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탓에서 이명박 때문으로
        2009년 02월 23일 09:0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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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오바마를 읽는다. 나도 오바마를 읽었다.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과 『담대한 희망』을 읽고서 오바마의 정치철학이 미국사회의 최하층이자 소외집단의 공동체인 시카고 사우스사이드 흑인지역에서 조직운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형성되었으며, 정치참여의 결단을 내린 곳도 이 곳이라는 데 새삼 놀랐다.

    내가 오바마에 놀란 점

       
      

    소외된 사회적 약자의 삶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정치의 한 복판으로 가져오되 지극히 실현가능한 현실적 방법을 찾아내려는 태도가 인상에 남았다.

    사회운동에서 정치로 활동의 장을 옮기면서 운동과 정치가 다른 행동원리와 덕목을 갖는다는 점을 정확히 구별하고, 이상주의를 냉정한 현실주의와 결합시키는 오바마의 태도는 사방팔방을 둘러싼 ‘원칙’과 ‘성역’에 가위눌린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반쪽 흑인이지만 결국 자신은 흑인일 수밖에 없고, 흑인으로 살아가겠다는 처절한 깨달음 끝에 케냐를 찾아 뿌리를 캐는 과정은 단순한 족보 찾기를 넘어, ‘흑인’으로 대표되는 미국 사회의 갈등을 내면화하는 과정으로 읽혔다.

    ‘내 안의 아메리카’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해답을 찾아가는 구도자처럼. 오바마의 사회운동과 정치활동에서 ‘흑인’ 문제는 예컨대 ‘고통 받는 민중의 문제’ 이전에 바로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몸부림이 되었다.

    그 결과 오바마가 사회운동과 정치활동에서 주력하는 주제는 대다수 미국인들의 삶 가까이서 정해진다. 또 내면화를 거친 그의 목소리는 책 전체에서 물씬 풍기듯 주관이 뚜렷한 운동가이자 정치가의 면모를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회운동이 됐든 정치운동이 됐든 자기 것으로 깊이 내면화될 때, 삶이 그 무엇을 위한 수단이 되지 않고 생명력 넘치는 자신만의 삶의 방식, 인생 그 자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정치든 운동이든 평범한 사람의 삶 주변에서 맴돌게 될 때 비로소 제 할 일을 제대로 하게 되지 않을까.

    책으로 만난 오바마는 매력 넘치는 운동가이자 정치가였고, 케냐 오지 아버지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감동스럽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아버지로부터의 꿈을 간직하고 희망을 담대하게 꽃피우길 기대해본다.

    삶이 수단이 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욕한다. 나도 이명박 대통령이 싫다. 특히 용산 참사가 일어난 뒤 한 달 동안 이명박 정부가 한 일은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다. 지난 한 달을 돌아보면 과연 우리사회가 정치적 민주화나마 제대로 이뤘는가 하는 깊은 회의가 든다.

    건설재벌과 부동산 소유주들이 더 많은 개발이익을 얻으려 조폭이나 다름없는 용역깡패를 돈 주고 사서 원시적인 사설 폭력을 휘둘러도 국가는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 견디다 못한 철거 세입자들이 망루에 오르자 테러진압 담당 경찰 특공대가 투입돼 용역깡패와 한 패가 돼서 살인 진압을 했다.

    이 과정에서 여섯 명이 죽임을 당하고 국민 여론이 악화되자 청와대는 살인마의 살인행각을 이용해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라는 지침을 내린다. 수십 억대 부동산 부자들인 국회의원과 용산구청장, 청와대 부대변인이 인면수심이 아니고서야 뱉을 수 없는 ‘생떼 쓰는 철거민’ 류의 가공할 언어 폭력을 휘두르고, 부동산 광고로 운영되는 극우신문들은 ‘철거민의 배후가 있다’며 한 술 더 떴다.

       
      ▲ 용산 사고현장에 마련된 임시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울먹이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검찰은 살인경찰에 면죄부를 주고, 살인경찰은 명예롭게 ‘눈물의 사퇴’를 했다. 대통령은 끝내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살인경찰을 두둔했다.

    가족의 생활 터전을 지키려다 억울하게 목숨을 빼앗긴 희생자들은 ‘생떼를 쓰다 스스로 불을 질러 죽은 사람’들로 몰린 채 영혼조차 눈을 감지 못하고 있다. 마치 시계를 1970∼80년대 박정희 전두환 개발독재 시절로 되돌려놓은 것 같은 한 달 이었다. 이런 대통령을 어떻게 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프레임과 인간 내면

    오늘도 난 오바마를 읽는다. 이번엔 연설문 모음집이다. 몇 년 전 미국 민주당의 선거 패배 원인을 다룬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를 읽고 ‘프레임(frame)’이란 생소한 단어를 넣어 말하는 게 유행이었던 때가 있었다. 이제 정반대 이유로 오바마를 읽는다.

    난 오늘도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한다. 몇 년 전 술자리 안주는 ‘노무현 탓’이었는데, 최근 1년 만에 ‘이명박 때문’으로 변했다. 왜 대한민국에는 오바마 같은 대통령이 나오지 않느냐고, 국민들은 왜 이명박 대통령 같은 사람을 뽑았느냐고 이견 없는 한탄과 울분을 토한다. 그러다 문득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들여다본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 윤동주의 시 <참회록> 중에서

    ‘대한민국 용산’ 보다 ‘시카고 사우스사이드’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는 슬픈 뒷모양, 평범한 사람 주변을 벗어나 아직도 홀로 용감한 빛 바랜 왕조의 유물, 욕망을 좇는 부동산의 포로가 된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열심히 살아온 착한 사람들을 죽게 하고도 인면수심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언행을 일삼는 권력집단을 탄생시킨 책임이 민주화 이후 20년간 민주나 개혁 혹은 진보라 불리는 세력의 무능에 있음을 모르거나 잊고 싶거나…. 이명박 정부를 욕하는 것으로 참회와 성찰을 대신했던 1년….

    * 이 글은 오마이블로그 ‘손낙구의 세상공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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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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