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문화에서 새 당이 태어났다"
        2009년 02월 17일 10: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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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세대의 두 혁명가, 알랭 크리빈과 다니엘 벤사이드를, 반자본주의신당(NPA) 창당대회에 공식 초청되어 참가 중인 진보신당 당원들과 함께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이 둘은 작년, 68혁명 50주년을 맞이하면서 쓴 『1968. 시작과 연속』의 공동저자인 동시에 평생을 같이 해온 동지이기도 하다. 알랭 크리빈은 행동가로서 공산혁명전선 LCR의 전략을, 다니엘 벤사이드는 철학가로서 LCR의 이론을 풍부하게 만드는 데 일조해 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둘을 항상 같이 기억한다. ‘전략과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지금 NPA의 역사적 원류를 만든 이가 크리빈이다. 사회당 의원의 사위였지만, 공산당 당원으로서 활동을 하다가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를 조직하면서 혁명적 공산주의청년단 JCR을 결성하게 된다. JCR은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게 되고 크리빈은 68년 감옥에 투옥되면서 JCR은 강제 해산되었다.

       
      ▲ NPA 창당대회 첫 날인 지난 5일, 알랑 크라빈이 LCR 해체 제안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박지연 파리통신원)

    그러나 1년 후 그가 출옥하자마자 제일 처음 행한 활동이 다시 LCR을 창단한 것이다. 2002년 올리비에 브장스노가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서기 전까지는 알랭 크리빈이 선거 후보의 임무를 늘 맡았다. 대중들에게 크리빈은 68혁명의 상징으로써 확신에 찬 활동가로 널리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투옥과 정치탄압의 힘든 투쟁 속에서 스스로 일궈온 정당을 크리빈은 그 어느 누구보다 더 큰 목소리로 LCR는 이제 해체되어야 한다고 외쳤다. 새로운 세대를 위한 투쟁을 만들어 가야만 하는 새로운 시간이 왔음을 인식한 것이다.

    크리빈의 한결 같은 동지이자, 제 4인터내셔널 비서인 다니엘 벤사이드는 지난 한국에서 일어난 촛불시위 연행자에 대한 석방을 촉구하는 공동 성명서를 노암 촘스키 교수 등과 같이 발표하였다.

    발터 벤야민과 칼 마르크스가 전공인 다니엘 벤사이드 전 파리 8대학 교수는 69년 LCR 창단에 참가하면서 앙리 베버와 함께 초대 정치국 일원이 되었다. LCR의 정치국은 단순히 한 정당의 정치위원회를 넘어선 전체 좌파의 철학과 정치이론의 주요한 근원지 중의 한 곳이다.

    다니엘 벤사이드는 우리에게도 『저항: 일반 두더지에 대한 시도』의 저자로 익히 알려져 있다. 그는 루이 알튀세이, 알랭 바디우, 자크 데리다, 안토니오 네그리 등을 등장시켜 혁명에 상응하는 정치적 행동으로써의 ‘저항’을 다룬 이 책 외에도 서른 권 정도의 저서를 집필한, 프랑스를 대표하는 좌파 지성인 중 한 사람이다.

    최근에는 올리비에 브장스노와 함께 『정당을 건설하자: 21세기 사회주의를 위하여』를 발간하기도 하고, 얼마 전 알랭 바디우의 ‘혁명을 준비하지 않는 NPA’에 대한 비판을 일간지 <리베라시옹>에 반박 기재하면서 논쟁을 이끄는 등 여전히 좌파 철학자로서의 의무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다니엘 벤사이드 교수는 진보신당 참가단과 함께 한 인터뷰에서 지금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새로운 사회상과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칠 것인가에 대한 그의 견해를 <레디앙>에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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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니엘 벤사이드

    – 당신과 올리비에 브장스노가 공동으로 쓴 『정당을 건설하자』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흥미로운 생각들을 발견하였다. 이 책과 관련하여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자 한다. 질문에 앞서 68세대로서 새로운 정당을 바라보는 심정이 어떠한가?

