성적관리가 이루어졌다고 치자. 그럼 뭐가 달라지나? 시골 학교가 성적조작을 안 하는 바람에 투명한 꼴찌가 되고, 서울 강남이 명백한 일등이 됐다고 해서 한국 교육에 어떤 진전이 있나?

       
      ▲ 한 학생이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투명한 서열체제를 우린 이미 알고 있다. 대학서열은 1급수처럼 투명하다. 그렇게 명명백백한 서열이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입시경쟁이다. 만약 대학들 간에 서열이 불투명했다면?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입시지옥, 사교육 망국 현상은 없었을 것이다.

    중등과정 평준화는 중고교간 서열을 불투명하게 만든 장치였다. 일제고사는 이것을 다시 1960년대처럼 투명하게 만들려는 기획이다. 한국사회 주류가 원하는 대로 일제고사 시스템이 투명해지면 투명해질수록 우리 교육이 퇴보하는 것이다. 바로 경기고라는 명명백백한 1등 고등학교가 있던 그 ‘촌스럽던’ 시절로의 퇴행.

    그러므로 시스템이 합리화될수록 상황은 더 악화된다고 말할 수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은 신뢰해야만 하는 학교서열을 만드니까. 지방 국립대와 서울 명문 사립대 사이의 서열이 과거엔 애매모호했었고 지금은 명백해졌다. 그동안 어떤 변화가 일어났나? 입시경쟁 과열과 사교육비 폭등이다.

    차라리 성적조작을 허하라

    과거 학력위조 사태 당시 난 지금과 같은 사회에서라면 차라리 전 국민이 학력위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는데, 지금도 그렇다. 지금과 같은 교육환경에서 일제고사를 추진한다면 차라리 모든 학교가 성적조작을 하는 것이 그나마 차선이다.

    전 국민이 학력위조를 통해 서울대 졸업장을 가지고 다닌다면 그 순간 학벌사회는 해체된다. 입시지옥도 사라지고 입시교육, 사교육비도 사라진다. 교육은 정상화되고 아이들은 더 이상 자살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에선 더 이상 대학졸업장으로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없으므로 한국사회 인재 평가시스템이 선진화된다. 더 이상 대학졸업장이 나의 능력을 대변하지 않으므로 각자 전문 능력을 기를 수밖에 없게 된다. 간판사회에서 능력사회로 진화하는 것이다.

    성적조작도 그렇다. 모든 학교가 자유롭게 성적조작을 할 수 있다면 일제고사는 극히 불투명해진다. 이때 학교는 투명한 서열화의 압력에서 벗어나 입시교육을 덜 할 수 있게 된다. 학부모와 학생의 스트레스도 경감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사회 주류가 대학서열체제를 굳이 유지, 강화하고 일제고사를 꼭 치러야겠다면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학력위조 / 성적조작을 허하는 것이다. 대학서열체제와 학력위조, 일제고사와 성적조작이 함께 가야 이 나라 교육이 안 죽는다.

    전면 조작하거나 전면 폐기하거나

    물론 제일 좋은 것은 대학서열체제와 일제고사를 폐기하는 것이다. 이 체제의 문제점은 학력 / 성적으로 아이에게 평생 갈 낙인을 찍는데 그 기준이 너무나 야만적이라는 데 있다.

    아이의 학력 / 성적은 아이의 노력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학교의 교장, 교사의 노력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노무현-이명박 정부는 학교 탓을 하며 공교육정상화를 주장한다. 사기다. 아이의 학력 / 성적은 부모의 돈으로 결정될 뿐이다. 이것이 진실이다.

    학력위조 사태 때 비판언론마저도 검증시스템을 문제 삼았었다. 그리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성공한 저학력자들의 사례를 발굴해 보도했다. 검증만 잘 되면 각자 열심히 노력해 잘 살 수 있다는 얘기다.

    당시 한 비판매체가 그런 사례와 관련해 말해달라고 해서 인터뷰를 거부한 적도 있었다. 요즘으로 치면 불투명한 성적관리를 비판하며 성적조작을 하지 않고도 놀라운 학력을 보여준 시골 학교 사례들을 찾아다닌 것과 같았다.

    지금 또다시 검증시스템이 화두가 되고 있다. 검증시스템 합리화 논의에 놀아나면 지난 학력위조 사태처럼 된다. 그때 몇몇 유명인사가 망신당한 것 말고는 우리 사회가 얻은 것이 없었다. 지금 성적 검증시스템 가지고 갑론을박해봐야 우리가 얻을 건 없다.

    일제고사를 하려면 전면 조작으로 가거나, 조작이 싫으면 일제고사를 전면 폐기하거나, 이 두 가지다. 이것 말고는 일제고사 ‘판때기’에 출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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