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경기 꼴찌는 중딩들의 반란?
        2009년 02월 17일 04: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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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교육과학기술부는 작년 10월에 치룬 일제고사(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전체적인 수치뿐만 아니라 지역별 수치까지 나왔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지역교육청(일반행정의 시군구에 해당) 별로 보통이상 / 보통 / 미달 비율을 밝혔고, 고등학교는 시도교육청(일반행정의 시도에 해당) 별로 공개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초등학생은 미달학생 비율이 2% 내외인데, 중학교와 고등학생은 10% 안팎으로 증가하였습니다. 이를 두고 교과부는 “하향평준화 정책의 결과”라고 해석합니다. 뿐만 아니라 미달 학생을 줄이는 데에는 교장의 리더십, 교사의 열정 등이 중요하다고 덧붙입니다. 그래서 △미달학생이 많은 학교는 지원하고, △일제고사 결과를 교육청 평가 및 재정배분에 반영하는 형태의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과 경기의 미달학생 비율이 높습니다. 수학의 경우, 서울의 미달 중학생은 14.4%이고 경기는 14.6%입니다. 고등학생도 비슷합니다. 이를 두고 ‘서울과 경기가 꼴찌’라는 말도 나옵니다. 보통이상 / 보통 / 미달 등 3등급으로 공개하면, 보통이상 비율로 1위를 고르고, 미달 학생 비율로 꼴등을 찾을 것이라는 예상이 현실로 나타난 겁니다.

    이렇게 보면, 교과부는 성공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지역 순위를 매기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 교과부의 발표에서 미심쩍은 부분이 없는 건 아닙니다.

    2007년 결과는 어디로 갔을까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2000년부터 있어왔습니다. 이 사실을 잘 모르는 이유는 그동안의 평가가 표집이었기 때문입니다. 2007년까지는 일부 학생만을 대상으로 평가가 이루어졌답니다. 그러다가 작년 2008년부터 모든 학생이 한날 한시에 같은 문제지를 두고 시험을 치르는 전집평가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일제고사’라고 부릅니다.

    학업성취도 평가가 있어왔기 때문에, 당연히 결과도 존재합니다. 2006년 평가는 2007년 12월에 발표하는 식이었답니다. 하지만 공식적인 발표는 2006년 평가까지입니다. 그리고 지난 16일 2008년 평가가 나옵니다. 2007년 결과가 발표되지 않은 것이죠.

    물론 공개되지 않은 2007년 수치에 커다란 비밀이 숨겨져 있지는 않을 겁니다. 그동안의 추이와 비슷한 경향을 보일 것으로 사료됩니다. 하지만 학업성취도 평가의 분석에서는 추이도 중요합니다. 특히, 이번에 발표된 2008년 평가는 ‘10년만의 일제고사’이니 만큼, 예전의 표집 평가와 비교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예전의 표집과 일제고사의 결과가 비슷하다면 굳이 전집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되며, 결과가 다르다면 표집이나 일제고사 중 하나는 뭔가 문제가 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분석은 생략한 채 성적만 발표합니다

    이번 교과부 발표의 특징은 일체의 분석이 없다는 겁니다. 학생의 성적이라는 건 여러 가지 변인들이 영향을 미칩니다. 예컨대 이번 발표에서 서울 강남이 우수한 것으로 나왔는데, 강남의 학생들이 머리가 좋아서 그럴 수도 있고, 강남이 잘 사는 동네라서 그럴 수 있답니다. 그래서 학생의 배경 변인과의 관계를 분석하는 게 필요합니다. 이게 없으면, ‘성적순으로 동네 줄세우기’에 지나지 않거든요.

    표집평가일 때에는 결과 발표에 분석이 들어 있었습니다. 2006년 결과에서는 “학생의 자기조절학습 능력, 학교생활 적응도, 교과 태도가 긍정적일수록 학업성취도는 높은 경향을 보였다”는 언급이 있었습니다. 이를 본다면, 누구나 어떻게 하면 자기조절능력 등을 키울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될 겁니다.

    그런데 이번 발표에서는 분석이 없습니다. 전북 임실의 사례를 말하면서 방과후 학교를 언급하나, 방과후 학교가 정말 효과적이었는지, 학생들의 가정배경이 어떠한지에 대한 분석은 없습니다.

    초등학생에 비해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미달 비율이 높아진 수치는 있는데, 왜 그런지 분석은 빠진 채 “하향평준화 정책의 결과로 추정된다”라고 바로 해석을 내놓습니다. 같은 지역의 학교라도 학교장의 리더십, 교사의 열정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발표하는데, 그것과 관련된 어떠한 분석도 없습니다.

    신기할 따름입니다. 분명 작년 일제고사에서 일부는 배경 변인까지 표집해갔는데, 배경 변인 분석은 언급하지 않은 채 오로지 추정과 해석만 내놓고 있으니 말입니다. 교과부에 대단한 교육학자나 무당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청계천의 경우처럼 정해진 시간에 무조건 성적 발표 업무를 완료하는 ‘공사’일 것으로 판단됩니다.

    중학생이 튑니다

       
      

    그동안의 학업성취도 평가와 2008년 일제고사의 미달학생 비율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래프 등으로 보여주면 좋을 텐데, 숫자가 많아 복잡한 그림이 되지 않을까 하여 표로 제시합니다. 2003~2006년을 대략 살펴보면, 초등학생의 미달 비율은 2~3% 수준입니다. 중학생은 5~6% 정도이고, 고등학생은 10% 안팎입니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그동안의 공식적인 분석에 따른다면 “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자기조절학습 능력이나 교과 흥미가 떨어지는구나”라고 해야 합니다. 추가하여 시각에 따라 “대학입시로 가까워질수록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이 늘어난다”라는 해석을 덧붙일 수 있겠죠.