       
      ▲ 다니엘 벤사이드 (사진=박지연 파리통신원)

    = 매우 만족스럽다. 우리는 68년도에 많은 희망을 가졌었다. 그때는 이 사회를 빠른 속도로 발전시킬 수 있는 혁명적 운동에 관한 생각도 동시에 했다.

    68은 단순히 프랑스에만 국한되는 사건이 아니었다. 69년을 지나면서 이탈리아의 노동자 투쟁, 74년의 영국, 스페인, 포루투칼 혁명 등으로 번졌다.

    그러나 20세기는 큰 실패로 끝나버렸다. 이것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과 같은 역사적 사건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에서 존재하는 1억 명 정도의 러시아, 중국, 인도 등의 전 세계 노동자들이 어떠한 사회적 보호도 없이 열악한 노동과 투쟁 환경 속에서 처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계급과 자본의 세계 속에서의 힘의 역학관계에 의한 노동 계급의 약화로 발현되었다.

    80년대 들어서 유럽의 많은 혁명적 좌파들이 사라졌다. LCR 또한 활동성이 매우 위축된 시기였다. 이탈리아에서도 많은 활동가들과 함께 3개의 주요한 일간지가 사라졌고, 영국에서 시작된 자유경제주의가 득세하고 사회 운동이 몰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94년 이후부터 멕시코 등지에서 새로운 활동의 시작을 상장하는 징후가 나타났다. 그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라 생각되는데, 물론 그 이전부터 한국에서는 학생운동들을 포함하는 강력한 저항과 운동들이 존재하긴 했어도, 전 세계적으로는 반세계화 운동, 95년 프랑스 총파업과 같은 노동 운동의 새로운 상징들이 포착된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을 모르는 신세대의 입당

    오래전부터 새로운 역사를 이어갈 조직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계획으로 현실화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유럽의회에서 승리(유럽의회 법안 거부)와 러시아혁명과 중국혁명의 전통을 이어받지 않는 새로운 세대가 당에 들어오면서부터 이러한 생각은 새로운 조직 건설이라는 구체적 실천으로 옮아오게 되었다.

    올리비에 (브장스노)가 그러한 예이다. 그는 정치운동을 이러한 ‘94년 멕시코’와 같이 시작한 젊은 세대이다. 올리비에를 처음 만났을 때 그것은 ‘새로운 운동’이라는 상징적 사건처럼 새로운 세대라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문화를 가지고 당에 들어왔다.

    나는 툴루즈(프랑스 남서부도시) 출신이다. 거기에는 스페인 등에서 온 이민자 세대들이 넘쳐났고 그들은 늘 전쟁의 역사와 함께 한 이민자들이었다. 스페인 내전, 독일 점령 하에서의 전쟁 경험 속에 우리는 태어났으며, 또한 모든 사회적 운동을 겪으며 커왔다.

    하지만 올리비에는 이러한 역사적 경험이 달랐다. 학습도 우리가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을 읽었다면, 올리비에는 ‘마르코스(멕시코 혁명가)와 안토니오’를 읽었다. 물론 그도 이후에는 고전들을 읽기 시작했지만.

    지금 NPA에 있어서 LCR과 비교하여 정책이 변화한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사상이 변화한 것이 아니라 변한 것은 사회이고 여기에 상응해야 하는 조직이 바뀐 것이다. 조직이 대중에게 뿌리를 내린다는 의미이다.

    좌파에게 가장 큰 문제는 아프리카와 아랍지역 대중들이 모여있는 방리유(도시근교지역)의 문제였다. 그 이전의 프랑스 정치문화에는 노동운동에 관한 공동의 역사관을 공유하고 있었다. 국가적 역사, 프랑스 혁명, 파리코뮌 등등.

    그러나 알제리, 모로코에서 건너온 젊은이들에게는 이러한 경험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21세기를 살면서 혁명을 준비한다면 이들과 함께 역사를 나누며 또 함께 건설을 해야 한다. 우리는 2005년 방리유에서의 저항 이후부터 그들이 왜 NPA에 들어오는지 이해를 해야만 하고 같이 역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지하철의 인종 분포와 창당대회의 인종 분포

    팔레스타인 문제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바라보고 있다. 지하철에서의 인종 분포도와 NPA 창당대회에서의 인종 분포는 확연하게 다르다. 오늘 이 자리에는 95%의 백인이 모여 있다. 아직도 우리는 프랑스 대중과 다른 지점에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또 다른 임무가 나오는 것이고 그것은 사르코지가 하고 있는 TV 광고가 아닌 아주 현실적인 사회를 기본으로 도출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당을 보며 느끼는 당원으로서의 심정이다.

