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운동, 정당정치로부터 철수해야
    안타깝고,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다
    [노동과 희망] 통합진보당 “최악의 추태 드러내”
        2012년 05월 07일 12: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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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1 총선이 끝났다. 총선 결과에 따른 후유증을 뒤로 하고 여야의 보수 양당은 연말 대선을 향한 행보에 바쁘다. 사실상 보수 양당체제를 굳힌 이번 선거에서 13석으로 원내 3당의 지위를 확보한 통합진보당은 총선 과정에서 불거진 부정·부실 선거의 여파로 격심한 내홍에 빠졌을 뿐 아니라 보수·진보를 망라하여 언론 매체들로부터 뭇매를 맞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당 등록 취소의 상황에 처한 진보신당은 이후 좌파당 재구성의 전망을 찾겠다는 생각인 듯하지만, 당대표가 하방의 길에 나선 상황에서 아직은 그 진로를 가늠하기 어렵다. 양 당 모두와 거리를 두어 온 활동가들이 ‘노동정치’의 새로운 모색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도 한다. 비정규·미조직 활동과 투쟁에 중심을 두었던 일부 그룹들이 별도의 전국단위 노동자 정당 건설을 모색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진보정치=노동정치의 한계

    ‘진보정치’라는 말이 더 일반화되어 있고, ‘노동정치’는 그보다 폭이 좁거나 혹은 노동운동의 특수한 가치와 요구를 반영하는 말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나는 진보정치와 노동정치가 그 내포와 외연 모두 일치하는 같은 개념으로 이해한다.

    여성, 환경, 소수자 등 노동정치와 구분되는 진보적 의제와 가치들을 중심으로 하는 별도의 운동, 별도의 정치를 주창하는 흐름들이 있음을 잘 안다. 그러나 자본/노동의 모순적 결합으로 조직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모든 진보적 가치와 의제들은 그 바닥에 노동의 가치를 깔고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하지만 우리 노동운동과 노동정치=진보정치가 그런 흐름들을 온전히 담아낼 그릇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그 한계를 절감하고 ‘진보의 재구성’을 모색하려는 많은 노력들이 있었지만, 한마디로 실패했다. 논의는 무성했으나, 노동운동과 노동정치의 실천이 그것을 버린 탓이다.

    예컨대, 이번 선거에서 진보신당과 더불어 당 등록취소-재창당의 상황을 맞은 녹색당이 의미 있는 첫 정치적 실험을 거쳤다. 오랫동안 <녹색평론>을 읽어 온 애독자로서, 나는 이 아름다운 저널의 생태주의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위기에 처한 인간의 노동, 그리고 그 노동 혹은 노동의 주체로서의 인간이 자연과 맺고 있는 파괴적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을 유발하려 애쓰고 있음을 알고 있다.

    한진 크레인의 김진숙은 이번 선거에서 녹색당을 지지했다고 밝혔지만, 내 주위에는 그녀 말고도 이번 총선에서 녹색당을 지지했거나 녹색당에 가입한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여럿 있었다.

    그동안 형식적으로나마 내세워 온 여성주의적 가치도 이번 총선에 이르는 정치 과정에서 완전히 소실되었다. 여성주의적 가치는커녕 그동안 노동운동과 진보정당 내에 만연한 무지막지한 남성주의가 어떤 일들을 만들어 왔는지 모두가 알고 있다.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 시절에 발생한 성폭력 사건 당시, 허영구 부위원장은 임원직을 사퇴하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그동안 민주노총이 계속 자해행위를 반복하더니, 결국 ‘자결’해버렸다.”

    이 사건을 적당히 덮으려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조직의 책임자가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했다. 그의 사퇴를 요구하는 피켓시위가 5월 1일 노동절 행사장에서도 있었는데, 단상에서는 민주노총과 산별노조 대표자들이 총파업을 결의를 선포하고 있었다.

    사진=참세상

    통합진보당의 ‘총체적 부정·부실 선거’ 사태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겠지만, 그러나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는 보수정당에서조차도 찾아보기 힘든 최악의 추태를 노정했다. 이런 저런 진보적 가치들을 말하기 이전에 그 모든 것의 전제가 되는 ‘민주주의’를 파괴한 것이다. 노동운동과 진보정치의 내부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조직 ‘민주주의’가 실종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 그 적나라한 알몸이 드러나버린 것이다.

    이제 물러서야 할 때

    어떤 방식으로든 수습이 불가능할 것이다. 봉합을 하든, 주체를 바꾸어 내부 혁신에 나서든, 다시 또 분당을 하든, 수습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서 버렸다. 통합진보당에 몸담지 않았다고 해서 면책될 일이 아니다.

    그동안 어떤 식으로든 노동운동, 진보정치에 참여해온 모든 사람들은, 나 자신을 포함하여,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이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이 통합진보당 당권파든 경기남부든, 그들을 비판하고 질책하고 책임을 묻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자결’한 사체의 부검은 이미 여론, 언론, 그리고 아마도 검찰의 몫이 되어 있는지 모른다.

    노동운동은, 노조 간부들과 지도부들, 노동운동 활동가들은 이제 그동안의 노동정치, 진보정치의 실험이 총체적 실패를 맞았음을 인정해야 할 듯하다. 아쉽고 안타깝고 억울한 활동가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든 모두가 공동의 책임자다. 1987년 세대,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을 일구어 온 첫 세대의 역할도 끝나가고 있다. 후배들이 그들의 방식으로 더 진전된 노동운동, 노동정치를 모색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하고, 그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이제 정당정치로부터 일단 철수할 때가 되었다.

    제대로 된 정당정치의 토양을 일구기 위해서라도 철수가 불가피하다. 대중조직으로, 현장으로, 지역으로, 마을로, 노동의 가치가 다른 가치들과 어우러지고 때로는 충돌하는 일상적 실천의 장으로 복귀해야 할 때다. 정당정치가 아니라 운동의 정치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때다.

     

    필자소개
    임영일
    한국노동운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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