    그런데 2008년이 튑니다. 특히, 중학생의 미달 비율이 예전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납니다. 수학의 경우 2006년 6.9%였는데, 일제고사에서는 12.9%를 보입니다. 이처럼 미달학생 비율이 2/5/10(초/중/고)에서 2/10/10으로 중학생만 유독 늘어났습니다.

    교과부는 이에 대해 ‘하향평준화 정책의 결과’로 추정합니다. 물론 왜 그런지 이유는 밝히지 않고 선언만 할 뿐입니다. 초등학생과 고등학생은 예전과 비슷하고 중학생이 확 늘었는데, 여기에 그 분들이 증오하는 ‘평준화’를 갖다 부친 셈이죠.

    시각에 따라서는 다른 해석도 가능합니다. 여론조사의 경우 ‘저항하는 응답자’라는 업계 용어가 있습니다. 자기 속내를 잘 밝히지 않거나 거짓으로 응답하거나 일관성이 없어서 결과적으로 여론조사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물론 응답자의 잘못이 아닙니다. 여론조사에 응하기 싫어 그럴 수 있으니까요.

    작년 일제고사는 1박 2일에 걸쳐 초등학생은 4시간 40분, 중고등학생은 5시간 동안 진행된 성적 여론조사였습니다. 이 때 중학교에서 ‘저항하는 응답자’가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초등학생은 선생님 말을 들었을 것이고, 고등학생은 평소에도 시험을 많이 봤을 테지만, 중학생은 대부분 중간고사 직후였기 때문에, 일제고사를 대충 봤을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일제고사 논란이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강했던 점을 감안하면, 왜 ‘서울과 경기가 꼴찌’인지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서울시교육청은 백지 답안지 등을 제외하고 일제고사 성적을 재산출하려고 했습니다. 백지 답안지, 전봇대 답안지, X자 답안지, 평소 실력에 비해 낮은 성적을 보인 답안지 등을 빼려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런 답안지가 몇 개인지는 서울시교육청이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미있는 숫자이든 아니든 간에, 일제고사를 바라보던 학생들의 분위기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답니다.

    물론 ‘저항하는 응답자’의 가능성은 어디까지나 해석이고 추정입니다. 하지만 교과부도 분석 없이 해석과 추정만 내놓고 있답니다. 하지만 중학생의 튐 현상으로 보아, 예전의 표집과 일제고사 중에서 하나는 뭔가 문제가 있는 건 확실합니다.

    경쟁을 더 시키면 좋아질까요

    일제고사 성적 공개에 뒤이은 교과부의 대책은 ‘경쟁시킨다’입니다. 미달학생이 많은 학교에 지원한다고 언급하면서도 △학업성취도 향상도를 시도교육청 평가에 반영, △학업성취도 향상도를 시도교육청의 교부금에 반영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교육청이 학교평가를 할 때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반영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일제고사에 좋은 성적을 보이지 않으면 ‘나쁜 학교’로 평가받고 재정지원에서도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시도교육감과 교장 선생님들이 가장 먼저 반응할 겁니다. 교과부가 모범사례로 제시한 임실 교육청을 본받아 ‘방과후 학교’라는 이름으로 초등학생을 오후 6시까지 학교에 붙잡아 둘 것이고, 이명박 대통령이 방문한 덕성여중을 따라 밤 9시나 10시까지 중학생을 귀가시키지 않을 겁니다.

    여기에 영국과 미국 등에서 여러 차례 발견되었던 사례처럼 일제고사 대비 문제풀이 수업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율적’으로 진행되고, 시험 당일에는 하위권 학생, 장애인,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알아서’ 등교시키지 않겠죠.

    물론 그런다고 모든 지역이 전북 임실이나 강원 영월처럼 되지는 않을 겁니다. 다른 지역은 안 하고 우리 지역만 할 때에는 선점효과가 일부 나오지만, 전국의 모든 지역이 다 하면 가정배경이나 다른 변인으로 성적이 갈릴 테니까요.

    그리고 한국의 교육은 교사의 질이 전국적으로 고르기 때문에, ‘괜찮은 방법’이라고 알려지면 아주 빠르게 전파되는 ‘다른 학교’ 효과가 상당하답니다. 이렇게 모든 학교로 전파된 다음에 필요한 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사교육입니다.

    그런데 일제고사와 성적 공개를 계기로 경쟁을 시키는 것이 과연 좋을까요. 그렇게 보시는 분도 있겠지만, 우려스러운 지점도 있답니다. 한국은 세계 2~3위권의 성적이나, 자신감과 교과 흥미도는 낮기 때문입니다. “성적은 좋으나, 자신감도 별로고 공부도 좋아하지 않는다”, 즉 억지로 공부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상황인데, 학교와 교육청에서 더 몰아부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 국제학력평가 TIMSS 2007의 한국 순위(50개국 중)

      *국제학력평가의 순위를 제시한다고 말하지 말기를. 국제학력평가는 표집입니다.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학업성취도에 있어서 중요한 개념은 자신감과 즐거움입니다. 이게 나빠지면, 학업성취도는 언젠가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억지로 공부한 결과는 나중에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은 학생의 자신감과 즐거움을 끌어올리기 위한 방안들을 강구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이명박 정부는 오로지 ‘시험’과 ‘경쟁’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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