    – 우선 당신에겐 더 이상 전통적인 정당 개념이 없는 것인가를 묻고 싶다. 예를 들어 프랑스 사회당이나 공산당이 보여주는 형태와 같은.

    = 상당히 논쟁적인 질문인 것 같다. 전통적인 정당에는 직업 정치적이며 관료화된 이미지가 강하다. 따라서 어떤 종류의 정당이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하나의 새로운 민주적 정당 건설에 성공한다면, 그래서 직업 정치적인 요소를 피하면서도 더 많은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다면, 이것은 하나의 ‘집합적인 기능’으로써, 지금까지로선 화폐와 미디어 등의 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최선의 저항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세골렌 루와얄(프랑스 사회당)의 선거캠페인을 보면, TV쇼 등으로 매우 인물화되어 있고 집합적인 기능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정치가 민주적인 논쟁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올리비에 브장스노의 선거 캠페인을 살펴보자. 물론 그도 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분명한 통제 속에 있었고, 따라서 개인적인 것이 아니었다.

    흔히들 비제도적인 네트워크가 많을수록 민주주의가 더 적어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내 생각에 이건 진실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사회운동의 가치는 큰 것이다.

    – 당신의 책을 보면 ‘투쟁 정당’이란 개념이 보이는데

       
      ▲ 사진=박지연 파리 통신원

    = 그렇다. 우리는 ‘투쟁 정당’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또한 우리는 노동조합과 다른 운동들을 포괄하는 사회운동 정당을 지향한다.

    궁극적으론 정치의 형태를 바꾸어내기 위해서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멕시코 사파티스타의 경험을 참고할 수 있을 게다. 그들의 슬로건, ‘권력을 가지지 않고 세계를 바꾸자’는 이른바 ‘권력 문제’, 즉 권력이 만들어내는 부정적인 문제를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에게 사회운동은 매우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 예를 들어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사회운동들이나 이주노동자와의 연대를 위한 저항 등 모든 사회운동들이 우리에겐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사회운동의 자율성을 존중하고자 한다면, 특히 정당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이 명확해질 것이다.

    단순히 사회운동에 뭔가를 덧붙이는 수준이 아니라 지구적 관점을 갖는 것, 그리고 사회적으로 공통의 관점을 갖는 것 말이다.

    – 그러면 NPA나 당신에게 제도정치 또는 정치의 제도적인 양상들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 물론 우리는 참여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선거에도 참여할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선거시스템은 의회로의 진입이 매우 어려운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프랑스에서 제도정치에 참가한다는 것은 (다른 정당들과의) ‘타협’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바로 이 점이 독일이나 이탈리아에서와 다른 점이다.

    제도정치와 사회운동 동시 추구

    – 요컨대, 당신은 제도정치와 사회운동의 정치 양자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인가?

    = 그렇다. 정확히 말하면, 그 둘을 접합하는 정치이다. 물론 우선적인 것은 사회적인 운동과 투쟁이지만 말이다.

    – 그러면 당신의 이러한 정당과 정치에 대한 개념은 새로운 것인가?

    = 물론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의 경험들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1백년 이상의 선거정치의 경험을 갖고 있는 유럽의 나라들에서, 선거에서의 일정한 승리가 없이, 혁명에 직접 도달하리라고 상상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니까. 여기서 스페인(인민전선과 스페인 내전)이나 칠레(아옌데 정권)에서의 역사적인 경험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선거와 운동, 이 둘과 함께 가는 거리의 정치를 원한다. 혁명적인 상황이란 때로는 총파업과 함께 시작된 이후 선거가 뒤따라오는 방식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선거에서의 승리와 함께 시작될 수도 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도 전국적인 총파업의 가능성은 열려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럴 때 우리에게 중심적인 것은 물론 사회운동이다.

    – 당신의 책 『정당을 건설하자』에 보면 ‘민주적 자주 관리’란 주장이 중요한 원리로 등장한다.

    = 이건 예를 들어 공공부문의 민영화에 대항하는 원리로써 중요하다. 특히 80년대 프랑스 좌파연합 정부의 경험과 관련해서 말이다. 만일 우리가 공공부문에 대한 국유화를 시도하려 한다면 대단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왜냐하면 공공부문의 기능이 이미 시장과 경영의 기준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에 저항하기 위해서 우리는 몇몇 공공부문의 재국유화를 주장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작업장에서의 토론과 민주주의를 조직하고 실행하기 위한 ‘민주적 자주 관리’를 매우 중요한 원리로 제출한 바 있다.

    – 새로운 인터내셔널리즘이란 무엇인가?

    =과거의 국제주의는 말하자면 일종의 ‘국가 중심의 인터내셔널리즘’이었다. 예를 들어 과거(1968년) 소련이 체코 사태에 개입했을 때, 그건 소위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내셔널리즘’이었다. 때문에 앞으로 우리에겐 새로운 종류의 인터내셔널이 필요하다. 왜냐면 최근엔 한 국가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는, 사회운동들과 그룹들 상호간의 직접적인 연대가 활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종류의 인터내셔널리즘 혹은 인터내셔널은, 예를 들어 우리가 적극적으로 참가했던 뭄바이와 브라질의 포르토 알레그레에서의 세계사회포럼의 경험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포럼들에서 새롭게 변형된 인터내셔널리즘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 그렇다면, ‘새로운 인터내셔널’은 새로운 조직이 아니라, 새로운 네트워크일 수도 있는가?

    =기본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중요한건 갈수록 투쟁이 국제화되고 있고,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원하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우리들에게도 어떠한 종류의 인터내셔널이냐, 즉 ‘조직’에 관한 문제는 중요한 것이다.

    네크워크에 기반한 새 인터내셔널

    그러나 현재 우리는 조직적으로 지탱하기에는 유용하지만 아직은 작은 국제적 흐름에 속해 있다. 더구나 다양한 역사와 경향을 갖고 있는 활동가들이 함께 있고, 이것을 매개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커다란 ‘조직’을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관계를 심화시키고 공고히 하는 것과 이를 통해 공통의 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보면, 국제적으로 심지어 대륙을 넘나드는 모임과 공동의 작업을 통해 반자본주의적 조직의 흐름을 네트워크 이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우리는 6개월마다 반자본주의적 흐름의 국제회의를 열고 있다. 최근의 회의에서 우리는 올 6월에 있을 유럽의회 선거에서, 어떤 정치를 말하고 공동 대처할 것인지 토론한 바 있고, 반자본주의적 후보들의 성공을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동시에 지난 1월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서도 우리는 반자본주의적 조직들의 국제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전 세계 25개국의 활동가들이 참가했다.

    – 사회주의, 생태사회주의, 21세기 사회주의란 어떤 내용들의 차이가 있는가?

    = 아니다. 내 생각에 그 차이가 큰 것은 아니라고 본다. ‘소셜리즘과 코뮤니즘’은 생태와 페미니즘의 가치를 포함하는 것 아닌가? 만일 당신이 사회주의를 주장한다면, 그것이 왜 사회-페미니즘이 될 수 없겠는가? 내 생각에는 그런 방식으로 충분히 결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생태-사회주의를 지지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태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생태와 사회주의는 전적으로 함께 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그럼 당신 스스로를 이념적으로 정의해본다면?

    = 나 자신에 대해서는 ‘국제주의적 코뮤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NPA가 추구하는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민주주의를 심화/확장/급진화 시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 잘 알다시피 민주주의는 단순히 선거만을 뜻하지 않는다. 물론 주류 정치학에서는 민주주의가 주로 ‘선거’를 의미하는 것으로 가르친다. 그러나 직접 민주주의의 요소들이 중요하고, 핵심적으로 민주주의는 정치적 대표자들에 대한 통제 그것도 지속적인 통제를 포함해야 한다. 이런 생각들이 민주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들 것이다.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참여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난 정확하게 이것이 예컨대 ‘보다 적극적인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 민주주의는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알져졌듯이, 포르토 알레그레에서는 구역 단위별로 평의회(council)들이 만들어졌다. (이를 통해 의료, 교육, 심지어 도로를 어떻게 낼 것인지 등까지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시 행정에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시 예산에도 반영된다. 참여예산제로 알려진 것.)

    이곳에서의 구체적인 경험을 일컬어 소위 참여 민주주의 공동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은 일종의 ‘결정과 함께 정당성’(decision and legitimacy)을 동시에 확보하는 이중적인 기능을 갖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예산에 대해 개입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단순한 컨설턴트의 역할이 아닌 직접적으로 권력의 실행 자체에 개입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이곳에서는 또 다른 권력이 형성된 바 있다. (나중엔 시의 선출직 정치가들을 제어하는 대항권력이 형성됨.)

    지난 대선 프랑스에서는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이 대의 민주주의를 혁신한다면서, 시민 패널 위원회를 주창한 바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토론하고 자문하는 역할만을 수행할 뿐이다. 따라서 포르토 알레그레의 경험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     *

    다음은 LCR의 전 대변인 알랭 크리빈과 새로운 정당건설을 바라보며 나눈 짧은 인터뷰이다.

    • 알랭 크리빈

    – LCR은 이제 사라졌다. LCR의 창단자로서 당의 해체와 새로운 정당을 바라보는 기분이 어떠한가?

       
      ▲ 알랑 크리빈 (사진=박지연 파리통신원)

    = 행복하다. 너무 기쁘다는 말밖에 달리 없다. 우리가 LCR을 창단할 때는 120명으로 시작했다. 그 역사가 이제 오늘을 낳았다. 왜냐면 지금의 NPA는 40년간의 LCR이 투쟁해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의 경제적 위기와 함께 정치적 운동을 현실화 시키게 만드는 정치적 국면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 민주주의와 마주 선 우리와 같은 68세대들의 사회에 대한 저항은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효과적 대안을 찾기 위한 일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의 총체적 결론이 반자본주의이다.

    이제 나는 당에서 은퇴하게 되었다. NPA에서 지급하는 연금을 받으면서 지내게 되었다. 하지만 역사와 투쟁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 NPA의 비젼은 무엇인가?

    = NPA는 다양한 정당들이 재통합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개혁이 아닌 자본주의 위기를 근원적으로 맞서는 반자본주의를 위해 통합할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세계화되어 착취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국지적인 투쟁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반자본주의 투쟁은 전 세계 민중들과 같이 국제적 관계를 유지하며 투쟁하게 될 것이다.

    어떠한 향수도 느끼지 않는다

    – NPA는 제4인터내셔널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NPA의 국제적 연대 투쟁들은 계속될 것이라 믿는다.

    = 국제적 연대를 위해서 투쟁하던 모든 LCR 동지들이 NPA로 다 옮겨왔다. 그 정신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전 세계적인 관점에서 보면 제4인터내셔널도 너무 작은 그룹이다. 그래서 오히려 NPA는 여러 노조들, 아탁 등 좀 더 광범위한 대안 세계화 운동에 나서야 한다.

    – 덧붙이고 싶은 한 마디는

    = 지나간 68과 40년의 세월에 어떠한 향수도 느끼지 않는다. 뒤돌아보며 추억담을 늘어놓기에는 앞으로 가야 할 투쟁들이 연속해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나간 과거의 68년은 실패했다. 하지만 NPA는 68세대의 승리이다. 우리는 프랑스를 승리와 함께 바꿔야만 한다. 그리고 NPA는 미래의 승리에도 도착할 것이다.

    – 다니엘 벤사이드 교수와 당신이 같이 집필한 책 『1968. 시작과 연속』을 한 권 샀다. 헌사를 부탁한다.

    = 68혁명의 계승과 승리를 위한 작은 기여 하나.

    정리 : 진보신당 독일 당원 류용선, 파리당 원 정의헌, 레디앙 파리통신원 박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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